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163
163 쉴 시간이 어디 있어요? (完)
“엄마, 아빠! 잘 다녀와!”
예나가 김하늘 부부를 향해 손을 크게 흔들었다. 이에 두 사람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우리끼리만 가서 미안.”
“예나는 괜찮아!”
“정말?”
“응! 대신···.”
“대신?”
강바다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예나가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며 그녀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익숙한 제스처에 얼른 무릎을 굽혀 예나와 눈높이를 맞추는 강바다. 그런 그녀의 귓가에 예나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이번에는 꼭 동생 만들어 와야 해! 알겠지?”
“······!?”
히히-
제 할 말을 모두 마쳤다는 듯 예나가 장난기 어린 웃음을 삼키며 뒤로 물러났다. 그를 보며 얼굴이 새빨개지는 강바다.
“예나가 무슨 말 했어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시끄러워욧!”
퍽-
괜한 호기심에 등짝만 얻어맞는 김하늘. 그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예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으나, 그녀는 말할 수 없다는 듯 검지를 입술 위에 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쉬이이이잇-!”
“왜 서운하게 아빠만 안 알려줘?”
“여자들만의 비밀이야!”
“으응?”
“아빠도 파이팅!”
“어어···. 응. 그래. 파이팅!”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예나의 행동을 따라 파이팅을 외치는 김하늘. 그 모습을 보며 괜히 얼굴이 더 붉어지는 강바다였다.
“태리 너···.”
“제가 가르친 거 아니라니까요!”
이후 이태리와 강바다의 추격전이 잠시 발생하긴 했으나, 여기저기 정신이 팔려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김하늘이었다.
“유모님, 그럼 애들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특히 봄이 녀석은 요즘에 간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살이 쪘으니, 식단 관리 좀 시켜주세요.”
“아무렴요. 저한테 맡기시고 편히 다녀오십시오.”
“믿고 있겠습니다.”
호호-
김미정이 입을 가리며 기분 좋게 웃었다. 강바다에게 무기한 휴가를 받았던 그녀가 결혼식을 기점으로 복귀했던 것.
물론 신혼집에서 같이 살 예정은 아니었으나, 두 사람이 집을 비운 동안 예나와 고양이들을 맡아줄 계획이었다.
처음 청첩장을 받았을 때는 참가할 자격이 없다며 극구 사양하던 그녀였으나, 강바다와 김하늘의 오랜 설득 끝에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아이고, 그러지 마시라니까요.”
다시금 그때가 떠오른 김미정이 대뜸 허리를 굽혔다. 그녀의 눈시울은 여느 때처럼 붉게 물들어있었다.
이에 당황한 김하늘이 얼른 그녀를 붙잡으려던 찰나. 문득 김미정이 번쩍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파이팅입니다!”
“···네?”
“파이팅!”
“파, 파이팅?”
반복되는 구호에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며 그녀의 말과 행동을 따라 하는 김하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두의 입가에 웃음꽃이 피었다.
이후 김하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미를 파악하려던 순간, 주변 사람들이 한마음처럼 움직이며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자자, 비행기 시간 얼마 안 남았네요. 더 늦기 전에 얼른 수속 밟고 탑승하셔야죠! 부부만의 시간을 잔뜩 즐기다 오세요!”
“저희 전용기라서 굳이···.”
“사장님, 말할 힘도 아끼세요!”
“그게 무슨···. 야!”
그렇게 결혼식을 마친 김하늘과 강바다는 떠밀리듯 대한 그룹 전용 비행기에 올랐다.
그룹 내에서도 직계들. 그중에서도 정말 중요한 일에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전용기답게 내부는 깔끔하고 널찍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B787-10 비지니스 제트를 담당하는 기장 김주헌입니다. 편안한 여행이 되실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
승무원들과 함께 인사를 깍듯한 인사를 올리는 기장. 이후 그는 직접 두 사람의 일정과 기내의 편의 사항을 설명해줬다.
“이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내부 규율에 따라 엄중한 비밀로 여겨지므로, 안심하시고 집처럼 편안하게 행동하셔도 됩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또한 저를 포함한 기내 승무원들은 여기 있는 버튼을 누르시거나, 위급한 상황이 아닌 한 절대 내부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방음과 샤워 시설도 완비되어 있으니···.”
이후로도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으나, 결국 요점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 안에서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다는 뜻.
대강 의미를 파악한 김하늘과 강바다가 얼굴을 붉히며 손을 내젓자, 기장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뒤로 물러났다.
“그럼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우우웅-
이후 비행기는 힘찬 엔진음과 함께 이륙을 시작했다. 이후 궤도에 오르자 점차 고요해지는 방 안, 이를 증명하듯 상단에 있던 안전벨트 등이 꺼졌다.
“······.”
“······.”
이후 잠시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는 두 사람. 결혼식부터 시작해서 비행기에 탑승하기까지, 워낙 정신없는 하루였기에.
두 사람 모두 이 적막이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허나 그것도 아주 잠깐이었을 뿐. 김하늘이 선뜻 입을 열었다.
“바다 씨 오늘 정말 여러모로 고생 많으셨어요. 하와이까지는 대략 8시간 정도 소요된다니까. 일단 좀 편히 쉬고···.”
달칵-!
김하늘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강바다가 안전벨트를 풀었다. 이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녀를 바라봤더니.
“쉴 시간이 어디 있어요?”
“네? 그게 무슨···.”
“아까 기장님께서 하신 말씀 전부 들으셨죠?”
“그야 듣긴 들었는···. 읍!?”
강바다가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눈을 번뜩이며 김하늘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가 미처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바, 바다 씨! 잠깐···!”
“당신만 참은 게 아니라고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읍읍!”
자신의 입술을 이용해 김하늘의 입을 완전히 틀어막으며, 본격적인 신혼여행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강바다였다.
.
.
.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무사히 신혼여행을 마친 김하늘 부부는 캐리어를 밀며 게이트를 통과했다. 그들을 발견한 예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외쳤다.
“유모! 아빠가 미이라가 됐어!”
“호호, 무척 기쁜 일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어쩌면 예나 아가씨의 소원이 벌써 이루어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오오-! 정말!?”
“그래도 지금은 모르는 척해주는 게 예의랍니다?”
“헛! 쉬이잇!”
김미정의 능숙한 스킬 덕분인지 순식간에 친해진 두 사람. 그들은 조용히 웃음을 삼키며 김하늘과 강바다를 맞이했다.
그제야 두 사람을 발견한 김하늘 부부가 캐리어를 밀며 다가왔다. 강바다는 세상 환한 미소를 지으며 예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예나야! 잘 지냈어?”
“응! 엄마도 잘 지냈구나?”
“응?”
“피부가 탱탱해졌어!”
오오-
예나가 강바다의 볼을 콕콕 찔러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손가락이 제멋대로 튕겨 나왔기 때문. 그제야 강바다가 얼굴을 붉히며 손을 내저었다.
“그, 그런 거 아니야!”
“예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눈빛으로 말했잖니.”
으히히-
예나는 대답하는 대신 눈꼬리를 초승달처럼 휘며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에 강바다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유모, 마중 나오지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그럴 수야 있나요? 고생 많으셨는데 집까지 편안하게 모셔야죠. 혹여 운전하시다가 사고라도 나시면 큰일이니까요.”
“놀다 온 건데 무슨 그런 걱정을···.”
스윽-
김미정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를 따라 하던 말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강바다의 시선. 그녀의 시야에 핼쑥해진 김하늘의 얼굴이 보였다.
“으어어···.”
연신 알 수 없는 신음을 흘리며 먼 산만 바라보는 김하늘. 멍하니 벌어진 입가에서는 침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출국 전과 비교해보자면, 가족이라도 쉬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달라진 그 좀비 같은 모습에. 강바다는 그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운전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맡겨만 두세요.”
호호-
김미정은 복잡한 의미를 담은 웃음을 삼키며 두 사람의 짐을 넘겨받았고, 이후 조용히 공항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 * *
어느새 추운 겨울이 지나고 꽃이 핀다. 새초롬한 봄이 가볍게 들려간 자리에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고, 이후로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이 다녀간다.
그렇게 몇 차례나 반복하다 보면, 어리게만 느껴졌던 아이들이 어느샌가 불쑥 자라 부모님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엄마! 저 다녀올게요!”
“지갑이랑 휴대폰은 챙겼어?”
“아, 맞다!”
콩-!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가볍게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현관에서 몸을 돌렸다. 이후 재빠르게 신발을 내던지며 제 방으로 돌아가는 그녀.
“예나야, 그러다 다쳐!”
“전 괜찮아요-!!”
“우주가 보고 따라 한다니까!?”
“아참. 우리 귀염둥이랑도 인사를 안 했네!”
끼이익-!
휴대폰을 챙겨 다시금 뛰어나가려던 예나는 얼른 발걸음을 멈추고 어디론가 뛰어갔다.
닫혀있는 문을 거칠게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방 안에 있던 김하늘과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고개를 돌렸다.
“우주야!”
예나는 남자아이의 볼을 붙잡고는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러자 ‘우주’라고 불린 남자아이가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며 어지러워했다.
“누나으아으···.”
“요 귀염둥이! 누나 학교 다녀올게!?”
“우응. 다녀와.”
“뽀뽀해줘야지!”
“싫어.”
“······!?”
우주의 단호한 거절에 충격받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떡 벌리는 예나.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년의 어깨를 붙잡고 열변을 토했다.
“우주야! 네가 어떻게 누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너 갓난아기 때 언니가 기저귀도 갈아주고, 장난감도 사다 줬는데!”
“···그런 적 없거든?”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김하늘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우주가 태어날 당시에는 예나도 이제 막 초등학교를 들어갈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 기저귀를 갈아주기는커녕 근처에도 잘 다가오지 못했다.
“아빠!”
“아으, 귀 아파라. 하여간 나이 먹으면서 목청만 같이 커져 가지고. 그보다 얼른 안 나가면 또 지각한다?”
“우주한테 뽀뽀 받기 전까지는 못 나가!”
“···에휴. 누굴 닮아서 저렇게 똥고집인지.”
김하늘은 자그맣게 한숨을 내쉬며 우주를 붙잡았다. 이후 거울처럼 자신을 아주 똑 닮은 소년의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우주야, 누나한테 뽀뽀 한번 해주자.”
“우우웅. 싫어···.”
“있다가 아빠가 아이스크림 사줄게.”
“아이스크림!?”
우주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식단만큼은 엄격한 김미정 밑에서 자란 강바다인지라, 우주 역시 건강한 음식이 아니면 거의 손도 못 댔다.
가끔 디저트 형식으로 맛 좋고 영양도 좋은 간식이 나오기는 했으나, 정말 가끔이었고.
그렇기에 우주에게 ‘아이스크림’이라는 단어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누나, 뽀뽀!”
“···애한테 진짜 좋은 거 가르치시네요. 뭔가 자본주의에 물든 느낌이라 엄청 꺼림칙한데. 이거 정말 받아도 되는 거예요?”
“뭐, 싫으면 말든가.”
“빨리이-!”
김하늘의 짓궂은 미소와 우주의 재촉 속에서 갈등하던 예나는 하는 수없이 우주를 향해 볼을 내밀었다.
쪽-
그러자 우주의 사랑(?)이 가득 담긴 뽀뽀가 이어졌고, 예나는 입에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다시금 몸을 돌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오늘은 일찍 들어오는 거 잊으면 안 돼!”
“에이, 아무리 그래도 내가 엄마 오는 날을 까먹겠어? 걱정하지 말고 딱 기다리고 계셔. 시험만 후딱 치고 올 테니까!”
“어휴, 하여간···.”
주방에서 들려오는 강바다의 외침에 예나 역시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은 그의 친모인 김하영이 치료를 마치고 귀국하는 날이었으니.
“그럼 진짜 갑니다!”
어느새 신발을 신은 예나는 힘찬 발걸음으로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그녀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