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06
306화 아인종 2
* * *
“이번 사건을 계기로 조직은 가주님을 다시 보게 될 거야. 어쩌면 리벨리온과의 관계도 눈치챌 수 있어.”
예언과도 같은 호른의 말에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저지른 짓이 많았지.”
비단 아스테리스크를 방패막이 삼아 미미르를 점거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루드니아 공작령에서 용의 인자를 취했을 때도, 판토마가에서 퍼스널 네임 둘을 격살했을 때도 카인은 그 자리에 있었다.
아무리 우둔한 이라고 해도 연결 고리를 느꼈을 거다.
리벨리온이 전 대륙을 돌아다니며 물증을 없앤다고 해도 심증은 결코 없앴을 수 없었으니까.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지.”
물론 의심하는 것과 확신하는 건 많은 차이가 있었다. 조직도 아무런 근거 없이 습격하는 건 지양할 터.
더구나 카인의 등 뒤에는 아스테리스크가 있었다. 전 대륙의 입장을 표명하는 수사 협력 기관.
조직은 슈발체베인 공작령을 노리고 있겠지만, 마냥 건드린다고 능사가 아니었다. 아차 하는 사이에 전쟁으로 그 불길이 번질 수 있었으니까.
“조직이 내 정체에 대해 확신하기 전에 녀석들의 본거지를 먼저 찾는다.”
로터스, 게네아, 트리온.
세 조직의 영역을 흡수한 리벨리온의 저력은 카인도 짐작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수천년 간 헤브니아에 뿌리내린 조직과 맞붙어도 승산이 있을 터.
“시간이 꽤 걸릴 거야.”
“괜찮다, 확실하게 꼬리만 잡을 수 있다면.”
몇 달 혹은 몇 년의 기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사안이었다. 일단 그럴 여력이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보다 이브는 어디에 있지?”
“아직도 거기에 있어.”
“생각보다 오래 있는군.”
“재미난 걸 발견한 모양이던데.”
“그래?”
나이아를 구하고,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이브는 신의 무덤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았다. 이쯤 되니 무언가 성과라도 있는 건지 궁금해질 지경.
호른과 헤어진 카인은 정원을 통해 신의 무덤으로 내려갔다.
“엉망진창이군.”
그날 이후로, 신의 무덤은 반쯤 무너졌다. 인공 호수를 깨부수고 그 아래에 기신을 욱여넣은 것이다. 당연하게도 종착지는 미미르의 샘이었기에 신의 무덤 또한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비좁은 통로는 그 여파에 여기저기 허물어져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조그마한 틈과 한동안 씨름하고 나서야 카인은 겨우 이브가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브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중앙 제어 시스템 앞에서 홀로그램을 다루고 있었다.
카인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올라오면 말하려고 했는데 통 올라오지 않아서 이렇게 직접 왔어.”
“그러고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요. 흥미로운 정보가 많아서 탐독 중이었습니다.”
“얻은 건 있어?”
“네, 미미르의 시작을 같이 한 곳이라 그런지 가주님도 솔깃할 만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인종의 시작에 대한 건 어떻습니까?”
“아, 알브의 시조 말이지.”
당연한 말이지만 아인종은 인간과 다른 길을 걷는 종족이었다. 신체적인 특성에서부터 체질과 재능, 그리고 본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판이하게 달랐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거 아니야?”
대륙인들은 유전자 조작이 만연한 시대에 살았던 생존자의 후예였다.
아인종 또한 그 연장선에 있었다.
그래서 카인은 그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진화된 인류 쯤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도 틀리지 않지만 보다 구체적인 예시가 있을 거 아닙니까.”
“예시라고 해봐야 수천 년 전에 발생한 특이점이잖아. 지금 이 시대에서 찾아보라고 해도 말이지.”
“이미 저희는 알고 있었습니다, 아인종의 시조가 될 만한 이들을.”
“흔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알아.”
“슈발체베인가에도 몇 명 있지 않습니까.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특질을 가진 이들이.”
순간, 카인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신혈 보유자.’
초능력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하는 돌연변이들. 보통 사람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형질을 보유한 이들이었기에 어찌 보면 인간에서 한 걸음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설마…….”
“아인종이란 특정 인자를 부여받은 인류 중 일부가 변이된 종족입니다. 연속되는 격세유전 속에서 형질이 고정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군요.”
신혈 보유자가 고점에 다다르면 격세유전이 아니라 우성유전이 되는 개체로 변한다는 뜻이었다.
말하자면 자신만의 무리를 이룰 수 있게 되는 셈.
“알브의 시조도 소싯적에는 신혈 보유자였다는 소리지?”
“이해하는 게 빠르군요.”
침음을 흘린 카인은 곧 한 가지 사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성황교가 앞서서 아인종을 탄압하는 거였어.”
아인종이 다변화되면 변수가 늘어나고 인류가 주도권을 빼앗길 확률이 높아지니까.
호른이 수백, 수천 명이 된다고 생각해 봐라.
그런 이들이 모인 종족 앞에서 일반인은 개미보다 못한 존재가 될 게 분명했다.
성황교, 아니 오토마타의 입장에서 신혈 보유자는 명백히 이단이었다.
순간, 회귀하기 전에 이단심판관이 내뱉었던 말이 떠오른다.
‘성녀, 아리아 테리스, 너를 이단자로 지정한다. 절차에 따라 너를 본국으로 호송하겠다.’
일방적인 선언.
그때 당시엔 모함이라 여겼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계산된 연출이었다.
‘그러고 보면 호른의 부모님도 알지 못하는 녀석들에게 명을 달리했다고 그랬지.’
세월이 흘러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그 배후에는 성황교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겉으로는 아인종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고, 속으로는 신혈 보유자를 차근차근 줄여 나갔을 터.
회귀하기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진실이었다.
정황을 늘여 놓으니, 왜 성황교가 아리아를 경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손에 닿는 건 그 무엇이든지 치유하는 힘.
그건 독이 든 성배이자 찬탈자의 검이었다.
아리아의 능력을 가진 아인종이 나온다면, 대륙의 정세는 그들을 중심으로 재편될 게 뻔했다.
무리를 이루면 자기 자신은 치유할 수 없다는 유일한 단점이 사라질 테니까. 위급할 땐 다른 동족에게 치유를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인류는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치유의 손길에 한계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는 성황교의 권위에 도전하게 되는, 아니 그를 능가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신성 마법이라는, 현재로선 유일무이한 치료 능력을 성장 동력으로 삼았던 성황교이니만큼 아리아의 존재는 목 안의 가시와도 같았을 터.
이는 조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리아가 아인종의 시조가 되면 그들을 뿌리에서부터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걸 되돌리는 힘은 조직의 족쇄마저 부수었으니까.
아리아는 대륙에서 최고의 성세를 자랑하는 두 세력 모두 짓밟고 위로 설 수 있는 씨앗이었다. 그녀가 그 둘에게 배제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된 사살 작전이었으니, 납작 엎드린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얄궂군.”
이미 지나간 일이었으나, 어째서 천년동자가 그런 결단을 내렸는지 내심 의문이긴 했다. 그런데 이유가 있었다니.
그렇다고 마냥 화를 낼 수만도 없었다.
따지고 보면 모든 비극의 시발점은 자신이지 않던가. 아리아가 감추고 있던 능력을 사용하게 했으니까.
시시각각 변하는 카인의 표정을 쳐다본 이브가 그 앞에서 손을 휘휘 저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지.”
솔직히 후련한 감도 없잖아 있었다. 인과 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졌으니까.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으리라.
“그러면 저는 하던 일이나 마저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이브가 구석에서 주먹만 한 쇳덩이를 들고 왔다. 척 보기에도 엄중하게 봉인되어 있는 게 범상치 않은 물건처럼 보였다.
“그건 뭐지?”
“기신 내부에 있던 블랙 박스입니다.”
“그런 건 왜 가져온 거야.”
“다른 것도 아니고 마소에 대한 연구 기록이 담겨져 있지 않습니까. 마소가 어떠한 현상인지 규명할 수 있으면 공작님도 좋을 텐데요.”
“그래 봤자 신기해하고 넘어가는 게 전부겠지.”
아인종의 시조에 대한 것도 그랬다. 퍼즐이 맞춰져 그 안에 담긴 그림을 인지하게 되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가야 할 길이 보다 더 확실해졌을 뿐.
“연구는 슈발체베인가로 돌아가서 실컷 해도 좋으니까 일단 따라 와.”
“지금 말입니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잖아.”
* * *
카인이 이브를 데리고 간 곳은 오리올이 지키고 있는 숙소였다. 리벨리온의 조직원들이 상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브가 고갯짓하며 대답을 요구했으나, 카인은 손짓으로 그 대답을 대신했다.
앞서가는 카인을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간 이브는 이윽고 익숙한 실루엣을 볼 수 있었다.
“쥬시……군요.”
소녀의 몰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그을리고 찢어져 흉측한 골격이 다 드러난 건 물론이고, 사지는 어디로 간 건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전뇌만은 온전히 활동 중인 게 신기할 지경.
“그녀에게서 캐내야 할 정보가 있는 겁니까?”
“그래.”
성황교 측 인사는 중상만 입었다고 헛소문을 흘린 것도 그때문이었다. 다른 곳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오토마타는 쥬시와 타르한이 살아 있다고 믿어야 했다.
“공용 네트워크 접속 방법은 숙지해 뒀다고 했지?”
신의 인형을 하나로 묶는 가상 현실 시스템, 공용 네트워크. 그곳이라면 오토마타와 접촉할 수 있었다.
“네, 대략적인 개요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접속하면 인위적인 접근이라는 게 들통날 텐데요?”
“네 계정이 아니라 이 녀석의 계정으로 들어갈 거야.”
“그래서 살려 둔 거군요.”
공용 네트워크는 0과 1로 이루어진 허상의 공간. 해당 계정만 탈취할 수 있다면 쥬시처럼 변장하는 것도 가능했다. 직접 대면하지 않으니 들킬 위험성도 현저히 떨어졌다.
“오토마타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궁금한 겁니까?”
“아니, 그 반대야. 인명록에 대한 걸 흘려줬으면 해.”
“설마 퍼스널 네임의 신상이 적힌 인명록은 아니겠지요.”
“그게 맞아.”
이브의 아미가 곱게 휘어졌다. 더욱더 알 수 없게 되었다. 인명록은 조직과 싸울 때 커다란 힘이 되어 줄 비장의 무기. 그런 위력을 지닌 물건을 선점해도 모자랄 판에 풀겠다니.
“석연찮은 듯한 반응이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쉽게 생각해, 남의 칼을 빌려 조직을 죽이고 싶을 뿐이니까.”
“조직과 오토마타, 두 세력이 격렬하게 맞부딪치길 바라는군요.”
“그래, 다른 귀신들도 아니고 퍼스널 네임이잖아. 녀석들의 위치가 노출되면 오토마타는 만사를 제쳐 두고 뒤를 쫓을 거야. 조직은 그런 오토마타와 항전할 수밖에 없을 거고.”
“차도살인지계군요. 공작님의 야비한 계획에는 경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