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usband Hates Me, But He Lost His Memories RAW novel - Chapter 136
외전 7화
여하튼, 우리는 일단 별장으로 들어가 잠시 쉬기로 했다. 별장은 현관과 이어지는 복도를 통과해 정면으로 쭉 가면 바로 거실이 나오는 구조였는데, 자연 친화적이며 독특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다. 루미에도 신이 나서 깡총깡총 뛰며 실내를 구경했다.
“요정의 집에 온 거 같아!”
“정말로 요정이 살 수도 있어.”
“거짓말……. 세상에 요정은 없어.”
“…….”
가끔 보면 동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살짝 헛웃음을 섞어 말했다.
“그렇지만 정령도 있는데?”
“정령이랑 요정은 달라.”
흥 코웃음 친 루미에가 종종걸음으로 앞서나갔다. 하나로 높게 묶은 아이의 백은색 머리카락이 말총처럼 살랑살랑 흔들렸다. 나는 테오도르와 슬쩍 눈을 마주치며 픽 웃고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거실에 다다를 때쯤, 루미에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우와……!”
왜 그러나 싶어 얼른 거실로 들어가 보자, 어마어마한 선물더미가 시야로 들어왔다. 약 스무 개 정도의 상자가 로우 테이블 위에 한가득 쌓여 있었다.
“엄마, 요정이 진짜로 있나 봐요……!”
그러나 선물을 주고 간 것은 요정이 아니라 델라크루아 공작 부부였다. 테이블 위에는 두 사람의 편지도 함께 놓여 있었다. 아직 글자를 읽는 게 서투른 루미에를 대신해, 테오도르가 그 편지들을 읽어 주었다.
“사랑스러운 루미에, 그리고 친애하는 릴리와 테오도르…….”
편지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랬다. 도르나크에 온 것을 환영한다, 원래는 직접 마중할 생각이었는데 일이 바빠 어려울 것 같아서 편지로 대신한다, 선물은 부담 갖지 말고 받아달라, 조만간 시간을 내서 별장으로 찾아가겠다.
그밖에도, 루미에를 귀여워하는 내용이 편지의 절반이었다.
“……추신. 내일 밤에는 비가 올지도 모르니 꼭 오늘 밤 바비큐 파티를 하도록. 루미에를 위해 불꽃놀이 키트도 준비해 두었음.”
편지를 다 읽은 테오도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늘 그렇듯, 그는 젠과 쉘베리가 다소 극성스러울 정도로 루미에를 예뻐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내 딸인데 왜 저들이 자기들 딸인 양 예뻐하고 난리인가.’라는 것이 요지였다.
“불꽃놀이……! 재밌겠다!”
벌써 선물을 풀어보기 시작한 루미에가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막 풀어낸 선물상자에는 루미에가 좋아하는 캐러멜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 신이 난 루미에가 그걸 냉큼 집어먹기 전에 나는 황급히 아이를 말렸다. 곧 점심을 먹어야 할 때였다.
“초콜릿은 점심 식사 후에 먹자. 착하지.”
“히잉…….”
루미에는 불만스러운 기색이었으나 그래도 말은 잘 들었다.
선물을 전부 풀어본 후, 우리는 별장에서 간단히 점심 식사를 했다.
그러고서 밖으로 나와 해변으로 향했다. 루미에는 모래사장을 만나자마자 신발을 냅다 벗더니 말릴 틈도 없이 달려나갔다. 그야말로 쏜살같은 속도다.
“우와! 바다~!”
루미에는 폴짝폴짝 뛰며 파도와 술래잡기를 했다. 테오도르와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아이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저러다 바다에 빠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루미에, 파도에 너무 가까이 가지는 마.”
“응―!!”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다시 술래잡기에 몰두하는 루미에를 보자니 저절로 웃음이 픽 나왔다.
계속 파도를 약 올리던 루미에는 결국 쫄딱 젖고 말았다. 루미에의 키보다 높은 파도가 한차례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 순간 루미에를 황급히 감싸 안은 테오도르도 마찬가지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루미에보다는 덜 젖었지만.
“앗, 게다!!”
대충 물기를 털어낸 루미에가 이번에는 열심히 게를 잡기 시작했다. 먹을 데도 없어 보이는 작은 게들을 하나씩 잡아 망태기에 넣는다. 그런 루미에를 샬롯이 도와주고 있었다. 둘 다 몹시 진지했다.
“아가씨, 우리 불가사리도 잡을까요? 불가사리도 먹을 수 있어요.”
“오, 진짜?”
“네. 불가사리를 요리하는 식당에 가져가면…… 아니지, 그 식당에서 요리사를 데려오면 되겠네요!”
불가사리 요리 같은 거…… 나는 먹고 싶지 않은데. 그렇지만 샬롯과 루미에가 즐겁다면야…….
해변에서 실컷 놀고 별장으로 돌아와 우리는 바비큐 파티를 했다. 루미에가 자꾸 고기만 먹으려 해서 억지로라도 채소를 먹여야 했지만, 어찌 됐든 즐거웠다.
루미에와 샬롯이 잡은 게와 불가사리는 굽지 않았다……. 대신 이 근방의 요리사에게 손질과 조리를 부탁해 두었다. 내일 점심쯤 게와 불가사리 요리를 먹게 될 것이다. 과연 무슨 맛일지, 조금 두렵다.
“다 썼니?”
“네!”
잠들기 전, 루미에는 젠과 쉘베리에게 보낼 답신을 썼다. 그리고 수도의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느라 함께 여행 오지 못한 마가렛에게도 편지를 썼다.
“얼른 마가렛 언니 보고 싶다.”
루미에는 마가렛을 잘 따랐고 마가렛도 루미에를 친동생처럼 아껴 주었다. 둘이 친자매처럼 잘 지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자, 이제 자야지? 얼른 자고, 내일 또 놀자.”
“응, 좋아!”
폴짝 뛴 루미에가 내 품에 안겨들었다. 나는 아이를 안고서 테오도르와 함께 침실로 향했다.
침실에 도착해 루미에를 잠옷으로 갈아입힌 후 침대에 눕게 했다. 테오도르와 나는 루미에의 양옆을 차지하고 누웠다.
“엄마, 근데 나 그거 언제 줄 거예요? 좋은 꿈 꾸는 부적.”
“응? 아…….”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은 ‘그걸’ 주겠다고 루미에를 꼬셔 데려온 거였다. 루미에는 바다가 아니라 왕국의 수도에 가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도에 가는 것은 여러모로 곤란했는데, 첫째로, 아카데미 시험 기간이라 우리가 놀러 가면 마가렛의 공부에 큰 방해가 될 수 있어서였다.
둘째로, 지치지도 않고 꾸준히 우리와 사돈을 맺고 싶어 하는 라델 왕 때문에 피곤해서였다.
그는 자신의 셋째 아들인 미카엘 왕자를 루미에와 약혼시키고 싶어 했는데, 왕자가 발렌티노와 아렌델의 데릴사위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파격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왕족을 데릴사위 삼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므로 우리는 벌써 일 년 넘게 거절하고 있었다. 심지어 미카엘 왕자는 아직 세 살배기다. 우리 루미에는 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고. 적어도 아이들이 데뷔탕트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려도 늦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두 번째 이유는 그렇고, 세 번째 이유는, 올해 여름엔 꼭 도르나크에 놀러 오기로 델라크루아 공작 부부와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젠도 쉘베리도 묘하게 실망시키면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상처 주면 안 되는 강아지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 줄게. 잠깐 기다려.”
“응, 루미에 졸리니까 얼른 줘.”
몸을 일으킨 나는 자리에서 벗어나 짐을 놓아둔 침실 한편으로 다가갔다.
나무 행거에 걸어둔 작은 가방에서 조그만 벨벳 주머니를 꺼내 손에 쥐었다. 그걸 가지고 침대로 돌아오니 루미에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테오도르와 눈을 마주치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루미에의 옆에 누워 아이의 작은 손에 주머니를 쥐여 주었다.
“움……. 엄마, 이게 그거예요?”
“응. 행운의 부적.”
“헤헤, 진짜로 루미에 주는 거예요?”
“그럼.”
“고마워, 엄마…….”
주머니를 꼬옥 쥔 루미에가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이의 어깨를 살포시 토닥이던 테오도르가 동작을 멈추며 나를 응시해 왔다. 나는 그를 마주 보며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결국 루미에의 것이 됐군요, 형님의 동전은.”
“루미에가 전부터 갖고 싶어 했으니까요.”
작은 벨벳 주머니에 든 것은 다름 아닌 카미유의 동전이었다.
이 동전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떤 신비한 힘을 지닌 것인지 여전히 잘 모른다. 그렇지만 언젠가 나를 대신해 루미에가 알아내게 될지도 모르지.
“이 동전을 볼 때면 운명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올라요. 모든 게 필연적으로 이어져 있지는 않은가 하고 생각하게 되죠. 정말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말에 테오도르가 설핏 미소를 지었다. 나를 보는 그의 눈동자가 부드럽고 따뜻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제게 중요한 것은 매 순간을 소중히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당신과 루미에와 함께하는 매 순간을요.”
“……그렇죠, 이렇게 생생히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끔은 기적처럼 느껴지니까.”
삶이 내게 남긴 상흔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반추해 현재를 더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아픔을 모른다면 기쁨도 알 수 없으니.
“난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기쁘게 살아갈 거예요. 당신과, 그리고 루미에와 함께.”
결국 해는 떠오른다. 영원히 해가 떠오르지 않는 하루 같은 건 없었다. 어둠은 걷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이제는 믿을 수 있다. 살아 있는 한,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가능성은 무한하고, 기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으므로.
“내일은…….”
잠시 멈칫한 나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내일은, 그다음 날은, 또 그다음 날은…….
이어지는 수많은 날을, 우리에게 주어진 매 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기쁘게 생각하면서.
“내일도 사랑할게요, 테오도르.”
“……네, 저도.”
사랑으로 충만한 이 마음에 더없이 감사한다. 증오는 나를 까맣게 태워 잿더미 속에서 일어나게 했지만, 모든 복수가 끝난 후 나를 살아가게 하는 건 사랑이었으므로.
그러니 평범한 궤도에 들어선 나의 일상이, 언제까지고 이 사랑과 함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