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40
040화 처리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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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렇게 초조해하지 않아도 될 텐데요. 십좌가 다스리는 곳은 대개 이런 양상이라고 들었는걸요.”
요컨대 줄다리기 같은 거다. 승패가 날 때까지 왔다 갔다 하는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될 뿐, 결정적인 순간이 오지 않는 한 이 평행선은 영원히 지속될 게 분명했다.
애초에 조직이니까 이만큼 활약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집단이었다면 꼬리를 밟힌 뒤, 뿌리까지 소각당했을 테니까.
십좌란 그만큼 무겁고, 무서운 이름이었다.
“기다릴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이곳에 중요한 곳이 있다는 건 너도 알고 있겠지?”
“근처에 고대 유적지가 있다는 건 들었습니다.”
“3년 동안 이곳에 머무른 건 모두 그 때문이다. 너를 이용해 무리하게 세력을 확장하려는 것 또한 그러한 취지에서였지. 하지만 시간을 끄는 것도 이제 마지막이다. 어떻게든 끝을 보아야 한다.”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매듭을 지은 게 없었다. 아울의 입장에서 그건 기나긴 이력에 붙은 흠집이나 다름없었다. 조직에서도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한 임무를 가지고 무려 3년이나 지체한 것이다.
풀리지 않는 문제. 보이지 않는 목표. 격렬하게 날뛰는 감정을 따라 인자가 요동친다.
“슬슬 결실을 맺을 때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지? 세레나.”
목을 조이는 듯한 압박감에 세레나가 숨을 헐떡였다.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지만 그녀라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수많은 동물을 매료시켜도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었으니까.
“이, 이제 남은 곳은 노튼 설원뿐이에요. 그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면 백작령에 있는 게 아닐 거예요.”
“노튼 설원, 그렇군. 그곳이 남아 있었군.”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곳에 찾는 것이 있다면 여태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이유도 설명할 수 있었다.
“언제쯤 원하는 결과를 들을 수 있겠나.”
“삼일, 아니 이틀만 시간을 주세요. 아울 님이 만족할만한 정보를 찾아보겠어요.”
“기대하지.”
아울은 그 말만 남긴 채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 * *
시궁창에 내다 버린 5만 골드를 채우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일까. 28살, 그해의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그동안의 노력이 가볍지 않았는지 2급 살귀가 될 수 있었지만, 마음속에 생겨난 갈망과 허망은 채워지지 않았다.
카인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이 세상에 희망은 없다는 걸 깨달았기에.
대신, 돈을 좇았다.
사랑, 우정, 인정. 그런 막연한 개념은 잡는 것도, 보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황금은 명확했다.
변하지 않는 가치가 거기에 있었다. 맛있는 밥도, 아름다운 미녀도, 평온한 삶도 모두 돈에서 파생되었다.
빛나는 금만 있다면 구질구질한 인생도 황제 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었다. 돈이야말로 영구불변, 향후 영속하는 행복의 덩어리였다.
“오늘은 전서구가 없나.”
하지만 행복의 전도사는 지금 부재중이었다. 텅 비어 있는 새장을 툭툭 건드린 카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무도 없겠다, 오랜만에 거리에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골목길을 지나 대로로 나오자 긴 행렬이 눈에 띄었다.
“그곳에서 온 사절단이라고?”
“하, 세상이 말세군. 인간도 아닌 것들이 인간 행세를 하다니.”
“야만적인 것들이 동맹의 의미나 알까?”
구경꾼들의 목소리에 절로 고개가 돌아간다. 무심히 행렬을 바라보던 카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처럼 시린 백발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백기사 아휀.
누구나 아는 유명인은 보란 듯이 행렬의 맨 앞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려니 했다. 십좌 중 한 명인 그에게 제한선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오늘은 텄나.”
거리가 이래서야 조용히 산책하는 것도 무리였다. 조용히 등을 돌린 카인은 집으로 돌아갔다. 아니, 가려고 했다.
아휀의 곁에 있는 그녀를 보지 않았더라면.
카인은 숨이 멎는 듯했다. 보지 못한 사이에 더 아름다워진 것 같았다.
지난 2년 동안 무슨 일을 벌이고 다녔길래 지금 저 자리에 있는 걸까. 날 버린 것과 연관이 있는 걸까? 원론적인 물음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감히 다가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먼 곳에서 바라볼 뿐.
그때처럼 점점 멀어지는 그녀를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행렬이 끝나고, 구경꾼들이 사라진 거리에 홀로 남은 카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건 많은데 목구멍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아인종들의 행렬이라고 했던가.”
귀가 있으니 싫어도 알게 되었다.
아휀의 동료가 된 그녀가 전 대륙에 있는 아인종들을 하나로 규합해 구심점이 되었다는 걸. 놀랍게도 그녀는 여왕이 되어 새로운 왕국을 건설했던 것이다.
국명은 알븐헤임.
헤브니아에서 가장 이질적인 국가이자 아인종들의 낙원이었다.
* * *
리벨리온과 슈발체베인가가 합심하여 미얀시를 휩쓸었다. 양지와 음지, 양측에서 몰아치자 제아무리 성세가 드높은 하프문이라고 해도 한풀 꺾일 수밖에 없었다.
암시장도 어느 정도 뿌리 뽑힌 상황.
하프문이 쌓아 놓은 돈이 이쪽으로 흘러들어 온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더구나 유통 경로도 제한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라 할 수 있었다.
“이쪽에서 암시장을 활성화시키면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거다.”
눈에 훤히 보이는 욕심에 호른이 박수를 쳤다.
“도련님은 자나 깨나 그 생각밖에 없네.”
“크흠. 그리고 수상한 움직임도 미연에 발견할 수 있을 테지.”
카인이 뒤늦게 변명했지만, 호른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쿡쿡 웃었다.
피아가 차분하게 찻잔을 내려놓은 건 그때였다.
“도련님, 차 드세요. 오늘은 특별히 설송나무에서 나온 수액을 써봤어요. 쌉싸래하면서도 달콤하게 남는 끝 맛이 인상적일 거예요.”
시음하듯이 한 모금 삼킨다. 동시에 식물 특유의 향이 아련히 입안에 맴돌았다. 생전 처음 맛보았지만 완벽하게 입에 맞았다. 개인의 취향을 온전히 이해한 사람만 발휘할 수 있는 묘기.
입꼬리가 절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피아는 내 머릿속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온 것 같아.”
“그럼요. 제가 도련님에 대해서 모르는 건 없으니까요.”
피아가 가슴을 탕 치며 호언장담한다. 그 모습을 본 호른은 올라오는 심술을 감추지 못하고 이죽거렸다.
“그 사랑해 마지않은 도련님이 술을 입에 달고 사는 건 아는지 모르겠는걸.”
놀랄 법도 하건만, 그 뒤에 이어지는 피아의 대처는 호른의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그래서요?”
“응?”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말인데 설마 방관하신 건 아니시죠? 호른 님?”
흐름이 이렇게 되니 위축되는 건 호른 쪽이었다.
“뭐, 오다가다 잠깐 본 것뿐이라서 말이야. 말릴 틈도 없었지, 아마?”
“가장 가까이에서 도련님을 보좌하는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끝인가요? 그리고 그걸 자랑스레 말하면 제가 도련님을 질책할 것처럼 보였나요?”
허리를 꼿꼿이 세운 피아가 검지를 번쩍 치켜들었다.
“아시겠나요? 문제가 되는 건 도련님의 일시적인 일탈보다 호른 님의 태도예요. 도련님이 엇나가는 걸 봤으면서도 그런 반응이라니요. 도련님을 믿고 맡긴 가주님에게 죄송하지도 않으신가요?”
잔소리의 시작이었다. 호른은 서둘러 카인에게 구조 신호를 보냈지만 카인은 어디에서 개가 짖냐는 듯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그때, 성큼 다가온 피아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도련님에게 이상한 걸 가르치면 가만히 안 둘 테니까요?”
이미 많이 알고 있던데. 뒷말을 삼킨 호른은 고개를 돌렸다.
“술이나 도박은 괜찮아요. 어리시니까요. 호기심에 한 번 경험해 볼 수도 있죠. 하지만…….”
카인을 힐끗 쳐다본 피아는 목소리를 더욱 줄였다.
“여자는 안 돼요.”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지, 모르겠는걸?”
“시녀 언니들에게 다 들었어요. 가끔씩 나가서 즐기고 오신다면서요.”
“세상 참 무서워졌네. 다 큰 처녀가 그런 말도 입에 담고 말이야.”
“농담 아니니까 진지하게 들으세요. 도련님에게 밤놀이를 가르쳤다간 그때는 저랑 같이 죽는 거예요. 아셨죠?”
상큼하게 웃고 있지만, 그 안엔 귀신이 숨어 있었다.
“대답.”
“아, 알았다고. 나도 도련님에게 그런 걸 가르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제아무리 무서울 게 없는 호른이라고 해도 피아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3년 전, 첫 만남. 그게 문제였다. 오두막에서 적으로 만났으니 빈말로도 좋은 인상을 남겼다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호른은 흐르지도 않은 땀을 닦으며 입을 닫았다.
마침 시끄럽게 조잘거리는 녀석들이 옆에 있어 뒤로 뺄 수 있었다.
“맛있네. 이 손을 더럽혀도 될 정도야. 역시 적당히 기름기가 있는 게 좋아.”
“평생 이것만 먹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부족에 가면 풀잎만 뜯어먹고 살겠지?”
“그러니까 빨리 먹어.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두 아이는 칠면조를 통째로 입에 욱여넣었다. 보고만 있어도 배부른 광경이었다.
누가 이 아이들을 보고 노예로 팔려갈 뻔했다고 생각하겠는가. 기가 찰 정도로 씩씩한 모습에 카인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구출한 아이들의 이름은 루오와 베오. 루오가 형이고, 베오가 동생이었다.
그래, 앞서 말한 대로 두 사람은 ‘남자아이’였다.
어째서 호른이 질색하며 물러난 건지 알 것 같았다.
“남자아이라서 나한텐 떠넘긴 거지?”
“크흠. 억측은 억측에서 끝내라고, 도련님. 아직 보지 못한 동생이 생각났을 뿐이니까.”
“아, 그래.”
턱도 없는 변명이었다.
“역시 여기에 계셨군요.”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별채에 들어온 건 매튜였다.
‘아이들을 보러 온 건가.’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다. 3년 동안 한 번도 별채에 온 적이 없는 매튜였다. 용건을 전할 때도 그는 대중소 브라더스를 애용하는 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안을 훑어본 매튜가 능청스럽게 두 아이를 가리켰다.
“저 아이들은 누구입니까?”
“개인적인 손님이다.”
“도련님의 손님입니까?”
“의외인가?”
“아닙니다. 별난 아이들이 왔다는 소리를 들어서 저도 모르게 흥분한 것 같군요.”
“관심이 많은 것 같군.”
“그야 아인종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니까요.”
매튜의 입가에 그림으로 그린 듯한 미소가 그려진다. 마치 안심하라고 소리치는 듯했다.
하지만 카인은 속지 않았다. 알브가 아닌 아인종. 그 미묘한 단어 선택에 깃든 편견을 읽었으니까.
공포는 무지에서 비롯되고, 무지는 외면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이 아인종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문명이 발달해도 미지에 대한 공포는 여전했다. 아인종은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닌 존재. 매튜처럼 호불호가 갈리는 건 당연했다.
“듣자 하니 가주님과 아는 사이라고요? 도련님은 어떤 사연인지 알고 있습니까?”
묘하게 질척거리는 물음이었다. 더구나 모르는 척 다가온 주제에 꽤 많이 알고 있었다. 경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글쎄, 이런 건 나보다 기사단장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오히려 내가 물어보고 싶을 정도군.”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무래도 가주님이 조심스럽게 결정을 내린 사안인 것 같군요.”
깊게 찌르자 허허롭게 웃으며 멀어진다. 만나서 반가웠다는 겉치레와 함께.
그 모습에 루오와 베오가 콧방귀를 꼈다.
“무지 음흉해.”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데 저런 사람이랑 있어도 돼?”
피아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호른은 제법이라는 듯 두 아이의 머리를 강하게 쓰다듬었다.
“역시 너희들 눈에도 그렇지?”
카인은 매튜가 나간 문을 쳐다보았다. 궁금하긴 했다. 어째서 접근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