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ngel lives in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08
209화 날개를 펼치는 천사 (4)
전력을 다하는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최고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가 그렇고, 찰나를 걸고 회피 기동을 하는 전투기 또한 그렇다.
과열되는 기관과 터질 듯한 엔진.
마왕 또한 다르지 않았다. 자신과 감응할 수 있는 모든 카르마와 감응한 이 순간은, 한 순간 한 순간이 자신의 영혼을 걸고 도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자신의 통제 능력을 넘어선 카르마의 힘. 아무리 마왕이라고 해도 이 모든 힘을 복종시킬 방법은 없었다.
증오와 한, 그저 그런 단어로 표현해서는 안 되는 것들. 그 지독하고 슬픈 힘이 마왕의 영혼을 붕괴시키기 위해 날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왕은 바보가 아니다. 전력을 다하는 것에 이런 대가가 따른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자, 보렴.”
하지만 마왕은 망설이지 않고 그 대가를 지불했다. 지금 자신이 휘두르고 있는 이 힘은, 이 전지전능에 가까운 힘은 영혼이 뭉개지는 대가를 치르고도 얻을 만한 힘이기에.
“믿을 수 없는 이 힘을 봐.”
현실은 마치 축구공에 부딪친 유리창처럼 깨져가기 시작했다. 금이 간 현실 사이로 카르마의 원류가 스며들어 모든 종류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날개를 펼친 천사는 사람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뭐든지 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 뭐든지 할 수 없게 된 사람에게 저지르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그건 지옥이었다.
“이 믿을 수 없는 힘을 보고도 계속 싸우고 싶은 거야?”
“그래도, 나는 싸울 거야.”
마왕과 천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왕은 싱긋 웃으며 손가락 끝을 까딱거리는 것만으로 레프리의 날개를 차원째 찢어 버리려 하였다.
시간 그 자체를 찢어 버리기에 피할 수 없고, 현실 그 자체를 뭉개 버리기에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날개를 펼친 천사는 자신의 날개를 접지 않았다.
레프리는 마왕과 맞서 싸웠다.
“난, 믿고 있으니까.”
무얼 믿는다는 걸까.
모든 걸 아는 마왕은 모든 걸 알기에 아무것도 믿을 수 없었다. 모든 걸 깨달은 마왕은 레프리가 무얼 믿는다고 말하는 건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헛소리.”
사악- 마왕의 손이 허공을 가로로 갈랐다. 손의 궤적을 따라 붕괴되어 가는 현실. 그 궤적에는 분명 레프리의 날개가 닿아 있었다.
하지만 현실 그 자체가 붕괴해도 레프리의 날개는 여전히 활짝 펼쳐져 있었다.
“믿을 수 없어.”
그 모습을 본 마왕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는, 이 세상에는 사람들을 돌보는 자상한 신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단 말이야.”
어둠에 물든 소년이 외쳤다.
“네가 지키는 소녀들이 아픔을 겪어도, 아니 설령 살해당해도 저 하늘이 눈물 한 방울 흘려 줄 것 같아?”
날개를 잃어버린 소년왕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절대, 절대 그렇지 않아! 레프리, 넌 도대체 뭘 믿는 거야?”
“하늘이 눈물 흘려 줄 필요는 없어.”
레프리는 눈을 감았다.
“그 아이들 대신 내가 대신 울어 줄 거고.”
눈을 감아야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자기가 지키고 싶었던 그 어린 용과 용의 딸 그리고 아름다운 고양이와 귀여운 흑마법사까지.
“내가 대신 그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 줄 거니까.”
레프리는 다시 눈을 떠 세상을 바라봤다.
“그리고 설령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분명, 그 아이들을 악몽에서 달래 줄 테니까.”
레프리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누군가가, 그래 줄 거야.”
“진실이 아니야. 근거가 없어. 허황된 믿음일 뿐이야.”
마왕은 자신의 두 손에 카르마를 응집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봐준다는 의미를 넘어서 죽여서라도 그 믿음을 없애겠다는 의지가 담긴 주먹.
너무도 조밀하게 밀집된 카르마가 주먹 주변의 공간을 뒤틀어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 낼 정도였다. 하지만 레프리는 그런 힘 앞에서도 미소 지었다.
“마왕.”
미소 짓는 레프리가 말했다.
자신을 악몽에서 깨워 주던 그 손길을 레프리는 절대 잊을 수 없었다.
“너는 기적을 본 적 없구나.”
마왕은 그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 세상 모든 걸 깨달았기에 마왕에게는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마왕은 대답 대신 주먹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현실을 없애는 것으로도 없앨 수 없는 날개라면 현실을 뒤틀어서라도 저 날개를 레프리의 등에서 떨어트리겠다. 자신이 분노하는 이유도 알지 못하는 마왕은 레프리의 날개를 두 손으로 쥐어뜯으며 말했다.
“이 세상에 기적 따위 없다.”
마왕은 누구보다도 강한 존재, 날개를 펼친 천사라고 해도 마왕을 이길 순 없는 법이다. 검과 방패, 마법과 수하를 잃어버린 마왕이라고 해도 레프리의 날개를 뜯는 건 몇 초 걸리지 않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그 사실을 내가 지금 증명하겠다.”
천사는 마왕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마왕을 물리칠 수 있다고 알려진 전설적인 존재가 있었다.
레프리의 날개가 뜯기려는 그 순간, 마왕의 손을 억세게 묶어 가는 검은 사슬.
“레프리, 내가 혼자 가지 말랬지? 그건 그렇고 너, 날개가.”
너무나 반가운, 울먹거리는 소녀의 목소리에 레프리는 고개를 돌렸다.
“소야……!”
“소년, 나도 있다고.”
츄릅, 하는 소리에 레프리는 소야의 허리를 붙잡고 있는 누군가를 볼 수 있었다. 분홍색 꼬리를 바짝 세운 채 의미 모를 군침을 흘리는 미소녀, 홍월이었다.
“그건 그렇고 소년, 참 탐스러운, 아니 보드라운 날개를 가지게 됐구나.”
“어, 어, 이 고양이 눈동자가 왜 커지지?”
“나, 나는 지금 당장 뛰어들어서 레프리를 붙잡고 웅냐냐 하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조금도 안 했어!”
마왕을 물리친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존재.
사람들은 그 존재들을 용사라고 불렀다.
“용사……!”
마왕은 투닥거리는 두 소녀를 보고 증오를 숨기지 않은 채 말했다. 그리고 두 용사 또한 마왕을 보고 경멸을 숨기지 못했다.
“흥, 마왕, 너같이 찌질하게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게 어둠의 주인이라니. 존재 자체가 흑마혐오적이잖아.”
“히, 딱 보니까 알겠네. 소년이 마음을 안 받아 줘서 이렇게 분노하는 거구나? 너 같은 걸 요즘 말로 얀데레라고 하나?”
“뭐? 내가? 그건 내가 너희들에게 할 말이야!”
그리고 마왕은 주먹을 내질렀다.
마왕은 강했다. 주먹을 내지르는 것만으로도 백 보 넘게 떨어져 있는 용사들의 현실을 붕괴시킬 정도로 강했다.
용사들이 피하는 걸 보자마자 유려하게 허리를 뒤틀더니, 용사가 피할 각도를 카르마로 읽어 내 그 방향으로 길게 허공을 내리쳤다.
현실이 마치 불타 버린 종이처럼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왕은 계속해서 그 종이가 재가 되고 완전히 먼지로 화할 때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오직 진실만 존재할 뿐.”
이제는 불확실한 믿음이나 기도 같은 건 하나도 남겨 두지 않겠다.
“오직 진리만이 존재할 뿐, 믿음 같은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하아- 하아- 카르마에 의해 불타는 두 손을 바라보며 마왕은 미소 지었다. 언제부터 자신의 손이 불타고 있었지?
카르마를 다루다 과열되고, 과열된 걸 넘어서 불타기 시작한 손.
카르마의 원류에 의해 망가진 손은 마왕의 권능으로도 치유하기 쉽지 않았다.
“…복구 못 할 수도 있겠네.”
마왕은 스스로를 관조했다.
지금 너무 흥분한 상태야. 어떤 대가 없이 카르마의 원류를 다룰 수는 없어. 그래도 이 정도의 대가라면 싸게 먹힌 거야.
그래, 고작 두 손으로 두 명의 용사를 죽였다면 값싼 대가일 것이다.
하지만 용사들은 멀쩡했다.
“환영이었구나.”
마왕은 그런 용사들을 보고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마의 원류를 통해 현실을 붕괴시키는 먹칠 따위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신기야.”
“자기 스스로 신기 같은 소리를 하면 부끄럽지도 않나.”
마왕은 홍월의 비꼼에 반응하지 않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카르마를 다루는 자라면 카르마를 걷어 내어 먹칠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카르마를 읽는 자라면 칠해질 어둠의 카르마를 느끼고 피할 수도 있어. 하지만 말이야.”
마왕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워 보였다.
“카르마의 원류를 이용해 현실을 붕괴시키는 기술은 카르마로 읽을 수 없어. 나조차도 저 복잡한 원류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데 너희 같은 병아리들이 읽을 수 있을까?”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소야가 묻는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너희는 내 의도를 읽었겠지. 무리를 해서라도 현실을 붕괴시켜서 너희를 멸하려는 나의 계획을.”
마왕은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현실을 붕괴시키는 기술은 카르마로 읽을 수 없다고. 그런데 너희들은 어떻게 내 의도를 읽을 수 있었을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마왕은 망가진 손을 장갑으로 감추었다.
꼼지락꼼지락,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는 마왕의 손가락.
“의도를 읽은 너희는 환영을 세워서 나를 도발했지. 내가 환영에게 온 힘을 쏟아 내게 만들 목적으로 말이야.”
“그걸 알고도, 그런 무리를 한 거야?”
“응.”
그제서야 용사들은 자신의 등 뒤로 현실이 붕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도망치지 못하겠네.”
“진짜, 이런 허접한 방식으로는 안 될 거라고 했잖아, 소야.”
“그, 그럼 네가 좋은 생각을 내든지…….”
마왕의 음산한 미소를 보자마자 소야는 후다닥 홍월의 등 뒤로 숨고 말았다. 홍월은 그런 소야를 느끼곤 ‘빌어먹을, 아직도 준비 중이냐.’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두 검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마왕도 손을 들었다.
“이제 끝이야.”
그 순간 어둠이 갈라졌다.
그건 마치 여명을 알리는 한 줄기 빛처럼 수평선에서 저 반대편 지평선까지 한순간에 세상을 꿰뚫었다.
그 빛은 너무나 눈부셔 마왕조차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눈을 가릴 정도였다.
“아슬아슬했잖아, 성녀.”
세상을 환히 덮은 이불 같은 빛을 보며 홍월은 중얼거렸다.
이 세상에는 마검이라는 특수한 검이 존재한다. 초인 검사의 무기가 되는 이 검에는 마력이 담겨 있기에 마검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그 모든 마검의 원형을 진마검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신성력이 담긴 검들이 있었다. 이단 심판의 검, 플라벨룸 같은 검이 바로 그렇다.
이런 신성력을 담은 검의 원형 또한 존재했다. 사람들은 그 검을 성검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클라인 교수는 언젠가.
이 성검을 이용한 미사일을 구상한 적이 있었다.
“마도 추진체 미사일인가.”
바로 지금 이 순간 사용하기 위해서 말이다.
“흐, 성검을 사용할 자가 없으니 이런 하찮은 수를 사용하는 건가.”
비웃음을 잔뜩 머금은 마왕은 무의식으로 진마검을 불렀다. 성검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오직 진마검이기에 마왕의 선택은 틀린 게 아니었다.
진마검이 아직도 존재했다면 말이다.
“아.”
자신의 손이 비어 있는 걸 본 마왕은 그 순간 깨달았다. 이미 진마검이 망가지고 부서졌음을 말이다.
푸욱-
깊게 찔러 들어 가는 소리.
지금껏 생채기 이상의, 한 호흡만으로 치유할 수 있는 상처 이상의 부상을 허용치 않았던 마왕에게 큰 상처가 하나 생기고 말았다.
마왕을 무찌를 수 있다는 성검.
그 성검이 마왕의 명치 깊숙한 곳을 찔러 들어 가 반대쪽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그 안에 담긴 성녀의 신성력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믿음을 잃어 변질되고 만 신성력이 아니라, 옛날 천상에게 선택받은 성녀라고 불렸던 그 시절의 신성력.
그래, 성녀도 다시 믿음을 찾았다.
그리고 그 믿음 전부를 성검에 담았던 것이다.
“아니야아아아아아아!”
하얀 불꽃에 불타오르며 마왕은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