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Don't Propose to Me! RAW novel - chapter 120
그가 내 입술이 입 맞췄다.
“그럼 어디 한번 구경 가 볼까요?”
“물론. 안내하겠습니다.”
* * *
도착한 유진의 방은 딱 그 나이대 아이들이 좋아하게끔 꾸며져 있었다.
벽지에는 우주가 그려졌고, 비행기나 배 모형은 책장 위를 장식했다. 청소년 책, 그 아이들 또래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 마련된 걸 보면 코스탄스가 신경 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닌 듯했다.
책방도 교황령 도서관만큼 으리으리하진 않지만 다 갖춰졌다. 세계 전집부터 시작해 내가 요즘 자주 읽는 요리책도 여러 권 눈에 띄었다.
방 분위기도 아늑했다.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깔린 푹신한 초록색 시트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저 디자인은 내가 고른 거다. 책장 옆에 놓인 화분도 어제 내가 정리했다. 곳곳에 숨은 내 흔적을 발견하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어떻습니까?”
코스탄스는 방을 하나 둘러볼 때마다 바로 내게 물었다.
나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세심히 살피던 그가 내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
노력이 기특해 코스탄스를 꽉 끌어안았다.
“완전 좋아요.”
위에서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났다. 그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와 뒷마당으로 날 데리고 갔다.
코스탄스가 그토록 보여 주고 싶어 했던 정원이었다.
“우와…….”
진달래가 가득했다. 나는 그의 품에서 천천히 내려와 차가운 땅을 맨발로 밟았다. 진달래 가운데는 나무 그네와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직접…… 만든 거예요?”
“당신이 일할 동안.”
코스탄스가 직접 만든 미끄럼틀도 보였다. 타이어를 끌어다 만든 놀이기구는 유진과 아이들이 좋아할 거다.
나는 진달래 꽃밭 한가운데 앉았다. 허리를 눕혀 땅에 등을 기대니 넓고 커다란 푸른색 하늘이 시야에 다 들어왔다.
공기는 상쾌했고 주변은 아무도 없어 고요했다. 저 멀리 들리는 맑은 새소리로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코스탄스도 내 옆자리에 누웠다. 그가 내민 팔에 머리를 올렸다.
“……혼자서 힘들지 않았어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재밌었습니다. 당신이 보일 반응을 상상하면 더욱더.”
이윽고 그의 몸 위로 올라갔다. 코스탄스는 팔을 쭉 뻗어 내 등을 휘감았다.
눈앞에 보이는 붉은 입술에 몇 번이나 짧게 입을 맞췄다. 입술을 맞댈수록 나와 그의 얼굴에 미소가 퍼져갔다.
이곳은 조용해 좋았다. 감시하는 이들도 없다. 무엇을 하든 다 가능했다. 비밀을 만들 수도 있고, 일탈을 저지를 수도 있고.
나는 코스탄스의 얼굴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그의 이마를 가린 머리카락을 만지며 회색 눈동자를 집요하게 보았다.
“……좋네요. 일자리도 구했고, 집도 구했겠다.”
내 입술이 벌어지자 코스탄스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거렸다.
“예.”
“그럼 저와 언제 결혼해 주실 건가요?”
나른한 말투가 나왔다. 내 행동을 보던 그의 눈동자가 똥그랗게 떠졌다.
“네?”
그가 제대로 들었음에도 되물었다.
“결혼이요.”
“다, 다시 한번…….”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요.”
“…….”
“사실 거의 혼인 관계이긴 하지만, 유진과 당신이 공식적으로 형제가 된 거처럼 나도 당신과 공식적으로 부부가 되고 싶어요.”
나는 멍해진 코스탄스의 뺨을 툭 치며 말했다.
“나, 지금 당신한테 청혼하는 거예요.”
그의 입술이 서서히 벌어졌다.
“농, 농담입니까?”
“이런 걸로 농담 안 해요, 코스탄스.”
놀라움에 가득한 그의 표정이 이제는 벅찬 나머지 환해졌다. 내 등을 끌어안은 그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꺄!”
코스탄스는 방향을 바꾸어 날 땅바닥에 내려 두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떨리는 그의 눈동자를 보며 키득거렸다.
“코스탄스는 나랑 결혼할 생각 없었어요?”
내 물음에 그가 당황했다.
“아니요!”
그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항상 나는 먼저 당신한테 청혼…… 그러니까 계속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일이 바빠지고 비비도…….”
급한 마음에 튀어나온 말들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도 답답한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꿈입니까?”
그러다 코스탄스는 변명을 포기하고 내게 되물었다.
저렇게 귀여운 사내라니!
나는 튀어나오는 웃음을 숨기고 그의 뺨을 붙잡았다.
“아뇨. 현실이에요.”
“……깨물어 주세요. 아주 강하게.”
그가 내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입술을 파고들고 안쪽으로 들어온 손가락을 힘주어 물고 코스탄스의 시선을 똑바로 봤다.
자각한 현실에 코스탄스가 미소 지을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그의 눈이 글썽거렸다.
“어…….”
말하려던 찰나 입술이 막혔다. 서로의 향이 얽히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는 숨 쉬듯 내 입술을 삼키며 나를 안았다. 부드러운 향을 맡자 몸도 떨렸다. 큰 손이 나의 다리를 한 번 쓸고 등에 도달해 원피스 단추를 매만졌다.
코스탄스는 내 머리를 눕힌 후, 그 밑에 있는 자신의 팔을 빼냈다. 상기된 두 뺨을 보며 숨을 작게 내쉬었다.
그림자가 내 몸을 덮었다.
“언제…… 결혼할까요? 어느 계절이 좋아요?”
내 물음에 거추장스러운 겉옷을 벗던 코스탄스가 멈칫했다.
“봄이 좋습니다.”
“봄이요? 그럼 내년…….”
“아니, 당장이요. 빠른 시일 내로.”
자신의 겉옷을 밑에 깔던 코스탄스가 그곳에 내 몸을 끌어왔다.
대답하기도 전에 또 입술이 막혔다. 그의 단단한 팔이 나의 몸을 가두었다. 설마 이곳에서 일을 치를까 싶어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으나 그래도 그의 가슴을 밀었다.
“코스탄스.”
“예.”
“여긴, 읍!”
그가 또 키스했다. 말할 겨를을 주지 않았다. 단추가 풀리고 어깨가 시원해졌다. 맨살에 닿는 바람이 차가워 몸이 떨리자 코스탄스가 안아 주었다.
서로의 몸에서 흙냄새가 났다. 나는 앞에 있는 두 뺨을 붙잡고 입맞춤에 열렬히 응했다.
그가 내 몸을 들고 일어섰다. 앞으로 흘러내리는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고정하고 나의 숨을 받았다.
거의 벗겨진 원피스는 가슴 위까지 내려갔다. 드러나는 어깨에 입술을 붙였다 뗀 코스탄스가 날 쳐다봤다.
“제가 얼마나 바랐는지 모를 겁니다.”
그가 붉어진 눈으로 말했다.
“1년 전부터 항상 기다렸습니다. 언제 말할까, 언제 당신에게 청혼할까……. 지금은 때가 아니고, 지금은 좀 힘들고. 그렇게 수백 번 말을 삼켰는데.”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집을 구했을 때도 말하려 했는데…….”
“그땐 제가 정말 바빴죠.”
“네. 너무나도 바빴습니다.”
코스탄스의 목소리엔 원망이 어렸다.
집 내부로 들어온 그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침실이었다. 자신이 오늘 열심히 꾸몄다고 자랑한 넓은 침대에 그가 내 몸을 내려 두었다.
원피스를 끌어 내리고 그 위에 키스하는 행동에 손이 오므라졌다.
“오, 오늘 꾸몄는데…… 벌써 망가지면.”
“원래 이러려고 꾸민 침실이었어요.”
그는 단 한 곳도 놓치지 않고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파고드는 손을 느끼며 눈을 질근 감았다. 날 달래는 차분한 목소리와 달리 그의 눈동자는 젖어 있었다.
나도 가볍게 한 청혼이 아니었다. 코스탄스 말대로 그간 바빴다. 타이밍을 재느라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청혼을 몇 번이나 삼키고 참았다. 그리고 꺼낸 말에 나도 얼마나 울컥했는지 모른다.
“당신과 쭉 함께 살고 싶어요. 당신의 아이를 낳고……읍!”
아래에 있던 그의 입술이 돌연 내 입을 막았다.
“왜 자꾸 제가 해야 할 말을 비비가 하십니까?”
떨어진 입술 사이로 그가 속닥거렸다.
“그게…… 코스탄스는 이제 성이 없으니 내 성을 따라 ‘페런’을 물려받잖아요. 그러니 내가, 청혼해야죠.”
“아.”
그가 이제야 알아챈 듯 말을 짧게 뱉었다.
“왜, 왜요? 마음에 안 들어요?”
“설마. 제가 그 성을 얼마나 탐냈는지 모릅니다.”
“…….”
“정말 갖고 싶었어요…….”
좀 더 일찍 말할걸.
그 반응을 보며 나는 후회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밀려오는 자극에 주먹이 꽉 쥐어졌다. 깨끗했던 침대보가 바둥거리는 내 몸과 손으로 인해 잔뜩 구겨졌다.
나는 그의 목을 강하게 안고선 숨을 헐떡였다. 서로의 몸에서 잔잔한 진달래 향이 났다.
내 어깨를 물던 코스탄스가 서둘러 입술을 찾았다.
“사랑해요, 비비.”
그가 고백했다. 감미로운 말에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을 빠짝 줬다. 위에서 코스탄스의 신음이 들렸다. 내 몸도 이상해졌다.
그가 눈물을 흘리듯 나도 기쁨의 눈물이 나왔다. 얼마나 길고 어려웠던 길이었을까.
처음 청혼을 거절했을 때 무너진 가슴을 붙잡지 못하고 눈물을 터트렸었다. 이런 결말을 결코 꿈꾸지 못했다.
“사랑해요. 저도 사랑해요.”
이건 완전한 해피 엔딩 아닌가. 너무나도 꿈 같았다.
* * *
몸을 씻은 후 나와 코스탄스는 담요를 두르고 소파에 앉았다.
밤이 되었다. 깜깜한 주변, 이 집 내부에 있는 불빛만이 어둠을 밝혀 주고 있었다.
“사실 이걸 주려 했었습니다. 청혼하면서요.”
그는 숨겨 둔 반지를 내 손가락에 끼워 주며 말했다.
“이제 서로의 손가락을 물 필요가 없겠네요.”
나는 반지를 계속 쳐다봤다. 내가 코스탄스에게 선물한 팔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예쁘고 값비싼 것이다.
움직일 때마다 푸른빛이 나는 보석이 봐도 봐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손가락을 물어 주십시오.”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그런 취향이 있어요?”
내가 물었다.
“그렇게 변태적이진 않습니다. 고통을 좋아하진 않지만, 약간이라면 괜찮을지도요.”
코스탄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따 한번 해 보겠습니까?”
“뭐, 뭘요?”
“당신이 제 엉덩이를 살짝 때리는 거 말입니다. 그 반대도 괜찮고.”
바로 코스탄스의 손가락을 강하게 물었다. 거절의 표현이었다. 그러자 그는 아쉽다는 듯 입술을 내밀었다.
“근데 저거 주크박스죠?”
나는 거실에 있는 기계를 가리켰다. 예전 오두막에서 보았던 것보다 크기가 작은 주크박스는 새 물건처럼 보였다.
“들어 볼래요?”
내가 끄덕이자 코스탄스가 움직였다. 몇 번의 움직임 뒤 주크박스에 불이 요란하게 들어왔다.
얼마 안 돼 주크박스에서 트럼펫 소리와 함께 재즈 음악이 들렸다. 이어 중년 남성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퍼져 갔다.
나와 코스탄스는 소파에 기대 누워 음악을 감상했다.
우리는 평화를 꿈꿔요.
보세요,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는 평화를 꿈꿔요.
들어 보세요, 연인들의 행복한 웃음소리를.
우리는 평화를 꿈꿔요.
느껴 보세요. 이 따뜻하고 편안한 공기를…….
〈청혼하지 마세요, 제발!〉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