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ise Chef Life RAW novel - Chapter 174
173화. 서프라이즈
***
“여기 어때요?”
해준이 직원들과 찾은 곳은 근처 상가 빈 점포.
20평 규모의 소형매장으로 메인 스트리트에 위치하지는 않았지만, 번화가와 아주 인접해있고 위층에 보습학원이 있어 아이들을 픽업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수시로 지나다녔다.
“좋은 것 같습니다. 코너만 돌아나가면 바로 지하철역도 있고, 유동인구도 많고.”
주변도 깔끔하고, 내부 상태도 양호했다.
간단히 인테리어를 손보고, 테이블만 놓으면 내일이라도 바로 장사를 시작해도 될 것 같았다.
‘딱 좋네.’
내부를 둘러보던 해준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입구에 키오스크 놓으면 혼자 영업해도 괜찮은 사이즈네. 누가 좀 도와줘야겠지만.”
“부부가 하기 딱 적당한 사이즈 같습니다.”
동식도 동의했다.
“마음에 드세요?”
해준의 물음에 동식은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아내와 함께 작은 식당을 열고 싶다는 바람을 꺼냈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열심히 하다 보면 꿈을 이루겠지?’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다시 함께 모여 살날을 염원했다.
“다른 매물도 보셔야죠?”
뒤에서 해준과 동식의 대화를 듣던 부동산중개인이 손목시계를 보며 물었다.
해준 일행은 그를 따라다니며 서너 곳을 더 구경하고,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시답잖은 근황 토크를 하면서 주문한 음료를 마셨다.
“우리 이렇게 여유 부려도 괜찮은 거예요? 저녁 장사 준비해야죠.”
“괜찮아. 아버지한테 말씀드렸어. 형님이랑 너희 데리고 잠깐 나갔다 온다고. 영업 시작 전에만 가면 괜찮아.”
“아싸, 개꿀.”
철없는 강훈이 키득거리며 좋아했다.
“요즘 회장님 때문에 너무 편해졌어.”
“손님들 반응도 더 좋아. 음식 맛이 더 좋아졌다는 평도 있고, 일이 줄어서 여유도 생기고.”
차철수의 합류 이후, 바쁜 매장에 여유가 생긴 건 분명했다.
그러나 동식은 바로 그 지점이 좋으면서도 동시에 부담스러웠다.
“근데 점포들은 왜 둘러본 거예요?”
“설마 가게 이전?!”
동식의 물음에 강훈이 나름의 추측을 내놨으나 이내.
“오빠. 그게 말이 돼? 지금 둘러본 가게들보다 썬플라워가 훨씬 좋은데.”
“하긴. 그렇네. 그럼 왜?··· 아! 2호점 오픈?”
모두의 시선이 차해준을 향했다.
강훈의 간절한 질문에도 해준은 빙그레 웃기만 할 뿐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궁금해서 현기증 나요. 빨랑 대답해주세요.”
그렇게 한참을 뜸을 들이더니.
“동식 형님.”
동식을 불렀다.
어쩐지 긴장한 눈빛의 고동식.
“네?!”
“실은 형님한테 할 말이 있어서요.”
해준의 말투와 표정을 보며 고동식은 드디어 올 것이 왔음을 직감했다.
얼마 전부터 차해준의 부친인 차철수가 매장 일을 돕는 걸 보며 동식은 어쩌면 자신의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가게에 그만 나오셔도 될 것 같아요.”
“아!··· 네.”
동식은 생각 보다 놀라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견했던 일이다.
한 하늘에 태양이 두 개일 수 없는 법.
원래 주인인 차철수 셰프님이 주방에 돌아왔으니, 어쩌면 자신의 존재는 더이상 필요 없을지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고동식이 제법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재미없다는 듯 피식 웃어 보이는 해준.
“어? 왜 안 놀라요? 서프라이즈였는데.”
“저 어려울 때 챙겨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니까요. 아버님도 계시니, 전 필요 없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는데.”
“네? 그게 무슨···.”
“아버지가 돌아오셨으니 주방에 형님 자리가 없는 건 맞아요.”
“···.”
“하지만 형님이 저한테 아주 소중한 사람입니다.”
지난 몇 달간 동식의 도움이 없었다면 썬플라워를 유지하기 어려웠을 터.
해준은 그에 걸맞은 보답을 해주고 싶었다.
“형님. 도장 챙겨오셨죠?”
어젯밤 오늘 도장을 꼭 챙겨오라는 깨톡을 받았다.
‘계약해지.’
순간 고동식의 뇌리를 스친 단어였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여, 여기 있습니다.”
“찍으세요.”
해준이 내민 건 상가건물 임대차 표준계약서였다.
가장 마음에 드는 매물의 계약서를 중개인에게 미리 받아왔다.
[계약 내용]제 1조(보증금과 차임) 위 상가건물의 임대차에 관하여 임대인과 임차인은 합의에 의하여 보증금 및 차임을 아래와 같이 지급한다.
보증금 금 삼천만 원정 (30,000,000)
차임(월세) 금 백오십만 원정 (1,500,000)
···
“이, 이게?”
“아까 본 상가 임대차계약서예요.”
혼자 운영하기 딱 좋은 크기의 입지 좋은 빈 점포를 떠올렸다.
“형님도 이제 홀로서기 하셔야죠.”
“차, 창업이요? 하지만, 전 모아둔 돈이 없는데···.”
“괜찮아요. 제가 있으니까.”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해 어리둥절한 동식의 얼굴 위로.
“퇴직 기념으로 가게 계약금은 제가 쏩니다. 음, 인테리어 비용은 독립 기념 선물. 그러니까 빨리 도장 찍어요.”
고동식의 처지에서 월세가 부담스럽긴 했지만, 재료는 어차피 모두 지원해줄 생각이었다.
그러니 비싼 월세라도 목 좋은 곳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것이 보답이니까.
“저 없는 동안 가게 잘 지켜주셨으니까 식재료도 앞으로 쭉 지원해드릴게요.”
“사··· 사장님.”
감동한 고동식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잘되던 사업이 망해 길거리에 나앉은 자신을 보듬어준 것도 모자라 이제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준 해준이 너무 고맙게 느껴졌다.
“빨리요. 도장 찍고 들어가서 저녁 장사 준비해야죠.”
뜨거운 눈물을 닦으며 도장을 찍었다.
“오오, 보상 쩐다. 사장님. 저는요?! 저는 보상 없어요?”
강훈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응. 없어.”
“왜 때문이죠?”
“넌 모쏠 탈출했잖아. 그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은정.
강훈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썬플라워는 함께 지켰는데, 보상은 왜 동식 형님만. 저도 주세요!”
“응. 싫어. 못 줘. 돌아가.”
“쳇, 오늘부터 삐뚤어질 테다.”
“크크큭.”
강훈 역시 적당한 때가 되면 독립시켜줄 생각이다.
언제까지나 썬플라워에 붙잡아 둘 수는 없으니까.
***
“저기 봐. 진짜 김민주야.”
“헐. 대박. 아이돌 은퇴하고, 여기서 알바한다는 게 레알이었어?”
“안그럼 저기서 왜 앞치마 입고 서빙하겠어?”
방금 매장으로 들어온 커플 손님이 서빙 중인 김민주를 보며 작게 속닥였다.
요즘 썬플라워를 찾는 손님 절반은 음식보다 민주를 보기 위해서 찾아온다.
막 은퇴 선언을 한 직후에는 거의 100%가 민주를 보러 온 팬들이었으니 그나마 최근의 사정은 나아진 셈.
“근데 왜 고작 여기서 일하지?”
“어제 민주갤에서 읽었는데, 불치병이 아니라 무대 공포증이랑 공황 왔다던데. 은퇴도 그래서 한 거고.”
“바보야. 그럼, 여기서 알바를 어떻게 하냐?”
“아, 그런가? 암튼, 유니폼도 되게 잘 어울린다. 예뻐.”
남친의 말에 여자가 도끼눈을 떴다.
“어쭈? 죽고 싶지? 나야 민주야?”
“그야 당연히 미···.”
“미?! 너 노선 똑바로 타라.”
살기를 느낀 남자는 머뭇거리며 다음 단어를 골랐다.
“미, 미치도록 예쁜 내 여친이지.”
‘민주 님! 죄송합니다. 흑흑···.’
하지만, 진실을 말했다가는 혹시 모를 민주의 복귀를 보지도 못하고 지옥행 급행열차를 탈지도 몰랐다.
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라고.
살아 있어야 민주가 복귀하더라도 볼 수 있으니까.
*
한편, 그 시각.
러블리 엔젤 숙소.
“다녀왔습니다.”
“올~ 서아 와쏘?”
“넹. 아구구 힘들어라.”
캐리어와 배낭을 내려놓으며 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지는 서아.
2박 3일간의 산촌 탐구생활 촬영으로 모든 활력을 소모해버렸다.
반면 스케줄이 없던 태린은 쌩쌩 그 자체.
“왜 이렇게 죽을상이야?”
“오늘 심마니 아저씨 따라다니면서 약초 캤거든요. 개 힘들어.”
“크큭.”
“애들은요?”
“둘 다 라디오.”
“언니는 종일 놀았어요?”
“씻지도 않고 뒹굴뒹굴했더니 얼굴에 개기름 꼈다. 봐봐.”
“윽, 더러워. 좀 이따가 라이브 해야 하는데, 세수라도 하고 오시죠?”
“응. 필터 쓰면 돼.”
“쯧쯧. 사람들이 언니의 실체를 알아야 하는데.”
오늘 마지막 스케줄은 럽둥이 4인이 팬과 소통하는 U-Live 방송.
보통 피자나 치킨을 시켜놓고 먹방을 하거나 간단한 취미 활동 혹은 언박싱을 하며 분량을 채웠다.
“오늘 아이템 뭐하지?”
“먹방 하자. 족발 땡겨.”
“노말한데. 저저번 주에도 먹지 않았어요?”
“그럼 뭐해?”
“글쎄용.”
동생들이 오기 전에 아이템을 선정해놔야 진행이 수월했다.
태린이 바닥에 물아일체의 경지에서 소파에 발을 올린 채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차 가게 습격할까?”
“민주 언니 만나러요?”
“응.”
“언니 은퇴했는데.”
“뭐 어때. 민주는 은퇴했어도 라방 장소를 정하는 건 우리 맘이지.”
“올, 그런가?”
“가서 민주랑 놀자.”
“크크큭. 재밌겠다.”
“무작정 찾아가서 서빙도 하고, 민주 근황 토크도 좀 하고. 어때?”
“좋타.”
라방은 핑계일 뿐.
실상은 민주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태린도 서아도. 그리고 나머지 멤버도.
민주가 탈퇴를 하고 나서야 알았다.
러블리 엔젤은 다섯 명이 아니면 안 된다는 걸.
“막방이라도 해야지. 팬들도 제대로 못 봤는데.”
마지막 고별방송.
팬들에 대한 예의였으며, 동시에 함께 동고동락한 자신들의 권리이기도 했다.
태린은 나머지 멤버가 모두 돌아오길 기다렸다 자신의 계획을 밝혔고, 모두가 동의했다.
럽둥이들은 라방을 켜고 무작정 썬플라워로 들이닥쳤다.
“서프라이즈~!”
“어, 언니.”
깜짝 놀란 민주.
멤버들이 손깍지를 껴며 반갑게 인사했다.
셀카 모드로 카메라를 든 서아가 라방을 진행했다.
“팬들한테 인사하세요.”
-엔젤리너스18호 : 헐, 대박. 찐 민주?
-여신민주 : 아아~ 여신님.
···
수백 개의 메시지가 생성됐다.
댓글 창이 폭발할 지경.
“글 좀 천천히 올려요. 네. 맞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비주얼 센터. 민주 언니. 네? 아, 언니 재합류하는 거 아니고요. 오늘 언니네 가게에 습격하러 왔습니다. 라방 주제는 만난 지 4초 만에···.”
-AV매니아 : 헐. 4초 만에 뭐? 설마 합?···
“4초 만에 주문받기.”
-유교보이 : 어휴, 음란 마귀
-판관포도청 : 일상생활 가능하냐?
-AV매니아 : 꺼져!ㅋㅋ
민주는 도와 썬플라워 손님들에게 주문받기.
그것이 오늘 라방의 주제다.
러블리엔젤은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했다.
한참 저녁 장사로 바쁜 홀 여기저기를 누비며 대신 주문도 받고, 음식도 나르고, 빈 접시도 치웠다. 동시에 짬 나는 대로 민주와 근황 토크도 나누고 썬플라워 주방에도 습격해 요리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보여줬다.
오랜만의 개꿀 라방에 시청자 수도 폭발.
러블리엔젤 완전체의 파워는 압도적이었다.
손님이 돌아가고, 장사를 도와준 럽둥이들을 위해 차해준이 특별히 솜씨를 발휘했다.
마치 동창회를 하듯 토크를 하며 식사하던 중.
“두 사람 진도는 어디까지 뺐나요?”
서아가 기습적으로 물어왔다.
“야, 뭘 그런 것까지 묻냐?”
“뭐 어때요? 아이돌은 연애도 못 하나?”
“맞아. 그리고 은퇴했는데 뭐 어때?”
“말해줘요. 언니.”
멤버들과 댓글 창 팬들이 독촉했다.
마지못한 민주가 부끄럽게.
“···스?”
절묘한 타이밍에 렉이 걸렸고, 댓글 창이 폭발했다.
-야스오 : 미친 지금 야스라고 했냐?!
-탱탱불R : 야아아아~쓰?!
-소머즈 : 들었슈~ X스라고 한 거 제가 분명히 들었슈!
댓글 창은 또 마비.
태린과 연우가 뒤에서 키득거렸고, 하린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갈매기 눈이 된 서아가 응큼하게 되물었다.
“네?! 뭐라고요?! 설마 제가 들은 그 말이 맞나요? 너무 과감한 거 같은데.”
“뭐래. 키··· 키스라고. 키스.”
“아닌 거 같은데. 입술 모양이 조금 다른데?”
“므뜨니끄흐···.”(맞다니까.)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말했다.
“크큭. 믿어주지 뭐.”
“진짜라고오~.”
“뉘에~ 뉘에.”
서아의 깐족임에 참다못한 민주가 헤드록을 걸었다.
난처하긴 해도 오랜만에 옛 동료와 함께 있으니 재밌었다.
“으악! 폭력 반대. 해준 오빠 살려줘요.”
카메라 뒤에서 흐뭇하게 지켜보던 해준에게 SOS를 쳤다.
장난치던 민주가 남친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내 팔을 풀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어머머, 민주 얘 끼 부린다.”
-꼬인물 : 도대체 무슨 복을 타고났길래?
-성덕기덕쿵더러러 : 전생에 우주라도 구했냐? 젠장. 완전 될놈될
-떡방아 : 덕계못이라더니 ㅠㅠ
“뭐 어때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인데.”
“헐!”
“닭살.”
뭔가 결심하듯 민주가 해준에게 다가갔고, 서아가 카메라로 두 사람을 찍었다.
뭔가 특종을 잡을 것 같다는 본능적 움직임.
“오빠. 저랑 결혼해줘요.”
민주가 느닷없이 프러포즈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