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14
314화 변이 2
* * *
“자, 다시 한 번 묻지. 왜 이곳에 집착하는 거지?”
“저도 알고 싶네요. 이번 탐사는 엄연히 조지 님의 역량을 벗어난 일이니까요.”
소리 없이 다가온 레티시아까지 다그치자 조지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진실을 고했다.
“스, 스승님께서 지시한 일입니다. 자세한 건 저도 모릅니다. 신의 무덤 아래에서 얻을 수 있는 물건을 최대한 많이 가져오라는 것밖에.”
“그래?”
카인은 새삼스럽다는 듯한 눈치로 레티시아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면 제노바가 조지에게 붙여 준 탐사대원이 바로 그녀였다.
‘최소한의 안전 장치인가.’
아마도 제노바는 알았을 거다. 방사능에 신성 마법이 효험을 보인다는 걸. 하긴 사상자가 몇 명인데 그거 하나 발견하지 못했을까.
‘그거라면 제가 알고 있습니다. 신의 무덤에서 얻은 걸 연구하기 위해 칩거 중이라고 하더군요.’
돌연 비에나의 말을 떠올린 카인이 턱을 쓰다듬었다.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건 핵폐기물 정도.
핵폐기물로 할 수 있는 연구야 뻔했다.
방사능, 핵분열, 그리고―
‘원자력.’
짐작이긴 해도 얼추 맞을 거다. 십좌의 관심을 끌 만한 주제는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더구나 마법에 조예가 깊은 법성이라면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친애하는 제자에게 모든 걸 내팽겨친 채, 마탑의 연구실에서 그 원리를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테지.
“크흐윽.”
한 탐사대원이 발작을 일으킨 건 그때.
사내는 전조도 없이 자지러졌다. 아차 하는 사이에 그 분위기는 전염되었다. 경맥과 경환이 발달되지 않은 이부터 순차적으로.
몸 안에 품고 있는 마력과 마나가 방사선을 막는 데 주효한 영향을 끼친다는 건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피폭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다.
“이브.”
“현재 1Sv에 달하는 방사능이 검출되었습니다.”
입구 부근에서 측정했던 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수치.
본격적인 부작용이 나타나는 시기였다. 상태가 악화되는 걸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준.
아니나 다를까, 쓰러진 이들의 안색은 시간이 다르게 나빠졌다. 레티시아가 신성 마법을 발휘했지만, 그것도 한때뿐이었다. 나아지는가 싶더니, 곧바로 거친 숨소리를 토해 냈다.
아무리 레티시아가 성녀라지만 결국 그녀도 인간. 지닌 마나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레티시아를 돕고자 비에나가 붙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녀 본인이 신성 마법에 미숙한 편이기도 했거니와, 정성을 들인다고 치료할 수 있는 증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방사선은 세포의 결합을 끊고, 유전자 정보까지 뒤트는 파장. 이 자리에 있는 이상, 완치되는 건 불가능했다.
아마 두 사람은 자신이 상대하는 게 무엇인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을 거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
애석하게도 불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불길한 소리가 저 멀리에서 들려왔으니까. 벌레들의 합창. 후반전을 알리는 경고음이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아리아가 카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차라리 제가 나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안 돼.”
카인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아리아가 지닌 능력이라면 탐사대를 구원하는 것도 가능할 거다. 치유의 손길은 막강한 위력을 자랑했으니까.
하지만 아인종이 어떻게 탄생하고, 성황교가 그들을 어떤 식으로 처리하는지 알게 된 그로서는 마냥 기뻐할 수만도 없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숨겨야 하는 낙인이었던 것이다.
대신 카인은 다른 방도를 떠올렸다.
“호른. 탐사대원들과 함께 밖으로 나갈 수 있겠나?”
공간 전이는 고계위 마법사의 전유물이었으나, 호른은 그보다 더 높은 경지인 7계위. 탐사대를 옮기는 거야 일도 아닐 게 분명했다.
“아슬아슬하지만, 어떻게든 될 것 같아. 대신, 몇 명이 빠져야 할 것 같은데.”
“제가 남겠습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다가온 레티시아가 자진해서 제 의견을 밝혔다. 순진한 성녀는 자신이 제노바에게 이용당했다는 것도 모른 채, 희생 정신을 발휘했다.
“그러면 저도 남죠. 신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 후유증이 없을뿐더러 후방에 있어서 체력도 보존할 수 있었으니까요.”
비에나가 모닝스타와 방패를 위시한 채 앞으로 나왔다. 완전 무장한 그녀는 어쭙잖은 정예 기사보다 든든했기에 카인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참전을 승낙했다.
물론 동의하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조지가 그러했다.
“잠깐만, 누구 마음대로 결단을 내리는 겁니까! 탐사대장은 저입니다. 제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탐사를 멈출 수 없습니다. 저는, 아니 탐사대는 전원 스승님의 명을 지키기 위해 움직여야 합니다.”
인망을 잃은 사람이 말해 봐야 의미 없는 메아리에 불과했다. 그를 따르는 마법사들은 전부 사경을 헤매고 있었고, 마탑과 따로 계약된 모험가나 용병은 제 목숨을 챙기기 위해 방관했다.
“이왕이면 인정해 주려고 했는데 돌아가는 상황이 그렇지 않더군.”
“이러려고 탐사대에 참가한다고 한 겁니까?”
“당연하지 않나.”
비릿하게 웃은 카인이 대답하자 조지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그런 그를 노려보았다.
“스승님께 고할 겁니다.”
“마음대로 해라.”
격분한 조지가 손을 쓰려고 했지만,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마법을 사용할 틈도 없이 입자가 되어 저 멀리 날아간 것이다.
탐사대원들은 물론이고, 호른 또한 마찬가지.
공간 전이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사람은 없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등을 돌린 카인은 경쾌하게 지팡이를 돌렸다.
“그러면 즐거운 탐사를 시작해 볼까.”
* * *
레티시아는 빠르게 달리며 힐끗 뒤를 쳐다보았다.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간 탓에 위화감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여유가 생기자 한 사람이 눈에 밟혔다.
지팡이를 짚고 따라오는 남자.
카인 슈발체베인.
다른 이들은 어느 정도 제 기량을 드러냈지만 그는 아니었다. 줄곧 이브와 호른의 보호만 받았던 것이다.
“어째서 공작님은 따라가지 않으신 거죠?”
“이곳에 꼭 처리해야 하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
제노바가 핵실험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으니, 대륙에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건 시간문제. 그래서 카인은 발단이 된 핵폐기물을 통째로 날려 버릴 생각이었다.
하나, 그러한 속사정을 모르는 레티시아의 눈에는 위태로워 보일 뿐이었다.
“제 뒤로 오세요. 다만, 경계는 늦추지 마세요. 저조차 감지할 수 없는 위협이 많으니까요.”
그녀의 말을 증명해 주기라도 하듯 복도 끝에서 괴이한 생명체가 나타났다.
“모두들, 제 뒤로!”
그동안 밟고 지나쳤던 벌레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감에 비에나는 앞장서서 방패를 들이밀었다. 순간, 섬뜩한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강한 충격에 비에나는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금세 자세를 바로잡았다.
방패에 맞아 나가떨어진 녀석 또한 금방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맴돌았다. 불쾌할 정도로 긴 더듬이가 살랑거리자 카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생리적인 혐오감을 자극하는 외견은 방사능에 영향을 받아 가일층 괴이해졌다.
“바퀴벌레?”
끈질긴 생명력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곤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제 몸이 깨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에나에게 달려들었다.
문제는 자극을 받은 게 한 놈만이 아니라는 점.
먹잇감이 제 발로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건지 통로 이곳저곳에서 바퀴벌레가 튀어나왔다.
녀석들의 움직임은 인지를 초월할 정도.
복도 끝에서 끝까지 도달하는데 걸린 시간은 소수점 대에 육박했다.
“원호하겠습니다.”
물론 아리아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녀는 바퀴벌레가 보이는 족족 벼락같은 속도로 놈들의 미간을 꿰뚫었다.
품속에 손을 집어넣고, 단검을 빼내, 쏘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얼마나 복잡하든 바퀴벌레보다 한 박자 더 빨랐다. 그야말로 신기에 달한 발출.
이브 또한 머리카락을 휘저어 바퀴벌레를 양단했다.
하지만 그녀들의 역량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물밀듯이 밀려오는 바퀴벌레를 처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전방에서 일행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비에나 또한 조금씩 밀려났다. 그녀 본인은 건재했지만, 들고 있는 방패가 말썽이었다. 몇 번 부딪친 게 전부인데 어느새 쩍쩍 금이 가 버렸던 것이다.
신의 은혜를 펼친 레티시아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일단 공작님부터 도망치세요.”
급박한 상황, 그 안에서 피어난 순수한 염려에 카인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 중에서는 너만 아직 모르는군.”
“네?”
지팡이를 거꾸로 쥔 카인은 한 발만 앞으로 내밀었다.
그렇게 투창 자세를 취한 그는 레티시아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있는 힘껏 지팡이를 내던졌다.
화살처럼 쏘아진 지팡이가 폭풍을 이끌고 나아갔다. 그 궤적에 걸린 바퀴벌레는 한 마리도 빠짐없이 찢겨져 나갔다. 하지만 녀석들은 죽어서도 활동했다. 자신이 본능에 충실하다는 걸 알리려는 듯이.
콰앙!
반대편 벽에 지팡이가 꽂힌 것과 카인이 내달린 건 거의 동시. 그의 손가락에 닿은 바퀴벌레는 두부처럼 갈라져 생을 마감했다.
레티시아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바퀴벌레의 위용은 방금 전까지 질리도록 체험했다.
미친 듯한 가속도, 가시처럼 날카로운 잔털, 강철처럼 단단한 키틴질 껍질.
하지만 그런 녀석들이 복도의 저편까지 빼곡히 쌓였는데도 카인의 앞길을 막진 못했다. 그저 그의 손 아래 허망하게 토막 날 뿐이었다.
저항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무위.
압도적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한평생 성녀로 살아온 그녀이지만, 그래도 경험이라는 게 있었다. 일찌감치 저 멀리 달려간 카인이 얼마나 강한지 예측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는 반푼이 따위가 아니었다.
“어째서 이런 실력을 가지고도…….”
“쉿.”
수많은 바퀴벌레를 양단했음에도 카인의 손에는 체액 하나 묻지 않았다. 격차를 보여 주는 단적인 예.
하지만 그런 그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바퀴벌레와는 확연히 다른 인기척이 저 멀리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바뀌는 건 한순간.
바퀴벌레들이 양옆으로 갈라지고, 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건 정체불명의 사내였다.
둔탁한 외골격.
흐릿한 이목구비.
등 뒤에서 난 커다란 종양.
그리고 커다란 창과 하나가 된 팔.
“역시.”
벌레들이 발광하며 제 영역에서 벗어난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포식자.’
그건, 제노바조차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하긴 카인도 보고 나서야 어떻게 된 연유인지 그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설마하니 귀신, 그것도 퍼스널 네임이 영락했을 줄이야.”
토리움은 돼지의 인자를 부여받은 귀신이었다. 특이 사항으로는 그가 과적응자라는 것.
폭식, 그것도 흡수에 치중된 인자를 지니고 방사능을 마음껏 받아들였으니 그 결과야 뻔했다.
안타깝게도 높은 적성률이 이번에는 독으로 작용했다.
“끄어어, 끄으으윽. 끄으우우.”
“끔찍한 혼종이군. 인간의 말마저 잊어버린 건가.”
그래도 일말의 이성은 남아 있는 건지 토리움은 카인의 말을 듣자마자 발을 크게 굴렸다. 바퀴벌레들 또한 그 동작에 맞춰 소리를 질렀다.
“그새 부족장이 다 됐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