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granddaughter of the Namgoong family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육 혈주가 털썩, 제왕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남궁무천은 그런 육 혈주의 앞에서 덤덤한 표정으로 그의 목에 검을 겨눈 채 기운을 운용했다.
남궁무천의 손짓에 육 혈주의 입이 쩍, 벌어졌다. 곧이어 그 입에서 무언가가 묶여있는 어금니가 쑥 뽑혀 나왔다.
남궁무천은 어금니에 묶여있는 독단을 바라보다 먼 곳으로 휙, 던져버렸다.
“어디서 보낸 누구냐.”
육 혈주 적괴수가 흐흐, 웃으며 입안에 고인 핏물을 뱉었다.
“혈사채주 적괴수요.”
“수적이 독단을 입에 물고 있더냐?”
“그럴 수도 있지.”
“헛소리.”
그가 평범한 수적이 아니라는 건 그에게 흘러나오는 기운을 통해 알았다.
더러운 기운.
‘설화의 몸에 남아 있던 공력의 찌꺼기와 비슷하다.’
“화오루의 사람이더냐?”
“흐. 소루주가 알려주었소?”
“어서 네놈의 정체나 불거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소루주를 불러주시오.”
적괴수의 시선이 저 먼 곳의 언덕을 향했다.
그곳에 두 사람이 있다는 건 남궁무천도 적괴수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누구인지도.
“개수작 부리지 말거라.”
“소루주의 앞에서 전부 말하겠소.”
“….”
남궁무천의 눈가가 설핏, 구겨졌다.
자신과 무광이 있으니 아이가 크게 위험하진 않을 테지만, 먼 곳에 있는 것보단 위험하다. 그러니 망설여질 수밖에.
“어차피 죽기를 각오한 목숨이오. 검황인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내 목을 벨 수도 있을 것이고. 뭐가 문제요?”
“….”
“섭섭지 않게 불어 드리리다.”
실실 웃는 그를 내려다보던 남궁무천이 피곤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3장 안으론 불허한다.”
“좋소.”
남궁무천은 섭무광에게 설화를 데려오라는 전음을 보냈다.
이내 섭무광이 설화와 함께 내려와 약속대로 3장 밖에 섰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였다.
섭무광의 보호를 받고 있는 설화의 모습을 본 육 혈주가 흐흐흐, 웃음을 흘렸다.
“오랜만이오, 소루주. 남궁의 아가씨라는 자리가 썩 맞는 모양이오? 낯빛이 밝아진 것을 보니.”
“소루주라고 부르지 마. 이젠 아니니까.”
“…크하, 하하하! 크하하하!”
적괴수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이 공허한 들판에 울려 퍼졌다.
설화는 그 모습이 조금 낯설었다.
‘그 육 혈주가 이렇게 초라한 모습이라니.’
이전 생엔 장강 수로채의 지배자로 수로채를 이끌고 혈교의 난의 한 축을 담당했던 그였다.
육 혈주가 뱃길을 틀어쥔 덕분에 중원의 물자 수송과 지원을 방해할 수 있었고, 그 탓에 백성들의 생활고가 심해져 더 많은 이들이 혈교로 전향해 왔다.
온 중원과 고수들의 두려움이 되었던 존재.
물 위에선 누구도 이길 수 없었던 장강의 패자(霸者).
그랬던 그가.
“뭐, 못 부를 것도 없지. 남궁 소저. 자, 이제 만족하시오?”
설화는 저를 보고 이를 드러내며 웃는 육 혈주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육 혈주 역시 이내 웃음기를 지운 얼굴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거 아오? 그 미친 루주가 웬 울보 아해 하나를 데려와 소루주로 삼는다고 했을 때 난 반대했소.”
금제 탓에 소루주라 명하였지만, 육 혈주는 혈마가 어느 날 설화를 여섯 혈주 앞에 세워놓고 소교주로 삼는다는 공표를 하였을 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오 혈주와 육 혈주는 혈마의 뜻에 맹렬하게 반대했다.
물론 혈마의 공표는 통보였기에 반대는 묵살 되었지만.
“맹수 새끼는 키우는 게 아니지. 다 크고 나면 주인이고 먹잇감이고 구분 못 하고 덤벼들거든. 보시오. 지금이 딱 그 꼴이지 않소?”
육 혈주는 다시 흐흐, 웃음을 흘렸다.
어딘가에서 데려온 남궁의 아이를 소교주로 삼겠다고 했을 때, 육 혈주는 혈마가 드디어 돌아버린 줄 알았다.
아니, 애초에 미친 이이긴 했지만.
이후 기억을 지우고 키울 때만 해도 그럴싸해 보였지만, 그 결과가 지금 이것이다.
‘제 주인을 물려 하는 것을 어찌 길들였다고 할 수 있겠나.’
흐흐, 미친 혈마 놈. 제 발목을 제가 잡는 꼴이로군.
“기왕 이렇게 된 거 이겨 보시오.”
“왜? 내가 이기는 게 너한테 좋은 일은 아닐 텐데.”
“굳이 따지자면 그 미친 루주보단 소루주 쪽이 더 마음에 든달까? 난 그 미친 루주한테 꼭 한 방 먹여주고 싶었거든.”
혈교는 겉으론 세상을 구하려는 영웅 행세를 하지만 실상은 결국 이해관계가 얽힌 집단일 뿐이다.
적어도 혈마와 여섯 혈주의 관계는 그렇다. 혈마의 힘을 받고 피의 종속으로 목숨줄을 내어준 관계.
처음은 그것이 이해관계에 따른 정당한 거래일지 모르지만, 본디 인간이란 없을 땐 받은 것을 감사히 여기다가, 넘칠 땐 이전의 은혜를 잊는 존재다.
이전 생에도 여섯 혈주들은 혈마에게 협력하는 한편, 자신들의 목을 옭아매고 있는 피의 종속을 증오했다.
항상 그 목줄을 끊어버리고 싶어 했다.
그리고 여섯 명 전부 그 목줄을 틀어쥔 혈마를 어느 정도 증오했다.
‘그 증오를 나만 보면 풀어대서 귀찮았었지.’
혈마나 여섯 혈주나 설화에겐 다 같은 미친놈들일 뿐이었지만.
“여튼, 결과를 못 보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내 마지막으로 선물을 주겠소.”
육 혈주가 설화에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옮겨 남궁무천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보낸 누구냐 하였소?”
그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휘었다.
“잘 들으시오. 나, 적괴수는….”
그 순간, 육 혈주의 눈동자에 핏발이 서며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설화는 놀란 눈으로 그런 육 혈주를 바라보았다.
‘금제를 어기려 하고 있어…?’
금제를 어기면서까지 정보를 주겠다고?
“대…수라….”
그륵, 그륵, 피거품이 쏟아지며 그의 온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손가락을 시작으로 사지의 마디, 마디가 뒤틀리고 뼈가 휘어졌다.
금제는, 오로지 죽기 위한 독단과는 다르게 어기려 하는 이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목적.
“끄윽…끅….”
창자가 갈가리 찢기고 심장이 조각나는 고통 속에서도 육 혈주는 비열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의 핏발 선 시선이 설화를 향했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육 혈주의 눈동자 속엔 오로지 광기만이 가득했다.
“혈…교….”
그와 동시에 푸확- 하며 육 혈주의 온 구멍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륵, 거리는 거품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눈을 뜨고 보기에는 실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크…흐흑….”
눈이 뒤집히면서도 그는 웃었다.
제가 싸질러놓고 간 조각이 그 오만한 혈마를 난감하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이 즐겁다는 듯이.
설화는 그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
섭무광이 설화의 눈을 가렸고,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볼에 튀었다.
“끔찍하구만….”
나직이 읊조리는 섭무광의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어온 것으로 끝이었다.
‘정말… 죽었다.’
육 혈주가, 정말로 죽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저벅, 저벅.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눈을 가린 섭무광의 손 너머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리고 이내 설화의 몸이 쑥, 뽑히듯 들어 올려졌다.
“엇차.”
남궁무천이 설화를 번쩍 안아 들었다.
육 혈주의 시신이 있는 곳을 등지게 한 채, 그의 두툼한 손가락이 설화의 이마에 가볍게 톡, 와닿았다.
이내 온몸으로 그의 기운이 흘러들어왔다. 머리가 개운해지는 시원한 기분이었다.
“크게 다친 곳은 없구나.”
설화의 몸을 살피길 마친 남궁무천은 손을 거둬들였다.
그는 설화를 안은 채로 산보하듯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네가 화린이의 뒤를 쫓았다지.”
“네.”
“대견하다.”
남궁무천이 설화의 머리를 슥슥, 쓸었다.
“하나, 다음부턴 어른을 먼저 부르거라. 아니면 호위를 대동하거라. 호위는 네 위험을 대비하여 붙여준 것이지 다른 이의 위험을 알리라고 붙여준 것이 아니다.”
“…네.”
어쩐지 령이 많이 혼났을 것 같아서 조금 미안해졌다.
‘호위는 항상 곁에….’
기억해두자.
“서두르다가 목숨을 잃는 것보다 늦어도 안전을 기하는 게 낫다. 알겠느냐?”
“네. 할아버지.”
“그래.”
남궁무천은 두 번 말하지 않았다.
설화를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 짧고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그래도 얻은 것이 있으니 다행이구나.”
육 혈주는 죽기 직전 혈교의 이름을 말하고 죽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아무것도 말하지 못해야 정상이지만, 육 혈주나 되기에 그 정도의 정신력을 발휘한 것이었다.
“간자들을 색출할 수 있게 되었군.”
혈교의 이름을 적어놓고 읽어보라 시키면 되는 일이니.
그것이 거짓 정보인지 아닌지는 육 혈주의 죽음으로 이미 증명되었다.
“그나저나 이상한 일이구나. 실로 패악한 자였다. 한데 어찌 죽기 직전 제 세력을 배신하였을꼬.”
“신의 따위는 없는 이들이니까요.”
“음?”
“그저 힘을 얻고, 휘두르고, 누리기 위한 이들이 모인 세력이에요. 적어도 그 세력의 지배자들은 그래요.”
“음.”
“혈사채주가 도와준 것도 딱히 저희를 위한 일이 아닐 거예요. 그러니 너무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차피 죽게 될 거, 혈마에게 똥을 던지고 싶었던 것이겠지.
“화오루주는 저자보다 강하더냐?”
“네.”
이전 생에도, 지금도 설화는 혈마의 경지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천하 10대 고수라 불리는 이들보다 월등히 강하다는 것이고, 어쩌면.
‘화경 그 이상의 경지에 도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그자는 어찌 스스로를 숨기고 있는 것이더냐. 네 말대로 그리 강하다면 이미 이 중원이 그자의 손에 넘어가야 했다.”
그렇게 강함에도 혈마는 지금으로부터 5년이라는 시간을 더 기다린다. 그 이유는.
“화오루주가 바라는 건 천하 제일인이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