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달에서 가져오는 방법. (5)
이수용 회장과 함께 청와대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회의에 불렸지만, 이유는 듣지 않아도 뻔하다.
“일본에서 쉽게 포기할 것 같지가 않군요.”
“그렇겠죠. 한두 푼도 아니고.”
22억 달러가 적은 돈은 아니지.
아무짝에 쓸모없는 지분을 구매한 것만도 상당히 열이 받겠지만, 아마 상대가 한국이라는 게 더 열 받는 이유가 아닐까?
예로부터 일본은 이상하게 한국에 대해 열등감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물론 그건 한국 입장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뭔가 계획이 있는 겁니까?”
“저한테요? 제가 정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대책이 있겠어요. 그런 건 윗분들이 알아서 준비하셨겠죠.”
그 말에 이수용 회장이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아마도 지금 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라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내 기분은 상당히 별로인 상태가 맞다.
왜냐면 오늘이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오늘 부르는 건 아니지.’
자기들은 이미 다 결혼했다 이건가?
뭐, 이런다고 언론에서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열심히 일하는 청와대’라며 기사라도 써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심지어 오늘은 리아가 한국으로 입국하는 날이다.
설이와 친구들의 성적도 며칠 전에 공식적으로 발표가 되어서 그야말로 온 집안이 지금 축제 분위기다.
“아, 오늘 영등포에서 파티가 있다면서요?”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설이와 친구들의 한국대 입학(합격은 따놓은 당상이니까)을 축하할 겸, 새로 이사온 집의 집들이 겸.
정말 친한 사람들에게만 조용히 알린 파티였는데.
“하하, 잊으셨습니까? 제 딸이 어나더 테크의 심연홍 비서와 각별한 친구라는 거.”
“아아. ···그, 혹시 시간되시면···.”
“말씀 감사하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힘들 것 같군요. 소문이 자자한 대저택에 가는 건 다음으로 미뤄야 겠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수용 회장도 초대를 할 걸 그랬나.
하지만 참석하는 인원들의 평균 연령을 생각하면 이수용 회장도 참석하는 게 그리 즐겁기만 한 자리가 되지는 않을 거다.
아마 본인도 그래서 거절한 것이겠지만.
“그럼 다음에 좋은 날을 잡아서 초대하겠습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굳이 차를 나눠서 타고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이수용 회장의 차를 타고 왔는데, 그냥 따로 올 걸 그랬다.
***
비교적 간단한 식사를 마쳤다.
그간 청와대에서 먹던 식사를 생각하면 심히 단촐하다 생각될 수준의 간단한 식사였지만, 누구도 불평은 하지 않았다.
다른 날과는 달리, 거의 침묵 속에서 이뤄진 식사가 끝나고, 일곱 사람의 앞에 향기 그윽한 커피가 놓였다.
“일본에서 국제 재판소에 정식으로 소의 제기를 했습니다.”
처음은 예상대로 한국의 승소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변수가 발생했다.
일본에서 몇몇 유명 대학의 교수들에게 막대한 연구비 지원을 약속하면서 연구비를 지원 받은 이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일본의 편을 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참으로 뻔뻔하네요. 염치도 모르는 국가 같으니.”
뇌물을 연구비라는 이름으로 지원한 일본 정부나, 그걸 또 받아먹고서 말을 바꾸는 대학 교수들이나.
이게 정말 국제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게 믿기 힘들 정도였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건 명백한 뇌물이라고 봐도 되는 거 아닌가요?”
“뇌물이지만, 공식적으로 주면 뇌물이 아닌 게 됩니다.”
“일종의 정치 자금 같은 건가요?”
뒤로 몰래 주면 불법이지만, 앞에서 대놓고 주면 합법인.
“당연히 우리가 이길 재판이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서 최소한의 대책은 마련해 둬야 할 것 같은데, 누구 좋은 의견 있는 분 없으신가요?”
“대통령님. 그 전에 하나 묻고 싶군요.”
누구였더라.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한두 번이라도 얼굴을 마주했던 이들이었는데, 저 사람은 모르겠다.
그런 내 심정을 알기라도 한 건지, 최진우 대통령이 그의 직함을 불렀다.
“네. 연미진 위원장님. 말씀하시죠.”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라의 보고가 들려왔다.
–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연미진 위원장입니다. 부산대학교의 기계공학과 교수도 겸임하고 있습니다. 비리에 연루된 적이 없고, 해당 분야에서는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입지를 가져서 학생들로부터 존경받는 교수로 꼽히는 분입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한 마디로 말하면 대통령에게 과학기술에 관련된 자문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그 중에서 위원장을 맡고 있다는 말이네.
이 자리에 있는 유일한 여성이었는데, 무슨 질문을 하려고 하나 지켜봤더니.
“이 자리에 일성전자의 이수용 회장이 있다는 건 이해하지만, 어나더 테크의 임선우 대표는 어떤 자격으로 참석을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최진우 대통령과 이수용 회장이 조금 묘한 표정을 지었다.
과기정통부에서 나온 민우석 장관이나 유경준 기획조정실장이 내 눈치를 살피는 걸 봐서는 내가 왜 여기 있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챈 모양이고.
국정원에서 나온 노상우 차장은 뭐가 재미있는지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왜 여기 있는 지에 대해 전혀 모르는 건, 그 질문을 한 연미진 위원장 한 명이라는 말이다.
“하긴,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솔직히 이 자리에서 나이가 제일 어린 것은 차치하고,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나라는 인물이 왜 있는지는 이해하기 힘들 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지금 여기서 핵융합 기술에 내가 관여했다는 걸 모르는 유일한 사람이니 저런 의문을 갖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고.
뭐, 모르면 알려줘야지.
“네. 미안하지만 저는 국가의 중대사에 관한 토의하는 자리에 왜 일개 공업소 사장이 참석한 건지. 그리고 어째서 다른 분들은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않고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음, 왜냐면 말이죠. 핵융합로의 핵심 기술을 만든 사람이 바로 저라서 그렇죠.”
일개 공업소 사장이라.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니까, 굳이 따질 생각은 없지만 저 이상할 정도로 날 무시하는 듯한 눈빛은 거슬린다.
“또, 얼마 전에는 일본에게 이터(ITER)의 한국 지분을 팔도록 종용한 사람이 저였죠. 아, 그리고 결정적으로 핵융합로에서 생산되는 전력의 50%를 국가에 무상 제공하는 것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네요.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이 자리에 참석할 충분한 자격이 되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이수용 회장이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사전에 상의를 하지 않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는 조금 미안하지만, 어차피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야 적어도 누가 핵융합 기술의 진짜 주인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최진우 대통령이 굳이 이 자리에 내가 모르는 새로운 인물을 참석시켰다는 건 저 연미진 위원장이라는 사람 역시 언젠가는 알아야 할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 그게 무슨··· 핵융합 기술은 일성전자에서 개발을 한 게··· 이수용 회장님? 지금 임선우 대표님이 한 말이 정말인가요?”
‘임선우 대표’에서 ‘임선우 대표님’이 됐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 한 이야기는··· 네, 모두 사실입니다. 임선우 대표님의 기술이 아니었다면 핵융합 기술은 여전히 연구 중인 분야였을 겁니다.”
“···그, 그런.”
그녀의 얼굴이 당혹감과 민망함으로 가득 찰 정도로 달아올랐다.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라도 청하는 듯한 표정으로 둘러봤지만, 모두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아마 이 정도면 더 이상의 의문은 가지지 않겠지.
“이만 앉으시죠. 할 이야기가 많은데요.”
“···네? 아, 네···.”
표정을 보니 자기가 언제 자리에서 일어났는지, 자각도 하지 못한 모양이다.
“제가 요즘 법정 드라마를 챙겨 보는데, 꽤 재미가 있더군요.”
연미진 위원장이 자리에 앉자, 최진우 대통령의 독특한 화법이 다시 시작됐다.
당황하지도 않는 걸 보니, 아마 처음부터 이런 상황이 한 번은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처럼.
“그런데 그 드라마에서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소송이 진행되면 가장 좋은 결과는 법정에 서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보는 거라고요.”
국가 간에 소송을 당한 상황에서 갑자기 왠 드라마 이야기를 꺼내나 싶었는데,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 드라마 안에서 나왔던 대사의 인용이었다.
“22억 달러를 눈앞에서 날리게 됐는데, 과연 원만하게 합의가 될까요? 아마 그 이상의 금액을 배상하지 않으면 저들은 끝까지 우리를 물고 늘어질 겁니다.”
“그렇겠죠. 하지만 합의라는 게 꼭 돈으로 해결하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최진우 대통령은 그 말을 한 뒤에, 날 향해 시선을 돌렸다.
‘왜요?’
‘그냥 말씀하시죠.’
‘···그건 대통령님이 직접 하시기로 했잖아요.’
‘어차피 이제 알 사람은 다 아는 일입니다. 언제까지 뒤에만 계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주머니 속의 송곳은 결국 밖으로 튀어나올 수 밖에 없는 법입니다.’
눈으로 대강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간 뒤,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대통령이 저렇게 말하고 나를 빤히 보고 있었으니, 다른 사람들 역시 내게 무슨 대책이 있다는 걸 눈치챘을 테고.
사실 이 자리에 참석하기 전, 대통령과는 비밀리에 대화를 나눴었다.
정확히는 대화를 나눴다기 보다, 일본에게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지만.
“방법이 있긴 합니다.”
“···어떤 겁니까?”
이수용 회장에게는 오늘 여러가지로 미안하네.
오면서 했던 말이 결국 거짓말을 하게 된 셈이니까.
‘대통령님, 이 빚은 나중에 받아낼 겁니다.’
‘그러시죠.’
능글맞은 웃음을 짓고 있는 최진우 대통령을 한 차례 흘겨봐준 뒤.
“간단합니다. 일본이 원하는 걸 주는 거죠.”
“일본이 원하는 거라면 결국 배상금이 아닌가요?”
연미진 위원장은 여전히 어딘가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뭐, 아직 의심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건 알겠지만 이제 좀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배상금? 아니죠. 일본도, 우리도, 미국이나 중국도 모두 이터 프로젝트에 가입한 이유가 처음부터 돈이 목적이 아니었죠.”
“그야 국제적인 핵융합 기술 연구를··· 그럼 설마, 핵융합 기술을 제공할 생각인가요?”
“전 반대입니다! 핵융합 기술은 앞으로 대한민국이 세계의 에너지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핵심 기술입니다!”
“저도 반대입니다. 어떻게든 보안을 최대한 유지해도 모자랄 판에 우리가 먼저 나서서 기술 공유라니··· 그것만은 절대로 안 됩니다!”
음.
적어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한국인이 맞네.
성격이 더럽게 급한 걸 보니까.
그리고 그게 무슨 국가 보유 기술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는 모양인데.
“아직 말이 끝난 게 아니니, 조금만 더 들어보죠.”
최진우 대통령이 나서서 잠시 소란스러워진 장내를 정리하고선, 다시 날 그윽하게 쳐다봤다.
말을 이어서 하라는 뜻이겠지.
어째서인지 전혀 고맙지가 않다.
“기술력 자체를 제공한다는 게 아닙니다. 핵융합로 건설에 도움을 주겠다는 거죠. 물론 건설에 드는 비용은 모두 각자 부담해야 하고, 핵융합로 가동 중에는 기술력 제공에 대한 수수료를 받아낼 겁니다.”
“핵심 기술은 제공하지 않은 채로 말이군요.”
“방금 ‘각자 부담’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은 일본 뿐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게도 제공하신다는 의미인가요?”
“맞습니다. 적어도 이터에 가입한 국가들에게는 동일한 선택지를 제공할 생각이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밝아지지 않았다.
뭐, 무슨 걱정을 하는 지도 모르는 게 아니다.
“혹시 핵융합로를 연구해서 핵심 기술을 카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겠죠.”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중국이나 일본은 건설에 도움을 준 핵융합로를 해체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기술을 빼돌리고 말 곳이니까요.”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절대.”
나 역시 만에 하나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고민도 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 사람들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
“잠시만··· 조금 전에 하신 말씀 중에, 선택지라고 하셨는데. 그건 무슨 의미인가요?”
“말 그대로 선택지를 줄 생각입니다. 이터의 지분을 넘기는 대가로 핵융합로 건설에 도움을 받던가, 아니면···.”
에너지 시장에서 도태될 지에 대한 선택지.
멍청하지 않다면 후자를 선택할 곳은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