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75
75화
난데없이 인근 카페에서 약속 상대를 기다리기를 잠시.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세상일이 이렇게 흐르냐.’
이번 콘텐츠를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 두었던 청사진이 있었다.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로 시청자들의 반응을 취합하고, 실제로 설득한다.
[시청자들이 가수님을 이만큼이나 만나고 싶어 해요.]이 얼마나 아름다운 빅 픽쳐인가.
‘완벽한 계획인 줄 알았는데.’
어디서부터 틀어진 걸까.
아.
알 것 같다.
‘이번 방송이 너무 잘 풀려 버렸구나.’
김일용 탓이었다.
그가 난데없이 내 방송 링크를 띄우며, 그게 난데없이 커버 송 릴레이로 이어져 버린 탓이었다.
“후우.”
잘된 일이다.
분명 잘된 일인데, 어딘가 시큼털털한 이유는 뭘까.
‘뭐지, 이 날로 먹는 기분은.’
그렇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 참이었다.
“이크! 에크!”
홍윤서가 발작을 시작했다.
그런 그를 두고 고희범이 입을 열었다.
“형, 택견 배웠어요?”
“아아, 내가 바로 육군 정예 택견 부대의 분대장, 별거리 여덟 마당의 홍윤서다.”
“……오빠, 지난번에 취사병이었다고 안 하셨어요?”
“적을 요리하는 취사병, 그것이 나다.”
대단하다.
저 세 사람은 긴장이라는 게 없나 보다.
편하다 못해 방만해 보인다.
홍윤서의 쏟아진 말에 조은솔이 한쪽 눈가를 씰룩거리더니 말했다.
“윤서야, 너 의가사 제대라며.”
“그래, 뼈를 내주고 살을 부쉈지만, 그 후유증으로 인해 전선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지.”
“혹시 그때 다친 게 머리 아니지?”
말에 두서라는 게 없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충 흘렀다.
‘이게 아무 말 대잔치라는 건가.’
그런데 그걸 관찰하고 있으니 나름 재밌어 보이는 것도 사실.
더욱이 마음도 편해졌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한 생각에 닿았다.
‘모르겠다. 대충 흘러가는 대로 살자.’
내 인생이 계획대로 풀린 적이 얼마나 있었나.
이렇게 가다가 일이 잘 풀리면 그것도 그것대로 이득이지.
결과만 좋으면 된다.
결과만 좋으면.
‘생각을 포기하자.’
마음속으로 반야심경을 외우기 시작했다.
효과가 곧 나타났다.
“마! 김한영 이노옴! 이노오오옴! 어디 어르신이 말을 하는데 고개를 돌려! 나 때는 말이야.”
마음을 비우자 점점 홍윤서의 목소리도 먼 추억처럼 희미해지는 것이었다.
대신, 조금 다른 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 저 사람 되게 옷 멋지게 입었네.’
어느 여성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말 그대로 옷을 잘 입었다.
비율 자체가 좋은 것도 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코디가 조화롭다고나 할까.
단순히 아름답다기보다는.
그래, 단숨에 시선을 빼앗는 아우라가 있는 사람이었다.
‘모델인가?’
나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뚜벅.
그 발걸음이 이쪽으로 향했다.
이상하다.
너무 이쪽으로 일직선인데. 이쪽에 일행이라도 있나.
……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어.”
김이철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외쳤다.
“왔어?”
그 말에 건너편의 모델 같은 여성이 싱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불러서 놀랐네. 철이, 너는 맨날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더라.”
“그걸로 밥벌이하는 거지. 얼른 앉아 봐. 네가 보고 싶다고 해서 힘들게 모셨다.”
잠깐.
그 히키코모리가 됐었다는 사람이 설마.
‘이 사람이었어?’
내 머릿속 선입견이 하나 박살 났다.
* * *
[별바라기]의 원곡 가수, 강유미를 본 내 첫 소감은 이러했다.‘봐도 봐도 안 믿기네.’
좀 너무 정상 아닌가.
아니지.
정상이다 못해, 사회생활 끝장나게 잘할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사람 외관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니다만, 이 사람은 겉모습만 보면 어디 기업 임원이라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런 사람이 히키코모리라서 지금까지도 후유증에 시달릴 수준이었다고?’
외관이랑 내면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좀처럼 믿기지를 않았다.
유감이다.
아니다.
이걸 유감이라고 말해도 되는 게 맞나.
“반가워요. 김한영 미튜버 님 맞으시죠?”
목소리마저도 너무나도 밝고 해맑다.
옆을 돌아봐도 식구들 모두 일관되게 못 믿겠다는 눈치인데, 강유미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최근에 불러 주신 영상을 보고 너무 감동했어요. 멋지게 잘 불러 주셔서 고마워요.”
“……원곡이 좋아서요. 가수님 곡에서 많이 배웠어요.”
“제 얼굴에 금칠을 해 주네요.”
그녀는 무엇이 그리 기쁜지 재차 웃더니 말했다.
“사실, 한영 님이 철이랑 아는 사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이런 멋진 노래를 부른 사람이 설마 제 지인과 아는 사이라니. 한국이 참 좁아요. 그렇죠?”
“저야말로 이렇게 뵐 수 있어서 영광이네요. 대대손손 자랑해야겠어요.”
“어머, 말을 너무 잘하신다.”
내가 말을 잘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내 말에 그녀는 다시금 밝은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얼굴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단순히 잘 웃는 게 아니라, 머무른 웃음이 장기 투숙객이라도 된 양 떠날 줄을 몰랐다.
‘놀랍다.’
아무리 봐도 인간관계에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의 반응이 아닌데.
그렇게 말 한마디마다 놀라고 있는 와중이었다.
“사실은요.”
강유미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번 일이 너무 고마워서 제가 철이한테 졸랐거든요. 제가 너무 큰 선물을 받아서, 저도 뭔가 하나 해 주고 싶은데. 혹시 필요한 거 없어요?”
아.
본론이 나왔다.
하긴, 어차피 설득 들어갈 타이밍이었지.
이렇게 먼저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가자.’
나는 호흡을 들이마시고는 말했다.
“제 무대에 나와 주실 수 있으신가요?”
“무대요?”
“네.”
시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저희 방송에서 준비하고 있는 콘텐츠가 하나 있어요. 주변 사람들을 모아서 공연을 여는 건데, 시청자들한테 그 광경을 보여 주면서 이중으로 진행하는 거예요.”
본격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 방송이 뭘 지향하고 있으며, 왜 당신이 필요하며 그런 것들.
그런데.
그녀는 한참이나 말없이 내 설명을 듣더니 말했다.
“모르겠어요.”
거절도 긍정도 아닌 말이었다.
“모르겠다는 말은.”
K22
“물론, 절 그런 멋진 자리에 초대해 주시는 건 고마워요. 진심이에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저도 아직 노래가 그립기는 해요. 하지만 또 무서워요.”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무대가 무섭다니.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등을 떠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는 찰나였다.
김이철이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저기에 나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갑작스러운 지원 사격이다.
은근히 놀란 참인데, 그는 이어서 비니 끝자락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더니 말했다.
“너, 너무 오래 쉬었어.”
“내가?”
“그래, 너, 솔직히 너도 그동안 무대가 그리웠을 때가 있었을 거 아니야. 사람들이랑 부대끼고 싶어 했을 테고.”
“…….”
“사람마다 상처를 극복하는 법은 다르겠지만, 무대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어려운 말은 들어도 잘 모르겠더라.”
“아, 좀.”
김이철이 그녀를 바라보기를 한참.
한숨을 푸욱 내쉬더니, 뭔가 결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수는 누구나 다 대중한테 상처를 입어.”
평소 김이철의 태도만큼 무덤덤하지만, 동시에 어떠한 깊이가 담긴 말이었다.
“내가 이 일 하면서 본 사람들은 다 그랬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한둘이었나. 무대 공포증에 시달리면서도 매번 무대 위에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었지. 누구는 아예 무대 위에서 발작할 것 같으면 뒤돌아서 부르더라.”
“네 말이 맞아. 그러니까 나는…….”
“하지만.”
김이철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난 상처를 치유해 주는 것도 대중이야.”
가슴을 꿰뚫을 것 같은 말이었다.
뮤지션이라면 어떻게든 상처를 안 받을 수가 없다.
당장 초등학교 반 40명 중에서도 이유 없이 사이 나쁜 사람 한둘은 있지 않나.
내가 학교를 안 다녀 봐서 모르겠지만, 이 사실 만큼은.
‘아니다. 다녀 봤군.’
나는 짧게 찾아온 정체성 혼란을 극복하며 입을 열었다.
“제 생각도 그래요. 옛날이랑은 환경이 많이 달라졌어요. 시청자 반응을 바로 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딱 한 번만 출연해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아.”
그 순간 고희범이 입을 열었다.
“그럼 공연 전에 한 번만 출연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출연이요?”
“네!”
고희범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바로 무대부터 올라가시기보다는, 저희 방송에 출연해서 반응 보시고 그다음에 정식으로 공연해 보시는 거예요. 어때요?”
“하지만 얼굴 드러내기가 부담스러워서 조금…….”
“괜찮아요!”
고희범이 냅다 외쳤다.
“얼굴 안 드러내도 되거든요! 인터넷 방송은요!”
아, 그렇지.
저걸 나도 모르게 잠깐 잊고 있었다.
‘인터넷 방송은 얼마든지 익명으로도 활동할 수 있지.’
왜, 요즘은 버튜버라고 해서, 아예 가상의 이미지를 빌려 쓰고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았나.
익명성.
이 업계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얼굴을 드러내는 부담감을 지울 수 있다.
한편, 그만큼 책임감도 사라지지.
하지만 이 경우에는 책임감이 과해서 생긴 문제였으니, 역으로 순기능만 남은 셈.
“한 곡이라도 좋으니까 와서 시청자들이랑 대화 한번 나눠 보세요. 날 좋아하는 사람들 수백 명이랑 한 번에 소통한다는 게 꽤 기분 좋을 거예요.”
고희범이 그답지 않게 말을 쏟아 냈다.
그러기를 한참.
이번에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영아, 그렇지?”
“어? 응. 아무래도 사람들 반응 볼 수 있는 게 좋지. 사람 좋지. 인간 만세.”
뜬금없이 날아온 바통에 대충 둘러대기를 잠시.
나는 강유미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제가 가수님처럼 고생을 해 보진 않아서 어떨지는 몰라요. 사람은 다 다르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남겨 두기에 가수님의 목소리는 너무 아까운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말이 안 떠올랐다.
이래서 냅다 말을 지르고 보는 습관을 버려야 하는데.
‘무엇보다도라는 전치사 뒤에 뭐가 와야 그럴듯하지.’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
아.
문득, 채널 테슬라 강도수 사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사람이 펜션까지 찾아와서 나를 설득할 때 뭐라고 했더라.
그래.
그거였지.
나는 눈을 한번 깜빡이고는 입을 열었다.
“팬들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팬이었다.
그렇게 말을 마치고는 어색해진 분위기에 모두가 머뭇거리는 와중이었다.
강유미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철아, 너라면 어떻게 할래?”
“뭘 물어.”
김이철이 눈가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기회 있을 때 잡아야지. 받은 것도 있잖아. 고맙다면서. 그럼 이런 부탁 한 번쯤은 들어 줘도 되는 거 아니야? 그게 사람 도리지.”
“그렇지?”
그녀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기를 잠시.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이철이 말대로 제가 너무 오래 쉬기는 했어요. 어쩌면 외면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이제 저도 더 나은 사람이 돼야죠. 잘 부탁드릴게요.”
성공이었다.
이 사람은 최소한의 도리를 아는군.
그런데 문득 고희범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히죽 웃는 얼굴.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콘텐츠 하나 공짜로 만들어 냈구나.’
은근 자주 느끼는 건데, 희범이가 콘텐츠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다.
그래.
이번에는 네가 한 건 했다.
* * *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방송을 진행할 방법이 있는가.
이것을 묻는다면.
‘당연히 있지.’
있었다.
애초에 이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내 방보다 음향 설비가 좋은 곳이 얼마든지 널렸기 때문.
그래, 예를 들자면 김이철의 방송처럼.
“안녕하세요.”
나는 거기 스튜디오 마이크 앞에 섰을 강유미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형님들, 오늘은 제가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