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Doctor RAW novel - Chapter 318
318화 이걸 빈혈로 내? (3)
뭐 같냐는 바루다의 질문은 정말이지 뭣같이 들렸다.
이유는 다양했다.
일단 바루다라는 녀석의 말투가 좀 그랬다.
옛날, 그러니까 지금보다 좀 후진 인공지능일 때도 그랬지만 요새는 사람 열 받게 하려는 목적으로 딥러닝을 하고 있나 싶을 지경이었다.
‘으음…….’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역시 답을 모르겠다는 데에 있었다.
그건 그냥 수혁의 성질이 더럽다는 얘기나 다름없는 말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원래 모르는 거 자꾸 물어보는 것만큼 사람 열 받게 하는 일도 드물지 않은가.
예를 들어 이비인후과 의사에게 다이어트하는 방법을 묻는다든지, 아니면 키 작은 사람에게 키 크는 법을 물어본다든지 하는 것들.
정확하게 같은 종류의 상황인지는 모호했으나 느끼고 있는 감정만큼은 거의 같았다.
[모르겠어요?]그때 이렇게 확신을 갖고 물어보면 더더욱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가?’
[모르겠군요?]‘아오.’
[모르겠으면 모른다고 하세요.]‘몰라, 몰라. 모른다 인마.’
[의사가 돼서 환자 진단명 모른다는 말을 이렇게 당당하게 하다니. 태화 의과 대학 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후우.’
수혁은 간신히 화를 참아 낼 수 있었다.
어차피 바루다에게 위해를 가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머리통을 때리면 조금 괴로워하는 거 같긴 했지만.
무조건 수혁이 더 괴로워지는 방법이었다.
해서 씩씩거리고 있으려니 바루다가 입을 열었다.
또 놀리는 말이었으면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머리통을, 정확히는 옆통수를 후려쳤을 텐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저도 잘 모르겠지만, 검사해 볼 목록 정도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더군요. 그건 수혁도 마찬가지 아닙니까?]확실히 바루다의 탄생 목적은 수혁 갈구기가 아니라, 의료 즉, 진단과 치료에 있지 않은가.
본분을 잃지 않은 바루다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아니, 다른 방향이라기보다는 좀 더 느린 방식이었다.
원래는 이게 대부분 의사가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보면 되었다.
수혁이나 바루다가 이상해서 진단부터 내리고 그걸 확인하는 차원에서 검사를 하는 것이지, 원래는 검사를 통해 하나하나 단서를 짚어 나가는 것이 제대로 된 진단 방식이란 얘기였다.
‘검사라…….’
[네. 검사. 특히 영상학적 검사 말입니다.]현대 의학에 있던 진단의 발전은 곧 영상학적 검사의 발전이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X-ray가 보편화 되면서 청진기는 거의 구시대의 유물이 되지 않았는가.
물론 여전히 대다수 의사가 청진기를 사용하지만.
그것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조건이라도 해도 좋을 만큼, 진단 자체는 X-ray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환자는 CT를 찍었어. 조영제를 썼는데……. 딱히 출혈 소견은 없었어.’
‘하긴, 그건 그렇지.’
물론 조영제를 쓴 CT에서 대부분의 출혈을 잡아낼 수 있는 건 맞았다.
애초에 조영제라는 게 혈관을 타고 흐르지 않는가.
그 말은 곧 조영제로 인해 조영 증강되는 부분이 혈관 외의 부분에서 관찰이 된다면, 그쪽에 출혈이 있다고 봐도 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나오려면 출혈의 양이 꽤 많아야 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CT에서 음성이 나왔다고 덮어 놓고 그 음성 소견을 믿었다간 사고 치는 수가 있었다.
수혁은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환자의 소변 양상을 보면 역시 출혈이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야, 그렇지?’
[네, 그렇게 판단합니다.]‘아마도 요관이나 방광에서 있겠지? ……CT에서는 안 보이고.’
[그렇습니다.]‘그럼 그쪽을 보다 면밀히 살펴볼 수 있는 검사가 필요하겠는데……. 뭐가 있지?’
[알면서 묻는 것이겠지만, 우선 리스트 업을 해 보겠습니다.]바루다는 설마 이것도 모르나 하는 얼굴을 하다가 이내 주르륵 검사 목록을 읊어 주었다.
어떤 것은 진짜 그냥 목록에 줄 하나 채울 목적으로 말한 것도 있었지만 대개는 쓸 만한 것들이었다.
특히 대동맥조영도나 배설요도 조영술 및 요관조영술이 좋았다.
딱 듣기만 해도 뭔가 나올 거 같은 이름 아닌가.
‘음, 이 세 가지가 좋겠는데.’
[제 판단도 그렇습니다.]심지어 바루다의 판단도 같았다.
그렇다면 역시나 이 검사들을 시행하는 게 옳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바루다와 수혁 둘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바로 시행에 옮길 수는 없었다.
이 환자는 수혁의 환자가 아니니까.
‘일단 기록을 남겨야겠네.’
[의견도 남기십쇼. 하지만…….]‘이거 다 보고 처방 내고 검사 예약까지 되려면 오래 걸리겠지?’
[일단 오늘 안에 처방이 나갈까 말까 할 겁니다.]남의 과 환자라고 수수방관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나 비뇨기과와 같이 사람이 적은 마이너 서저리 과의 사정을 대강이나마 알게 된 지금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보나 마나 주치의는 지금 수술방에 있을 게 뻔했다.
태화 의료원의 비뇨기과는 로봇과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이나 로봇으로 전립선 수술을 많이 하는 데다가, 신장암에 대한 신장 절제술도 직접하고 있는 과였다.
심지어 신장 이식술도 외과랑 나눠서 하고 있을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과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비뇨기과 학회에서 레지던트를 더 주진 않았다.
그 말은 곧 태화 의료원의 비뇨기과 레지던트는 지옥처럼 바쁘단 뜻이었다.
‘우리 병원 레지던트들이 다 그렇지…….’
사실 비뇨기과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었다.
대부분 과가 국내 최고 수준이었기에 그만큼 환자들이 몰렸다.
단순히 숫자만 많이 보는 게 아니라 질적으로도 그랬다.
학회에서는 당연히 이런 사정을 봐주면서까지 전공의 티오를 늘려 주진 않았기 때문에 다들 빡셌다.
수혁의 예상이 지극히 합리적이라는 뜻이었다.
[환자는 계속해서 혈액을 잃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이라면 시간을 두고 따라잡을 수 있겠지만 이 환자는 그렇지가 못해요. 더군다나 아까 보셨죠?]‘원래도 컨디션이 그렇게 좋은 환자가 아니지.’
‘아마 비뇨기과에서는 출혈까지는 생각을 못 한 거 같아. 혈뇨는 자기들 전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겠지.’
[동의합니다.]자기들 전문 영역이지만 동시에 어려운 케이스를 협진 내서 망신을 주고, 통합진료센터라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알리기 위해서였을 터.
하지만 수혁이나 바루다는 딱 감이 온 상황이었다.
이건 절대 단순한 혈뇨나 빈혈이 아니었다.
뭔가 더 커다란 원인 질환이 있을 거 같았다.
그걸 찾기 위해서는 방금 바루다가 열거한 검사가 필요했다.
그것도 지금 당장.
해서 수혁은 협진 의견서를 작성하자마자, 주치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네, 김병엽 선생님 전화입니다.”
당연하다는 듯 수술실 간호사가 전화를 받았다.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수혁은 당황하는 대신 그대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 네, 선생님. 저는 내과 3년 차 이수혁입니다.”
“네, 이수혁 선생님. 지금 김병엽 선생님은 수술 중입니다.”
수술이 오리무중으로 빠지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상대는 차분하게 수혁의 말에 대응하고 있었다.
만약 수술이 개판으로 흘러가고 있었다면 일단 배경으로 고성이 깔리고 간호사 또한 허둥지둥하고 있었을 터였다.
“네, 혹시 잠깐 통화 가능할까요? 협진 낸 환자 때문에요.”
“아……. 잠시만요.”
그랬다면 통화고 나발이고 벌써 끊었을 게 뻔했다.
아무리 병원 분위기가 예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하지만.
수술실만큼은 예외였기 때문이었다.
환자가 의식을 잃고 온전히 의사에게 몸을 맡기는 것이 수술 아니던가.
집도의라면 알게 모르게 다들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주 인격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중압감을 대개 소리 지르는 것으로 풀었다.
“혹시 어떤 협진이냐고 하시는데요?”
“이기일 환자입니다. 전립선암으로 수술받았고, 지금은 혈뇨 및 빈혈 주소로 입원한 환자. 빈혈 때문에 혈액종양내과로 협진 주셨습니다.”
“이기일, 전립선암, 혈뇨, 빈혈. 네. 알겠습니다.”
통화하는 태도로 볼 때, 상대는 아무래도 신규 같았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보통 수술 보조는 시니어가 맡고, 그 시니어에 대한 보조를 신규가 맡았으니까.
아무튼, 또다시 전화기 너머로 도도도 달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기일?”
예상과는 달리 이기일이라는 이름에 반응을 보인 것은 중년의 목소리였다.
익숙한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수혁이나 바루다는 그 주인공을 어렵지 않게 맞힐 수 있었다.
‘박상헌 교수구만.’
‘거참……. 김문재 교수님이랑 베프라고 하더니 이런 식으로 엿 먹이려고 애를 쓰시네?’
[상관없지 않습니까? 먹이려고 해도 우리가 안 먹으면 고만이죠.]‘그렇긴 하지.’
말하자면 교수가 악의를 품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주니어를 벗어나 학회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할 나이의 교수였다.
하지만 수혁은 딱히 두렵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우스웠다.
일단 병원 내에서만 해도 이현종, 신현태, 조태진 등 든든한 후원자들이 있지 않은가.
병원 밖까지 시선을 돌리면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그러니 박상헌 정도를 무서워하는 건 이상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받아 봐. 뭐라는지 좀 보자.”
그러한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박상헌으로서는 고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 어린놈의 친구가 자기도 아직 모르겠는 질환을 알아낼 수 있을까?
절대 불가할 터였다.
원래 마이너 서저리 과에 해당하는 질환들이 그랬다.
학생 때는 훑고 지나가듯 배우거나 아예 다루지 않기에 전공의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관련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모든 의사들이 필수적으로 배워야만 하는 내과랑은 다르다, 이 말씀이었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김병엽입니다.”
“네, 김병엽 선생님. 내과 이수혁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수혁 선생님. 혹시 어떤 일 때문에 전화를 주신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이기일 환자분 때문입니다. 그 환자 협진 주신 내용하고 랩이랑 영상 검사 봤고요. 직접 환자 진료도 했는데……. 아무래도 요로관에 출혈이 의심돼서요. 대동맥조영도, 배설요도 조영술, 요관조영술. 이 세 가지 검사를 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
김병엽은 이제 막 2년 차가 된 몸이었다.
다시 말하면 당직과 병동 업무의 노예였다가 벗어난 지 얼마 안 됐단 뜻이었다.
내과랑은 또 다른 게, 이쪽은 수술까지 들어가야 하지 않은가.
경험은 있어도 지식은 없는 상태란 뜻이었다.
방금 수혁이 말한 검사들을 처방하거나, 또 결과를 본 적은 있었지만, 의미는 잘 알지 못했다.
해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으려니, 수술 마무리 중이었던 박상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CT 완전히 멀쩡했는데 출혈을 의심해?”
다행히 이 말은 김병엽도 알아먹을 수 있었다.
떡하니 영상에서 남겨 준 판독문이 있어서였다.
“아, 네. 이상 소견 없다고 했습니다.”
“쓸데없이 노인네 고생시킬 필요 없어. 내과 애들……. 원래 잘 모르면 검사부터 긁는 게 습관이야. 일단 두라고 해.”
“아, 네. 알겠습니다.”
해서 일단 두라는 말에 동의하고 말았다.
수혁과 바루다가 바라던 바와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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