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79)
러스트 [RUST]-979
레온 보나드가 탄 지휘 차량이 쓰러지는 빌딩에 휩쓸렸다.
단단한 철근콘크리트가 쓰러지며 얼기설기 엮인 잔해 틈으로 거대한 거미들이 휩쓸고 다니기 시작했다.
엑소슈트 덕에 천운으로 살아남은 병사들, 잔해에 파묻혀 정신을 잃은 병사들이 하나씩 거미 먹이가 되기 시작했다.
[치지지직-] [치직 장-치지지직-]거울이 깨진 것처럼 금이 쫙 간 모니터는 사방에 펼쳐지기 시작한 거미줄 모양을 하고 있었다.
“크윽- 퉤- 연막탄. 연막탄을 써. 붉은색이다.”
입에 고인 피를 뱉은 레온 보나드가 나뒹구는 마이크를 붙잡고 외쳤다.
[치지지-아아악-] [하- 함정-투다다-치지지직]충격으로 흐릿했던 파란색 눈동자가 점차 선명해졌다. 입술을 타고 흐르는 핏물을 소매로 닦은 그가 마이크에 대고 소리 질렀다.
“붉은색 연막탄을 써! 당장!”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를 대비한 신호였다.
붉은색 연막탄이 터지면 무조건 자주포 부대를 최우선으로 퇴각한다. 그리고 거미가 제일 많이 모인 곳을 향해 전술핵을 투하하는 것.
현재 시점에서 적이 제일 많이 몰렸을 곳은 빌딩으로 퇴각로를 막은 근방일 확률이 높음에도 레온 보나드의 명령엔 거침없었다.
문제는 거미들의 대응이 만만치 않게 빨라, 무선 통신도 부대를 전개하며 깔아 놓은 유선 통신망도 끊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붉은색이다. 당장!”
코드 레드를 반복하던 도중 지휘 차량의 두꺼운 장갑 건너 강력한 떨림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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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떨어진 곳에서 터진 전술핵의 여파가 무너진 빌딩 잔해를 두들기고 그 안에 반쯤 파묻힌 지휘 차량까지 흔들었다.
띠이이이-
[경고. 해치가 열렸습니다.]생화학전과 핵전쟁을 대비한 지휘 차량인지라, EMP 대응도 있었다. 거미줄 효과와 전술핵이 터졌어도 당장은 큰 문제가 없었지만, 빌딩 잔해에 반쯤 파묻힌 채로는 오래 버티긴 힘들었다.
‘전술핵이 터졌으니 시간을 벌었어.’
한 번 뜨거운 맛을 본 거미들이 뒤로 빠질 것이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해.’
이제야 주변을 확인할 정신이 든 것이었다.
띠이이-
[경고. 해치가 열렸습니다.]자동 대응장치가 해치가 열렸다는 경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으으-
그의 시선이 작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향했다.
으···
지휘 차량 바닥에 있는 비상 해치로 나가려다 허리가 꺾인 사람이 보였다. 전술핵이 터지면서 생긴 충격파 때문에 지휘 차량이 들썩이면서 허리가 꺾인 것 같았다.
그를 도우려고 한 걸음 내딛는 순간, 현기증에 풀썩 엎어지는 레온 보나드. 한곳에 집중했던 정신이 풀리면서 온몸이 고통으로 아우성치고 있었다.
왼쪽 팔은 빌딩 잔해에 갈리는 충격에 튕기면서 부딪혔는지, 부러져 있었고. 숨을 크게 쉴 수 없는 것을 보면 갈비뼈가 상한 것 같았다.
외상용 응급 주사제를 자신의 목에 꽂자, 서서히 사라지는 통증과 흥분감에 레온 보나드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정식 명칭은 외상용 긴급 주사제. 지혈과 진통 효과라고 하더니, 다른 효과가 더 있었다. 흥분 효과에 리미트를 푼 것 같은 감각이 그것.
후-
뜨거운 입김이 수증기처럼 뿜어졌다. 사실상 전투자극제나 마찬가지.
‘누구지? 누가 이런 걸 넣을 생각을 한 거지?’
부상병을 버서커라도 만들 생각인가?
징벌부대의 생존율이 낮은 이유가 이거였나?
자신도 직접 맞아보기 전에는 모를 효과였다. 특진과 전시 진급으로 별을 단 그는 모르는 정보가 많다는 게 절실히 느껴졌다.
레온 보나드는 무릎에 힘을 줘 몸을 일으켰다. 반쯤 물에 잠긴 것처럼 둔한 느낌이었지만, 힘이 빠지지는 않았다.
허리가 꺾인 자를 돕기 위해 가려는 순간 부욱- 지휘 차량이 무언가에 끌려나갔다. 그 엄청난 힘에 하반신이 밖으로 나가 있던 자의 몸이 가죽 주머니 터지듯 찢어졌다.
띠이이-
[경고. 해치가 열렸습니다.]콰직- 콰드드드득-
후방 해치가 뜯어지며 빛이 쏟아졌다. 레온 보나드는 반사적으로 오른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밝은 빛 너머에 있는 누군가가 웃음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살아있네? 죽었을 줄 알았는데.]“······.”
기계음이라 목소리로 성별을 알 수 없었다.
“······.”
제국군 엑소슈트 기능 가운데 일반 기계음 표준 목소리. 하지만 제국군 엑소슈트의 출력으로는 수십 톤에 달하는 지휘 장갑차량을 빌딩 잔해에서 뽑아낼 순 없었다.
‘능력자? 아니면···.’
고위급 식인귀나 흡혈귀.
놈들이 거미가 장악한 필라델피아에 있다?
[입이 무겁네. 그래도- 그래도- 나쁘지 않아.]“······.”
기계음으로 목소리 성별을 감췄지만, 어투로 성별이 짐작됐다. 레온 보나드는 침묵을 지켜 조금 더 많은 정보를 끌어내기로 했다.
[그래서 있잖아. 어떻게 생각해?]“······.”
[죽어서 영웅이 되는 것과 살아서 악당이 되는 거 말이야.]어딘가 즐거운 듯한 기계음이 악마의 속삭임처럼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어떻게 생각해?]레온 보나드는 빛 뒤에 숨은 자에게 말했다.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
반문하는 그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했다.
[믿건 믿지 않건 그건 당신 자유. 하지만 확인해 보면 되지 않겠어?]“······.”
[다친 것 같으니 데려가 줄 게. 선택은 당신 몫.]“······.”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 남은 전술핵이 레온 보나드의 지휘 차량이 있던 근처에 떨어졌다.
뜨거운 열기, 치솟는 불꽃 그리고 작은 버섯구름까지.
전술핵이 확실했다.
[어때? 이제 믿을 수 있겠어?]“······.”
전술핵은 총 세 발이었다.
처음 거미를 유인해서 쐈을 때 한 발.
코드 레드로 퇴각하면서 한 발.
그리고 남아있어야 할 한 발이 쓰러진 빌딩. 그가 탄 지휘 차량이 있는 위로 떨어진 것.
[아직도 믿을 수 없어? 진짜 말이 없는 사람이네.] [어쨌든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 선택은 당신 자유. 그럼 이만.]바이바이-
레온 보나드의 손에는 짙은 핏빛 앰풀이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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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손에 쥐어진 앰풀을 바라보던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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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쥔 앰풀을 놓았다.
둥실-
마치 무언가가 앰풀을 들고 있는 것처럼 공중에 떠올랐던 앰풀이 집어 던진 것처럼 바닥에 처박혔다.
콰직-
조그만 앰풀이 깨지면서 나는 피 냄새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피 냄새가 서서히 차가운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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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지휘관의 몰락인가!)
(전공에 욕심부린 결과인가? 아니면 군부의 무리한 명령 때문인가?)
(형량을 대신한 형벌부대 전멸. 생존자는 극소수!)
(경범죄를 저질렀다고 생존율 2.47%의 형벌부대로 끌고 가는 것은 사실상 사형선고나 마찬가지.)
(레온 보나드 장군. 생사확인 불분명.)
필라델피아 토벌 작전이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언론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물고 뜯기 시작했다. 주제는 다양했다.
그 다양한 주제들이 필라델피아 작전을 파고들기 시작하자, 미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가 준비한 것 같은 이야기들.
(레온 보나드의 빈틈없는 작전.)
(형벌부대의 안전을 위해 간이 요새를 세우려고 하다.)
(병사들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지휘관.)
(거미들의 놀라운 반격.)
(함정에 빠진 제국군. 병사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퇴각을 결정한 결단.)
(마지막까지 제국의 미래를 생각하다.)
자주포와 비행선, 전차 등 주요 물자를 지키고, 병사들을 최대한 많이 살리기 위해 자신이 있는 곳에 전술핵을 투하하라고 명령했던 것이 공개됐다.
‘코드 레드가 무슨 뜻이었나요?’
‘모든 통신이 끊겼을 때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신호였습니다.’
‘어떤 뜻이죠?’
‘거미들이 제일 많은 곳에 전술핵을 사용하고 그 틈을 타 후퇴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레온 보나드 장군의 지휘 차량이 있는 곳에 거미들이 몰려있었다고요?’
‘예.’
(숭고한 희생정신.)
(한 명의 병사라도 더 살리기 위해, 자신이 있는 곳에 전술핵을 사용하라는 명령을 내리다.)
작전 중 실종이었던 레온 보나드를 작전 중 사망으로 취급하는 언론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레온 보나드는 제국의 영웅이었다.)
(그의 희생으로 신형 자주포와 비행선, 돌격전차의 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신임 대통령 레온 보나드에게 최고 명예 훈장을 수여하기로)
(야당. 제국이 영웅을 잃은 이유는 무능한 현 정권과 부패한 군부 때문.)
(영웅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사용하지 말라.)
(영웅은 죽은 것이 아닌, 살해당한 것. 특별 조사가 필요해.)
(정부. 추모식을 위해 해상 도시에 있는 중심 공원을 한시적으로 공개하기로 결정.)
(최고의 예우를 다할 것.)
(필라델피아 토벌 작전에서 생존한 병사들 해상 도시로 이동.)
(영웅의 추모식에 참석한 시민으로 모든 거리가 가득 찰 것으로 예상.)
야당의 집요한 공세에 정부는 해상 도시 한시적 공개로 대응했다. 추모식이 끝난 이후 논란이 될 주제를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신임 대통령과 행정부는 속으론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지만, 말을 아꼈다.
“아까운 인재를 잃었군요.”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급하게 해상 도시를 공개하면 보안이라거나 안전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어지간한 범죄 경력이 있는 자들은 형벌부대로 들어갔고, 특정 사상이나 종교를 가진 자들은 처음부터 배에 탈 수 없게 했으니 문제없습니다.”
간단한 필터로 어느 정도 거를 수 있으니 그만이었다.
“야당에서 이렇게 집요하게 물어뜯을 줄은 몰랐습니다.”
“예상대로 레온 보나드가 야당과 손을 잡은 것이겠죠.”
“다들 그 이야긴 하지 맙시다. 그런 소리가 밖으로 새나가면 빌미만 주는 겁니다.”
신임 대통령의 이야기에 다들 묵묵히 동의했다.
“해상 도시 남은 자리를 이번 작전에서 생존한 병사들과 사망한 유가족에게 준다는 발표를 하고 바로 구역을 공개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흠- 이번 추모식을 이용하자는 건가?”
“예. 일반 장교들과 정예병사들의 지지를 얻을 기회입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이번 추모식을 이용해 발표한다면 야당에서도 반대할 수 없을 겁니다.”
‧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오차 범위 이내로 떨어진 데이빗 화이트는 신임 대통령과 행정부에서 준비하는 짓을 알곤 분통을 터뜨렸다.
“빌어먹을 놈들이 제정신인가?”
아무리 정치적으로 불안하다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해상 도시를 공개하다니. 해안을 접하고 있는 제국의 대도시들은 대부분 지진과 쓰나미에 초토화됐다.
집을 잃은 주민은 신성 왕국에서 수입한 간이벙커를 이용해 만든 주택에서 거주하고 있었고, 겨울이 닥친지라 재건 공사도 모두 멈춘 상황이었다. 그런데 첨단 시설로 가득한 해상 도시를 일반에 공개하겠다고?
폐허가 됐어도 아직 임시수도 명찰을 달고 있는 보스턴에서 하거나, 레온 보나드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탈환한 뉴욕에서 하는 게 아니라. 해상 도시에서 하겠다고?
“의혹이 사실인 겁니다.”
“우리가 진실에 접근하자 제국 시민들의 주의를 해상 도시로 돌리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후- 그럼 레온 보나드가 처분됐다는 소린가?”
“전술핵 두 방이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떨어진 것이 확인됐습니다.”
한 방은 퇴각하는 제국군을 밀고 들어오는 거미떼에게 사용됐다. 그것으로 후방에서 무질서하게 흩어지던 형벌부대도 같이 휩쓸렸을 것으로 예측됐다.
그리고 문제의 두 번째 전술핵. 퇴각하는 제국군의 허리를 나눈 빌딩 쪽에 떨어진 전술핵이 문제였다.
지금까지 확보한 정보에 따르면 붉은 연막도 없었고 따로 레온 보나드의 명령을 들었다는 소리도 없었다.
“거미줄 효과나 생체 EMP 때문이라고 하지만···.”
“거미들이 뭉쳐있었긴 했나?”
“정보로는 그렇습니다. 거미들이 빌딩의 잔해를 이용해 퇴각로를 막고, 굴처럼 사용했다고 하니까요.”
“문제는 두 핵이 사용된 거리가 가깝다는 겁니다. 처음 전술핵을 사용한 곳에서 1마일(1.6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으니까요.”
“확인···. 한 것일 수도 있겠군.”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확인사살이나 암살 같은 말을 삼킨 데이빗 화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는 누가 전술핵을 그곳에 떨어뜨렸는지. 마지막 명령자를 찾도록 하지.”
그리고 만약. 정말 그랬다면. 추모식에서 정보를 까발리리라.
‧
‧
‧
그렇게 추모식 당일이 밝았다.
(수백만 인파가 모여!)
(제국을 지킨 영웅들!)
가장 큰 영웅은 레온 보나드였지만, 함께한 모든 병사가 영웅이었다.
(···우리는 생명의 빚을 졌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 아버지를 잃은 아이, 남편을 잃은 아내의 모습이 TV 화면에 떠올랐다. 신임 대통령의 연설과 함께 뒤편의 거대한 스크린에서는 뉴욕 작전의 성공과 필라델피아 작전의 긴박한 순간이 편집된 장면이 흑백으로 떠올랐다.
(우리는 이들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
(제국은 이번 시련에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연설하는 대통령의 눈에 저 멀리 공원 끝. 인파가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무언가 소란이 생긴 것 같았다.
살짝 미간을 찌푸린 대통령이 살짝 고개를 돌리자, 비서실장이 고개를 끄덕이곤 경호원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에 레온 보나드 중령을 2계급 특진하여 준장으로···.)
갑자기 터져 나오는 함성.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
중간과 앞에 있던 사람들도 몸을 돌려 뒤를 바라봤다. 그리고 거대한 소리가 점차 하나로 변해갔다.
레온!
레온!
레온!
이게 무슨···.
신임 대통령이 완전히 고개를 돌려 이게 무슨 소란이냐고 비서실장을 바라보자. 무슨 소식을 들었는지 당황하는 비서실장의 모습이 보였다.
점점 커지는 외침에 다시 앞을 바라보자 바글바글 몰리기 시작한 사람들. 마치 도넛 모양처럼 가운데가 쏙 빠진 중심에 서 있는 사내가 보였다.
거리가 제법 있음에도 뚜렷하게 보이는 금발이 햇빛에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을 향했던 방송카메라들이 그를 향하자, 대통령의 모습 대신 떠오른 남자의 얼굴.
레온 보나드였다.
와아아아아-
영웅의 모습이 생방송으로 잡혔다.
“카메라 꺼!”
“당장 끄라고!”
비서실장의 성난 고함과 당황스러운 대통령의 얼굴. 그리고 끓어오르는 함성까지.
제국에 불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