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9
039화 처리하다 2
* * *
“보고나 해라.”
“암시장에 있는 모든 종류의 재화는 모두 회수했어.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노예가 된 사람들은 로건 님에게 맡기면 되고, 손님으로 온 부자들의 머리는 내가 살짝 만져줬으니까 문제가 될 건 없어.”
장난이 심하고, 경망스럽지만 일 처리 하나는 확실한 부하였기에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는 카인을 향해 첨언한 건 오히려 호른 쪽이었다.
“여기에 오기 전에 켈레스를 봤는데, 도련님이 해치운 거야?”
“그러면 누가 해치우겠나.”
“아니, 기묘해서 말이야. 누군가 조종한 흔적도 없는데 저렇게 날뛰었잖아. 싫어하는 향을 피운 것도 아니고 굶긴 것도 아닌데 말이야.”
순간, 카인의 눈이 번뜩였다.
“……. 마수인가, 마수. 그래, 마수였어. 이제야 연결이 되는군.”
그렇지 않아도 관리자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참이었다. 3년 전, 하프문의 지배자인 투론의 곁에 한 여인이 나타나면서 조직 전체가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한창 달아올랐을 땐 생각할 경황이 없어 넘어갔지만 차분해지니 떠올랐다.
2급 살귀 중에 그러한 인물이 있다는 게.
냄새가 났다. 아주 익숙한 냄새가.
“호른, 저택의 경계 단계를 올려라. 특히나 쥐나 비둘기같이 작고 활발한 동물을 주의해라.”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
“알았어. 하면 되잖아, 하면.”
툴툴거리면서도 호른은 카인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았다. 언제나 의도를 알 수 없는 명령을 내렸지만 그게 최선의 길로 이어진다는 걸 3년 동안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알릴 게 있었네.”
“뭐지?”
“와서 보면 알아.”
구석진 곳에 있는 방으로 들어간 카인은 옷깃이 스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누군가 있었다.
“잠깐만.”
호른이 검지를 들자 그 끝에 자그마한 불씨가 일어났다. 불꽃이 일렁이며 고즈넉하게 깔린 어둠을 걷어 냈다.
동시에 카인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는 두 아이를 볼 수 있었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잡티 하나 없는 피부. 장래가 기대되는 둘이었지만, 그보다 먼저 카인의 눈에 들어온 건 인간과 다르게 유난히 길쭉한 귀였다.
“알브?”
아인종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종족이었다.
찬찬히 두 아이를 살펴본다.
저항을 심하게 했던 듯, 여기저기에 맞은 흔적이 역력했다. 웃긴 게 있다면 그런데도 선천적인 미모가 가려지지 않았다는 걸까.
“오늘 경매에 올라갔을 녀석들이야.”
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가지고 싶다는 건가?”
“크흠, 나를 뭐로 보고. 나만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걸? 이래 보여도 노예 제도도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안 물어봤는데.”
카인이 이상하게 쳐다보자 헛기침을 내뱉은 호른은 손을 휘휘 저으며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그게 아니라 이 녀석들이 희한한 말을 해서 말이야.”
“살려달라고 했나? 아니면 고향으로 돌려 보내달라고?”
“아니, 가주님을 만나고 싶다는데.”
그 말에 카인이 머리를 짚었다.
“폼 좀 잡고 싶어서 나불댔나 본데, 언제나 말하는 거지만 우리의 정체는…….”
“알아, 알고 있다고. 비밀이지. 내 입이 가벼운 건 사실이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라. 저쪽 눈썰미가 제법이었거든.”
호른이 시선을 돌려 두 알브를 쳐다본다.
“아무래도 우리가 일을 진행하던 와중에 흘린 이야기를 엿들은 것 같아. 도련님도 알잖아? 알브들이 귀가 좋다는 건.”
정평이 난 사실이었기에 새삼스레 놀라울 건 없었다. 듣고 싶은 건 그다음.
“그래서?”
“자기네 부족은 오래전부터 가주님이랑 아는 사이였다는데?”
“도와주라는 건가?”
“툭 까놓고 말하자면 그렇게 되겠지.”
순간, 카인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자칫 잘못하면 짐 덩이를 들일 수도 있었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었다. 백작령을 정리하는 중이라면 더더욱.
차라리 방생하는 게 나을 터.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자 아이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내, 내 할아버지가 부족의 장로야. 날 건드리면 할아버지가 가만히 있지 않을걸.”
훅, 훅. 입으로 바람 소리를 내며 잽을 연달아 내지른다. 중심도 잡히지 않은 게 애처로워 보일 지경이었다.
“너희 할아버지만 장로야? 우리 할아버지도 장로야.”
자극이라도 받은 건지 옆에 있던 녀석도 따라 주먹을 휘둘렀다.
“바보야, 우리 둘이 형제니까 그러지.”
“아, 맞다.”
멀리에서 보면 비극이요, 가까이에서 보면 희극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애꿎은 가면만 연신 두드린 카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방관하면 다른 녀석들의 먹잇감이 될 게 뻔했다. 도망치다 길거리에서 비명횡사하면 구한 보람도 없었다.
“일단 성으로 데려가라. 진짜인지 가짜인지 스승님에게 물어보면 될 테니까.”
* * *
“또, 또!”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분노를 고함으로 토해낸 투론은 손에 잡히는 대로 때리고 부쉈다.
벌써 7번째였다.
지난 3년 동안 꼬리를 밟히지 않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건만, 돌아온 건 처절한 응징뿐이었다. 하프문과 맞닿아 있다는 증거를 없애고 또 없앴지만 어떻게 알아낸 건지 엠은 집요하게 뒤를 쫓아왔다.
그래, 솔직히 말해 이렇게 당해도 참을 수 있었다.
손해는 있을지언정, 패배는 없었으니까. 화를 내면서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암시장 때문이었다. 언제든지 끌어다 쓸 수 있는 금줄이 있으니 마음에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것마저도 사라졌다.
내부는 쑥대밭이 되었고, 관리자인 지크는 몸소 해부도가 되었다.
당장 내일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엠의 뒤에 누군가 있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신속하고, 정확하게 일을 끝마칠 수 있을 리 없었다.
“……. 라프만이 분명해.”
엠이 나타난 시기와 라프만이 돌아온 시기가 겹쳤기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었다. 엠과 라프만, 둘 사이에 관계가 없을 리 없었다.
슈발체베인 백작령 내에 있는 범죄자들은 모두 그리 판단할 터.
“어쩌면 당사자일지도 모르지.”
범죄자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은 제한되어 있었으니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게 오히려 이상했다.
“도, 도망쳐야 해.”
검성을 상대로 주먹질을 한다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폭풍이 들이닥치려고 한다면 도주만이 답이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자기, 아직도 일하고 있는 거야?”
“아, 아니다, 세레나. 다 끝난 참이다.”
반사적으로 대답한 투론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세레나가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며 서 있었다.
란제리를 입어 굴곡이 선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부끄러움 따윈 없다는 듯이 투론에게 다가가 안겼다.
“우리 둘 사이에 비밀은 없던 거로 기억하는데. 엠이 요즘 말썽이잖아, 안 그래?”
세레나가 턱을 검지로 살살 긁으면서 재촉하자 투론은 한숨을 내쉬었다. 동업자이기도 한 세레나에게 거짓을 고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암시장에서 난리를 피웠다고 하더군. 덕분에 영지군도 눈치챘고. 진퇴양난이다.”
“흐응~,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데 도망칠 거야?”
“그래, 잠잠해질 때까지 숨어 있는 게 상책이다. 세레나, 너도 가자.”
투론이 팔을 잡아당겼지만 세레나는 알 듯 모를 듯 애매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침묵이 길어지자 다급해지는 건 투론 쪽이었다. 그런 그의 속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세레나가 흥얼거렸다.
“하지만 그건 내키지 않는걸.”
“그게 무슨…….”
헛소리냐며 세레나를 쏘아붙이려던 투론의 코끝으로 달콤한 향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딘가에서 맡아본 적이 있는 듯했으나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흐리멍덩한 눈동자가 전방을 주시할 뿐이었다.
“나는 자기가 용맹하게 나서는 모습이 더 마음에 들거든. 그러니까 내 얼굴을 봐서라도 적극적으로 움직여 주지 않겠어?”
뜨거운 숨결이 귓불을 간질이자 고개를 들었던 생존 본능이 누그러들고, 막연한 용기가 샘솟았다.
그래, 검성이면 어떻고, 백작이면 어떻단 말인가. 어차피 인간이면 약점이 있을 수밖에 없을 텐데. 투론이 결사 항전의 의지를 다지자 세레나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지만 자기는 내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는구나. 정말로 감동적이야.”
“내가 언제 실망시켰던 적이 있나.”
“그럼, 자기밖에 없는걸. 자기가 최고야.”
입술이 뺨에 닿는다. 보드라운 감촉에 투론은 자신의 결정이 자랑스럽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히죽거렸다.
“그러면 골치 아픈 일도 어떻게 할지 결정이 났으니까 이제 나를 조금 더 봐 주길 원하는데.”
세레나가 하나둘씩 단추를 풀자 투론이 거칠게 잡아당겼다. 오직 이 순간을 위해 기다리지 않았던가.
“안 될 건 없지.”
두꺼운 손이 우악스럽게 가슴을 잡았다. 하지만 세레나는 그런 그를 꾸짖지 않고 침대로 인도했다. 방 밖으로 들리는 건 두 짐승의 소리뿐. 그들만이 드넓은 저택의 주인이었다.
폭풍 같던 시간이 지나고, 끈적한 열기를 식히기 위해 테라스로 나온 세레나가 나른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밤하늘을 뚫고 한 인영이 나타난 건 그때였다. 그림자만으로도 대상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인간 중에서도 이례적인 체구를 지닌 남성은 빠르게 움직이는데도 불구하고 소리 하나 없이 조용했다.
착. 세레나의 앞에 착지한 그는 인사도 없이 지껄였다.
“조직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쓸만한 인재를 포섭하라고 했을 텐데.”
방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대강 짐작하고 있기에 고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네, 그렇게 지시했던 건 아울 님이잖아요?”
“이런 모습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말이지.”
“어쩔 수 없는걸요. 저도 원해서 이런 몸으로 태어난 게 아니니까요. 아니면, 아울 님이 직접 해 주실 건가요?”
세레나가 천연덕스럽게 콧소리를 냈지만 아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적성률이 높은 이들은 이런 게 문제였다.
해당 인자의 적성률이 100퍼센트가 넘는 ‘과적응자’들은 하나같이 광증을 앓았다.
수집욕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하거나, 그녀처럼 남자의 몸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거나.
증상은 저마다 달랐기에 십인십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조직에서도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애당초 과적응자는 돌연변이에 가까운 존재였다.
양(羊)의 인자를 부여받은 세레나의 몸에서는 이성의 호감을 살 수 있는 페로몬이 연이어 뿜어져 나왔다.
쥐나 비둘기, 심지어 처음 보는 마수에 이르기까지. 수컷으로 분류되는 동물이라면 여지없이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야말로 팜 파탈의 현신. 직접적인 전투 능력은 없지만 영역을 넓히는 일이라면 1급 마귀도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였다.
“도저히 알고 싶지 않은 영역이군.”
“인자의 힘이 아니라 제힘으로도 이 자리에 올라올 수 있을 정도인걸요. 정말로 궁금하지 않으세요?”
고혹적인 자세로 윙크를 날렸지만 아울은 요지부동이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조직의 임무였다.
꿈쩍도 하지 않는 철벽을 두드리는 건 취향이 아니었기에 세레나는 맥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세요?”
“조직의 영향력이 늘어나긴커녕 줄어들고 있다는 건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당연하죠. 그래서 이곳에 불려온걸요.”
3년 전부터 슈발체베인가의 대처가 심상치 않았다.
알고 막는 건지 모르고 막는 건지 확인할 길이 없으나 그게 조직적인 움직임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적어도 이쪽의 활동을 눈치챈 이가 저쪽에 있다고 가정해야 했다.
그리고 엠 같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변수가 날뛰는 상황이었다. 목적을 이루는 게 쉬울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