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322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322화
* * *
이러한 아르코누스들의 소극적인 자세는 서준에게 시간을 벌어 주었다.
‘놈들을 아공간으로 유인만 할 수 있으면 될 텐데…….’
아공간은 말 그대로 아(亞) 공간이다.
아(亞)의 아(亞)를 만드는 게, 그리고 그 아(亞)의 아(亞)를 창조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물론 서준은 늘 똑같은 아공간만 만들어 냈었다. 편의상 그런 거였다.
그가 열 수 있는 아공간은 무수하다.
그리고 서준이 아공간에 집착하는 건, 아공간의 특성 때문이었다.
아공간은 창조자의 의지에 따라 그 환경이 변화한다.
하여 그 의지에 의해 지옥의 도륜옥(刀輪獄)처럼 검이 비처럼 쏟아지는 환경이 될 수도.
반복적으로 찢겨진 입에 펄펄 끓는 쇳물만 마시게 되는 규환옥(地獄喚)이 될 수도.
아니면 고통과 질병이 없고 굶주림과 가난도 없는 천국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 덕에 아공간으로 유인한다면 환경에 의한 변칙적인 공격과 심리적인 공포도 줄 수가 있었다.
게다가 서준은 천신들과 달리 아공간에서의 전투가 익숙했다.
자주 해 왔었으니까.
다만 천신들도 바보는 아니다.
아공간의 특성을 모르지 않으니, 유인한다 해도 아공간까지 순진하게 따라오진 않을 터였다.
‘그 수를 조금만 줄여도 숨통이 트일 텐데.’
지금 천신들은 기세가 한풀 꺾인 상태다. 그래서 주저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헤르페테론이 다시금 성법을 시전한다면 금세 사기는 오를 거다. 그리고 그 상태로 일시에 휘몰아친다면…….
어렵다.
물론 많은 천신들을 저승길 동반자로 데려갈 순 있겠지.
하지만 그 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그것’을 사용할 수도 있다.
아직 여기서는 시험해 본 적이 없어 될는지는 미지수지만…….
물론 ‘그것’이 안 된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자화(自火)의 권능을 사용할 수도 있긴 하다.
자화란 이름처럼 스스로를 불태워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권능이었다.
이 권능이라면…….
그래, 모르긴 몰라도 여기 있는 천신들 3분의 2는 저승길 동반자로 데려갈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 여파는 이 나라도 통째로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터.
그건 자화의 범위를 최대한 축소시킨다 해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자화의 범위를 축소시킨다면 천신들은 그 피해를 흘려보낼 수 있게 될 거다.
결국 애꿎은 사람들만 죽게 된다는 소리다.
‘자화의 권능을 사용하더라도 아공간에서 사용해야만 한다…….’
아공간이라면 특성을 이용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자화로 최대한 많은 천신들을 섬멸할 수도 있었다.
아니, 굳이 자화까지 안 가도 된다.
창조자의 의지에 따라 변화하는 아공간을 이용해 뇌옥을 만들어 버릴 수도 있었다.
감히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아공간이라는 뇌옥에 그들을 가두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 경우에는 자신도 갇히게 되겠지만…….
어쨌든 그리만 된다면 그들이 이 땅을 어쩌지는 못 하게 될 거고.
‘젠장.’
고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말했다시피 천신들도 이러한 것들을 모르지 않는다.
굳이 따라올 이유가 없는 셈이다.
그러다 서준은 문득 아까 통화 때 황태수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아공간에서 어떻게 살 만하겠습니까!
그래, 황태수는 분명 아공간이라 했다.
‘이거면 될지도.’
서준은 사신의 권능을 사용했다. 검은 그림자들이 서준의 몸에서 빠져나가더니 천신들을 한순간에 쓱 훑었다.
“어딜!”
화악-!
사신을 볼 수 있는 상급의 천신들은 노호를 터뜨리며 사신을 한 줌 연기로 흘려보냈다.
하지만 모든 천신들이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사신들이 성력이 약한 천신을 찾아냈다.
사신들이 집어 낸 천신은 모두 여섯 명이었다.
여섯의 천신 중에 서준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천신을 바라봤다.
저 이름 모를 천신의 아공간으로 침투한다. 그래서 저곳으로 천신들을 유인한다.
아공간은 사념과 의지의 집약체였다.
창조자의 사념과 의지가 깃들었기에 타인이 어쩌지 못하는 것이지만…….
다만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순간 서준의 눈이 검게 물들었다.
그 눈과 마주한 천신은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너의 의지를 나에게 바쳐라.
섬뜩한 기분에 이어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로 전달되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말로 형용할 순 없지만 마치 오감을 통해 전달되는 목소리 같았다.
몸이 나른해지더니 정신은 몽롱해졌다. 그러고는 잠이 몰려왔다.
예의 천신은 잠을 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아니, 감으려 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헤프레테론이 외쳤다.
“라누스, 눈을 감지 마라!”
눈을 감지 말라고? 왜?
“스스로를 마신에게 바칠 셈이더냐!”
마신에게 바친다?
아니, 그럴 리가…… 난 그저 잠을 자고 싶을 뿐이다.
잠깐만 잠을 자는 게 마신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스르륵-.
결국 라누스가 눈을 감았다.
“안 돼!”
라누스의 자아와 의지를 잠식한 서준은 빠르게 라누스의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아공간으로 뛰어 들어갔다.
“쫓으시오!”
“지금 후환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오!”
전사장들이 휘하의 천신들을 이끌고 그를 뒤쫓았다.
“모두 멈…….”
깜짝 놀란 트빌론이 이를 제지하려 했지만, 모두를 막진 못했다.
일부 전사장과 휘하의 천신들이 아공간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제길.”
남게 된 천신들이 일제히 트빌론에게 시선을 옮겼다.
왜 말렸냐는 의문과 이제 어떻게 해야 되냐는 질문이 담긴 눈빛으로.
“왜 그러십니까?”
그런 시선들을 대표해 헤르페테론이 물었다.
“마신이 라누스의 아공간을 이용하지 않았소.”
“한데요?”
“무슨 계획이 있기 때문일 터인데 어찌 함부로 따라갈 수 있겠소이까. 위험하오.”
“거창한 계획이랄 게 있겠습니까. 아공간의 특성을 이용하기 위해 전투 장소를 옮긴 거겠지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헤르페테론이었다.
“그러니 문제라는 거요.”
“그래서 쫓지 말자는 겁니까?”
“그건 아니오만…….”
“아공간의 특성을 이용해 봤자 독 안에 든 쥐입니다. 우리가 일시에 덮친다면 어찌 승산이 없겠습니까.”
“흐음.”
“머뭇거릴 때가 아닙니다. 먼저 들어간 이들이 각개격파당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림잡아 절반의 천신들이 진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뛰어 들어갔으니 말이다.
시간을 끌수록 각개격파당하는 이들이 늘어날 터였다.
다만…….
“마신이 라누스의 아공간을 이용한 건, 아공간의 특성을 이용하기 위함만은 아닐 거요.”
“그럼 뭐가 또 있단 말입니까?”
“숙련도.”
“예?”
“마신은 아공간에서의 전투에 익숙할 거요. 하지만 우리는 아니지.”
마계는 전쟁이 일상인 세계다. 자연히 아공간을 이용한 전투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을 터.
하지만 천계는 아니었다. 천계는 마지막 전투가 수천 년 전일 정도로 평화로운 세계였다.
“걱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우리들도 함께하는데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그건 맞소만…….”
트빌론은 불길한 예감이 자꾸 머리를 치켜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자꾸 천계에서의 신탁이 떠올랐다.
불길함이 커져만 가는 가운데 참지 못한 헤르페테론이 소리쳤다.
“더 시간을 끌면 모두가 소멸될 겁니다! 나라도 들어가겠습니다!”
헤르페테론이 말릴 새도 없이 아공간으로 들어가자, 트빌론은 애써 불길한 예감을 떨쳐 내고 그를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헤르페테론의 말처럼 각개격파를 당할 순 없으니 말이다.
반면 서준은 라누스의 아공간에 들어오자마자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천신들의 아공간은 마족들의 아공간과 다르면 어쩌나 했는데 흡사했다.
이제 ‘그것’을 사용 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건 확인했다.
남은 건 ‘그것’을 사용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는 일이다.
그리고 그 최소한의 조건은…….
‘오는군.’
쐐애애액!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깃털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대를 소멸시키고 이 땅에 남아 있는 악 또한 함께 몰아내겠소!”
한 천신이 호기롭게 소리쳤다. 그러고는 동료들과 함께 뛰어들었다.
그 수는 서른 넷.
서준은 그들이 짓쳐 들기 전에 아공간의 환경을 바꿨다.
시각적으로 천신들이 마주 보기 꺼려 하는 마수들의 동상을 이곳저곳에 만들어 냈고 청각적으로 천신들이 듣기 싫어하는 데몬(Demon)과 파주주(Pazuzu)의 소리를 깔았다.
그리고 후각적으로는 천신들이 경멸하는 히포캄포(Hippocampu)의 체향을 퍼뜨렸다.
모두 아공간이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했지만, 때로 허상은 실상보다도 더욱 실상 같다.
특히 누가 만드냐에 따라서.
효과는 탁월했다.
호기롭게 달려들던 이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멈칫거린 것이다.
서준은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촤라라라락-!
서준의 날개에서 깃털들이 쏜살같이 쏘아졌다.
쐐애애액!
정신이 흐트러졌던 천신들은 황급히 성법을 시전했다.
허공에 수십 개의 방패들이 생겨났다.
쿠쿠쿵!
묵직한 충격에 천신들이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그 사이를 서준이 파고들었다.
서준의 손끝에서 불길이 피어올랐다.
불은 정확히 천신들에게 날아갔다.
“거, 겁화!”
“피하십시오!”
한 천신이 겁화를 알아보고 외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사라라락!
화륵!
성법을 시전할 틈도 없이 겁화가 천신들을 집어삼킨 것이다.
다른 천신들이 서둘러 고통에 몸부림치는 천신들을 살리기 위해 성법을 시전했지만…… 겁화는 괜히 겁화가 아니었다.
불은 끝끝내 꺼지지 않고, 천신들을 재로 만들 때까지 타올랐다.
순식간에 스무 명의 천신들이 한 줌 재가 되었다.
‘저, 저건 뭐란 말인가.’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전사장은 당혹을 금치 못했다.
겁화에 대한 당혹은 아니었다.
‘소, 소, 소멸을 했는데 어찌……?’
천신들에게 죽음이란 소멸이다. 그리고 소멸은 자연으로의 회귀를 뜻한다.
입자가 되어 흩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데 지금 이건 뭐란 말인가?
죽은 동료 천신들의 육신이 고스란히 남아 있지 않은가.
전사장은 이런 모습은 처음 봤다. 아르코누스들이라면 봤을지 몰라도 자신은 처음이었다.
‘어찌 이럴 수가…….’
놀라운 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솨라락!
갑자기 솟아오른 촉수가 죽은 천신들의 육신에 흡착하더니 그 생기를 빨아먹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에 시신에 그나마 남아 있던 생기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홀쭉해져 미라화(化) 되었다.
‘아공간이 천기를 흡수한단 말인가…….’
그렇게밖에 볼 수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말이 안 되니까.
그에 천신들의 뇌리에는 공포가 자리 잡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직 한참 모자라다.’
서준은 땅을 박차고 얼어붙은 천신들에게 뛰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