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91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91화
은의환향
칼미아의 순번이 끝나고 나서 어떻게 됐느냐.
솔직히 궁금하긴 했는데, 딱히 뭐 대단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대가 끝나자마자 직원들이 우르르 뛰어왔고, 얼굴로 X발X발 욕을 하면서 잔해들을 정리했을 뿐.
암흑을 틈타 나도 같이 정리를 도와줬을 뿐.
여전히 다음 순번에는 다음 뮤지션이 올라왔으며, 그렇게 사이타마 합동 콘서트는 잘 진행됐다.
물론….
“아니, 저기요!”
모든 일정이 끝나고, ST엔터의 직원들이 우리에게 달라붙었지만,
“뭐요, 왜.”
“밥이라도 사주시려고?”
의기양양해진 우리 쪽 직원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가자, 쪽수에 밀려서 그런지 주먹을 날리지는 못하더라.
‘…왜 저렇게 많이 따라왔나 했더니.’
설마 이런 경우까지 예상했던 것일까?
뭔가 다른 아이돌들보다 현지 보드가드들도 좀 많이 붙긴 했고.
최 이사.
이 양반은 진짜 준비성 하나만큼은 무서울 정도로 철저하다는 걸 느꼈다.
“당신들 오늘 무슨 짓을 한 건지 아는 겁니까?
“…회사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라며, 핏대도 같이 세우는 남정네들.
우리 쪽에서 되돌려 줄 것은 조소와 조롱뿐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하지정맥류 생겨.”
“가끔 일어나서 런지도 하고! 스쿼트도 하고! 건강이 차암 중요하지~”
“그으으으윽.”
“지금 장난하는 걸로 보이나!”
“한국가서 해장들 좀 하시고! ST 근처에 맛집 좀 많던데? 부러워~”
“퍼플 밤은 벌써 돌아간 건가? 발 진짜 빠르네.”
낄낄낄낄.
나는 단 한 마디도 안 거 들기는 했는데, 웃음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다.
뭐, 다들 장난스러운 얼굴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소송이니 뭐니, 꽤나 복잡해지지 않을까.
“수고하셨습니다.”
“아유, 수고는 도일 씨가 하셨죠. 저 무대 보다가 지릴 뻔했어요.”
물론 이번 공연은, 그 모든 것을 감당할 만할 정도로,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게 분명했다.
그래,
공연자용 출구 근처를 서성이는, 자신이 ‘퍼플 밤’의 팬이라 밝힌 일본 여돌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말이다.
“….”
…딱히 다가가서 말을 걸지는 않았다.
이미 죽여놓고 칼질하는 건 시체 매너가 아니잖아.
다만 그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는 했다.
자신의 우상이 카피캣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믿고 있던 것이 전면으로 부정당했을 텐데.
앞으로 과연 어떤 행보를 보일까.
“…!”
“…아.”
계속 쳐다보고 있자 시선을 느꼈는지, 그만 눈이 마주쳐 버렸다.
일순간일 뿐이었지만 그 눈동자는,
아주 약간, 생기가 돌아온 느낌이었다.
“앍! 엣!”
…미라이 나즈케의 이름 모를 소녀는, 쥰내 요상한 탄성과 함께 호다닥 도망가 버렸다.
“흐음….”
“도일 씨?”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정은 없다.
순순히 귀국길에만 오르기만 하면 되는데, 가는 길이 순탄치는 않더라.
올 때도 난장판이었는데. 갈 때 편하게 가는 건 기대도 안 했다.
-우와아와아아아 아아아아!
-[칼미아! 이쪽 좀 봐줘요!]
해는 이미 저물어 버린 상태.
공연은 1시간도 더 전에 끝나 버린 상태.
다만, 팬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스태프들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건물 근처에 남아 공연자들이 나오기까지 기다렸고,
그리고….
-찰칵!
-찰칵찰칵-!
핸드폰 카메라부터 대포 같은 DSLR. 각기 다른 크기의 렌즈를 우리 쪽으로 들이밀었다.
‘슈퍼스타가 된 거 같구만.’
뭐, 사진 찍힌 적이야 이전에도 몇 번 있긴 있었는데.
해외에서는 또 색다른 느낌이랄까.
게다가 ASAEH니 NTK니 나도 들어본 적 있는 신문, 방송사 카메라들도 다수 보이고.
“뉴스 나겠는데요?”
“흐흐흐. 좋다!”
“저분들이 퍼플 밤 팬이 아니길 빌어야죠!”
…저 양반들이 퍼플 밤 팬이라면 우리를 깎아내리기 바쁘겠지만서도.
다행히도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들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감정은, 호의 그 자체였으니까.
“[실례하겠습니다. 인터뷰 가능하실까요?]”
나는 슬쩍, 칼미아 멤버들이 인터뷰에 응할 수 있게 자리를 비켰다.
다만,
두 대의 카메라는 칼미아가 아닌 나를 비추고 있었다.
“[Lord of music 님! 당신의 인터뷰요!]”
“…아, 예?!”
나는 반사적으로 되묻듯 대답을 했고, 20대 후반 여성과 중년 남성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이 나에게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번 공연에서 모든 것을 예측하ㅅ…]”
“[광선검은 대체 어떤 장치로…!]”
되게 얼떨떨한 기분이다.
기자들한테 질문받는 게 처음은 아니긴 하지만, 그때는 미리 기자들이 자리 잡고 있던 상태기도 했고.
이렇게까지 직접 나를 찾아와서 팬과 카메라를 들이댄 적은 없었는데.
뭐랄까.
되게 감격스럽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하나….’
사명을 보아하니 지방 신문, 방송사가 아니다.
여기서 찍힌 사진, 영상은 오늘내일 중으로 일본 전국에 배포되겠지.
그렇기에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여기서 내뱉는 나의 말이, ‘해외’ 팬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힐 첫 번째 이미지이니까.
‘겸손 부리는 건 최악의 선택지지.’
내가 막 역사책에 나올 법한 음악적 위업을 이뤄서, 더 이상 어그로 소재가 남아 있지 않다면 모를까.
아니잖아?
여기서 겸손을 부렸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되고 나가리가 확정이다.
이 세상에는 나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니까.
그러므로,
“[자연현상입니다.]”
나는 질러 버렸다.
“[…자연현상이요?]”
“[제가 음악계의 정상에 서는 것.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태풍처럼 휩쓸고 지나가는 것. 일종의 자연현상이라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
…솔직히 말하자.
2초 생각한다고 해서 과연 얼마나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나도 모른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내뱉고 있는지, 감이 안 잡힌다는 소리다!
‘…표정이 참 재밌구만.’
완전 방심 상태에서 망치로 뒤통수라도 후려맞은 듯한 표정들.
진짜 진심으로 미친놈을 보는 듯한 얼굴.
나는 괜히 더 부담스러워졌기에,
“[정상에 선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인 거죠?]”
“[좀 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십시오.]”
마지막 대사를 토해낸 뒤, 도망치듯이 자리를 벗어날 뿐이었다.
등 뒤에서 여전히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지만, 돌아볼 수는 없었다.
…적어도 욕은 안 쓰겠지 싶은데.
막상 카메라 앞에 서니까 말이 잘 안 나오는데. 설마 이거 울렁증인 걸까?
‘…모르겠다 쉬X.’
오늘은 특히 피곤했다.
지옥에서 돌아와 몸이 엄청나게 튼튼해졌다고 해도, 피로를 완전하게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스케줄상 밤 비행기로 떠난다고는 하는데. 잠깐 차에서 눈을 감았다가 뜨니 공항이더라.
저 멀리 보이는 것은 난생처음으로 나가본, 이국 수도의 화려한 야경이었다.
“…돌아갑시다.”
“넵!”
“가즈아!”
…남들은 일본 여행 오면 음식이니 관광지니 뽕을 뽑아가던데.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
다만,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은 없었다.
티링! 티링-!
차에서 자고 일어난 후, 출국 절차를 밟을 때도, 가족들에게 갖다줄 면세품을 고를 때도.
비즈니스석에 오른 지금조차.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리고 있었으니까.
“….”
나는 잉스타그램을 켰다.
아무리 넷상에서 화제가 되는 게 확정이 돼 있다고 해도, 바로 불타오를 리는 없을 테고.
원래 이런 건 묵혀둬야 맛이 좋잖아.
가장 처음 나를 맞아준 것은 아침과는 다른 팔로워 숫자였다.
23만.
아침까지만 해도 분명 10만 초반이었는데,
단 몇 시간 만에, 10만에 가까운 숫자가 붙어버렸다.
“오… 셀럽 등극?”
“…우리도 좀 오르고 있는데… 이 정도 속도는 아닌데?”
“…흐흐.”
곧 비행기가 뜨기 때문에 댓글을 더 이어서 보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한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금의환향… 인가.’
생각해 보면 좀 오바인거 같아서 은의환향이라고 정했다.
* * *
“건반 터치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한국예대의 피아노 전공 교수, 이연화는 요즘 들어 기분이 아주 좋았다.
뭐, 사실은 2년 전 ‘교수’라는 직함을 받은 이후로는 기분이 안 좋은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요즘은 강의하다가 헤죽헤죽 웃음이 나올 정도로 좋았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자신만의 가르침 거리가 생겼다는 것.
심지어 그 ‘가르침 거리’라는 게, 생긴지 몇 달 채 안 된 따끈따끈한 기술이라는 것!
‘…힘든 나날이었지.’
평소 과묵하기 그지없던 임재철 교수가, 갑자기 한국예대의 교수들을 소집했다.
이유는 그의 제자, 김도일이라는 학생의 국제 대회 준비 때문.
뭔 별일인가 싶었는데, 별일이더라.
일본의 속주계의 거장과 유망주, 이케다 부자가 한국을 비하했고, 김도일이 총대를 메어 맞대결을 펼치려고 하더라.
솔직히 말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힘을 합쳐 그를 연습시켰고, 그에게 조언을 해주었고, 결국 그는 국제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 얼마나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야기인가?
관련 썰만 풀어도 학생들의 집중도가 확확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게다가,
“…아직 본인이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김도일 군이 개발한 ‘Forced Dynamic Range Expansion’의 탄생에, 사실 우리 한국예대 교수들의 노력도 들어 있다, 이 말이에요!”
그가 개발한 신기술에, 자신도 연습 과정 중에 일부분 조언을 해주었다는 사실이 있다!
‘흐흐흐.’
돈, 권력, 명예가 사람들의 욕망의 결정체라고 하지 않던가.
이연화는 그중 명예욕이 가장 거대한 인간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명예에 큰 도움을 준 소년을 은인 취급하더라도 모자람이 없지 않겠는가.
물론,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예요?”
“솔직히 그냥 건반 엄청 세게 누르는 것밖에 더 되나.”
“정상적인 연주법은 맞아요?”
일방적인 호감 표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하하….”
…‘새로운 것’에 대해 경계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 맞지만서도.
클래식이라는 판이, 그 경계심이란 게 매우 극심한 분야긴 하면서도.
저런 태도는 뭐랄까.
자신의 학생이긴 하지만, 조금 안쓰럽다고나 할까.
“바이올린족 피치카토도, 그냥 줄을 뜯는 것뿐이에요. 정상적인 연주법이 아니었죠.”
“….”
“버티컬 보잉이나 베이스 연주자가 손바닥으로 타음을 내는 건요? 마찬가지예요.”
클래식 악기 기술의 대부분은, 이미 100년도 더 전에 완성되었다.
완성된 주법, 완성된 악보를 보전하는 것이 연주자의 숙원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숙원은, 족쇄로 작용했다.
따분함이라는 이름의 족쇄로.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주법이 나왔다는 것은 환영해야 할 만한 일이에요. 그 어떤 사람도 피아노 현의 ‘치찰음’을 이용할 생각을 못 했잖아요? 새로운 것이 나왔고, 우리는 연습해서 쓰면 된다. 이뿐인 거죠!”
…모든 곡에 영향을 줄 만한 기술은 아니다.
그리고, 아무나 쉽게 쓸 만한 기술 또한 아니다.
근데 그게 어쨌는가?
선택지가 많아졌는데.
그 선택지를 넓힌다는 일을, 한 열여덟짜리 소년이 해내었는데.
“….”
강의실에는 아직도 납득을 못 하겠다는 뚱한 표정들이 몇 보였다.
다만,
“곧 퀸 엘리자베스가 열리죠. 김도일 학생도 참전할 확률이 높아요.”
고등학생인 그가 자신들과 ‘같은’ 위치에 설 수 있다는 정보를 듣자마자,
뚱한 표정은,
서서히, 공포로 바뀌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