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162
162 저 오늘 결혼하는데요?
“이 형은 감동이다. 김하늘.”
“우리를 잊어버리진 않았구나?”
“나는 제수씨가 실존하기는 하나 싶었다.”
대학교 동창이자 나의 진정한 친구들이라고 할 수 있는 세 사람. 진구, 철수, 태식이가 촉촉한 눈가를 닦으며 한 마디씩을 건넸다.
“···계속 쓸데없는 소리나 할 거면 얼른 밥이나 먹고 가라. 안 그래도 회장님들 상대하느라 정신없어 죽겠으니까.”
“어이쿠, 이제 사는 세상이 달라졌지 참.”
“또, 또. 그 소리.”
“그래도 차마 부정은 못 하겠지?”
진구가 입가에 짓궂은 미소를 띠며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 한결같은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 나왔다.
내가 유명해지면서 불편해진 점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인간관계였다.
‘···불편한 연락이 많아졌지.’
몇 년간 새해 인사 한번 없던 온갖 사람들에게 연락이 쇄도했고, 반대로 잘 알고 지내던 사람과 소원해지기도 했다.
인간의 시기와 질투심. 또 그것을 아득히 넘어서는 욕심이 생각보다 더 추악했기 때문.
‘이놈들이 아니었다면 인간불신에 걸렸을지도.’
허나 이 녀석들은 나의 사회적 위치와는 관계없이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나를 대했다.
물론 가끔 이렇게 농담을 섞어 장난을 쳐오기는 하지만, 절대로 선을 넘는 법이 없었으니. 내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인연이었다.
“진구야.”
“왜. 내가 와이프에게 사랑받는 법이라도···.”
“이자 내고 싶냐?”
“새끼가 돈 가지고 치사하게.”
“대답.”
“죄송합니다. 형님!”
진구가 깎듯이 허리를 숙이며 사과를 건넸다. 그 능청스러운 대처에 나는 물론이고 다른 친구들 역시 웃음이 터졌다.
“으이구, 그러게 본전도 못 건질 거면서 왜 맨날 시비를 거냐? 우리 위대하신 물주님을 조금 더 소중하게 대해주라고.”
“그래, 바로 이렇게 말이야.”
철수와 태식이가 양쪽에서 내 어깨를 털어주거나, 옷에 묻은 먼지를 하나하나 떼어주며 농담을 던져댔다. 이에 나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돈이 좋긴 좋네, 좋아. 너희들한테 이런 대접도 받아보고 말이야. 나가는 길에 봉투라도 하나씩 더 챙겨줘야겠어.”
“그럼 우리야 좋지.”
“덕분에 요즘 가정이 평안하다.”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들. 다만 그들의 표정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내가 문자 그대로 ‘억’ 소리 나는 수입을 벌어들이게 되면서, 가장 먼저 했던 일 중 하나가 바로 주변 사람을 돕는 거였다.
힘겨운 시기를 버티게 해준 가족과 친구들에게 가장 직관적인 선물, 바로 ‘돈’을 쥐여줬던 것.
‘지금 생각해도 정말 훌륭한 선택이었어.’
음음-
나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과거의 자신을 칭찬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친구들의 얼굴에서 어두운 빛이 완전히 사라졌으니.
– 도로 가져가라.
– 너 내 얼굴 안 보고 살 거냐?
– 우리가 그 정도로 비굴하진 않다.
처음에는 한사코 거절하던 친구들이었으나. 긴 설득(통장 잔액을 보여준) 끝에 나의 경제적인 협력에 순응했던 것.
그것도 ‘빌린다’라는 형태로 언젠가는 꼭 갚겠다고 말하는 녀석들이었으나, 나는 그들에게 돈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물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어지간한 건 전부 돈으로 살 수 있다. 이를테면 가정의 평화라든지.
일례로 진구는 허구한 날 와이프에게 나가서 일 좀 하라며 등짝을 얻어맞고 살았는데, 이제는 집에 있는 게 두려워졌단다.
– ···마누라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해.
어딘가 핼쑥해진 표정으로 자신의 고충을 토로하던 진구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옆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철수 역시, 이번에 둘째를 가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결혼을 재촉하던 여자친구를 두고 고민하던 태식이는 어느덧 상견례를 마치고, 나를 따라 곧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구두라도 핥아줄까!?”
혀를 날름거리며 넙죽 바닥에 엎드리려는 진구를 가볍게 걷어찼다. 그러자 실실거리며 나에게서 거리를 두는 녀석.
“···하여간 내가 니들 때문에 제 명에 못 산다.”
“유언장에는 꼭 내 이름 적어줘라.”
“하다 못 해 내 딸이라도.”
“나도!”
“그만 질척이고 좀 꺼져!”
시끄러운 녀석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몽땅 내쫓았다. 정말 저런 놈들에게 축의금을 맡겨도 되는 건지 잠시 걱정했으나.
녀석들은 내 앞에서 보였던 행동들이 어색할 정도로, 하객들에게 정중하고 싹싹한 인사를 건네며 착실히 일했다.
놈들이 우리 부모님까지 잘 챙겨준 덕분에, 나 역시 안심하고 식장을 돌아다니며 하객들에게 인사를 돌릴 수 있었다.
“대표님 오셨어요?”
“···부르니까 오긴 왔는데. 솔직히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저기 있는 사람들 다 유명인뿐이잖아!”
“에이, 대표님이 안 오시면 누가 와요. 저한테는 두 번째 아버지 같은 분이신데. 끝날 때까지 꼭 남아 계셔야 합니다. 피로연에서 안 보이시면 저 차기작 계약 안 해요.”
“하이고, 어련하시겠습니까. 작가님. 아, 그러고 보니 니시오 씨도 부인이랑 같이 오신다던데. 이제 곧 도착하신다고···. 아, 저기 오시네!”
최진철이 손을 흔들자, 우리를 발견한 니시오 일행이 활짝 웃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와 악수를 하며 인사를 건넸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작가님이 비즈니스석까지 끊어주셨는데 안 올 수가 있어야죠. 무엇보다 저희 집사람도 작가님의 광팬이거든요. 회사를 퇴사하더라도 어떻게든 꼭 가야 한다고 아주 난리를···.”
“꺄아아-! 안녕하세요. 작가님! 처음 뵙겠습니다. 시중에 나온 작품 전부 읽어봤어요! 실례지만 혹시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하하하-
그렇게 최진철 대표를 비롯한 출판사 쪽 사람들과도 하나둘 인사를 나눴다.
단순 웹소설뿐만 아니라, 해외 각국으로 진출한 나의 단편 소설들 덕분에 관련 출판사 대표들과 인사만 나눠도 한세월이었다.
그들은 이런 자리가 비교적 익숙한지, 짧은 인사 끝에 적당히 눈치껏 빠져주었고. 이후로는 자기들끼리 명함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야, 우리 하늘이 다 컸네!”
“그러게. 설마 너한테 청첩장을 받을 줄이야.”
“강산이한테 혼수로 게임 트럭 선물 받았다면서. 신혼여행 끝나면 이 형님들하고 같이 게임 여행 한번 다녀와야지?”
이후로는 공대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다소 격한 축하를 해주었다. 또한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이가 있었으니.
“흰색 드레스에 풀메이크업까지 빵빵하게 하고 온다더니 생각보다 얌전하게 입고 왔네? 역시 외모로는 우리 와이프를 이길 자신이 없으셨나?”
“뭐래. 병신이.”
백장미가 눈살을 와락 찌푸렸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내 멱살을 잡을 기세로 으르렁거리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휴, 그래. 어른인 내가 참아야지.”
“얼씨구. 결혼하더니 사람이 바뀌었네.”
“···자꾸 긁으면 진짜 확 엎어버린다?”
“미안.”
백장미는 한다면 하는 미친년이기 때문에, 나는 재빠르게 한 손을 들어 올리며 사과를 건넸다.
그러자 왠지 아쉽다는 눈빛으로 입술을 삐죽이는 백장미. 허나 그것도 잠시뿐이었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여간.”
“바다 씨는 보고 왔어?”
“응. 언니가 드레스 입은 모습을 보니까 진짜 아까워 죽겠더라. 도대체 어떻게 이 결혼식이 성립하는 건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니까?”
“하긴, 내가 좀 손해 보는 장사긴 해.”
“···언니한테 그대로 이를 거야.”
“야, 그건 반칙이지.”
푸하하-
우리의 티키타카를 듣던 공대원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트렸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커다란 식장을 가득 채웠다.
그들이 떠난 이후로도 축하 행렬은 계속됐다. 추리고 추렸음에도 내가 감사를 전해야 할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축하한다. 하늘아.”
“결혼 축하드려요. 작가님!”
“하늘이 형, 결혼 축하해-!!”
보육원 원장님과 아이들을 비롯하여, 시상식과 전시회를 통해 친해진 유명 작가분과 박수정 PD까지 모두 찾아와주셨다.
예약할 때는 너무나도 크게만 느껴졌던 식장이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 찬 모습을 보니 무언가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세월이 머릿속을 쭉 스쳐 지나가며,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촉촉해지는 듯했다.
“표정이 왜 그러냐. 막내야!”
팡팡-!
그때 시원하게 등짝을 두드리는 일격에 솟구치던 감정이 쏙 들어갔다. 나는 고개를 돌려 상대의 얼굴을 마주했다.
강산과 최민서, 그리고 강태양과 강별을 비롯한 일가 가족들이 모두 찾아와 인사를 건넸다.
몸이 아프다던 형수님들께서도 직접 찾아오셔서 축하를 건네주신 덕에 마음이 짠해졌다.
“김하늘.”
“예, 작은 형님.”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저 오늘 결혼하는데요?”
“그래도 동정은 유지···. 커억!”
“막내 도련님. 죄송하지만 제가 몸이 안 좋아서 먼저 들어가 볼게요! 아가씨랑 신혼여행 무사히 잘 다녀오세요!”
천하의 강태양이 뒷목을 잡힌 채로 질질 끌려나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와중에도 눈빛과 손짓, 발짓을 모두 동원하여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그였으나. 나는 가뿐히 시선을 돌려 그를 무시했다.
“끌끌. 국내는 물론 해외 유력인사들까지···. 우리 손주 놈 능력이 좋긴 좋구나. 누가 보면 강회장이 직접 재혼하는 줄 알겠어.”
“어라, 제가 청첩장을 보내드렸던가요?”
“···고얀 놈 같으니라고.”
이후로는 정규섭도 직접 찾아왔다. 그는 내 농담에 혀를 차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었다.
“축의금은요?”
“그것부터 물어보는 게냐?”
“혹여 식사만 하고 가실까 봐요.”
“···이눔아, 배가 터져도 남을 정도로 넣어뒀으니 걱정하지 말 거라. 그 정도면 강용학이도 충분히 만족할 테지.”
“에이, 또 저희한테만 좋은 것처럼 말씀하시네.”
“끌끌. 그것도 그렇지.”
정규섭이 기분 좋게 웃음을 흘렸다. 이번 결혼을 계기로 KS 그룹은 애물단지였던 자동차를 제법 값지게 털어냈다.
대한 그룹 역시 그들의 기술을 고스란히 넘겨받아서 명실상부한 국내 1위 자동차 기업이 되었음은 물론, 차세대 친환경 자동차 기술까지 얻어냈고.
“근데 꼭 고용 승계까지 해야겠느냐?”
“그 이야기는 진즉 끝났잖아요. 노조랑도 제가 잘 이야기 끝냈으니까. 약조대로 회장님께서는 더는 이 일에 관여하지 마십시오.”
“그저 우리 손주 놈이 걱정돼서 노파심에 한 번 꺼내본 말일 뿐이다. 그쪽으로는 오줌도 안 눌 테니 괜한 의심 말아라.”
“정말 믿어도 되겠습니까?”
“그래. 이 ‘정규섭’이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쯔쯧. 얄미운 구석만 닮아가지고는.”
끌끌-
꺼낸 말과는 다르게 정규섭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나 그것도 잠시. 그는 회장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돌변하며, 기어이 한 마디를 더 남기고서야 떠났다.
“네 자리는 비워두마.”
대답은 들은 생각도 없다는 듯 홀연히 사라지는 정규섭.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멋쩍은 마음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인연이 닿았던 사람들과 하나둘 인사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예정된 시간이 다가왔다.
“신랑님, 입장 준비하실 게요!”
“아, 네!”
나는 식장 직원들의 안내와 도움을 받아 흐트러진 옷과 머리를 다시금 정돈했다.
오늘을 위해 미용실 예약을 통째로 비우고 출장을 나온 류연화가 한올 한올 정성스럽게 내 머리카락을 만져주었다.
“준비됐지?”
“···후우.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에이, 답지 않게 왜 그렇게 긴장했어. 신랑이 그렇게 굳어있으면 안 돼. 하늘 씨가 우리 바다 잘 챙겨줘야지. 안 그래?”
“네, 그래야죠.”
“그럼 얼른 다녀와.”
탁탁-
류연화가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가벼운 몸짓이었으나, 왠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유 모를 용기가 샘솟았다.
덕분에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굳은 결심과 함께 앞으로 한 걸음을 크게 내디뎠다.
‘···가자!’
스읍- 후우우-
긴 심호흡 끝에 문이 열렸다. 수많은 조명과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끼면서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당당하게 그들 사이로 걸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