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ngel lives in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09
210화 날개를 펼치는 천사 (5)
피할 수 있었을 텐데.
탄두 대신 검이 달린 웃기지도 않은 미사일. 거기에다가 인간들의 어설픈 재주로 만들어 낸 추적 시스템.
카르마를 읽는 자신이라면, 눈 감고도 수백 번을 피할 수 있는 그런 공격일 텐데.
‘왜 쳐 낼 생각을 했지?’
진마검이 망가진 걸 알았으면서 왜 그 사실을 잊고 성검을 쳐 낼 생각을 했을까.
‘피하는 건 쉽게 피할 수 있었어. 그러나 내가 진짜 피하고 싶었던 건…….’
마왕이 진짜 피하고 싶었던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이런 상황.
두 소녀가 입술을 꾹 깨물고 누구도 잡을 수 없다는 성검의 손잡이 위로 서로 손을 포갠 이 상황을 말이다.
‘그래, 나는 용사의 손에 성검이 주어지는 걸 피하려고 했던 거야.’
분명 자신이 압도하고 있던 상황. 용사들은 카르마의 원류에 저항하지 못한 채 쓸려 나가고, 날개를 펼친 천사의 날개를 뜯기 직전까지 몰아갔던 상황.
그렇게 유리한 상황에서도 마왕은 성검을 쥔 용사를 허락하지 않았다. 차라리 경계하지 않고 허락했다면, 그래 봐야 무기일 뿐인 성검. 성검을 쥐게 내버려 두고 원류로 압살했다면…….
그랬다면 마왕의 승리였다.
그런데 왜 마왕은 성검을 쥔 용사를 그렇게나 경계했던 걸까.
“믿, 음.”
마왕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날개를 펼친 천사를 바라보았다. 검은 피가 묻은 입가에는 슬픈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래, 나에겐, 믿음이 없었구나.”
만약 마왕에게 믿음이 있었다면 성검이라는 변수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목표를 향해 나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마왕은 그러지 못했다.
마왕은 이 세상을 믿을 수 없었다.
모든 걸 알았기에, 모든 걸 알았다고 생각했기에.
“그래, 마왕. 너에게는 믿음이 없었어.”
날개를 펼친 천사가 말했다.
날개를 펼친 천사는 슬픈 눈동자를 한 채 마왕을 바라보았다.
“너는 마지막까지 사람을 믿지 못하는구나.”
“어떻게 사람을 믿을 수 있어?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런 일을 겪고도!”
마치 토해 내듯 검은 피를 뱉어 내는 마왕. 악에 받친 듯 레프리를 향해 손을 뻗는 게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레프리는 마왕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볼 수 있었다. 왜일까. 눈물을 흘리는 마왕은 어딘가 자신과 너무 닮아 있었다.
아주 오래전 옛날, 잊히고 사라진 시간들 속에서, 마왕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레프리는 짐작하고 말았다.
‘…그렇구나.’
레프리는 깨달았다.
검게 물든 채 눈물을 흘리는 저 소년이, 악몽을 꾸던 자신과 너무나 닮았다는 사실을.
“너도 악몽 속에서 살고 있었구나.”
“아니야.”
“누군가 깨워 주길 바랐던 거야?”
“아니라고!”
자신의 볼을 향해 뻗어 오는 하얀 손을, 마왕은 거칠게 밀어내며 중얼거렸다.
“나는 악몽 같은 걸 꾸는 게 아니야. 나는 깨달은 거란 말이야, 어둠을.”
“알아, 악몽은 너무 슬프지.”
“깨달았으니까 하나도 슬프지 않아!”
“악몽은 괴롭고.”
“진리를 위한 고행은 당연히 괴로운 법이야. 레프리, 그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하는 거야?”
“그리고 악몽 속에서는 너무나 외로워.”
그리고 말이 멈췄다.
마왕의 눈이 화들짝 커지더니, 다시 찡그려지며 방울방울 눈물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아니야.”
마왕이 말했다.
“아니라고, 아냐. 나는 악몽 같은 걸 꾸는 게 아냐.”
검게 물든 소년은 레프리의 손길을 쳐 내며 악에 받친 듯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는 내 아픔을 누가 달래 주길 바란 적 없단 말이야!”
검게 물든 소년은 여전히 눈물을 쏟아 내는 중이었다.
레프리는 아무 말 없이 그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찰나보다는 길고 영원보다는 짧은 시간이 흘렀다.
“바란 적 없어, 정말로…….”
그러나 마왕은, 아니 마왕이라고 불리는 소년은 이미 레프리의 손길에 결국 얼굴을 기대고 있었다.
레프리가 그 칠흑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조금씩이지만 울음소리가 커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어깨를 감싸 오는 레프리의 품.
계속, 이렇게 있을 수만 있다면.
파악-
하지만 마왕은 레프리를 밀어 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레프리에게 꼭 해 줄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사사사- 카르마의 원류를 다뤘기에 붕괴해 가는 영혼, 성검에 의해 몸 깊숙한 곳을 찔렸기에 붕괴해 가는 육체.
마왕은 검은 피를 닦아 내며 입을 열었다.
“분명 반드시, 나를 대신할 마왕이 나타날 거야.”
사람들은 분명 악몽 같은 순간들을 만들어 낼 것이고, 또 그런 순간에 갇힌 아이들 중 한 명이 어둠의 진리를 깨닫고 말 테니까.
그렇게 어둠의 진리를 깨달은 아이들 중 한 명은 반드시, 반드시 마왕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될 테니까.
또르르 흐르는 눈물 한 방울.
마왕은 눈물 한 방울로 그 모든 걸 설명했다.
레프리는 그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후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그때는 반드시, 너무 늦지 않게 아이를 달래 줄 거야.”
대답을 들은 마왕은 미소 지었다.
“흥, 해 볼 수 있으면 해 봐.”
파스락- 파스락- 몸과 영혼이 재와 먼지로 화하는 이 순간에도 마왕은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오직 마왕만이 알리라.
“빛이다.”
마왕이 사라진 직후, 마치 하늘에 번개가 퍼져 나가듯 밝은 금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 금은 점점 커지더니 하얗고 푸른 빛을 품은 채 지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빛이야.”
“드, 드디어 밝은 하늘이.”
“하늘이, 하늘이 다시 밝아지고 있어.”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날개를 펼친 천사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웃었다.
푸른색 바다, 화사한 여름의 숲.
반짝반짝 빛나는 인간들의 도시.
그리고 저 멀리서 빛을 발하는, 우리 모두를 비추는 태양.
레프리는 이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세상은…….”
* * *
그리고 세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용사가 마왕을 물리치는 대사건이 일어났음에도 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은 크게 바뀌진 않았다. 물론 마왕에게 무너진 국가도, 강자도, 세력도 많았지만 톱니바퀴의 중심이 되는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톱니바퀴를 돌리는 사람들은 ‘저번 마왕의 침공은 허구였다’, ‘용사는 그저 거짓된 전설일 뿐이다’라고 말하며 세상의 변화를 용납하지 않았다.
“저번 검은 하늘 사태는 암흑계와 현실계의 충돌로 일어난 사건으로, 마왕이라고 불리는 허상의 존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마왕의 존재를 보았다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하, 그 사람들이 말하는 마왕의 묘사를 믿습니까? 칠흑으로 물든 미소년 귀공자? 마왕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그렇게 생겼다는 걸 누구더러 믿으라는 소리입니까? 그리고 진짜 마왕이 나타났다면 우리가 왜 살아 있는 겁니까? 다 죽었어야죠!”
세상을 움직이던 또 다른 톱니바퀴인 ‘교수’들은 마왕과의 싸움에 지쳐 그런 톱니바퀴의 폭주를 막을 수 없었다.
“클라인, 언제쯤이면 현역으로 복귀할 수 있나.”
온몸을 붕대로 감싼 클라인을 보고, 박진호는 왜 이렇게 바쁜 시기에 감기라도 걸렸냐는 듯 책망하는 목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부학장, 아직도 나를 부려 먹을 생각입니까. 진짜 미치겠네.”
당연히 클라인은 어이없어했다.
마살을 캐스팅한 후유증으로 다시 마법을 되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언제 현역으로 복귀할 수 있냐고 물어보다니.
“레프리가 말했지 않나. 마왕은 반드시 돌아온다고.”
“돌아오겠죠, 그건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닙니까.”
클라인이 말했다.
“아직도 세상은 이토록이나 어두운데.”
“그러니까 하는 말이다! 본 교수는 네가 필요하단 말이다!”
“끄악! 난 환자라고요! 시끄러워!”
한참 성을 내던 클라인은 다시 침대로 몸을 파묻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 아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 그 아이들이 있지.”
사과를 깎던 박진호는 창문 밖으로 펼쳐진 중앙 초인 아카데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너와 다른 교수들이 필요하단 말이다. 그러니까 빨리 나아라. 명령이다!”
“사, 사과를 입에 밀어 넣지 마!”
중앙 초인 아카데미의 외곽. 작다면 작고 소박하다면 소박한 조그만 성당 앞에서, 키가 작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게 큰 마법사 모자를 쓴 소녀가 한껏 들뜬 목소리로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용사 소야 님의 등장! 하면서 교실로 들어갈까? 아니면 네가 흑마술, 아니 마술계에 새 지평을 여실 용사 현자 소야 님 아니야? 하고 말하면 그때 교실로 들어갈까?”
“소, 소야.”
“아, 너무 유명해지면 어떻게 하지. 그래도 마도를 연구할 시간은 확보해 놔야… 꺅!”
그런 소야의 폭주를 막은 건 바로 분홍 머리칼의 미소녀, 홍월이었다. 홍월은 소야보다 압도적으로 긴 신장을 이용하여 소야를 꾹꾹 내리눌렀다.
“아주 폭주 기관차가 따로 없네. 뭐? 용사라고 자랑하고 다니겠다고? 누구 마음대로.”
“뭐, 뭐야? 아프잖아!”
꾹꾹- 홍월은 두 손바닥으로 소야를 내리누르며 웃었다.
“키도 작은 게 어떻게 이리도 시끄러울까, 참.”
“뭐, 뭐? 가슴도 작아서 허파도 작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목소리가 큰지 웃겨서 쓰러질 노릇이라고? 이, 이 흑마혐오자가……!”
“아니, 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어. 그리고 잠깐, 키 작다고 한 게 왜 흑마혐오적인 말이야? 아무 상관도 없잖아.”
“으으으윽! 내, 맘이야!”
조그마한 뿔은 가진,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웃기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는 걸 참아 내는 한 미소녀가 나타날 때까지 소야와 홍월은 투닥거렸다.
마리는 “흠, 흠” 소리를 낸 후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소야 양, 홍월 양.”
그리고 마리가 나타나자마자 서로에게 달라붙는 두 소녀.
“유마리.”
“유마리?”
“여러분, 오랜만이에요.”
한 마디의 대화도 필요 없었다. 홍월과 소야 모두 카르마를 읽을 수 있는 카르마 사용자들이었고, 따라서 마리에게 흐르는 카르마가 어떤 카르마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마리에게는 예전처럼 어둠의 카르마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빛의 카르마도 함께 흐르고 있었다.
소야는 그런 마리에게 조금이지만 존경심을 느꼈다.
‘그렇게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빛을 품고 있다고.’
그리고 그 마음을 인정하기 싫은 나머지 “흥!”이라고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하지만 마리는 그런 소야의 태도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까 이야기를 조금 엿듣고 말았는데.”
“어, 어떤 이야기를 엿들었는데?”
“소야 양이 자기가 용사라고 공표할 거라는 이야기요.”
“뭐야. 다 들었잖아!”
마리는 천천히 소야에게 다가가 그러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소야 양, 우리가 용사임을 드러내서는 안 돼요.”
“왜?”
“정치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세요.”
정치적인 문제라. 소야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발자국 물러섰다.
“뭐, 정치적?”
“용사는 권력자들의 왕좌를 부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왕과 다를 게 없는 존재예요.”
“알아, 나는 그럴 계획이거든. 용사로 공표받아서 세상을 바꿀 거야. 초인 길드와 세가가 아직도 저런 짓을 계속하는데… 으, 으악!”
물러서다가 난간에 걸려 휘청거리는 소야. 그런 소야를 붙잡은 건 당연히 소야 뒤에 서 있던 하얀 소년이었다. 소년은 “휴우- 다행이다.”라고 한숨을 쉰 후 말을 이었다.
“소야, 그런 점 때문에 안 된다는 거야.”
“왜? 우리의 힘이라면 충분히 그들을 쓰러트리고…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데…….”
레프리는 잠시 먼 곳을 바라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옛날, 너랑 똑같은 생각을 했던 용사가 있었어.”
“나랑 똑같은 생각? 누군데?”
“너도 알 거야, 서천 유가의 선대 가주, 마리의 조부를.”
전대 용사, 서천 유가의 시조. 소야는 역사책에서 봤던 그자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직 이 세상에는 어둠의 카르마가 너무 강해. 세상의 방식대로 세상을 바꾸려고 하면, 결국 우리는 세상 그 자체가 되고 말 거야.”
“나는, 서천 유가의 가주와 다른데…….”
정말로 다를까.
소야는 차마 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 가주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알았어. 용사라고 말하고 다니지 않을게. 그냥 레프리만 곁에 있어 준다면, 다른 건 상관없어.”
자신에게는 레프리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붉어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조심스럽게 챙을 내리는 소야. 소야는 손이 꼼지락거리며 허공을 헤매다, 살며시 레프리의 손을 붙잡는다.
그 모습을 본 홍월이 한마디를 툭 던진다.
“윽, 저 꼬맹이 용사라고 말하고 다니게 하는 편이 더 좋았을지도.”
“뭐라고?”
“아냐, 아냐. 그리고 왜 소야만 손 잡아 줘? 나도 잡아 줘!”
정말 따뜻한 손이었다.
친구들의 온기를 느끼며 레프리가 말했다.
“꼭 용사로 인정받아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우리가 잊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거든.”
레프리는 날개를 펼쳤다.
비록 카르마로 이루어진 날개라 대부분의 사람이 보지 못했지만, 누군가 필요한 사람은 반드시 느낄 만한 그런 따뜻한 날개.
“우리 지각 직전이야! 마리야! 너도 빨리 내 손 잡아!”
그렇게 다시 한번, 날개를 펼친 천사가 세상을 향해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