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유작 9개를 모아 묶어서 내놓은 앨범.
솔직히 말하자면 저 앨범의 존재가 그리 탐탁지만은 않았다.
‘남의 흑역사를 멋대로 까발리다니.’
저건 그거다.
어린 시절 남몰래 연습장에 그려 놓은 낙서를, 선생님이 잘 그렸다며 남들에게 자랑하는 그런 느낌.
기왕이면 곡을 내놓더라도 끝까지 다듬어서 내놓으려고 했는데.
‘하지만 뭐, 그렇게 묵히기만 했을 수도 있겠지.’
기왕 이렇게 된 거 일찍 내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지금 연주할 곡은 그중 1번 트랙.
인트로에 해당하는 곡이었다.
끼이잉-.
김예담의 서글픈 해금 소리가 무대 위를 장악했다.
연인을 잃은 여인이 흐느끼는 것만 같은 음색에 나도 모르게 피부 위로 소름이 돋았다.
‘듣고 있으면 소름 끼친다니까.’
김예담 본인은 알고 있을까.
해금만 손에 쥐면 곡에 무서울 만큼 감정을 불어넣는다는 걸.
관객들도 그 감상은 나와 마찬가지인지 얼음처럼 굳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저 서글픈 멜로디가 내게도 꼭 필요했다.
크로스오버라는 장르가 있다.
다양한 장르를 혼합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건데,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는 특별할 것도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게 내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없었지.’
내가 살던 시절에는 없었다.
한국에 크로스오버 음악이 처음 모습을 보였던 게 80년대 중반이었다고 했나.
본격적으로 빛을 보기까지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고 했다. 내가 이 세상에 없었던 30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모르는 사이 음악계에 새로운 역사가 등장했다.
끼익-
계속해서 김예담의 연주가 이어졌다.
이번 곡의 베이스는 국악이다.
그렇게 깔린 전자 해금의 소름 끼치는 선율 위로.
팅.
내 기타의 소리가 곁들여졌다.
부드러운 테일러 기타가 서글픈 해금을 만나 중용을 이루자, 관객들의 표정에도 비로소 안정이 깃들었다.
‘기타랑 해금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니까.’
두 악기는 원래 한 몸이었던 것처럼 찰떡같이 어울렸다.
어쩌면 이는 악기의 구성이 원인일지도 몰랐다.
둘 다 현악기다.
하지만 해금은 찰현악기로서, 현을 비벼서 소리를 뽑아냈다.
그중에서도 소리가 구슬픈 편.
반면, 기타는 발현악기로서 현을 퉁겨서 소리를 발사한다.
그 소리는 담백한 편에 속했다.
태생부터가 서로 완전히 상극인 두 악기. 그렇기에 조화로울 수 있었다.
탄수화물과 버터, 담백한 빵과 버터가 서로 어울리는 것처럼.
‘서양에는 밴드 음악에 바이올린을 곁들이는 경우가 많다지.’
이걸 한국식으로 다듬어 봤다.
지이잉-
다단, 차라락.
얼핏 보기에는 어울릴 일이 없을 것 같은 두 악기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탕!
이것조차도 시작에 불과했다.
조은솔의 기다란 손가락이 현을 뜯기 시작하며 그 사이로 어울렸다.
해금과 2대의 기타.
어느덧 세 악기가 한자리에 자리했다. 화원에 꽃이 만개하듯 소리가 한층 더 풍부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모자랐다.
소리 한구석이 비었다. 민감한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음역대.
그 틈을 뒤이어 곧바로 성민아의 기타가 메꾸었다.
타다다닥!
그녀의 주특기인 퍼커시브가 폭발했다.
타악기의 합류하는 순간.
어느덧 기타만 3대, 총합 4대가 강대한 군세를 이루었다. 이제 풍부한 수준을 넘어 풍성하다 말해도 좋을 영역에 다다랐다.
두 눈을 감으면 눈에 그려질 듯한 합주.
무대 위는 어느새 물이 가득 찬 쟁반과도 같이 아름다운 소리로 가득 찼다.
하지만.
여전히 모자랐다.
‘더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차자자작!
함재원의 기타가 올라왔다.
홀로 달려나가는 속주가 하모니의 끝을 장식한 순간.
“……!”
무대 위로 한계까지 차오른 소리가 관객석으로 범람하기 시작했다.
관객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동시에 내 척추를 타고 짜릿한 소름이 올라왔다.
‘완성이다.’
어느덧 1대의 해금.
그리고 4대의 기타.
이쯤에서 내가 생각한 그림의 완성이었다.
도합 다섯 대의 악기가 저마다 자태를 뽐내었다.
하지만 저마다 소리가 다르다.
퉁기고, 두드리고, 비비고, 찰랑거린다.
각기 저마다 다른 주법으로 다른 멜로디를 연주했다.
너무나도 다른 네 개의 소리.
하지만 가지런히 깔린 해금이 연결고리가 되어 네 대의 기타를 주렁주렁 엮였다.
지금, 이 순간, 호흡이 일치했다.
‘이거지.’
나는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 곡에 합쳐질 두 번째 장르, 아카펠라였다.
1대의 해금과 4대의 기타로 이루어진 크로스오버.
저음부터 고음까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 내는 소리의 하모니.
내가 전생에 차마 떠올리지 못했던 그 소리였다.
‘음악을 너무 혼자 하려고 했어.’
언제나 혼자 했다.
그렇기에 내게도 한계가 찾아왔다.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고 혼자 음악을 하는 사람의 한계가 뻔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이제는 다르다.
시대가 변화했고, 나 또한 변화했다.
그렇기에 내 음악도 변화했다.
지난 일 년의 시간은 결코 소꿉놀이가 아니었다.
타인과의 호흡을 익히고, 그 호흡을 온전히 나 자신과 엮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또 우스웠다.
‘함재원, 말하는 거랑 연주가 딴판이네.’
혼자 튈 것만 같았던 모습과는 달리, 연주를 시작하자 그 누구보다도 타인을 철저하게 배려하고 있지 않나.
연주에는 연주자의 성정이 배어난다고 한다.
어쩌면 함재원은 주위에 너무 쉽게 물드는 성격일지도 몰랐다.
나는 속으로 작게 웃음을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일어난 아침. 무심코 마신 커피가 기분 좋았던 점심. 샌들 바람으로 가을 단 바람에 공원을 걷는 오늘. 그대의 내일은 어제보다 빛나리라.”
곡 전체를 통틀어서 가사는 이것 한 줄 뿐.
끼릭.
이쯤에서 연주가 끝났다.
불과 2분짜리 인트로.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실수 없이 완벽한 호흡을 맞춘 만큼, 온전한 충족감이 폐부를 가득 메웠다.
나는 헛기침을 뱉고는 입을 열었다.
“김한영 선배님…… 이 아니라 김한석 선배님의 유작 앨범, [9]의 1번 트랙을 부족하게나마 편곡해 봤습니다.”
슬쩍 옆을 돌아보니 함재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어쩐지 유쾌한 마음이 되어 말을 이었다.
“처음 선보이는 시도라서 좀 미숙했는데, 즐겁게 들어 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좀 민망하네요. 선배님께서 들으면 만족하실지 모르겠습니다.”
“…….”
대답이 없네.
나는 살짝 민망한 마음을 애써 무시하며 말했다.
“다음 곡 시작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제 오리지널입니다. 고양이.”
* * *
[싱어송라이터 김한영]의 첫 번째 곡이 끝났다.그간 선보인 적 없는 새로운 시도.
해금을 필두로 5개 악기의 하모니라는 파격적인 구성에 대중이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니] [아니 ㄹㅇ 아니 아니 아니] [국악기가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줄 몰랐음] [진짜 해금이 신의 한 수였다] [저거 해금임?] [해금처럼 안 생겼는데] [내가 아는 게임은 5성 캐릭터 해금밖에 없는디… 와 저게 해금이구나] [이것도 김한석 곡임?] [포브스 선정 독수리 오형제 이후로 최고의 오형제] [이런 곡을 대체 언제 준비했대? 나 김한영 방송 다 챙겨보는 데도 연습하는 거 못 봤는데?] [방송 밖에서 연습했겠지.] [쪼개서 연습한 거 아님?]정답에 가까웠다.
이번 곡은 시작부터 관객의 호응을 훔쳐 오기 위한 비밀병기였고, 그렇기에 철저하게 방송 화면에서 숨겨야 했다.
파트를 쪼개고 쪼갰다.
뒤늦게 합친 것치고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티가 안 났을 뿐.
왜냐.
이미 오랫동안 연습해 왔으니까.
이번 방송을 앞두고 급조된 다른 팀과는 달리, 이들은 벌써 1년 가까이 호흡을 맞춰 왔으니까.
평소 하던 대로 한다.
그것만으로도 대중을 경악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진짜 김한영은 또라이다] [방송에서 하는 연습만 해도 ㄹㅇ 많은데, 화면 밖에서도 연습하냐] [역겹다] [크아악] [어떻게 저렇게 연주하는 사람이 많은데 실수 한 번 안 생기고 자연스럽지?] [함재원 진짜 잘한다 ㅋㅋㅋㅋ] [함재원 정도 되면 3대 500 치나요?] [↑ 3분에 500대 때리고 싶다]그간 전례 없는 규모로 채팅창에 활자로 된 소나기가 내려왔다.
눈에 한가득 힘을 줘 봤자 차마 다 읽어 내릴 수가 없을 정도.
기존 방송 라이브 시청자가 7만가량.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이 3만가량.
도합 10만의 시청자들이 일제히 김한영의 역겨움을 칭송했다.
어쩐지 짜증이 솟는다.
잘하는데 짜증 난다.
[싱어송라이터 김한영]의 연주는 그러했다.흠집이 없는 연주.
어떻게든 트집을 잡으려고 한들, 결벽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약점을 전혀 내보이지 않아 저절로 욕지기가 올라오는 연주가 화면 안에 있었다.
“어서 오시오. 오늘은 느긋하게 누워 쉬고 싶소.”
마지막 곡, 고양이까지 끝났을 때 대중이 할 말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었다.
[우승은 김한영이네]김한영의 우승을 기정사실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만큼 열심히 했으면 우승시켜 줘야지 ㅋㅋㅋㅋ] [진짜 손발이 너무 잘 맞는다] [오늘 본 무대 중에서 제일 압도적이었다] [그에게 주어지는 합격 목걸이]앞서 이미 네 팀이 무대 위에 올랐지만, 그들의 연주에서 김한영을 넘어서는 특별함은 없었다.
늘 듣는 좋은 연주.
어디까지나 그 정도.
김한영의 무대는 좋은 것도 좋은 것이지만, 참신함이 존재했다.
보는 사람의 눈에 한 번에 각인될 정도의 참신함이.
[사람 수가 너무 많은데 반칙 아님?] [ㅋㅋ 그렇게 많은 걸 어떻게든 조화시키는 게 실력이지] [김한영이 우승임?] [솔직히 다른 사람들보다 열심히 준비해 온 거 맞잖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승기가 기운 건 아닌 모양이었다.
[다음 차례, 김건하 김주언 아님?]이번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가 남았다.
현재까지 종합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팀, 그들의 무대가 남은 것.
[김건하 노래 진짜 잘 부르던데] [김건하라면 아모른직다] [무기 여러 자루보다는 한 자루를 잘 다루는 장인이 더 강한 법이지] [ㅈㄹㄴ]다시금 각축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 * *
김건하.
그는 마이크를 어루만지며 이미 앞 차례로 지나간 김한영 팀의 무대를 되새겨 보았다.
‘역시 잘해.’
잘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기대했던 것 그 이상이다.
편집증에 가까운 완성도.
그게 그들의 연주 사이에 자리 잡았다.
김건하 그가 평소 해 왔던 음악과는 남극과 북극만큼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는 술을 마시고 올라서 엇박자로 노래를 부를 때도 많았으니까.
‘호흡이 완벽하군.’
김건하, 온갖 재능을 타고난 그라고 해도 이것만큼은 따라 할 수 없었다.
왜냐.
그는 혼자 서는 방법밖에 몰랐으니까.
‘이길 수 있을까.’
고민하기를 잠시, 김건하는 피식 웃고야 말았다.
우습다.
예전에는 이런 고민 따위는 한 적도 없었다. 무대 위에서 맞붙으면 이기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 않나.
그는 언제나 가진 재능을 즐겁게 휘두르는 폭군이었지, 경쟁자의 마음을 가진 적은 없었다.
‘한 곡이다.’
한 곡만 소화하면 된다.
이번 한 곡만 마치고 나면, 다시 산속에 돌아가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김건하는 그런 마음으로 호흡을 내쉬고는 마이크를 손에 잡았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서는 무대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제 첫 손님입니다. 최대한 서비스하겠습니다.”
관객들의 표정에 흐뭇한 미소가 깃들었다.
하지만 막상 김건하의 속내는 그렇지 못하였다.
목에 느껴지는 이물감에 구역질이 난다. 당장이라도 끊어질 실처럼 불안했다.
한 곡이나마 온전히 불러 낼 수 있을까.
옆에 선 김주언은 그리도 유명하다는 미소를 지었지만, 김건하는 그 안에서 일말의 불안감을 읽어 냈다.
‘알아. 임마.’
설마 무대에 문제가 생길까 불안하겠지.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어떻게 되든 끝까지 부를 테니까.
‘재능이란 그런 것이기도 하고.’
재능이란, 언제나 불합리한 상황에서 불합리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도, 김건하는 그의 안에 조금이나마 남았을 잔불을 기대하며 입을 열었다.
“부르겠습니다.”
잠시 뒤.
김건하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안개처럼 낀 내 마음에 찾아와 살며시 내려앉은 이름, 그대. 짐승과도 같았던 나. 그대에게 배운 것 셀 수 없지만 단 하나 서투른 일, 그대 흔적을 지우는 것.”
이 곡의 제목은 [지우개].
그가 가장 영광스러웠던 시절을 함께했던 곡이었다. 눈을 감고도 부를 수 있다.
죽기 전에 묘지에 묻힌다면 이 곡의 가사를 비석에 새기고 싶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곡이었다.
‘좋아, 생각보다 괜찮다.’
다행히도 목이 버텨 주었다.
조금만 발을 잘못 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지만, 안 떨어지면 그만이다.
이대로 끝까지 가면 된다.
디리링.
김주언의 기타 소리가 옆에서 차분하게 들려왔다.
저걸 지지대 삼아서 버티자.
집중, 또 집중.
한평생 감으로 노래를 불렀던 김건하가 지금만큼은 필사적으로 집중력을 발휘했다.
“우리 둘의 약속, 함께 걸었던 거리, 공유했던 시간, 이 모든 걸 나 혼자 가슴에 묻어야 하나요. 고통에 비명을 질러 보아도 그대는 가르쳐 주지 않아.”
집중하자.
앞으로 조금만 더 집중하자.
다행히도 어떻게든 전반은 버텼으니, 후반부 코러스 파트만 어떻게 넘기면 된다.
당장은 김주언의 기타 솔로가 준비되어 있으니 20초는 넉넉히 쉴 수 있다.
……라고 생각한 순간.
“쿨럭!”
신은 돕지 않았다.
스스로 돕지 않았던 자를 외면했다.
‘이 퇴물이 기어코.’
김주언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