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마무리 (2)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카이루스는 일레나와 함께, 저택의 지하 창고에 서 있었다.
먼지 쌓인 책장을 바라보던 카이루스는, 천천히 책 한 권을 꽂아넣었다.
“이제 다 모은 거야?”
“거의 다 모았다고 볼 수 있지.”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팔짱을 꼈다.
페더윙이 멸망하며 뿔뿔이 흩어졌던 유산은 방금 전 책장에 꽂아넣은 한 권의 책으로 모두 모였다.
“다 모으는 데 5년이나 걸렸어.”
“5년밖에 안 걸린 거지. 내 남편은 가끔 부정적이라서 걱정이라니까.”
일레나가 카이루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카이루스 혼자 모은 게 아니라, 일레나와 함께 모았다.
“오늘 중으로 물자가 도착할 거야.”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아하, 하는 소리를 내고는 카이루스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내가 부탁했던 거, 까먹은 거 아니지?”
“동백기름과 정향기름. 안 까먹었어.”
검을 닦는 데 사용하는 기름이다. 일레나는 여전히 검을 수련한다. 이전 소유자인 다나 왓슨과는 달리 검 관리에 굉장히 신경 쓰는 편이다.
“날이 좋아야 할 텐데. 여기는 다 좋은데, 그런 게 문제라니까.”
카이루스와 일레나가 머무르는 저택은 두 사람이 구매한 약 300만 평 너비의 섬에 있다.
섬을 구매한 다음, 선착장이나 전신기 같은 온갖 인프라를 깔고 저택을 지어올려 만들어낸 보금자리다. 베넷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긁어모은 자금을 듬뿍 투자했다.
“새로 들어온 문하생들은 좀 어때?”
“눈에 차는 녀석은 없더라.”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가 피식 웃었다. 섬에 어느 정도 기틀을 잡은 다음, 일레나와 카이루스는 이전 페더윙 가문에서 하던 일을 계승했다.
페더윙의 검술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섬으로 찾아오면 된다.
“당신 눈에 차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내 옆에 한 명 있네.”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는 희미하게 웃은 다음,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편지가 한 통 왔어. 노라가 보냈더라.”
“취임식?”
일레나의 질문에 카이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시커의 사장이던 유니아는 일선에서 물러나고, 노라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로 결정되었다.
“놀랄 일은 아니네. 강하잖아.”
“강한 것도 강한 거고. 인맥의 영향도 있었겠지.”
노라 갈라테아는 페더윙 부부에게 마음대로 연락할 수 있고, 골치 아픈 베넷 시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루나시커의 사장이 되는 데에는 그녀의 뛰어난 실력도 고려되었지만, 그만큼이나 그녀의 인맥 또한 고려되었다.
“가끔 몸 풀 일이 생기겠네.”
일레나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문하생들 두들겨 패는 걸로는 성에 안 차지?”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는 말했다.
“여보가 제대로 상대해주면 문하생들은 괴롭히지도 않아.”
“아내를 때리라고? 그럴 수는 없지.”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픽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어젯밤에 휘두른 채찍은 뭘까?”
“즐거운 부부생활을 위한 향신료. 당신도 마음에 들어 했잖아.”
그런 실 없는 농담을 이어가며, 카이루스와 일레나는 함께 창고를 빠져나와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일은 좀 어때?”
“그냥,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정도지.”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작게 웃었다.
“이제는 여보를 원망하는 사람의 숫자보다, 고마워하는 사람의 숫자가 더 많지 않을까?”
섬을 구매하고, 저택을 지어올린 다음에도 돈은 잔뜩 남았다. 베넷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한 카이루스의 지갑은 사실 섬 하나 구매해서 개발했다고 거덜 날 정도로 얄팍하지 않았으니까.
카이루스는 남은 자금을 활용해 재단을 설립했다. 이름은 보금자리, 현재 다섯 곳의 고아원을 운영하는 중이다.
“그렇겠지. 날 원망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뒈졌으니까.”
원한을 가질 만한 사람들은 많았다. 누군가는 카이루스에 의해 부모를 잃었고, 자식을 잃었고, 친구를 잃었고, 애인을 잃었을 테니까.
그리고 그들은 카이루스와 마찬가지로 복수의 칼날을 갈고 덤벼들었다.
차이가 있었다면, 그들은 카이루스와 달리 실패했다는 점이다.
“죄책감은 느끼면서도, 죽기는 싫었던 거지.”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그의 코를 검지로 꾹 누른다.
“이렇게 예쁜 아내를 두고 어딜 가려고.”
그냥 죽어 줄 수는 없었다. 지금 카이루스가 손에 넣은 모든 것들, 그리고 함께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삶이 아니게 되었다.
“처음 질문이 뭐였더라. 아, 그래. 일은 어떠냐는 거였지.”
“맞아.”
“문제없지. 우리가 시작한 일이잖아.”
원래 카이루스가 가지고 있던 자금도 어마어마했지만, 거기에 더해 페더윙 부부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 또는 두 사람과 사적으로 연이 닿아있는 사람들이 후원금을 넉넉하게 지원하고 있다.
‘정 안 된다 싶으면 현 황제를 호출하면 될 일이니까.’
물론, 그건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일 뿐이다. 어차피 그것 말고도 이 섬에 페더윙의 검술을 배우러 오는 문하생들이 매달 지불하는 수업료도 있으니까. 발로른 제국의 국세까지 손을 댈 일은 아마 없을 거다.
“당신은 어때. 가르치는 것도 힘든 일이지?”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던 일레나가 대답했다.
“나는 교사보다는 학생이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아. 여보한테 배우던 시절이 좋았는데.”
“그럴 수 없는 거 알잖아.”
카이루스는 이제 일레나를 가르칠 수 없다. 실력을 따라잡혔다거나, 일레나의 실력이 더 뛰어나다거나 하는 이성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참 무르다니까.”
그냥… 카이루스가 일레나를 더 이상 엄격하게 조질 수 없게 되었다.
“베넷에서 활동 할 때만 해도 이렇게 정이 많은 사람인지는 몰랐는데.”
“정이 많은 게 아니라, 정에 굶주린 거지.”
가족이 전부 죽고, 노동교화소에서 버티다가, 베넷에 도착해서는 범죄자가 되었다.
이 모든 삶의 과정 속에서 카이루스가 정에 굶주리게 되는 것은 당연했지만. 그런 개인적인 욕구는 황제에 대한 복수심이 억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복수를 마쳤을 때, 그 동안 억눌렀던 욕구들이 마침내 자신들의 몫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정에 굶주린 것치고는, 친한 사람 별로 없잖아.”
“내가 무슨 개새끼냐? 사람만 보면 좋다고 꼬리를 흔들게.”
일레나가 웃으며 그의 입을 손으로 꽉 집고는 흔들었다.
“개새끼보다는, 새새끼 아닐까?”
“말하는 꼬라지 하고는.”
그렇게 소파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다. 가벼운 입맞춤이 점점 더 뜨거워져서 키스의 단계로 넘어갈 무렵.
카이루스는 괘종시계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이제 도착할 시간이네.”
날씨는 좋다. 배의 도착이 지연될 이유는 없었다. 일레나가 살짝 섭섭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유달리 화물에 신경을 쓰네.”
카이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굉장히 중요한 물건을 수송 중이다.
“시술 재료, 이제 다 모았거든.”
일레나가 눈을 크게 뜨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갑자기 다시 앉더니, 카이루스를 확 끌어안았다.
시술 재료라는 건, 페더윙의 시술을 받기 위해 필요한 재료들을 말하는 거다. 그동안 수집한 페더윙의 유산 덕분에 시술에 필요한 정보는 모두 알아냈다.
남은 건 실행에 필요한 뛰어난 실력의 시술자와 필요한 재료들 뿐이었다.
시술자는 카이루스와 일레나가 가지고 있는 인맥으로 어렵지 않게 해결이 가능했고.
재료만 찾아내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마침내 전부 모으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럼 드디어!”
카이루스와 일레나가 아이를 만들 준비를 끝낸 거다. 카이루스는 자신을 끌어안은 일레나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미안해, 내 욕심 때문에. 오래 기다리게 했네.”
“그런 소리 하지 마. 나도 내 아이들이 날지 못하는 페더윙이 되는 건 싫었어.”
시술 준비가 끝나기 전까지, 함께 밤은 보내도 피임은 반드시 유지했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카이루스를 꽉 끌어안고 있던 일레나가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카이루스와 눈을 마주했다.
“양은 어느 정도야? 한 번 쓰면 다시 모아야 할 정도야?”
카이루스는 고개를 저었다.
“열 번 정도는 더 가능할걸.”
“…나 조금 무서워지는데.”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가 그녀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우리 아이들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지. 설마 혼자 다 쓸 생각이야?”
“아, 그렇구나.”
이내 정신을 차린 일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언제 도착하는데?”
“지금 즈음이면 선착장에 도착해서 화물을 내리고 있을걸.”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코트를 입으며 말했다.
“가서 볼래.”
“그러자.”
카이루스는 일레나와 함께 선착장으로 향했다.
그가 예상한대로, 선착장에 도착한 배에서 생필품을 비롯한 온갖 물자를 하역하는 중이었다.
“어떤 거야?”
화물에 굉장한 관심을 보이며, 일레나는 옮겨지는 화물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그리고, 이내 목적한 상자를 찾아낸 일레나는 직접 그 상자를 들고 저택까지 옮겼다.
“생각보다 더 반응이 좋은데.”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상자를 조심스럽게 지하에 내려놓은 다음 대답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그리고는 뒤이어서 일레나가 한 일은 저택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을 모두 집합시킨 것이었다.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쉬세요.”
순간, 고용인들은 현재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막 오후 2시가 지나간 참이다. 근데 퇴근이라니.
“아니다. 아예 이번 기회에 다들 며칠 쉬다 오는 건 어때요? 배가 도착했으니 그걸 타고 나가서 간만에 푹 쉬고 돌아오세요.”
고용인들이 머무르는 숙소는 저택 외곽에 따로 마련되어 있다. 근무지가 섬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죠.”
카이루스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이 모든 일을 바람같이 처리하는 일레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용인들이 모두 섬을 떠나면 식사는 어쩌려고.”
“갑자기 식사 걱정을 하는 거야? 몇 년 전만 해도 아무거나 잘 주워먹었잖아.”
일레나가 슬쩍 눈을 흘겼다.
“청소는?”
“어차피 저택이 엉망이 될 텐데, 그냥 방치하다가 마지막에 한 번 싹 대청소를 하는 편이 효율적이잖아.”
왜 저택이 엉망이 된다고 하는 건지, 물론 카이루스도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약 한 시간 뒤에는 이 저택에는 카이루스와 일레나 단둘이 남게 되었다.
“각오는 했겠지?”
일레나는 그렇게 말하며 철컥, 저택의 문을 잠갔다. 눈만 봐서는 먹이를 앞에 둔 맹수와도 같았다.
“각오? 각오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당신이 이긴 적은 있어?”
카이루스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일레나를 바라보다가 그녀를 안아들고 침실로 향했다.
몇 개월 뒤, 페더윙 부부는 좋은 소식을 의사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그 후 간만에 지인들을 섬에 부르기 위한 초대장을 돌렸다.
그렇게 내일은 또 그 다음의 내일로 이어지며 나날이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언제나 행복하다고 하면 거짓이겠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부분은 행복으로 채워져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이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법 없이 사는 놈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