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간파 1
* * *
“어째서 그리 승부에 집착하는 거지?”
“사람들은 저를 통해 사부님도 볼 테니까요. 패배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오점 없는 완전무결한 승리. 제가 원하는 건 그거 하나뿐입니다.”
“거기에 내가 필요하다는 건가.”
“당신이 이길 수 없는 상대라면 저도 고전을 면치 못할 테니까요.”
“나를 그리 높이 평가할 줄은 몰랐는걸?”
“보고 느낀 그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카바나가의 기사들도 나쁘지 않지만, 아휀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그가 있었던 곳은 테레나브스였던 것이다.
대륙에서 제일가는 기재들만 모이는 무가에서 항상 높은 경지에 있는 이들만 상대했던 탓인지,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카바나 백작령 안에서는 그들이 최선이었으니까.
그렇게 체념하려던 찰나, 아휀은 카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보지 못했다면 모르되, 카인을 본 이상 그의 발목을 잡는 건 당연했다.
“뭐, 빈말이라도 고맙군.”
요컨대, 승률을 올리기 위해 초빙했다는 소리였다. 이기적인 속내가 훤히 보이는 발언이지만, 그렇기에 믿을 만했다.
“내키지 않으면 당신은 자리만 채우고 있어도 됩니다.”
마치 해답을 찾은 듯, 자신만만한 아휀의 태도에 카인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아휀의 의도가 뭔지 알 것 같았다.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을 되짚어 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는 카바날류를 보완한 게 틀림없었다.
아마 대리전에서 선보일 예정이겠지.
하지만 카바날류라면 카인도 잘 알고 있었다. 조직에서 배웠던 것이다. 그것도 기본 교육을 이수하기 위해 죽을 각오로.
스무 살, 막바지에 주어진 마지막 시험이었기에 더욱 절절할 수밖에 없었다. 통과하지 못하면 그 즉시 폐기 처분될 운명이었으니까.
없는 재능 있는 재능 모두 쥐어짜, 토할 정도로 연습했기에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왕 왔으니 제 몫은 하고 가야겠지.”
처음에는 적당히 투닥거리다 헤어질 생각이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이렇게까지 기대해 주니, 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웃은 카인이 손바닥을 비볐다.
‘너는 앞으로 만들어 나갈 전설이 많으니 무용담 하나쯤은 없어져도 괜찮잖아.’
안 그래?
* * *
포다얀가의 기사들은 카바나가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그들을 빙 둘러쌌다. 언뜻 보면 환영해 주는 듯한 모양새지만, 속는 이는 없었다.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고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으니까.
대리전에 앞서 신경전부터 이기고 보겠다는 심보.
치졸하기 짝이 없는 수작이지만, 그렇기에 효과적이었다. 곱씹을 것도 없이 포다얀가의 악의가 가슴에 확 들어와 꽂혔던 것이다.
문지방을 넘자마자 달라진 온도에 카인은 아휀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어이, 대리전을 치르는 건 맞겠지?”
“황실의 공증을 받은 상태입니다. 아무리 막 나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죠. 저들도 그걸 인지하고 위협하는 척만 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 순간을 즐기십시오. 참는 게 이기는 겁니다.”
아휀의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저 뒤에서 한 사내가 걸어오자 기사들은 사전에 입이라도 맞춘 듯, 일제히 갈라졌기 때문이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아휀 경. 포다얀 백작령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포다얀가의 주인, 세버트 포다얀이라고 합니다.”
평범한 체구였지만, 그 기세만큼은 일품이었다. 공손히 응대하는데도 불순한 기색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본디 지닌 기질이 그러할 터.
그가 다혈질이라는 건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마리반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걸 보면 더더욱.
들어왔을 때부터 생각한 거지만, 치졸하지만 효과적인 수를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순하게 웃던 마리반의 얼굴에 금이 갔다.
“포다얀 백작님, 오랜만입니다.”
“오, 마리반 영식도 왔나? 하하,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았어. 미안하네. 자네는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것 같아.”
“어떤 의미에서는 백작님도 그렇죠. 한결같으셔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런가?”
“그럼요.”
팽팽하게 이어지는 기 싸움에 모두가 마른침을 삼켰다. 하나, 세버트를 따라온 사내는 지루하다는 듯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 무심함에 카인은 사내를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은 하나같이 통일된 복장인데 반해, 그만 별세계에 떨어진 듯 자유분방한 옷차림이었다.
마치 이제 막 들어온 듯한 행색.
마리반이 거론했던 용병이 틀림없었다.
카인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우락부락한 야만 전사라도 고용한 줄 알았더니, 정작 눈앞에 나타난 건 선이 고운 한량이었다. 나른하게 하품까지 하는 걸 보니, 사내와 호른을 바꿔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았다.
‘경련?’
순간, 사내의 얼굴에 미묘한 균열이 생겨났다 사라진다. 초월 감각이 아니었다면 보지 못했을 괴리감. 다시 보니 어딘가 모르게 자세가 구부정한 것처럼 느껴졌다. 꼭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그제야 카인은 깨달을 수 있었다. 사내에게 저 모습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걸.
아휀도 눈치챈 건지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평범한 용병이 아니군요.”
“네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대리전을 냉큼 받아들일 정도니까. 아니지, 그 반대인가.”
의미심장하게 웃은 세버트가 아휀을 쳐다보았다.
“이자에게서 눈이 떨어지지 않는군요. 역시 아휀 경도 관심이 있는 겁니까?”
“대리전에 참가했다고 들었으니까요. 관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 되겠죠.”
“이 사람은 다이아급 용병, 브라운입니다. 이번 대리전을 위해 제가 특별히 준비한 인재죠.”
세버트가 백작이라 해서 무조건 고용할 수 있는 인사가 아니었다. 아마 고용된 게 아니라 고용되어 준 것일 터.
“너랑 겨룰 수 있다고 해서 한참이나 기다렸다고. 제발 내 기다림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도록 해 줘.”
“노력하겠습니다.”
그 예상이 맞다고 증명이라도 하듯, 브라운은 아휀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가 노리는 게 누구인지는 명명백백했다.
이 근방에서 대리전이 벌어진다는 걸 듣고, 득달같이 달려온 게 분명했다. 이해할 수 있었다. 무신의 제자와 겨룰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으니까.
하지만 카인은 침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역용술과 축골공으로 정체를 감춘 저의가 의심되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그의 말은 묘한 데가 있었다.
꼭 아휀이 올 줄 알았다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브라운이 포다얀가에 고용되었기에, 아휀이 카바나가를 대표해서 이 자리에서 올 수 있었는데 말이다.
앞뒤가 맞지 않았다.
‘중간에 다른 사람으로 바뀌지 않고서야…….’
거기까지 생각한 카인은 두 눈을 번뜩였다.
정체를 감추고 참가한 게 아니라, 참가한 뒤에 정체가 바뀌었다면?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었다.
다만, 다이아급이나 되는 용병이 군말 없이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지만.
‘흠잡을 데 없는 변장, 무신의 제자 아휀, 브라운을 물러나게 한 명성.’
경우의 수는 하나밖에 없었다.
‘암성의 제자인가.’
암살자들의 왕이자 십좌의 일각, 암성. 얼굴과 체격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절기는 그의 것이 으뜸이었다. 그 제자라면 미숙하게나마 재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
‘자넷 하스네트라고 했던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녀석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었다. 물론 속 시원하게 밝혀진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아니면 말고 식의 소문이었으니까.
그때, 자넷의 기량을 가늠한 아휀이 씁쓸하게 웃었다.
대리전이라 해도 팀 파이트의 성격을 띤 이상, 유능한 동료는 한 명이라도 더 있는 편이 나았다. 제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한 사람이 거머쥘 수 있는 승리는 하나뿐이었으니까.
“역시 당신을 데려오길 잘했습니다.”
“글쎄, 그 말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잠시 넣어 둬야 하는 게 아닐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누른 카인이 짐짓 진중하게 답했다.
암성의 제자라면 티켓을 끊어서라도 싸우고 싶은 상대였다. 그런데 이렇게 넝쿨째 굴러오다니. 아휀만 앞에 없었다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을 지경이었다.
암성의 성절은 암월진천.
일격에 한해서라면 무신의 성절, 파성도 능가한다고 알려진 절기였다.
그런 암월진천을 익힌 자넷이라면 정련된 육신도 꿰뚫을 가능성이 높았다.
순간, 전신의 근육이 뒤틀리며 당장에라도 그 일격을 받아 보고 싶다고 아우성쳤다.
입술을 핥으며 자넷을 바라본다.
한시라도 빨리 싸우고 싶었다.
* * *
포다얀가와 신경전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카바나가만 모이면서 생겨나는 문제도 있었다.
아휀이 카인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것이 그러했다.
“동급 모험가요?”
“거기에 이런 핏덩이를?”
“학예회도 아니고 말이야.”
권한을 남용한 일방적인 선언에 기사들의 반발은 즉각적이고, 강경하게 이루어졌다.
위기는 곧 기회. 대리전은 무명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하지만 수는 다섯 명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가문의 승리를 위해서라도 한 자리, 한 자리가 중요한 시점.
그런데 그곳에 다른 사람, 그것도 무명소졸을 앉힌다니. 기사들이 불만을 토해 내는 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들을 인솔하는 마리반도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무작정 다그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휀이 나지막이 입을 연 건 그때.
“여러분의 말씀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게 최선의 선택입니다. 카인의 실력은 제가 보증하죠.”
“아휀 경의 말씀이라도 이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카바나가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마리반 도련님이었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또박또박 말하는 기사의 입술 사이로 거센 바람이 흘러나왔다. 삿된 단어가 나오지 않도록 힘을 주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카인도 예상했던 바였다. 아휀이 나서든 나서지 않든, 이건 스스로 넘어야 할 산이었다. 무인들의 세계에서 법은 입이 아니라, 주먹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내 손으로 빈자리를 만드는 수밖에. 누가 먼저 나설 거지? 너인가?”
가장 많이 조잘거린 기사에게 다가가는 카인. 기사는 그를 보고는 자신만만하게 검을 들었다.
레서 왕국에서 제일가는 검사, 라일과도 싸웠던 카인이었다. 한낱 백작가의 기사에게 질 리 없었다.
실력 행사를 한다면 다시는 넘보지 못할 정도로 실시하는 게 인지상정.
상대가 방어도 할 수 없을 움직임을 보이며 전신 갑주를 맨손으로 우그러뜨린 카인은 그대로 기사의 얼굴을 후려쳤다.
떡은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은 떡이 될 수 있다.
그 말을 실현하기 위해 쉬지 않고 주먹을 놀렸다.
쿠웅, 짝, 쿵짝.
메마른 소리에 핏물이 섞여 찰기가 흘러나오자 기사들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카인을 쳐다보았다. 그가 반죽하고 있는 이는 그들 중에서 가장 강한 기사였다.
“어이쿠,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이 정도면 내가 빠져도 너는 대리전에 참가하지 못할 것 같은데 말이야.”
“…….”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상대는 의식을 잃은 지 오래였다.
혼절한 기사를 내던진 카인이 손가락 관절을 꺾으며 위협적인 소리를 내었다.
우드득.
“내일 나랑 아휀만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기강은 잡아야겠는데, 불만 있는 사람?”
있을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