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27
327화 성련 1
* * *
성련 무술 대회는 그 역사가 그리 길지 않았다. 대륙 전쟁이 끝나고, 베리타 제국 측에서 그 여파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개최했으니까.
그래서인지 몰라도 대련이나 사투보다 비무의 성향이 더 강했다. 후에 벌어질 십좌전에 비하면 아이들 장난이나 다름없지만, 그런 대회일지라도 참석한 이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긴장이 서려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승자에게는 무신 타나에게 가르침을 구할 수 있는 영예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무의 세계에 입문한 이들에게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맥시모스가가 준비한 특수 경기장.
그 상석에는 십좌들을 위해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개최자라 할 수 있는 후딘과 성련 무술 대회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타나뿐이었다.
하지만 빛이 바랜 건 아니었다. 베리타 제국의 삼황자인 하이렌이 참석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성련 무술 대회의 의의는 충족되었다.
하이렌과 눈이 마주친 카인은 나지막이 고개를 숙였다. 하이렌 또한 짧게 손을 흔드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시선을 떼고, 경기에 집중하려던 카인은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 밖의 손님이 하이렌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아?’
항상 풀어진 얼굴만 보아 의젓한 표정이 생경하지만, 분명 그녀였다. 알브 특유의 긴 귀 또한 숨기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낸 상태.
“……미미르 측에서도 참석해 주었다. 실로 경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지. 알브들도 우리의 문화를 배우고자 하는 걸 테니까. 그러니 참가자들은 상대로 알브가 나온다 해도 경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겨뤄주길 바란다.”
후딘의 연설에 카인은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게일 왕국은 수인족들의 나라와 인접해 있어 아인종 차별이 없다시피 한 곳.
후딘도 사적으로는 블루워드와 가깝게 지낸다고 하니, 그 풍조가 얼마나 자유로운지 엿볼 수 있었다.
십좌전이라는 명분, 아인종에게 호의적인 주최자.
타국과 연결 고리를 형성하고 싶었던 미미르에게는 절호의 기회였으리라.
“자, 그럼 성련 무술 대회가 무사히 치러질 수 있도록 화합의 메시지가 담긴 화살을 쏘아 올리도록 하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난 나이아가 창처럼 길고 굵직한 화살을 활시위에 걸었다.
그녀가 손을 놓은 순간, 화살이 끝없이 비상했다. 수백 미터나 되는 상공으로 날아간 화살이 폭발한 건 잠시 후.
펑, 퍼엉, 펑.
폭죽이 터지며 형형색색 빛나는 꽃가루가 하늘을 수놓았다.
그렇게 성련 무술 대회가 시작되었다.
아직 본선도 아닌 예선인지라 동시에 여러 경기가 진행되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오롯이 한 곳에만 집중되었다.
세라 제피로스.
학살 여왕이라 불리는 그녀의 수준을 가늠해 보기 위해.
사실 그녀만 한 왕족이 성련 무술 대회에 참가한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호사가들이 이런 흥밋거리를 무시하고 지나칠 리 없었다.
카인 또한 그녀의 우승에 적지 않은 판돈을 걸었다.
믿음의 발로이자 확신의 증거.
세라가 한 단계 성장한 걸 보고 나서 카인은 더욱더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되었다.
세라와 검을 마주하게 된 건 은급 용병인 발로란이었다. 등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승 후보는 아니었다. 하지만 경험이 풍부하고, 여러 잡기를 배워 공격이 변칙적인 인물이었다.
연무장에서 수련만 한 세라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는 상대.
아니나 다를까, 처음에는 세라가 일방적으로 밀리는 듯한 양상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카인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대로 받아들인 건가.’
세라는 발로란과 공방을 주고받으면서 그가 사용한 성절의 묘리를 응용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재능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종국에 승리를 거머쥔 건 세라였다.
힘겹게 응수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반대.
노련한 용병의 밑천을 싹싹 긁기 위해 톱니바퀴처럼 섬세하게 판을 설계한 거였다. 발로란도 뒤늦게 깨달은 건지 질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멀찍이서 구경하는 이들은 어떻게 된 연유인지 모르는 듯한 눈치였다. 아마 모든 게 천운이 따른 것처럼 보였을 터.
“저게 학살 여왕인가. 이름과 다르게 그렇게 강해 보이진 않는걸.”
“저래서야 다음 경기엔 탈락하겠군.”
“하지만 은급 용병이 나선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말이야. 예상외로 허무한 결과인데.”
“보나 마나 쉬운 의뢰로 이력을 채운 거겠지.”
당연하지만 개소리였다.
카인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관객들을 훑어보았다. 세라에게 조언해 준 인물을 찾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인상 착의에 부합되는 이는 끝내 발견할 수 없었다.
예선이라 오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한 건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보고 있는 건지 모르지만 언젠가 등장할 게 분명했다. 세라가 자신의 조언을 어떤 식으로 녹여 냈는지 구경하고 싶을 게 뻔했으니까.
‘결승 아니면, 그에 준하는 수준까지 올라가야 하나.’
돌연, 밝게 웃는 세라와 눈을 마주친 카인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 * *
사절단이란 이름으로 맥시모스 공작령에 방문해서 그런지 나이아는 예복을 입고 있었다.
무희처럼 속살이 힐끗 보이는 안감과 어깨선이 훤히 드러나는 디자인. 그리고 티아라와 비슷한 머리띠까지.
제국이나 다른 왕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양식 때문에 그녀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배가 되었다.
“못 본 사이에 많이 달라졌네. 어떻게 지냈어?”
“갈 곳 없는 아인종들을 도왔다. 내 생각보다 훨씬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이 많더구나.”
“아, 그거 말이지. 들었다고, 아인종들 사이에서 꽤 유명하다지? 희생 공주로.”
하염없이 베푼다 하여 미미르에서는 성녀보다 더 높게 치는 아인종도 많았다.
“그건 또 어디에서?!”
“내 귀야 항상 뚫려 있으니까, 특히 너에게 관한 거라면.”
나이아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쌌다.
“그렇게나 조심하라고 일렀건만.”
“부끄러워할 거 없잖아, 선행의 결과니까.”
겉은 몰라 보게 성숙해졌지만, 속은 변함없어 보였다. 카인이 어린 시절에 만났던 소녀는 아직도 그 안에 남아 있었다. 괜스레 안심이 되었다. 그녀가 이상적인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는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런 자리에 참석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미미르는 점차 배타적인 정책을 버리고 인간들과 융화될 거다. 아인종을 대표하는 무리 중 하나로서.
그때, 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째 내 승리보다도 기뻐하는 모양새다만.”
세라가 심드렁한 표정을 드러냈다. 누가 보아도 토라진 기색이 역력했다.
카인은 아차 했다.
이 자리의 주인공은 세라가 되어야 했다.
기념비적인 첫 승. 그리고 상처 하나 없이 예선을 무사히 통과한 것까지. 모두 칭송받아 마땅한 성과였다.
세라의 표정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카인은 허허롭게 웃었다.
“설마 그러겠습니까.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 것뿐이니, 곡해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요, 카인이 멍청한 짓 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요?”
나이아까지 가세하자 세라는 피식 웃었다.
“그도 그렇구나. 그나저나 나이아, 편하게 말하거라. 너에게는 특별히 내 이름을 허락하마.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너하고는 친하게 지내고 싶구나.”
“아, 알았다.”
어색하게 응대하는 나이아와 몇 마디 더 나눈 세라는 하품을 터트렸다. 가만히 어깨를 두드린 그녀는 등을 돌렸다.
“그러면 공작은 나이아와 회포를 풀거라. 나는 조금 쉬어야겠다.”
“그리 하십시오.”
가볍게 이겼다고 한들, 공식적인 시합이라는 건 변치 않았다. 우리 안의 원숭이가 되어 사람들의 볼거리가 된 것도 불과 몇 시간 전.
알게 모르게 심력을 소모했을 터. 더구나 세라는 내일 있을 본선에 대비해야 하는 처지였다. 카인은 그녀에게 피아를 붙여 주었다.
그렇게 세라가 퇴장하자 나이아는 한심하다는 듯 카인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날 붙잡은 이유가 무엇이더냐? 시답잖은 잡담이나 하자고 사절단의 대표를 부른 건 아닐 테고.”
“역시 눈치챈 거야?”
“너무나 노골적이지 않더냐. 참느라 혼났다.”
“이곳에 신의 무덤이 있다는 게 밝혀졌어.”
“호오, 재미있는 이야기구나. 모험이 시작되는 것이더냐.”
그렇지 않아도 봉사 활동과 서류 작업에 치여 몸이 찌뿌둥한 참이었다. 나이아가 의욕적으로 팔을 붕붕 돌리자 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지정한 장소를 수색해 줬으면 좋겠어.”
“설마 홀로 가라는 건 아니겠지?”
“걱정하지 마, 이브와 아리아가 따라붙을 테니까.”
“그러면 걱정할 거 없지. 맡겨만 다오.”
거기까지 말한 나이아가 무언가 석연찮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이내 위화감의 정체를 눈치챘다.
“그런데 너는 왜 나서지 않는 거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
세라에게 조언해 준 인물이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 몰라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후딘이 이쪽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도 한몫했다. 미심쩍은 거동을 보이면 따라붙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사절단으로 방문한 나이아의 손을 빌리는 게 가장 현명한 판단이었다.
‘무엇보다…….’
거리에 감도는 수상한 낌새가 카인의 신경을 연신 건드렸다. 2급 살귀였을 때 느꼈던 감정이 갑작스레 떠오를 정도. 아니나 다를까, 오리올의 보고는 내심 생각했던 것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 들어맞았다.
‘조직.’
녀석들이 암중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 * *
리벨리온의 시야에 들어온 건 어중간한 2급 살귀도, 물이 오른 1급 마귀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대어였다.
거기에 익히 아는 얼굴.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려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인상 풀어. 누누이 말하지만 대륙 회의 때, 독을 사용한 건 내가 아니라니까?”
“그렇다고 해 두지. 결과적으로 잘 풀렸으니.”
“이걸 안 믿네.”
상대는 서운하다는 듯, 과장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카인은 그러한 제스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맞은편에 앉은 이를 쳐다보았다.
퍼스널 네임, 우라.
그녀는 보란듯이 한적한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트레이드 마크인 술병은 어디로 간 건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주점에서 기다릴 줄 알았는데 말이지.”
“나도 그러고 싶지만, 자중하라는 소리를 들어서 말이야.”
퍼스널 네임에게 그런 직언을 내릴 수 있는 이는 제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일련의 인과 관계를 고려하면 연상되는 이는 한 명밖에 없었다.
일찍이 아리아에게 조직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을 내린 남자.
“알파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맥시모스 공작령을 둘러싼 암운도 그와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정보를 얻기 위해 모였다고 보기엔 너무나 치밀하고, 공격적이었다.
루드니아 공작령에서 보였던 패턴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녀석들은 무언가 커다란 한 방을 터트리기 위해 벼르고 있었다.
“대체 조직은 무슨 생각인 거지? 십좌들 틈바구니 사이에서 날뛰어 봤자 득이 될 건 없을 텐데?”
“맨입으로 가르쳐 달라는 건 아니지?”
“바라는 게 뭐지?”
“내가 바라는 거야 정해져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