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villain's infinite absorption power RAW novel - Chapter 64
65. 초대형 몬스터
쓰고 있던 카우보이 모자를 등 뒤로 내던진 조엘의 손가락이 허리춤에서 까딱거렸다.
흡사 서부의 총잡이처럼 홀스터에서 리볼버를 금방이라도 뽑을 기세였지만,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오히려 채찍이었다.
거무튀튀한 가죽이 탁하게 바랜 것이 제법 사용 빈도가 높아 보였다.
“등급 차이가 나니 나는 채찍으로 싸웁니다. 이수혁 길드장. 준비 됐나요?”
“좋을 대로.”
지가 지 무덤 스스로 판다는데 뭐.
귀찮은 표정의 수혁이 아공간에서 자신의 자랑, 장미 무늬의 톱날검을 꺼내 들었다.
‘창피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쏘리 맨~’
예전에 홍영기에게 졌던 그는 이번 설움의 기회를 키모에게 넘겨 주었다.
자신은 홍영기를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느꼈던 패배의 서러움을 블러드 길드에게 안겨 주고 싶었다.
팀으로 게이트 공략을 단합해서 깨는 것과 일반 개인전은 다르니까.
홍영기를 제외한 길드원들의 실력은 들은 바가 없기에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자국의 헌터들 전부 다 패배해 버렸다.
이대로라면 서부 협회에서 자신들을 조롱거리로 삼을 것이 분명했다.
‘대신 검을 안 들었으니까.’
스스로를 억지로 위안한 조엘이 느슨하게 잡은 채찍을 빠르게 휘둘렀다.
한 등급 낮은 상대의 헌터를 상대로 늦게 끝내는 것도 그의 손해였다.
‘한 방에 끝내고 마무리 짓자.’
뱀처럼 곡선을 그리며 휘어진 채찍이 수혁의 검을 잡았다.
아니 잡았다고 생각했다.
서걱.
검에 맞닿은 채찍이 여러 조각으로 잘려 나갔다.
“왓?!”
당혹스러운 조엘이 짧아진 채찍에 함성을 토해 냈다.
다른 무기를 뭘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빠르게 접근한 수혁이 검을 휘둘렀다.
다급히 상체를 숙인 조엘의 얼굴로 수혁의 무릎이 다가왔다.
빠-악. 털썩.
지금껏 시합 중에서 가장 허무하게 끝이 났다.
바닥에 쓰러진 조엘은 기절한 것인지, 창피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조엘마저 쓰러지자 미국 헌터들 모두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조엘의 명복을 빌어 주자.”
“한 등급 밑 헌터에게 지다니.”
“그래도 움직임이 엄청 빨랐다고.”
“……대-앰. 망했어.”
* * *
뉴욕의 호텔에 블러드 길드를 데려다 준 조엘은 도망치듯 떠나갔다.
외국 헌터들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이유로 흥분을 감추지 못한 길드원들을 두고 수혁은 자리를 떠났다.
“곧 게이트 공략이니 다들 컨디션 조절합시다.”
호텔 로비로 내려간 수혁을 맞이한 건 선데이였다.
그녀가 준비한 밴에 탑승하자 놀랍게도 토마스가 앉아 있었다.
과거 한국 대사로 활동했던 토마스는 미국으로 복귀한 후, 정치 쪽으로 큰 활약을 이어 갔다.
현재 뉴욕주지사의 자리까지 도달한 그는 공손히 수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마스터.”
“토마스.”
그들이 탄 차량이 부둣가의 한적한 곳에 도착하자 선데이가 수혁을 부른 이유를 설명했다.
“마스터께서 주신 자료로 비셔스의 일당을 어느 정도 밀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파악하지 못한 자들이 정재계에 이미 깊숙이 들어가 있는 상태입니다. 그 와중에 저희의 흔적을 파악한 비셔스가 지금 토마스를 노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뉴욕주지사는 차기 대권까지도 넘볼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인 자리였다.
현재 여당이 정권을 집권하고 있지만 토마스는 야당에서 밀어 주는 중요한 자였다.
정보국의 싸움을 넘어 중요한 물 밑 싸움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토마스를 지켜 달라?”
“네. 저희가 아직 비셔스의 흔적을 쫓는 동안 토마스를 지켜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최근 들어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가 구분이 어려운 상황이라 부득이하게 마스터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시간을 끈다면 토마스를 노리는 자를 역추적해서 비셔스의 흔적을 더 찾아낼 수도 있을 겁니다.”
“좋아. 합리적이군. 잘했어, 선데이. 지금 게이트를 공략할 명분으로 왔으니 빨리 깨고 합류하겠어. 토마스. 일단 이걸 받도록.”
[물의 정령 아크네의 메달 : 마법 공격을 자동으로 막아 준다. (1회)]과거 게이트에서 얻었던 아이템이지만 수혁이 살면서 사용될 일이 없었다.
오히려 각성자가 아닌 토마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 생각되자 서슴없이 그에게 넘겨주었다.
“감사합니다. 마스터.”
“그래. 내가 게이트 깨는 동안만 버텨. 그리고 믿을 만한 사람을 한 명 붙여 주지.”
“네.”
* * *
“이번 게이트 공략에서 마린느는 따로 빠지고 우리끼리 들어갑니다. 그간 연습했던 포메이션을 펼쳐 볼 기회가 왔군요. 마린느는 게이트 대신 경호 업무를 맡을 겁니다.”
“아~ 아쉽다. 언니가 있어야 든든한데.”
마린느가 후방에서 블러드 길드의 뒤를 지켜 주는 역할이었기에 박이현이 아쉬움을 표했다.
“마린느는 선데이를 따라가도록. 내가 없는 동안 토마스를 지켜.”
“네.”
수혁의 명령에 마린느가 고개를 짧게 숙였다.
“언니. 파이팅.”
“…파이팅.”
고개 숙인 그녀를 향해 동생들이 속삭이며 응원을 보냈다.
응원을 들은 그녀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위로 올라갔다.
그간 인간인 동생들과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 버린 그녀였다.
사전에 수혁에게 얘기를 들은 마린느가 선데이의 뒤를 따라갔다.
수혁의 부하인 선데이나 토마스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감출 필요가 없는 그녀는 토마스의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편하게 드러누웠다.
그리고는 선데이를 향해 명령했다.
“앞으로 내 허락 없이 토마스는 아무도 못 만나. 그러니 이 사무실 문 잠가 버려. 토마스 네가 이 땅의 영주라지? 나랑 하루 종일 같이 있는 거야. 알았지? 너에게 영주로서 해야 할 일과 마음가짐을 일깨워 주지.”
그녀의 말에 토마스가 당혹스러운 듯 헛기침을 연발했다.
“커흠… 마린느. 나는 주지사로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정책에 반영을 해야….”
“그래. 마린느. 네가 마스터의 명령에 따르는 건 맞지만 그게 토마스를 가두라는 얘기는 아니었어.”
두 사람의 반발에 마린느가 아공간에서 철퇴를 꺼내 바닥에 쿵 하며 내려놓았다.
철퇴 손잡이의 끝에 양손을 얹은 그녀가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내 경호 방식에 불만이 있나?”
“……마스터가 빨리 오기를. 토마스. 오늘 하루 일정은 취소하는 게 좋겠군요.”
“허허. 덕분에 사무실에서 휴가를 맞이하는군요. 기왕이면 휴가 장소를 집으로 옮겨도 될까요?”
토마스의 말에 마린느가 고개를 저었다.
이어서 나온 그녀의 확신 어린 말이 이어졌다.
“영주는 전쟁 중에 자신의 성을 떠나지 않는다. 명심하도록.”
“…좋습니다.”
토마스와 선데이의 눈이 마주쳤다.
‘마스터 언제 오시나.’
* * *
대외적으로 한국의 헌터들이 미국의 게이트를 공략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들의 자존심에 큰 타격이 생길 테니.
서부 협회의 조용한 응원 속에서 블러드 길드는 뉴욕시의 하수구로 들어갔다.
“으으… 바퀴벌레에 냄새까지… 최악이다.”
“게이트가 하필 이런 곳에 생기다니… 허허. 색다른 경험이네요.”
몬스터를 잡을 때와는 다른 불편한 악취에 박이현이 코를 부여잡았다.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하수구 터널의 끝에 검은색 게이트가 일렁거리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다들 무사하기를 빌죠.”
“오케이. 조엘. 고맙군요. 다들 입장하자.”
조엘과 악수로 헤어진 수혁은 길드원들과 함께 게이트로 들어갔다.
악취 나는 하수구에서 벗어나 게이트를 통과하고 맞이한 풍경은 기존과는 사뭇 달랐다.
그동안 녹음이 우거지거나 산과 강을 끼고 있는 푸릇푸릇한 지형을 봐 왔던 것과 달리 황량한 땅에 메마른 먼지만 휘날렸다.
생기를 잃은 나뭇가지는 껍질이 갈라져 텅 빈 속살을 드러냈다.
푸석한 땅을 밟은 길드원들을 향해 수혁이 말했다.
“언제나 달라질 건 없다. 환경은 부수적이고 중요한 건 우리의 실력을 100% 발휘하는 것에 집중하도록. 내가 마린느를 대신해 후방으로 갈 테니 이현이는 앞으로 길을 이끌어.”
“네.”
나침반을 꺼낸 박이현이 경계심을 곤두세우고는 선두에서 길을 이끌었다.
선두의 헌터는 계속해서 위험을 감지하느라 집중력을 잃을 법도 한데, 그녀는 언제나 한결같이 집중력을 유지했다.
체력을 뛰어넘는 강인한 정신력이 박이현의 최고 강점이었다.
“이현이 잘한다-!”
“…시끄러.”
한 번씩 홍영기의 헛소리에 집중력이 깨지지만.
한때는 울창한 숲이었는지 다양한 크기의 나무들이 많았지만 이파리가 없어 시야를 확보하는 데는 이상이 없었다.
헌터들의 향상된 시야에도 그 흔한 벌레나 새의 존재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 후, 메마른 땅을 걸어가던 블러드 길드원들의 발걸음이 동시에 멈췄다.
드드드드드.
땅의 진동이 거세지더니 곧 땅거죽을 헤집으며 알 수 없는 존재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땅속에 있어!”
“내가 막아 볼게.”
앞으로 나온 홍영기가 방패를 땅바닥에 박아 넣고 스킬을 사용했다.
“워 배리어!”
어떤 적인지 모르는 와중에 그는 자신의 방어력을 믿어 보기로 했다.
마침내 갈라지는 땅속에서 튀어나온 존재를 본 길드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대한 주둥이에는 삐죽삐죽한 이빨들이 몇 겹이나 둥그렇게 달려 있었고, 무엇보다 크기가 작은 빌라 건물보다도 훨씬 큰 지렁이었다.
입을 벌리자 홍영기를 통째로 삼킬 정도의 초대형 몬스터였다.
지렁이가 땅으로 올라오면서 생긴 그림자가 블러드 길드원들 모두를 가렸다.
꿀꺽.
“너무 큰데?”
“뒤로 빠지고 이 헌터 마법!”
“네!”
수혁의 명령에 방패로 막으려던 홍영기가 황급히 뒷걸음질 쳤고 이명한의 화염 마법이 지렁이의 크게 벌린 입으로 들어갔다.
콰-앙.
내부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자 고통에 발버둥 치는 지렁이가 더욱 화가 난 듯 몸부림치며 다가왔다.
처음 겪는 초대형 몬스터에 당황한 길드원들을 대신해 수혁이 앞으로 나섰다.
“영기는 이 헌터 지켜! 내가 시선을 끌 테니 마법 계속 갈겨!”
주둥이를 벌린 지렁이의 옆으로 수혁의 검이 지나치자 겉가죽이 갈라지며 짙은 갈색의 체액이 뿜어져 나왔다.
옆구리의 고통에 지렁이의 머리가 수혁에게 향했다.
붉은 검기로 지렁이의 꼬리를 잘라 내던 수혁에게 어그로가 확실히 끌리자 이명한이 그 틈에 온 마력을 끌어모아 최대한 강한 마법을 사용했다.
“헬파이어-!”
이명한의 손끝에서 백광(白光)의 빛을 띤 화염의 구체가 날아가더니 지렁이의 몸 일부분을 통째로 녹여 버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지렁이를 향해 길드원들 모두가 달려들었다.
“좀 죽어라-!”
한이 서린 홍영기의 망치질과 함께 박이현은 활을 쏘는 것 대신 무기를 단검으로 바꿔 이곳저곳을 찔러 댔다.
김예현 역시 수혁의 맞은편에서 지렁이의 몸뚱아리를 향해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코끼리와 싸우는 개미들과 같았지만 보통 사나운 개미들이 아니었다.
마침내 지렁이가 커다란 몸뚱이를 늘어트리며 바닥에 충격음과 함께 쓰러졌다.
쿠-웅.
지렁이가 부딪힌 땅바닥에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헉. 헉. 좀 당황스럽네.”
허리를 숙이고 당혹스러웠는지 호흡을 가다듬던 홍영기의 말에 모두 공감했다.
그런 그들에게 수혁이 입을 열었다.
“몬스터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 보스 몬스터 잡을 때 다들 체력을 분배하잖아. 이것도 마찬가지야. 앞으로 슈페리얼 등급의 몬스터들은 전부 이런 식일 테니 차라리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자.”
이제 막 슈페리얼, 일명 S급에 오른 홍영기의 자만심이 살짝 꺾였다.
그래. 아직 만렙 못 찍었잖아.
“이 정도라니… 미국의 헌터들이 어째서 공략을 못 했는지 알겠네요.”
“…렙업이 필요해요.”
홍영기를 제외한 챔피언 등급의 길드원들이 힘들어하는 건 당연했다.
오로지 수혁의 능력 덕에 더 상위 등급의 게이트를 소수의 숫자로 깨 왔으니까.
슬슬 난이도에 적응해 느슨해진 긴장감을 다시 당겨 주는 것이 길드장인 수혁의 몫이었다.
다들 성장에 관한 욕구가 마구 치솟는 걸 보니 만족스럽다.
“쉬었으면 출발하자. 저런 몬스터가 자주 나오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수혁으로서는 내심 아쉬웠다.
몬스터의 경험치가 제법 짭짤했거든.
몸을 추스른 길드원들이 다시 출발하려고 할 때 또다시 땅이 덜덜 떨렸다.
능선 너머에서 여러 갈래로 땅이 갈라지더니 흐르는 물줄기처럼 블러드 길드를 향해 다가왔다.
사색이 된 길드원들과 달리 수혁이 홀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