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usband Hates Me, But He Lost His Memories RAW novel - Chapter 135
외전 6화
잠시 머뭇거리던 테오도르가 입을 열었다.
“제 성격은 닮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왜요?”
헛웃음을 흘리며 묻자니, 잠시 멈칫한 테오도르가 조금 민망해하는 기색으로 대답했다.
“그야, 저는 너무 예민한 편이고…….”
“다른 말로 섬세하다고도 하죠.”
“하나하나 다 너무 신경 쓰며 살고―.”
“세세한 부분까지 잘 챙긴다는 거겠죠?”
“……아무튼, 자신도 피곤하고 다른 사람도 피곤하게 하는 성격이지요.”
자기 객관화가 잘되어 있는 테오도르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테오도르는 나를 따라서 너털웃음을 흘렸다. 뭐가 됐든 내가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은가 보다.
“얼른 만나 보고 싶어요, 우리 아이.”
“네, 저도 그렇습니다.”
뒤에서 뻗어온 테오도르의 손을 꼭 붙잡았다. 언제까지고 함께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럽지만 가슴이 뭉클해졌다.
달콤한 꿈 같아서 낯설었던 행복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언젠가 부서질 백일몽은 아닐까 하고 두려워할 필요도, 더는 없었다.
나는 비로소 행복해졌으므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우리, 꼭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요.”
“당연히 그럴 겁니다.”
설핏 미소를 짓는 내 뺨에 테오도르가 지그시 입을 맞추었다.
* * *
어린아이란 참으로 놀라운 존재다.
어린아이를 통해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니까.
“루미에, 이리 오렴. 이제 곧 출발해야 해.”
내 부름에 정원에서 새를 구경하던 루미에가 이쪽을 돌아본다. 언제 봐도 나를 꼭 닮은 얼굴에 백은색 머리칼이다. 왼쪽 눈도 나와 같은 연둣빛이지만, 오른쪽 눈만은 테오도르의 눈을 고대로 옮겨온 듯한 파란색이다. 그리고 성격은…….
“아기 새가 너무 귀여워요, 엄마. 데려가서 키우면 안 되겠죠……?”
테오도르의 말에 따르면 카미유 발렌티노를 닮았다고 한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이따금 작은 불빛을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었다. 그러나 루미에에게는 작은 불빛일 때의 기억이 없다. 오히려 그편이 다행인 것 같지만. 혹시 나중에 기억하게 되더라도, 어릴 때는 그저 천진난만하게 자라는 편이 좋지 않으려나 싶어서.
“바닷가에 가면 더 많은 새를 볼 수 있을 거야. 아주 커다란 새도 있지.”
“알바트로스요? 얼른 보고 싶어요!”
“그래, 그러니까 어서 마차에 타야지?”
“응!”
쪼르르 달려온 루미에를 테오도르가 번쩍 안아 올렸다. 그러고는 빙그르르 돌며 놀이 기구를 태워주자, 루미에가 즐거워하며 까르르 웃었다. 아이를 보는 테오도르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 그가 루미에를 꼭 안고선 아이의 품에 뽀뽀를 남발했다. 루미에는 간지러워하며 버둥거렸다.
“뽀뽀는 하루에 한 번만 해요!”
“뭐? 그런 게 어딨어.”
루미에의 주장에 테오도르가 황당해했다. 루미에는 양 볼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고선 테오도르를 쏘아보더니 말을 이었다.
“루미에는 이제 여섯 살이니까 숙녀예요. 뽀뽀는 그만―이라고 하고 싶지만, 아빠가 울까 봐 하루에 한 번만.”
“세 번은 안 될까?”
“두 번.”
“좋아, 두 번.”
진지하게 합의를 보는 테오도르와 루미에를 보며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가만 보면 둘이 아주 잘 논다니까.
“앗, 그런데 엄마는 마음껏 뽀뽀해도 돼요!”
마차에 막 오른 루미에가 방금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곤 멈칫한 테오도르가 이내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나한테 오려는 아이를 꼭 붙잡고선 짐짓 슬퍼하며 물었다.
“따님, 아빠는 왜 마음껏 하면 안 돼?”
“아빠니까.”
“아빠니까 왜?”
“응, 왜냐면 루미에는 엄마가 더 좋아.”
테오도르의 품에서 쏙 빠져나온 루미에가 나를 향해 두 팔을 쭉 뻗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안아달라는 뜻이었다. 나는 분부대로 따님을 안아드렸다. 루미에는 내 옷자락에 뺨을 비비적거리며 헤헤 웃었다.
“엄마 냄새.”
“엄마 오늘 향수 뿌렸는데.”
“꽃향기가 나요.”
“무슨 꽃 같아?”
“음……. 은방울꽃!”
“정답입니다~.”
뺨에 쪽 뽀뽀해 주자 루미에가 까르르 웃으며 좋아했다. 맞은편 자리의 테오도르가 몹시 부러운 표정으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 그 향수 좋아. 은방울꽃 장식 있는 거.”
“우리 딸 데뷔탕트 때 엄마가 선물해 줄게.”
“엄마랑 같은 향수! 좋아요!”
앉은 자리에서 폴짝거린 루미에가 내 목을 꼭 껴안았다. 토끼 같은 딸이라는 말을 내가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루미에를 보면 그런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정말로 토끼 같은 딸이다.
“루미에, 우리 지금 어디 가는지 알아?”
“응. 바닷가.”
“어느 바닷가?”
“도르나크에 있는 바닷가요. 젠 삼촌이 루미에가 오면 선물을 준댔어요.”
이제는 델라크루아 공작이 된 젠은 루미에에게 삼촌이라고 불리길 자처했는데, 루미에가 갓난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어마어마한 선물 공세를 이어오고 있었다.
젠의 부인인 쉘베리가 루미에를 예뻐해서 다행이지, 아니었더라면 여러모로 불편한 상황이 펼쳐졌을 거다. 진짜 조카도 아닌데 남의 딸에게 숨 쉬듯 돈을 쓰는 남편은 아무래도 좀 그렇지.
“쉘베리 이모도 얼른 보고 싶다.”
“델라크루아 공작 부인이라고 해야지.”
“그치만 쉘베리 이모가 이모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
이쯤 되면 젠만의 문제가 아니다. 쉘베리도 루미에를 지나치게 좋아했다. 우리 딸에게 사람을 홀리는 마성이라도 있나.
“쉘베리 이모가, 나중에 이모한테 아들이 생기면 그 애랑 루미에랑 결혼해 달래요.”
“그건 안 돼.”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테오도르가 딱 잘라 불허했다. 그의 눈빛이 살짝 흉흉해져 있었다.
“쉘베리 델라크루아가 또 허튼수작을…….”
“테오, 애 앞에서 말조심 좀 해요.”
험악하게 중얼거리던 테오도르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이내 표정을 산뜻하게 고치고는 루미에를 향해 상냥한 투로 묻는다.
“우리 딸, 나중에 꿈이 뭐랬지?”
“발렌티노 공작.”
“그래. 그럼 델라크루아 가문의 아들과 결혼하면 안 되고, 데릴사위를 들여야 해.”
“데릴사위가 뭐예요?”
“그건 우리 딸이 좀 더 크면 알려줄게. 아무튼 델라크루아는 안 돼.”
“히잉…….”
루미에가 입을 삐죽였다. 테오도르의 말을 완전히 납득하지 못한 눈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섯 살짜리에게 설명하기에는 복잡한 문제니까. 귀족의 작위 세습과 결혼이란 것은.
하지만 이 정도는 루미에도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지.
“루미에, 아빠는 사실 루미에가 다른 데 멀리 가는 게 싫은 거야.”
“루미에가 다른 데 멀리 가요?”
“젠 삼촌의 아들과 결혼하면 그럴 수도 있어. 발렌티노 공작은 루미에의 동생이 되고.”
“그건 싫어요. 루미에는 엄마 아빠랑 계속 살래.”
울상을 지은 루미에가 나를 꼭 껴안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테오도르를 향해 쪼르르 다가갔다. 그러고는 테오도르도 꼭 안아 주었다.
“……!”
테오도르는 감격 어린 표정으로 뭐라 말도 못 하고 있었다. 하여튼 팔불출이라니까…….
데릭의 이동 마법 덕분에 우리 일행은 빠르게 도르나크에 도착했다. 남쪽 해안 도시에서 마차를 타고 20분쯤 이동하자, 최종 목적지인 바닷가 별장이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
창밖을 내다보던 루미에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달리는 마차 밖으로 머리를 내밀면 위험하다고 몇 번이고 주의를 줘도 자꾸만 말을 듣지 않아서, 오는 내내 루미에를 감시하느라 진땀을 쏙 뺐다. 테오도르도, 나도, 한시도 루미에에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잠깐 사이에 무슨 위험천만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엄마! 지붕에 새가 있어요!”
마침내 별장에 다다라 마차에서 내리는데, 루미에가 손으로 지붕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붕 위에는 과연 새 몇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마 갈매기 종류인 것 같았다.
“아빠 갈매기, 엄마 갈매기, 어린이 갈매기.”
루미에가 갈매기 세 마리를 하나씩 가리키며 구분했다. 공교롭게도 딱 세 마리였다. 저 갈매기들이 정말로 가족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설핏 웃으며 이야기했다.
“갈매기 가족도 여행을 왔나 봐.”
“우리도 여행 왔는데.”
“오늘 뭐 하고 놀 거야, 루미에?”
“응, 루미에는 게를 잡을 거야.”
“……?”
게를……?
가만히 서서 눈만 깜박이던 나는 잠시 후 재차 물었다.
“게를 잡아서 뭐 하게?”
“구워 먹을 거야.”
“구워 먹을 거라고? 어떻게?”
묻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섞여 나왔다. 테오도르도 옆에서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루미에는 진지했다.
“세라핌으로 모닥불을 피워서…….”
“……세라핌이 굴욕감을 느낄 거 같은데.”
“아냐……. 걘 루미에 말 잘 들어.”
루미에가 태어난 직후, 세라핌은 루미에를 자신의 차기 계약자로 점찍었다.
칼리고와 프리가, 그리고 솜니아도 루미에를 계약자로 삼고 싶어 했지만, 세라핌이 셋을 받아들여 주지 않는 탓에 어렵게 되었다.
그나마 가능성이 보이는 건 솜니아였다. 세라핌이 칼리고와 프리가에게는 까칠해도, 솜니아와는 곧잘 어울려 주었기 때문이다.
냉기와 어둠은 불과 상극이지만, ‘꿈’은 해당 사항이 없기 때문이려나.
과거에 세라핌이 솜니아를 몹시 경계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둘의 관계는 장족의 발전을 이룬 셈이다.
“루미에가 게를 잡으면 엄마 아빠한테도 줄게요. 맛있게 잘 구워서!”
“그래……. 고마워…….”
“히힛.”
이쯤 되니 루미에가 정말로 야생의 게를 잡아다 구워 올까 봐 두려웠다.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