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225)
225화 에필로그
우주 어느 곳의 자그마한 술집.
19세기 즈음 미국의 고대 원목 스타일 가구들로 채워진 그 술집은, 맥주잔이 짤랑이는 왁자지껄한 분위기 대신 옷을 매끄럽게 차려입은 신사들이 고풍스럽게 포도주를 따르는 공간이었다.
평소에는 목소리를 낮추며 저마다의 얘기에 빠져들었을 이들이나, 지금은 모두가 한쪽 벽에 걸린 TV에 시선을 집중했다.
중대발표라는 큼직한 글씨가 화면 아래를 장식하고 있는 뉴스 화면에서는, 제국 정부 대변인의 발표와 함께 거대하고 끔찍한 외계 종족과의 사투를 찍은 영상이 재생되었다.
“세상에.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저런 게 일어나고 있었다니.”
“역시 진 테일러야. 일반인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몇 번이나 해내잖아.”
“영웅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없지. 암.”
사람들은 진 테일러를 칭송하며 감탄했다.
뒤이은 아나운서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술집의 한쪽에서는 진 테일러의 급부상이 부작용을 불러오는 게 아니냐며 걱정하기도 했다.
“황제의 비호에, 정보부도 꽤나 밀어주는데 또 거창한 전공이라니. 또 다른 기득권 세력이 되는 건 아닐까 몰라.”
“그러게. 최근에 진 테일러 재단에 속한 사업가 일부가 뇌물을 받았다잖은가. 정의도 결국 타락할 수밖에 없단 거지.”
“하지만 그 사실이 알려졌단 것 자체가 자정작용이 되고 있단 말이라고 보는데. 게다가 고발인도 같은 재단 사람이라잖은가.”
“어허,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내부자가 자기한텐 뭐 떨어지는 거 없다고 앙심 품고 고발했을 수도 있지.”
“세상을 왜 그리 삐딱하게만 보나. 정말 정의를 위한 결단일 수도 있는데.”
“정의는 무슨. 아직도 전직 귀족들이 떵떵거리는 마당에 무슨 정의.”
술집 한쪽에서 수군거리는 것처럼, 최근 격변을 겪은 인류의 초거대 국가는 아직 해결해야 될 것이 산적해 있었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의 육지는 제법 깔끔해지지만, 강 하류와 바다에는 온갖 쓰레기가 쌓이듯 말이다.
하지만 역사는 말해준다.
때로는 후퇴하고 때로는 갈팡질팡하면서 영 진전이 없어 보이지만, 공동체는 결국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걸.
***
승천하지 못한 자들과의 최후의 결전이 끝나고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그리고 몇 년 뒤.
인류는 34세기 말이라는 단어를 떼고 35세기라는 새로운 단어를 받아들였다.
2천년 대에서 3천년 대로 넘어가는 밀레니엄의 교체와 맞먹는 환희가 제국을 진동시켰다.
4백 년 동안의 지긋지긋한 싸움으로 점철된 피 묻은 세기들을 드디어 과거로 흘려보낸다는 의의가 담겨 있었으니까.
또한 1월 1일이 되자마자 정부에서는 중대 발표를 했다.
35세기와 함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수백 년 동안 인간의 발길이 끊겼던 은하 영역에 드디어 진출이 허용된 것이다.
인류가 새로운 것을 찾아 이동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아프리카를 떠나기로 한 원시 인류처럼, 각 민족이 다양한 이유로 대이동을 한 것처럼, 우주 시대가 열리고 폭발적으로 은하 곳곳을 향해 진출했던 고대의 사람들처럼.
그리고 지금 이 시기.
다시금 인류의 대이동이 개시되었다.
호기심, 학문적 진리, 금전적 이득, 더러운 정치적 속셈, 어두운 욕심 등 온갖 목표를 가진 인간군상들이 엔진에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미처 모르는 것이 있었다.
미지의 세계에는 이미 누군가의 발자국이 찍혔음을.
***
“드디어 진출이 허용됐네.”
“다 우리가 가봤지만요.”
“캬, 우리가 찍은 거 돈 받으면 얼말까?”
“1크레딧.”
“야! 너무 박하잖아! 천문학자들한테만 팔아도 돈더미에 앉겠다!”
“니가 지금까지 농땡이 부리면서 받은 크레딧 카드만 해도 건물 하나는 쌓을 건데 뭔 그리 욕심을 부려?”
“아니 싸울 일이 없는데 무슨 농땡이? 개인정비라고 해주쇼.”
[제임스 니베아, 개인정비치고는 많이 놀던데요?]“야 그거 사생활 침해야 침해!”
[전 그런 거 몰라영.]1월 1일을 기념해 늘 오던 관광지에 방문한 팀 엔터프라이즈는 중대발표가 방송되는 화면을 보며 떠들었다.
요 몇 년 동안 그들은 무적함대를 이끌고 텅 비어버린 은하 지역을 나다녔다.
하나는 이리저리 흩어진 드로칸 잔당 추적을 돕기 위해.
둘은 정부의 부탁을 받고 풍부한 광물 지대 및 위험 지형 등을 파악하기 위해(+구경도 좀 하고)
셋은 승천하지 못한 자들이 벌여놓았을지도 모를 부스러기를 수습하기 위해.
그 결과물은 제법 푸짐했다.
잔당은 모조리 섬멸되었고, 무적함대의 광범위한 스캔으로 미개척지대는 더 이상 우주 먼지 뒤편에 숨어 있지 않게 되었다.
전 드로칸 영역의 구석에서는 드로칸의 자비 하에 겨우 숨만 붙어 있던 몇몇 약소 외계 종족과의 접촉이 성사되었다.
또한 승천하지 못한 자들이 남긴 몇몇 수상한 초고대 유물을 회수하여 분석 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가 있었다.
“그런데 외부 은하 탐사는 언제쯤 한대 함장? 말 들은 거 있어?”
네브라가 진에게 ‘외부 은하’를 언급했다.
지금까지 은하의 중심핵 부근은 이론을 벗어나는 기현상으로 인해 관측과 분석이 불가능했다.
또한 은하를 둘러싼 은하 실드가 은하 내부와 외부의 물리법칙에 차이를 만들어 오가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승천하지 못한 자들이 사라진 이후, 그 두 가지가 모두 해결되었다.
은하 중심핵은 기현상이 사라져 제대로 된 관측이 가능해졌고 은하 밖에서도 드디어 초광속 항행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외부 은하 탐사는 아직 말 없었어. 아무리 초광속이 가능하게 되었어도 거리라는 게 있잖아.”
은하와 은하 사이는 너무나도 멀기 때문에 기존 초광속 항해로는 수년 내지 수십, 수백 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괜히 시장이 설레발치며 출렁일 발표는 아직 하지 않기로 의회에서 합의하고 있었다.
“후후후후……”
“흐흐흐……”
그때, 에나와 파비안이 낮게 웃었다.
꼭 상을 탄 학생이 부모님께 자랑하기 직전의 표정 같았다.
“왜 그래?”
“저번에 함장님께서 블랙홀로 떠나시기 전에 혹시 모르니까 연구해 두란 거 있었잖아요.”
“아. 그래. 그거.”
진은 당시에 둘의 머리를 싸맬 과제를 하나 주었다.
그건 바로 ‘중력장 실드 없이도 초광속 항행이 가능할 이론적 기반을 대충 연출해 놓아라’라는 것이었다.
진은 이전에 은빛 촉수가 강림한 것처럼 비물질계의 옛 것들이 물질계로 튀어나올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들을 상대하려면 평범한 수법은 안 될 것 같아, 물질계에서 단연코 가장 위력적인 공격, 초광속 충돌로 상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비유하자면 최초의 핵폭탄 개발과도 같은 충격을 모두에게 선사할 무기라 모두의 경계를 살 위험이 있었다.
때문에 어차피 타일 보호 기능이 아니면 불가능할 거, 대충 변명이 될 수 있는 쭉정이 이론이 담긴 틀만 짜놓으란 얘기였다.
승천하지 못한 자들이 한 놈도 빠짐없이 비물질계에서 소멸함으로서 더 이상 그런 변명은 필요치 않게 되었지만, 에나는 이왕 불붙은 거 계속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던 도중에 생각지도 못한 점을 찾아냈다.
“그건 바로 중력장 실드가 없으면 초광속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는 거지요.”
기존의 최소 백 배, 최대 만 배 이상!
그 말을 들은 팀원들이 진에게 시선을 모았다.
중력장 실드 없는 초광속은 현재의 재료공학으로는 결코 불가능하다. 하지만 타일 보호 기능은 가능하다.
이는 외부 은하 진출에 반드시 진의 협력이 필요하단 말.
즉, 인류의 세력 확장을 진이 이끌 수 있단 얘기였다.
“함장. 너무 힘이 세지는데?”
“그러게. 그냥 아예 황제 하셔 황제.”
“역시 인류를 더 위대하게 이끌어 나갈 분이로군요.”
“함장님은 역시 최고입니다!”
“후후후. 어때요 함장님?”
진은 갑작스러운 감탄 세례에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잘 됐네. 그럼 이렇게 된 거, 다른 은하도 구경하고 다니자고. 하하.”
다시금 잡담거리로 화기애애해진 분위기에 누군가가 불쑥 진입했다.
[오랜만 얘들아!]홀로그램 화면 안에는 푸른 드레스를 입은 여인, 어머니 암반이 있었다.
“아, 무슨 일이세요?”
[그냥 좋은 일 있다길래 나도 낄까 해서 왔지. 나름 같이 싸운 전우인데 새해 기념에 나는 안 껴줘서 서운하단다?]그녀는 수다 떨 좋은 핑계거리를 찾은 투머치 토커의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듣자하니까 초광속 항해 업그레이드 했다지? 역시 천재 에나야.]“흐흠. 뭘요.”
[그런데 내가 희소식을 하나 더해줄게.]희소식?
[나, 정식으로 너희 사회에 편입되려고.]“……정체를 밝히시겠다고요?”
[응.]“굳이요?”
팀원들은 격려보다 걱정이 앞섰다.
인류 사회는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 그 안은 복잡하고 더럽기 짝이 없다.
팀원들은 어머니 암반의 동심(?)이 훼손될까 우려했다.
[너희들이 뭘 걱정하는 지 훤히 보이는구나. 하지만 괜찮단다. 내가 AI들 통해서 모든 걸 볼 순 없지만 볼꼴 못 볼꼴은 다 봤어. 내가 나오려는 이유는……]이유는?
[너희들 토크 프로그램에 나오고 싶은 욕망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란다.]맙소사.
백억 살 이상 먹은 투머치 토커가 방송계를 휘저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인류에게 필수품인 스마터늄을 수출하는 스톤나이트의 어머니이니 말 그대로의 여왕과도 같은 지위를 누리리라.
“그…… 말실수나 하지 말아 주세요.”
[걱정마렴. 나는 일반적인 생명체가 아니니까.]잠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던 어머니 암반은 나름 여러 경험을 간접적으로 하면서 쌓인 연륜으로 금방 분위기를 확 끌어올렸다.
하하호호거리며 대화의 장을 열어가는 팀원들의 뒤편.
방 한구석에서 팀원들을 뭔가 흐뭇한 시선으로 구경하던 슬라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크기만한 와인잔을 끼고서.
“자, 모두 건배!”
건배!
팀원들이 술잔을 부딪치면서 새해를 축하했다.
-건배!
“아, 얘도 있었지 참.”
하하하하!
슬라임도 촉수를 쭉 늘려 포도주가 담긴 잔을 번쩍 들어 올려 건배 자리에 끼었다.
쨍!
붉은 술이 찰랑이는 유리잔 너머, 창문을 통해 보이는 무한한 우주가 무수한 빛을 반짝이며 앞으로 찾아올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치트쓰는 함장님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