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637
* * *
그날이 왔다.
“다 컸다, 다 컸어.”
팡, 팡-.
손오공이 턱시도와 넥타이를 챙겨 입은 유원의 등을 두드렸다.
그런 모습을 보며, 헤라클레스가 얼굴을 찌푸렸다.
“조심 좀 해라. 옷 구겨진다.”
“쉽게 구겨지는 옷은 아니니 걱정 마라. 내가 직접 만든 것이니.”
헤라클레스의 걱정에 헤파이스토스가 자랑스레 입을 열었다.
유원이 입고 있는 턱시도의 재질은 헤파이스토스가 특별히 신경 써서 만든 것이었다.
그는 장비 외에도 모든 만드는 것에 능했다.
“이걸로 말할 것 같으면 구겨짐이나 찢어짐에도 자가 복구 기능이 있어,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아저씨.”
“응?”
“이거, 좀 작은데요?”
몸에 꽉 끼는 옷의 느낌에 유원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전부터 느꼈지만 이런 식의 정장은 몸을 움직이는 게 영 불편한 데가 있었다.
이래선 칼을 휘두르기도 어렵다.
“이 미친놈아, 그게 어디 전투복인 줄 알아?”
헤파이스토스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쌈질할 일 없으니까 불편하다 느끼지 말고 참아라. 너도 오늘 같은 날은 멋도 좀 내고 그래야지. 신부를 봐서라도.”
제법 어른 같은 말이었다.
하긴, 헤파이스토스 나이가 몇인데 이런 자리를 한두 번 나가 봤겠는가.
그도 오늘만큼은 평소 입던 작업복 대신, 멋들어진 양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신부를 봐서라도, 라…….’
유원은 어딘가 어색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이런 옷을 챙겨 입은 게 언제였던가?
생각해 보면 판도라도 마찬가지였다.
“잘해라, 인마.”
팍-.
헤파이스토스가 유원의 등을 두드렸다.
“그리고 좀 행복해라. 넌 그럴 자격 있다. 차고 넘쳐. 내가 인정하마.”
오늘 처음 듣는 덕담이었다.
그의 말에 유원의 입가에서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꼭 아빠처럼 말씀하시네요.”
“내가 그래도 너보단 어른이다. 이 애늙은아.”
“장가는 못 가셨잖습니까?”
“이게 진짜!”
헤파이스토스가 금방이라도 인벤토리에서 망치를 꺼내 들 것 같은 시늉을 하자, 유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그들이 웃고 떠들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가 보내신 거다.”
하늘을 나는 천마가 이끄는 마차 하나에 선물을 가득 실어 온 하르간.
그가 들고 온 선물에 유원은 물론, 탑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부인 헤파이스토스마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게 다 뭐냐?”
“미친…….”
포인트에 욕심이 없는 손오공마저 감탄할 정도로 많은 선물.
주먹만 한 크기의 보석에 수많은 액세서리, 금으로 만든 장비, 플레이어를 만독불침으로 만들어 준다는 영약으로 만든 화환 등.
하르간이 들고 온 선물 마차에 어이가 없어진 유원이 물었다.
“이게 다 뭐냐?”
“아까 말했잖아? 아버지께서 보내신 거라고.”
“제우스가?”
의외였다.
한 눈에 봐도 저 마차에 실린 선물들은 유원의 것보다는 판도라의 것처럼 보이는 게 많았다.
실려 있는 옷들 중, 드레스만 해도 여성용이 아닌가.
“직접 못 와서 미안하다던데?”
“제우스가?”
이건 정말 의외의 말이었다.
그 깐깐한 제우스가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 오다니.
저 말을 통해 유원은 제우스가 왜 저런 선물을 보내왔는지 알 수 있었다.
‘환영받지 못할 걸 알고 있군.’
제우스와 판도라의 관계는 최악이다.
정확히는 일방적으로 판도라가 제우스를 싫어하는 쪽이었다.
아마 힘들게 와도 환영받기는 어려울 터.
그 대신, 제우스는 막대한 선물을 보내는 쪽으로 축하를 대신한 것이다.
사과의 뜻도 함께 말이다.
“엄청난데. 이 정도면 성 하나쯤은 거뜬히 사겠군.”
“받지 마라. 아버지께서 이런 걸 그냥 주실 리 없다. 한 번 의심해 봐야…….”
감탄하는 헤파이스토스와 제우스가 그럴 리 없다며 의심하는 헤라클레스.
이어, 하르간은 씩 웃으며 자신이 준비한 것들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예식 시작과 동시에 탑 전체에서 폭죽이 터질 거다. 오늘만큼은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 베다, 마왕과 천계 등, 모든 거대 길드가 술과 음식을 공짜로 풀 거고.”
“뭐가 그리 요란해?”
“이 정도로 뭘? 밖에 나가 봐. 너희 앞으로 도착한 선물이 얼마나 되는지. 그거 실어 오는데 쓴 태양마차가 열 대가 넘어. 그리고…….”
이어진 하르간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들어 봤자 머리만 더 아프다.
계산이야 나중에 따로 하면 될 일이다.
그렇게 하르간의 자랑이 이어지고 있을 때, 대기실 밖에서 신호가 들려왔다.
“신랑 준비하세요!”
시간이 됐다.
유원의 몸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 * *
드레스를 입은 판도라의 앞에 손오공이 근두운을 탄 채 엎드려 누워 있었다.
그는 판도라의 옷을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대체 그런 옷은 왜 입은 거야?”
“왜?”
“안 불편해? 불편해 보이는데.”
손오공은 판도라의 옷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옷이 너무 길어 발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고, 곳곳에 치장된 보석들은 반짝이는 것 외에 아무런 쓸모도 없어 보였다.
판도라는 자신의 대기실에서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손오공‘들’을 둘러보았다.
한 명만 있어도 시끄러울 판인데 왜 분신까지 만들어가면서 여기 있는 건지.
그중, 판도라는 가장 가까이 있는 손오공을 보며 물었다.
“너도 분신이야?”
“나?”
“응.”
“아니.”
판도라의 물음에 손오공은 고개를 저었다.
왜냐는 표정의 판도라.
당연하다는 듯, 손오공은 고갯짓으로 유원이 있는 대기실을 가리켰다.
“재는 어차피 친구 많잖아.”
확실히, 유원에 비해 판도라의 대기실은 비교적 휑했다.
애초에 사람 많은 걸 불편해하는 탓이기도 했지만 판도라가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손오공이 여기 있는 건 그래서였다.
물론, 유원의 부탁이 있기도 했고.
“고마워.”
판도라가 배시시 웃었다.
평소 보이지 않던 표정이었다.
유원과 함께 그녀를 본 시간이 꽤 있었지만, 오늘처럼 웃는 건 처음이었다.
자세를 바로 앉은 손오공이 물었다.
“넌 김유원이 그렇게 좋냐?”
“응.”
“왜?”
전부터 궁금했다.
판도라는 왜 이렇게까지 김유원을 좋아하는 건지.
생각해 보면, 자신들이 과거로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판도라와 유원은 조금의 접점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건…….”
말끝을 흐리며 대답을 망설이던 차.
“신부, 준비하세요!”
드디어 그 순간이 찾아왔다.
* * *
거대한 홀 안에 수많은 랭커들이 바글바글 들어섰다.
“탑 최고의 미녀와 최고의 사나이의 혼인이라니. 가슴이 뜨거워지는군.”
몸에 꽉 끼는 양복을 차려입은 토르가 앞자리에서 중얼거렸다.
이랑진군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할 자격이 차고 넘치지. 둘 모두 말이야.”
“그래도 난, 김유원이 조금 더 아까운 것 같기도 해요.”
어딘가 불만 가득한 표정의 아프로디테.
그녀의 중얼거림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르테미스가 퉁명스레 말했다.
“지금 그 말은 네가 짝으로 더 잘 어울린다, 이 말이지?”
“그게 그렇게 되나요?”
“답정너 절대 안 해 줄 거니까 조용히 해라.”
“답정너가 뭐예요?”
“요즘 애들 말 좀 배워, 너도. 그러다 할머니 소리 듣는…….”
“야, 니들.”
퍽-.
누군가 의자 뒤를 발로 걷어찼다.
고개를 뒤로 돌린 아프로디테와 아르테미스의 눈에 들어온 건, 붉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남자였다.
“좀 조용히 해라. 귀가 왱왱 울리잖아.”
마왕 디아블로.
그가 시끄럽다는 듯 귀를 후비며 짜증을 내고 있었다.
“……네.”
“네에…….”
제아무리 올림포스에서 잘 나가는 둘이라 해도 상대는 디아블로였다.
마왕의 수장이자, 지금은 거대 길드 하늘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물.
앞뒤 가리지 않기로 소문난 그에게 잘못 대들었다간 무슨 참사가 벌어질지 몰랐다.
“지금부터 신랑 김유원 군과 신부 판도라 양의 예식을 진행하겠 습니다. 저는 오늘 사회를 맡은, 모두가 잘 아는 티케라고 합니다.”
사회를 맡은 사람은 행운을 상징하는 하이랭커, 티케였다.
개식이 시작되고, 왁자지껄 떠들던 랭커들이 하나둘 입을 다물었다.
“먼저, 오늘의 주인공 신랑 김유원군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신랑이 입장할 때는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티케의 손짓과 함께 문이 열렸다.
“신랑, 입장!”
끼이이-.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유원이 걸어 나왔다.
박수소리와 함께, 긴장으로 잔뜩 굳어진 유원이 입장했다.
저벅-.
‘긴장했네.’
‘긴장했어.’
유원을 아는 사람들이 하나둘 웃기 시작했다.
라그나로크가 벌어질 때도 침착하던 녀석이, 오늘은 전에 본 적 없을 만큼 긴장하고 있었다.
“후우-.”
긴장을 숨과 함께 뱉어 내며 유원은 판도라의 입장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내.
“이어서 신부, 판도라 양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짝짝짝짝-!
이번 박수소리는 유원의 입장 때보다 훨씬 컸다.
반짝이는 주홍색 머리를 예쁘게 내리고, 최고의 미를 추구하는 아프로디테가 직접 화장하여 꾸며 준 판도라의 미모는 유원의 눈이 휘둥그러지게 만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웃었다.
* * *
판도라의 눈에 유원이 보였다.
손오공의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넌 김유원이 그렇게 좋냐?”
“응.”
“왜?”
‘왜냐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오래전의 일을 떠올렸다.
제우스에게 정체 모를 상자를 받고, 그걸 열었을 때부터.
세상의 모든 불행이 자신에게 깃들었다.
“넌 대체 정체가 뭐야?”
“네 옆에 있는 모두가 불행해져.”
“저리 가! 이 저주받은 년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대체 왜 자신이 저런 경멸을 듣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지.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건지.
그런 자신을, 제우스는 무저갱처럼 깊은 어둠 속에 가뒀다.
“나가고 싶어…….”
그 어둠 속에서 늘 생각했다.
이 저주받은 힘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남들처럼 빛을 보고, 달콤한 걸 먹고, 따뜻하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울고, 비명을 질렀다.
팔뚝을 찢고, 입술을 깨물며 매일같이 피를 흘렸다.
그렇게 천 년이 흘렀을 즈음 그녀는 희망을 잃었다.
자신은 결코 행복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네가 판도라냐?”
아테나가 판도라를 찾았다.
“할 일이 있다. 나와.”
그녀는 말했다.
이번 일만 끝나면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거라고.
그것이 구원의 손길처럼 보였다.
한 줄기 빛도 들지 않는 감옥에서 나와,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모든 걸 포기했던 가슴속에 한 줄기 바람이 싹을 내렸다.
또다시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난, 뭘 하면 되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뭐든 해야만 했다.
하지만.
“거기 있어라. 그게 도와주는 것이니까.”
“그냥 있어? 왜?”
“넌 재앙이니까. 밖으로 나와선 안 될.”
구원의 손길이라 생각했던 아테나는, 여전히 수천 년 전 사람들과 똑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불쾌하고 경멸 어린.
저주받은 덩어리를 바라보는 눈빛.
달라진 건 없었다.
제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자신은 걸어 다니는 불행일 뿐이다.
분명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 느린 걸음으로 어디까지 가려고?”
저 녀석은 뭐지?
왜 나를 보고도 괜찮아 하는 거지?
뒤늦게 알았다.
유원은 자신보다도 훨씬 큰 불행들과 싸워 왔었다는 걸.
자신과 싸우는 유원의 눈에는 경멸도, 불쾌함도 없었다.
싸움에서 패한 자신을 유원은 죽이지 않았다.
죽이지 않고, 자신에게 깃들어 있는 저주 같던 힘만 빼앗아 갔다.
그렇게 싸움이 끝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이 오랜 저주가 끝이 났구나…….
그가 휘두른 칼은 자신에게 깃든 저주를 끊어 내고, 그의 손은 자신을 어둠 속에서 꺼내 주었다.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나, 나는 그에게 구원받았다.
또각-.
카펫이 깔린 길을 걸어, 유원과 판도라가 만났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그 어둠 속에서 매일 눈을 뜨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 그렇게 그를 좋아하냐고?
그걸 묻는 모두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나라면, 반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신과 함께 레벨업 후일담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