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57
357화 폭발 2
* * *
엔지니어의 본거지가 통째로 무너졌다. 쓸려 나가는 눈과 토사 위에 선 카인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잘 가라앉네.”
하지만 그러한 여유도 잠시뿐이었다. 구덩이 아래에서부터 솟구치는 살기에 그는 떠밀리듯이 앞으로 굴렀다.
하염없이 가라앉는 개미지옥을 뚫고 나온 건 세트였다.
이 정도 폭발로 죽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카인은 담담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크크큭. 그런가, 네가 마스터 코드를 지니고 있었나. 여태까지 구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어. 일개 인간이, 그것도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인간의 손에 들어갔는데 알 도리가 있나.”
‘마스터 코드라.’
만능 열쇠는 본디 그런 이름인 듯싶었다. 엔지니어의 수장이 하는 말이니 확실할 터.
“이렇게 된 이상, 그 손 아니 네 몸뚱아리 전체를 연구 표본으로 삼겠다.”
“꼭 네 것인 것처럼 말하는군.”
“대륙에 있는 모든 신기는 알리파 제국에서 비롯되었다. 우리의 전신인 그 알리파 제국에서. 그러니 네 안에 깃든 마스터 코드는 우리의 것이다. 관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엔지니어라는 단체를 이끌기 위해 자신들의 인격을 한 몸에 담은 녀석들이었다.
그야말로 아집의 덩어리.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 말을 들었다면 그래도 어느 정도 인정해 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방금 막 본거지가 무너진 참이었다. 천 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 번도 외적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던 그 본거지가.
근간이 박살났는데 여전히 잘난 척 고자세니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부랑자 신세가 된 녀석이 말하니 영 믿을 수가 없군.”
“고작 여기에서 무너질 거였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겠지.”
세트로서도 이 정도 저항은 이미 예측한 바였다. 대륙 최강인 타나와의 일전도 대비한 상태였으니까. 당연하지만 은자의 비경이 무너질 때 사용할 수 있는 시나리오도 준비되어 있었다. 거기에 신의 무덤 따윈 언제든지 다시 세울 수 있었다.
“보여 주지, 우리가 쌓은 업보가 어느 정도인지.”
어디에선가 날아온 잿빛 입자가 세트를 에워쌌다.
신의 무덤이 폭발했음에도 그 밀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농밀했다. 아니, 더욱더 가일층 급증했다.
세트를 훌쩍 뛰어넘은 나노 마테리얼 덩어리는 이윽고 고층 건물만큼 크게 치솟았다.
그것은 짐승처럼 보이기도, 기신처럼 보이기도 했다.
엔지니어가 누대에 걸쳐 완벽하게 복원한 신기.
초대 황제 알파가 애용했다고 알려진 ‘타이탄’이었다.
인사 차원에서 십검을 휘두른 카인은 짧게 혀를 찼다. 베이는가 싶더니 중간에 원상 복귀되었던 탓이다. 입자가 이리저리 요동치는 게 꼭 날벌레 떼를 보는 것만 같았다.
‘어디에서 물자가 그렇게 많이 나오나 했더니…….’
이곳 빙산 전체가 나노 마테리얼이었다.
구태여 세트가 본거지를 드러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곳에서 그는 신과 비슷한 무위를 발휘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카인이 내달리는 궤적을 따라 하늘에서 포대가 형성되었다. 이윽고, 그 포구 사이로 뇌명이 울려 퍼졌다.
하전 입자포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포격.
종횡무진 내달리는 카인의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성자포입니다. 중성입자의 크기가 하전입자보다 큰 탓에 대기권 안에서 사용하는 게 제한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이제 보니 그것도 아닌 듯하군요.]“얼마나 강하든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진드기의 특성을 빌린 카인은 그 누구보다 자유롭게 질주했다.
압도적인 속도는 그 자체로도 폭력적이었다.
중성자포는 전부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모두 카인의 잔상을 쏘아 떨어뜨리는데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문명의 이기라고 해도, 아니 그렇기에 한계가 명확한 법.
카인은 전방위에서 쏟아지는 포격을 피하며 지휘자가 연주를 지시하는 것처럼 손가락을 휘둘렀다.
동시에 별처럼 많은 포대가 산산이 조각나 비산했다. 물론 그것들은 곁가지에 불과했다. 본체가 되는 세트는 타이탄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는 상황.
물론 보이지 않는다면 보이게 하면 그만이었다.
카인은 급하게 선회해 세트를 향해 곧장 나아갔다.
수백, 수천 개의 포톤 블레이드가 허공에서 생겨나, 머리를 노렸지만 무용.
실낱보다 더 자그마한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거리를 좁힌 카인은 타이탄 사이에 손가락을 욱여 넣었다.
십검, 파열상.
잿빛 입자가 흩어진 순간, 세트의 얼굴이 언뜻 보였다. 몇 발자국만 더 내디디면 닿을 거리인데도 그는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안 지치나? 후딘과 싸우면서 적지 않은 체력과 마력을 소모했을 텐데 말이야.”
“그럴리가.”
“숨기려고 해도 소용없다. 페이스가 떨어지는 속도가 가파르니까. 아마 이 상황만 유지되어도 너는 제 풀에 지쳐 쓰러질 테지.”
빌어먹게도 그 지적이 맞았다.
후딘과의 격전, 용의 인자 남용. 그리고 세트와 이렇게 맞서고 있는 것까지.
무리한 싸움이 이어지니 아무리 마력이 하해와 같다 해도 밑바닥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카인이 뭐라고 대꾸할 틈도 없이 세트는 밉살맞은 미소만 남긴 채 범람하는 나노 마테리얼 사이로 사라졌다.
“승리는 결정되었으니, 내 대답따윈 상관없다는 건가.”
카인은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오히려 집어넣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용의 인자 안에서 그가 가지고 나온 건 또 다른 생물.
‘야자집게.’
17킬로그램의 몸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력은 무려 1톤. 영장류 최강인 고릴라를 크게 웃도는 힘이었다.
그 체중을 고려하면 있을 수 없는 수치.
초인의 토대가 된다면 그 위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급증할 게 분명했다.
잿빛 방벽을 억지로 열어젖힌 카인이 송곳니가 드러날 정도로 크게 웃었다. 그리고 준비한 선물을 내밀었다.
[정련정심 – 개수일촉]검지에서 터져 나온 파동이 세트의 머리를 깨부수고 지나갔다. 본디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격이었으나, 나노 마테리얼이 결손된 부위를 빠르게 수복하기 시작했다.
물아일체의 경지.
‘나노 마테리얼을 전부 소진하기 전까지 죽지 않는 건가.’
어떤 면에서 보자면 급속 회생보다 질이 좋지 않은 능력이었다. 여기에서 세트를 갈기갈기 찢어 놓아도 나노 마테리얼만 충분하다면 또 다른 세트가 형성된다는 거니까.
“크으윽아아아!”
상처 입은 짐승처럼 거칠게 노호성을 터트린 세트가 입술을 깨물었다. 처음 겪어 보는 건 아니었다. 역대 수장들의 기억이 머릿속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죽음에 이르는 격통은 언제나 새롭게 다가왔다.
아직도 재생이 끝나지 않은 왼쪽 눈을 손으로 가린 세트가 으르렁거렸다.
“그래, 체면상 저항은 하고 싶다 이거지. 네가 자랑하는 그 빌어먹을 재생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갈가리 찢어 죽여 주마.”
세트가 손을 휘젓자, 타이탄은 제 형체를 풀고 폭풍이 되었다.
일대에 재앙이 휘몰아쳤다.
아차 하는 사이에 소용돌이에 휩쓸린 카인은 제 손이 갈려나갔다는 걸 뒤늦게 인지했다. 상처 부위는 벌레에 파먹힌 것처럼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단분자 커터로 구성된 반사합금 더미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동하는 초대형 분쇄기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러니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재생할 수 있는 타이밍조차 잡지 못할 수 있습니다.]“다진 고기가 된다는 건가.”
이브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계속해서 잘린다면 재생할 수 있다고 카인도 확신할 수 없었다. 따라서 거리를 벌리며 하염없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집요하게 따라붙는 잿빛 폭풍을 없애기 위해 개수일촉을 사용했으나, 허사였다. 오의의 특징을 눈치챈 건지 타격 부위만 떨어뜨려 피해를 최소화했던 것이다.
“이브, 다른 정보는 없어?”
[특정 주파수를 사용해 조정하는 걸로 확인되었습니다.]세트가 사용하는 신기는 성절이나 마법이 아니었다. 당연히 그에 맞는 사용 방법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경우 컨트롤러는 소리와 파동이었다.
‘특정 주파수라면.’
꿀벌부채명나방이 제격이었다.
가청주파수 300kHz. 천적인 박쥐를 피하기 위해 진화한 이 생물은 듣지 못하는 게 없었다.
확장된 인지 사이로 생경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을 뜻하는 건지 모르지만, 그게 반사합금 더미를 조종하는 신호라는 건 분명했다. 소리가 나지 않는 쪽으로 움직이기만 해도 피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카인은 거기에서 멈출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꿀벌부채명나방을 사용한 건 시간을 끌기 위함이었다. 진정한 목적은 그 뒤에 있었다.
‘박쥐.’
꿀벌부채명나방으로 인식한 주파수에 정확히 반대되는 파동을 발사한다. 상반된 파동이 상쇄되는 건 당연한 수순.
변위가 사라지자 장내에는 백색 소음이 가득했다.
달리 말하자면 반사합금 더미를 조종할 수단이 사라졌다는 뜻.
폭풍이 멎자마자 하늘에서 주인을 잃은 잿빛 입자가 쏟아져 내렸다.
한순간에 드러난 약점.
세트는 처음으로 맨몸이 되었다.
카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쇄도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
한 번에 끝내야 했다.
카인이 세트의 턱밑까지 치달은 것과 난데없이 나타난 이브가 그의 등 뒤를 점한 건 거의 동시.
세트의 뒤통수에 머리카락을 꽂아넣은 이브는 빠르게 역산했다.
“한시적이지만 네트워크 접속을 끊었습니다.”
나노 마테리얼이 있는 한, 세트가 한없이 불사신에 가까운 존재라는 걸 알기에 이브는 위험을 무릅쓰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을 읽은 카인이 마음을 다잡으며 진각을 밟았다.
여기에서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
그러한 일념하에 카인이 주먹을 내지르려던 찰나, 세상이 멈추었다. 아니, 그들만 멈추었다.
“이것까지 사용할 줄은 몰랐는데.”
양쪽에서 덤벼드는 적수를 보고 세트가 내민 건 여태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기술이었다.
[아웃 로우 ― 체감 정지]체감 시간을 한없이 늘어뜨려 정지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 오의. 전부터 간간이 사용했던 신혈과는 그 궤를 달리했다.
범위는 제한적이었으나, 효과는 절대적이었다. 뇌신경에 직접 작용하는 능력이기에 마소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개입할 수 있다 해도 그 전에 결판이 났다.
찰나가 모든 걸 가르는 사투는 무릇 그런 것.
한순간의 실수가 승패를 좌우했다.
아무렇지 않게 이브의 머리카락을 뽑아낸 세트는 카인의 주먹을 슬며시 밀어냈다.
자그마한 위화감이 느껴진 건 그때.
“이 와중에도 눈동자는 굴릴 수 있다는 건가. 사고 속도를 얼마나 올린 거지? 아, 대답해 줄 필요는 없다. 어차피 하지도 못하겠지만.”
자세히 보니 몸도 조금씩 움직였다. 물론 밀리미터 단위였기에 고무적인 수치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지렁이가 꿈틀대는 정도.
“이왕이면 네 비명 소리가 듣고 싶지만, 이래서야 그럴 수도 없겠군.”
제한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무심하게 손을 들어올린 세트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러면 잘 가라.”
카인의 정수리에 손날이 닿기 직전, 뇌리를 관통하는 격통에 세트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손님은 그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일어난 세트의 시야에 비친 건 한 명의 창잡이.
“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