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Doctor RAW novel - Chapter 728
728화 열정, 열정, 열정 (4)
엑스레이.
기본 검사 중의 기본 검사라고 보면 되었다.
얼마나 기본이냐면, 어지간한 동네 병원에서도 엑스레이 정도는 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물론 이비인후과 같은 마이너 과 병원은 엑스레이 건너뛰고 앉아서 찍는 저선량 CT를 구비해 놓기도 하지만.
내과, 소아과와 같은 메이저 병원만 놓고 보면 진짜 그랬다.
“일단 흉부 찍고! 바로 CT실로!”
그렇다 보니 살짝 저평가되는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귀하지가 않지 않나.
심지어 찍어 놓은 사진을 보면 하얀 건 뼈고 검은 건 공기라는데, 당최 뭐가 뭔질 모르겠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환자들도 엑스레이 찍는다고 하면 그냥 으레 찍는 건 찍는구나 하고, 심지어 의사들 중에서도 엑스레이는 제대로 된 검사로 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흉부 엑스레이……. 이게 기본이자…… 제일 중요한 거지.’
하지만 내과 의사에게 흉부 엑스레이는 무척 중요한 것이었다.
이거 하나로 알 수 있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그랬다.
CT가 보편화된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안대훈은 기본적으로 수혁의 제자이기 전에 이현종의 제자이지 않나.
언제나 기본을 강조하는 사람 밑에서 배운 이답게 안대훈은 늘 흉부 엑스레이를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다.
찰칵.
CT 대기하는 사이에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방사선사가 밖으로 나와 포터블 엑스레이를 찍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바쁘신데.”
“아닙니다. 바로 앞까지 와서 대기해 주셨는데요. 해 드려야죠.”
“그래도…… 오늘따라 이게 대체 뭔 일이래요.”
“사실 엄청 바쁘긴 합니다. 하하.”
방사선사는 주변을 둘러보며 허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말마따나 환자가 한가득했다.
엑스레이 대기 중인 환자만 해도 대여섯 명을 넘어가고 있었다.
환자를 환자가 아니라 고객처럼 대우하는 태화 의료원 특성상 벌써 다른 쪽 엑스레이실도 풀가동하고 있을 텐데 이 지경이라는 건, 오늘 정말 험악한 하루가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단 사진을…….”
바로 CT실로 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외상센터도 난리인지 여기저기가 부서진 환자 하나가 아까 CT실로 먼저 밀고 들어가 버렸다.
연락도 없이 밀어붙였는지 잠시 소란이 일었더랬다.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저쪽 의료진도 사람 살리려고 애쓰는 것일 뿐이었으니.
이왕 시간이 비는 김에 안대훈은 옆에 마련되어 있는 모니터에 사진을 띄웠다.
‘양측 폐 상엽에 염증 반응.’
[왜 생겼는지 알 수 있을까요?]수혁은 그 사진을 보자마자, 정말로 딱 보자마자 이 환자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아차렸다.
사실 아까부터 대강 의심은 하고 있었더랬다.
아무리 깊은 경부감염이 무서운 병이라지만 항생제가 발달한 요즘에 이르러서는 이렇게까지 빠르게 진행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나.
패혈증이라는 게 젊고 건강한 성인에서는 그리 쉽게 오는 게 아닌 법이었다.
그럼에도 이리되었다는 건, 무언가 특수한 상황이었다는 걸 의미했다.
“염증…… 양측 폐. 음. 으음.”
안대훈 또한 사진을 보자마자 양측 폐에 염증 반응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차렸다.
맨날 보는 것이 흉부 엑스레이 사진이니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까지는 기본이었다.
기준이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수혁과 이현종 눈에 차려면 감내해야 할 시련이었다.
“흡인성 폐렴입니까? 아, 이거 그런 줄도 모르고.”
물론 손정협 교수는 속 편한 소리나 해 대고 있었다.
사실 이것도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긴 했다.
깊은 경부감염에서 종종 폐렴이 생기기도 하지 않던가.
특히 농이 터져 나오면서, 즉 회복되어 가는 시기에 이 농이 폐로 넘어가서 흡인성 폐렴을 일으키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보고되었다.
하지만 흡인성 폐렴과는 전혀 다른 소견이었다.
“아, 아뇨. 보통 흡인성 폐렴은 양측이 이렇게 균일하게 오지 않아요.”
“아……. 그럼?”
“보시면 여기…… 여기가 폐로 들어가는 동맥과 정맥이 있는 부위인데 좀 확장되어 보이거든요?”
“허……. 그럼 원래 기저질환이 있었나?”
“음.”
안대훈은 연속해서 헛소리를 해 대고 있는 손정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이 기저질환 타령이 나올 만한 타이밍인가?
아니었다.
“아뇨. 아뇨. 제 생각에는, 색전증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아……? 그럼 큰일 난 거 아닌가?”
“큰일 났죠. 아까부터 큰일은 났습니다. 지금 삽관해서 인공호흡 중이지 않습니까.”
“아, 그렇지. 이것부터가 큰일이구나.”
어떤 이상 소견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원래 있었던 거겠지 하는 것이 제일 위험한 생각이지 않겠나.
무조건 새로 생긴 소견이라고 의심하는 것이 옳았다.
설령 나중에 돌이켜 보니 원래 있었던 것이고 그 모든 의심과 의심 때문에 행했던 모든 검사가 아무 쓰잘데기없었던 것으로 돌아간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진료에 있어서만큼은 과한 것이 모자란 것보다 나을 때가 많았으니까.
실패했을 때 다른 기회가 거의 남겨지지 않는 분야이지 않은가.
‘하긴 이비인후과에서 색전증을 볼 일이 있나…….’
안대훈은 답답해서 한숨을 쉬려다가 참았다.
옆에서 하도 주교님, 주교님 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진짜 주교처럼 마음이 넓어져서 가능해진 일이었다.
심지어 내가 수혁의 얼굴이라는 생각마저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똑바로 해야 한다.
그래야 수혁교의 교세가 확장된다, 뭐 이런 생각이랄까?
오로지 충심으로 무장한 사람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표본이라 할 수 있었다.
하여간 그렇게 손정협을 애써 이해한 안대훈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위에 상엽…… 양측 상엽에 염증이 생긴 건 아무래도…… 혈관을 통해 균이 옮겨 온 것이라고 봐야겠죠.”
“아……. 패혈증이 이미 와서?”
“아니, 아뇨. 패혈증이 왜 왔을까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히스토리상 당뇨도 없던 사람에게 갑자기 패혈증이 온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 그런가.”
그런가?
안대훈은 아래 연차였으면 두들겨 팼으리란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 참았다.
모두 수혁을 위해서였다.
“들어오세요! 근데 약간 피가 묻어 있는데…… 괜찮을까요? 닦고 부르려고 했는데 워낙 급하시다고 해서요!”
그때 문이 열렸다.
그리곤 침대 하나가 덜컹거리며 빠져나왔다.
침대 난관 사이로 창백한 손 하나가 덜렁 튀어나와 있었는데, 그것도 끔찍한 광경이었지만 눈에 들어오질 못했다.
뚝뚝 떨어지고 있는 핏물 때문이었다.
‘살 수 있나, 저거.’
수혁 정도 되는 의사가 저도 모르게 죽음을 떠올렸을 정도로 처절한 광경이었다.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는, 수술복에 핏물을 가득 묻히고 뛰는 의료진들에게는 희망이 있는 건가?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바루다는 냉정했다.
[그보다는 우리 안대훈에게 집중하도록 하죠. 외상 분야는 우리가 신경 쓸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하긴. 그건 그래. 하여간…… 안대훈……. 잘하는데? 좀 느려도, 벌써 여기까지 추론했어.’
[그 사진과 과거력만으로 패혈증이 부자연스럽다는 사실을 도출했다는 얘기죠?]‘어. 아마 CT 없이도 더한 추론이 가능할 거 같은데?’
[일단 기다려 보죠. 처방에 경부와 흉부 CT 모두 나가 있습니다. 의심하지 않고 보면 판독 난도가 너무 높습니다만…… 의심하고 보면 안 보일 정도는 아닐 겁니다. 일단 환자가 이만큼 안 좋아졌으니까요.]‘그래, 일단 보자. 잘하니까 보기가 좋네.’
[그러니까요.]기계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다른 상황에 잘 휩쓸리지 않는 장점이 있었다.
덕분에 수혁도 다시 자기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이미 머릿속으로는 질환 하나를 특정하고 있었다.
당연히 치료법도 떠올리고 있었고.
문제는 안대훈이었다.
이 녀석도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위이이잉.
곧 CT가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부에는 환자와 납복을 입은 인턴이 있었다.
누군가는 환자 곁에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의식 없는 환자는 갑자기 옆으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이 환자는 인공호흡 중이라 앰부도 계속 짜 줘야만 했다.
‘원래 의사가 해야 하는 일 중에서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인턴이 하는 법이지.’
안대훈은 아무래도 레지던트다 보니, 인턴에게 살짝 감정이입이 됐다.
하지만 애써 이런 생각으로 미안함을 떨쳐 내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모두가 각자 할 일에 집중해야 하지 않겠나.
‘뭐……. 내가 못하면 교주님이 어떻게든 하시긴 하겠지만. 교주님 마음에 찰 만큼의 진료는 해야 해.’
물론 이 자리에는 수혁이 있었다.
자신이 못해도 환자에게는 기회가 있다는 소리.
하지만 안대훈은 꼭 자신이 직접 살려 보고 싶었다.
그것을 수혁이 바라고 있기에 그랬다.
“영상 넘어온다.”
손정협 교수의 말에 안대훈은 영상에 집중했다.
쓸데없는 부분은 무시했다.
지금 확인하고자 했던 부분은 경정맥이었다.
젊고 기저질환이 없는 환자에서 발생한 패혈증.
심지어 절개 배농 및 항생제를 쓰고 있음에도 패혈증이 발생했다.
‘그게 가능하려면…… 애초에 원발 병변에 대한 오인이 있어야만 해.’
단순 농양이 아니라 혈관을 침범했었다면.
그걸 놓쳤던 거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으음…….”
옆에 있던 손정협 교수는 안대훈과는 달리 영상의 모든 곳을 살피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목에 있어서는 전문가이면서도, 안대훈보다 동맥 부위를 살피는 것은 늦어지고 있었다.
“레미에르…….”
얼마 지나지 않아, 안대훈이 단어 하나를 내뱉었다.
경동맥 부근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중이었다.
‘옳거니.’
[이야……. 안대훈…… 이거 드문데. 이름도 알고 있네요?]‘쟤가 괜히 머리가 저렇게 된 게 아니라니까. 진짜 밤잠 줄여 가면서 공부하는 애야. 머리 빠지게 공부하는 놈이라니까.’
[처음에는 할 수 있을까 하고 의심했잖아요?]‘탈모가 아예 유전인가 했지. 그게 아니네. 공부해서 머리 빠진 거네.’
[존경스럽군요. 인간 사회에서 머리카락의 중요성을 생각하면…….]‘그러니까.’
수혁과 바루다가 감탄하는 사이, 그 표정을 읽어 낸 안대훈이 마침내 안심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맞았구나. 그럼 본격적으로 털어 볼까.’
안대훈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바로 수혁의 잘난 척하는 광경 아니던가.
그걸 보면서 얼마나 따라 하고 싶었는지 몰랐다.
그는 흠흠 하고 목을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레미에르 증후군…… 두경부 감염 이후 내경정맥의 패혈성 혈전 정맥염(Septic Thrombophlebitis) 및 패혈성 색전증(Septic Embolism)을 일으키는 질환이죠. 여기 보시면 우측 내경정맥과 연결된 혈전으로 보이는 음영 결손(Filling Defect)이 있어요. 환자는 이 혈전이 폐로 날아가면서 증상이 생긴 겁니다. 일단 당장 입원해서 세프트리악손(Ceftriaxone) 2g 및 메트로니다졸(Metronidazole) 500mg 치료 시작해야 합니다. 또…… 흉부 CT를 통해 폐 색전증 여부를 확인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