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323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323화
* * *
“사장님. 무슨 소리 안 들리십니까?”
“내 방구 소리였을 거다.”
뿡-!
“아뇨, 방구 소리 말고요.”
휘이잉-!
“지금 이거요!”
“무슨 소리지?”
“들으셨습니까?”
“듣긴 했다만 뭔 소린지 잘 모르겠네.”
“벌떼 날아가는 소리 같지 않습니까?”
“여기에 벌떼가 있을 리가 없잖아.”
퉁명스럽게 일축한 황태수가 갑자기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사장님 왜 그러십니까?”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크헉!”
황태수가 한차례 비명과 함께 축 늘어졌다.
“사장님!”
깜짝 놀란 김시현이 황태수를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져 버렸다.”
“졌다니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져 버렸어. 그러니 난 이걸 꼭 해야만 한다. 아까 벌떼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지?”
휘이잉-!
“예. 마침 지금도 들리네요.”
“그거 벌 맞을 거다. 여기에 린스가 있으니 벌이 안 꼬일 수가 없는 거지.”
“린스요?”
“그것은 바로 나라는 프린스…….”
말을 한 황태수가 혼자 끅끅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김시현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사장만 아니라면 한 대 치고 싶다는 눈빛이다.
“……젠장. 미안하다. 아무래도 누구한테 옮았나 보다.”
“외람되지만 박 선생님하고는 그만 어울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간언입니다.”
나도 그러고 싶다.
황태수는 할 말을 꾹 삼켰다.
하필 옮아도 이딴 게 옮는단 말인가?
“허억!”
자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고형건이 비명을 내질렀다.
“이 자식아, 미안하다. 미안해. 그렇다고 비명까지 지를 필요는 없잖아!”
“아뇨, 그게 아니라 저기, 저기 좀…….”
고형건이 뒷걸음질치며 황태수의 뒤를 가리켰다.
“그거 안 지겹냐. 이제 안 낚여.”
김시현은 장난이라 여기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마 뒤를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을 거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다며 다시 고개를 돌린 순간 볼 수 있을 거다.
가운데 손가락을 들고 있는 고형건을.
한두 번 당한 게 아니다.
다만 황태수는 아니었다.
정직하게 고개를 돌린 황태수.
그는 곧 기함을 터뜨렸다.
“허업!”
사람은 누구나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세기적인 살인마라던가 악명 높은 독재자들이 왜 먼 훗날 노인이 되면 종교에 귀의하겠는가?
비단 살인마나 독재자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죄책감이 존재한다.
상대는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나는 느끼고 있는 죄책감.
지인을 몰라도 나는 알고 있는 일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이 죄책감들을 떨치기 위해 교회나 불교를 믿는 거다.
사후에 고통받지 않길 바라며.
그런 의미에서 황태수는 교회 다니자는 아내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은 걸 후회했다.
왜냐하면…….
“천사!”
천사가 강림했으니까.
아마 벌떼 날아가는 소리는 저 천사가 강림하면서 내는 테마곡이었으리라.
프로레슬링 선수들이 등장할 때 나오는 테마곡 같은.
아무리 천신이라도 이런 생각을 읽어 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포페리온은 황태수의 얼굴에서 이 인간 따위가 자신을 모독하고 있는 상상을 하고 있단 사실을 직감했다.
감히 신성한 라탄 강의 신인 자신을 말이다!
“인간이 어찌 천신을 모독한단 말인가. 그 죄 죽음을 받게 하리.”
천성검을 꺼내든 포페리온은 망설이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휘익!
“……!”
시간의 흐름이 점점 느려지며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제길 왜 하필 여기서 개죽음을 당하는 걸까.
이건 다 악마 때문이겠지?
그래, 악마 때문이다. 악마 때문이 아니래도 악마 때문이다.
‘죽기 싫은데.’
국회의원 배지는 달아 보고 죽고 싶었다.
그래서 한번 국회에서 싸움도 해 보고 싶었단 말이다.
법안 발의는 몰라도 주먹 발의는 자신이 있으니까.
한데 그 꿈, 이제 못 이루게 생겼다.
여기서 죽다니!
이딴 아공간에서 죽음을 맞이하다니!
눈물이 찔끔 새어나온 그 순간.
황태수는 모순을 느꼈다.
‘왜 이리 느리지?’
시간의 흐름이 점점 느려진 건 죽기 직전 본다는 주마등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마등이 다 스쳐 지나갔는데도 여전히 시간의 흐름이 느리다.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그걸 인지한 순간 시간의 흐름이 다시금 빨라졌다.
채앵!
그러더니 천사가 들고 있는 검이 갑자기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그나저나 왜 이래.’
천사의 표정이 한껏 일그러져 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일그러진 게 아니라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천사가 왜? 뭐가 무서워서?
해답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커헉!”
한차례 휘청거린 천사가 컥컥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천사의 목이 날카로운 무언가에 관통되어 있었다.
그리고 뻥 뚫려 훤히 보이는 구멍 너머로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그건 다름 아닌.
“사장님?”
털썩!
천사가 쓰러졌다.
그러더니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촉수가 천사를 칭칭 휘감고는 그 생기를 쪽쪽 빨아들였다.
“사장니이이이임!”
인지부조화가 일어난 것도 잠시.
이내 상대가 누군지 인지한 순간 황태수는 반색하며 달려나갔다.
오늘만큼 악마가 반가웠던 적이 있을까?
오늘만큼 악마 녀석에게 뽀뽀를 잔뜩 해 주고 싶은 적이 또 있었을까?
단언컨대 없었다.
말로 형용 할 수 없을 만큼 반가웠다.
“어떻게 사장님이…….”
“정말 이서준 사장님 맞으십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고형건과 김시현은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눈앞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그 이서준 사장이다.
한데 이서준 사장이 천사를 쓰러뜨렸다.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분명하다.
여기서 이변이 발생한 거라고는 이서준 사장이 등장한 것 뿐이었으니까.
“말씀드리자면 깁니다.”
“아니, 어떻게 된 겁니까? 사장님이 저 천사놈 쓰러뜨린 거 맞죠?”
“어떻게 여기 들어오신 겁니까? 혹시 나가는 방법도 알아요?”
귀가 따가울 만큼 떽떽거리는 목소리들.
황태수는 귓구멍을 후비며 서준에게 말했다.
“이 자식들 기절시키면 안 됩니까? 너무 시끄러운데.”
안 그래도 그러려고 하던 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라누스의 아공간이 아닌 자신의 아공간으로 피신시키려고 했었다.
서준은 고형건과 김시현을 기절시킨 뒤, 자신의 아공간으로 보냈다.
“전 사장님이 절 구하러 와 주실 줄 알았습니다! 이 은혜…… 백골난망이옵니다요!”
서준은 굳이 황태수의 오해를 바로 잡아 주진 않았다.
“그런데 형건이랑 시현이는 왜 아공간에 집어넣으신 겁니까?”
“거기가 안전하니까.”
“아, 안전?”
“…….”
“근데 왜 저는 안 보내 주십니까요?”
“정원 초과라서?”
“하…… 하하하! 사장님 농담도 참. 아공간에 정원 초과가 어디 있습니까요.”
“없지.”
“헤헤. 역시 사장님의 조크는 세계 제일입니다. 배꼽이 빠질 뻔했습니다요. 이제 저도 보내 주시는 거지요?”
“아니.”
“하하하. 농담이시죠?”
“아니. 해야 할 일이 있다.”
“무슨 해야 할 일이요?”
“무슨 해야 할 일이겠습니까. 마신과 함께 소멸되는 일이겠지요.”
언제 왔는지 모를 트빌론이었다.
긴장이 감돌았다.
서준은 트빌론과 천신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뜬금없이 황태수에게 반지를 건넸다.
황태수가 의아해하며 반지를 받았다. 자색 빛이 감도는 영롱한 반지였다.
“이걸 왜……?”
“이걸 보여 주면 알아서 할 거다.”
“에? 보, 보여 줘요? 누구한테요?”
그 순간 아공간이 열렸다. 열린 아공간에 황태수는 반색했다.
방금 악마가 말한 ‘안전한 곳’이 아닌가!
그럼 그렇지, 역시 정원 초과는 농담이었다.
‘농담할 게 따로 있지. 이걸 확 당수로 울대를 가격해버릴까 보다. 근데…….’
희희낙락해 하던 황태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 천사 놈들하고 혼자 싸우려는 건가.’
천사들은 하나같이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굉장한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게다가 천사와 악마다. 천사와 악마의 대결에서 천사가 승리하는 건 너무 뻔한 결과 아닌가?
“사장님은 안 가십니까?”
“괜찮으니 어서 가라.”
“하, 하지만…… 가, 같이 가시죠. 여긴 안전하다면서요?”
“시간이 없다. 어서 가라. 가서 방금 그걸 보여 줘라.”
“사장님…….”
황태수는 새삼 서준을 눈에 담았다.
‘시펄.’
이대로 헤어지면 영영 못 만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자 그새 정이 들었는지 울컥했다.
같이 가자는 제안을 거절한 것도 자신 때문이겠지.
‘나라도 살려 보내려고…….’
감동이 물밀 듯 밀려왔다.
그래, 그러고 보면 악마는 말이 악마였지, 늘 인간미 넘쳤다.
따지고 보면 악마와 첫 단추를 잘못 꿴 것도 자신이지 않았던가.
채권자랍시고 악마의 동생을 괴롭혔고, 그걸로도 모자라 가게에 찾아가 난동을 부렸다.
그게 우연히 그 모습을 목격한 관리국 직원에게 저지 당하자, 뒷골목에서 은밀하게 기다렸다.
복수를 하려고.
물론 복수는커녕 손도 못 댔다.
응급실에 실려만 갔었지.
하지만 진짜 악마였다면 응급실에만 보냈을까?
아니…… 진짜 악마였다면 자신이 복수하게 할 여지라도 남겼을까?
처음부터 후환을 제거해 버렸겠지.
게다가…….
‘생각하면 악마 녀석 때문에 나도 이만큼 컸지.’
늘 부정하고 부정했다.
나는 나 스스로 큰 거라고.
거기에 누구의 도움도 없었다고.
하지만 나 자신은 속일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은 일종의 합리화였다.
악마를 만나고 괴물을 만나며 심성이 조금씩 바뀌었다.
그러면서 과거에 벌였던 행위들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양심의 가책이란 걸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해서 나 스스로 컸다고 자위하며 과거 벌였던 나쁜 행위들을 정당화시켰다.
양심의 가책을 무시한 채…… 과거 내가 벌였던 행위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란 합리화를 하며…….
그러나 말했듯 그건 합리화였다.
자신은 혼자 크지 않았다.
과거 벌였던 나쁜 짓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악마라 부르던 이 녀석이 없었다면, 자신은 아직도 빌빌거리며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었을 것이었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한 채, 사람답지 못한 짐승의 삶을 살면서…….
그렇기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말을 하고 싶었다.
“사장님…….”
“음?”
“그간 정말, 정말 감사했습니다. 부디…….”
꽈드득!
황태수는 이를 꽉 깨물었다.
울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기어이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크흑! 부디 살아 돌아오십시오!”
그렇게 말한 황태수는 아공간으로 뛰쳐 들어갔다.
왠지 서준의 대답을 들으면…… 아니, 목소리를 들으면 더 추한 꼴을 보일 것 같았다.
아공간으로 들어가며 황태수는 기도했다.
제발 저 악마가 이기길.
천사와 악마의 대립에서, 악마도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길.
황태수가 아공간으로 들어가자, 장내에는 천신들과 서준만 남게 되었다.
“그건 무엇입니까?”
“아까 미처 못한 질문에 대한 답.”
트빌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질문에 대한 답?’
-어떻게 마신의 위(位)에 오른 것입니까? 라카사의 목걸이만으로는 부족했을 텐데요.
의아했다.
어째서 저 아공간이 이에 대한 답이란 말인가?
‘알려 줄 생각이 없다는 게로군.’
냉소한 트빌론이 천성검을 꺼냈다.
이제는 끝을 내야 할 때였다.
* * *
“크흑…….”
황태수가 울먹거리며 눈물을 소매로 훔쳤다.
“사장님…… 꼭 돌아오십시오, 꼭.”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황태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뭐지.”
이상했다.
원래 아공간이 이랬던가?
왠지 아공간이라기 보다는…… 황무지?
아니다, 지옥?
그래, 지옥.
지옥 같은 느낌이다.
자줏빛 하늘에는 이글이글 열화가 타오르고 있었고 곳곳에는 뇌외한 기암절벽들이 펼쳐져 있었다.
게다가 강에는 시뻘건 마그마가 흐르고 있었으니 지옥이 아니면 뭘까.
궁금하긴 했지만 의문은 나중에 풀기로 했다.
“시현아! 김시현! 형건아!”
그는 정처없이 걷고 또 걸으며 먼저 아공간에 들어간 고형건과 김시현을 찾았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헉헉.”
땀이 비오듯 흘러내리고 목은 갈증에 타들어 가는 듯 했다.
“이 자식들 어, 어딨는 거야…….”
헥헥거리며 한숨을 내쉬고 있는 그때였다.
갑자기 구리구리한 냄새가 풍겨 왔다. 그러더니 어디선가 날파리와 벌레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샤샤샥!
샤샥-!
“악! 뱀!”
황태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날파리와 벌레에 이어 뱀까지.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
“확실해. 마신님의 체취야.”
“그럼 이분은 마신님이 보내신 분?”
매혹적인 목소리에 황태수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
그리고 고개를 돌린 덕에 날파리와 벌레, 뱀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있었다.
“마신님이 보내신 분이신가요?”
“말씀해 주세요. 마신님께서 저희도 데려오라 하시던가요?”
…….
“시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