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200
1.
2018년 10월 27일.
뉴욕의 풍경은 이제 겨울과 진배없는 풍경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저마다 윗도리를 두른 채 하얀 입김을 간간이 토해내며 뉴요커답게 분주하게 발걸음을 놀렸다.
자동차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뉴욕답게 가지각색의 자동차들이 도로 위를 분주하게, 제 목적지를 향해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 있었다.
뉴욕의 택시기사인 알버트 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
손님을 찾아 헤매던 그는 이내 손님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손님 앞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손님이 차를 타는 순간 알버트 리는 잽싸게 백미러로 손님의 특징을 분석했다.
혹시라도 질이 안 좋은 손님이면 잽싸게 대비를 하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실제로 그 손님의 행색은 의심 가는 구석이 몇 곳 있었다.
목도리를 두른 채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심지어 선글라스마저 쓴 채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있었다.
솔직히 보통의 경우에 알버트 리는 그 손님을 절대 태워주지 않았을 것이다.
“메츠 팬이시군요.”
만약 그 손님이 쓰고 있는 모자와 목도리 그리고 입고 있는 점퍼가 전부 뉴욕 메츠의 것이 아니었다면.
“그럼 당연히 목적지는 양키스타디움이시겠죠?”
반대로 그렇기에 알버트 리는 기꺼이 손님을 태워줬다.
“목적은 월드시리즈 4차전이겠고요.”
말을 하던 알버트 리가 뒷좌석의 손님이 볼 수 있도록 자신이 쓴 모자를 건드렸다.
그의 모자에도 뉴욕 메츠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운전석 대시보드에는 메츠의 선수들로 만들어진 보블 헤드 인형이 잔뜩 있었다.
알버트 리, 그가 메츠에 영혼을 바쳤다는 증거들이었고, 기꺼이 이 수상한 메츠 팬을 받아들인 이유였다
“혹시 제가 틀린 건 아니죠?”
알버트 리의 그 되물음에 손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확하시네요. 양키스타디움으로 가주세요.”
그 대답에 알버트 리가 미소를 지었고 곧바로 그의 자동차가 힘차게 바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운전과 동시에 알버트 리의 입도 힘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말 끝내주는 시즌이죠? 제가 메츠 팬이 된지 20년이 됐는데, 이런 시즌은 처음입니다. 아마 메이저리그 모든 이들이 이런 시즌은 처음일 겁니다. 선수 한 명이 혼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쟁취하다니, 메이저리그 역사에 없던 일이죠.”
말을 하던 알버트 리의 머릿속으로 짧게 회상이 지나갔다.
“퍼펙트 오브 퍼펙트라니, 그 경기를 직접 현장에서 봤는데도 여전히 그날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나흘 전에 뉴욕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순간을 떠올렸다.
“현장에서 보셨다고요?”
“뉴욕에서 택시 기사로 10년 넘게 일하다 보면 월드시리즈 티켓 한 장은 얻을 수 있으니까요. 물론 아주 높은 자리인 탓에 솔직히 보이는 건 없었습니다만, 뭐 그게 중요합니까? 안 그래요? 그 전설이 쓰이는 현장에 있었던 게 중요한 거지. 그날 티켓도 이미 액자에 보관했어요. 내년에 액자째로 가져가서 리의 사인을 받을 겁니다.”
말을 하던 알버트 리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모자를 툭툭 건드리면서 말했다.
“물론 여기에도 받아야죠. 아마 리가 좋아할 겁니다. 그는 사인을 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선수이니까요. 정말 여러모로 끝내주는 선수죠.”
말을 하던 알버트 리는 곧바로 이야기 주제를 다음으로 넘겼다.
“사실 거기서 이미 월드시리즈는 끝이었죠. 퍼펙트 오브 퍼펙트게임이라니, 베이브 루스는 물론 사이영조차 못한 걸 해냈는데 무슨 게임이 더 필요하겠어요?”
월드시리즈 2차전과 3차전에 대한 이야기였다.
“2차전과 3차전에서 양키스 정신을 못 차린 게 눈에 보이더군요. 덕분에 쉽게 이길 수 있었죠. 특히 어제는 양키스타디움에 양키스팬보다 메츠 팬이 더 많이 가더군요. 양키스 팬들도 직감한 거죠. 이 게임은 이길 수 없다는 걸 말이죠.”
그렇게 하던 이야기는 곧바로 현재로 왔다.
“아마 오늘은 더 심할 겁니다. 호우맨이 나오는 경기이니까요.”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애초에 시티 필드에서 양키스타디움까지의 거리는 직선거리로는 10킬로미터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한 거리였을뿐더러 이미 양키스타디움으로 가는 길목은 주차 자리를 찾아 헤매는 자동차들로 이미 주차장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어 있는 탓에 더 이상의 진입은 불가능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는 게 아마 차로 가는 것보다 열 배는 더 빠를 겁니다.”
차라리 걸어가는 게 나을 정도.
알버트 리의 그 말에 손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알버트 리에게 요금을 지불했다.
“아, 괜찮습니다.”
그때 알버트 리가 요금을 사양했다.
“메츠를 응원하기 위해 양키스타디움까지 오시는 메츠 팬에게 돈을 받을 순 없죠. 하물며 월드시리즈 우승하는 날 아닙니까? 물론 아직 이르지만, 의심할 여지는 없죠.”
홈인 시티 필드도 아닌 적지인 양키스타디움까지 홀몸으로 오는 메츠 팬에게 알버트 리는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응원을 해줄 속셈이었다.
그 사실에 손님은 굳이 요금을 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고마움을 표시했고, 그런 손님의 말에 알버트 리가 밝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호우!”
알버트 리의 그 말에 손님이 대답했다.
“호우.”
그 말과 함께 손님이 문을 열고 내렸다.
‘어?’
그 순간 알버트 리는 손님의 옷차림이 달라진 것을 확인했다.
모자와 목도리, 점퍼로 무장했던 손님에게서 더 이상 모자가 보이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모자 놓고 가셨습니다! 모자!”
그 사실에 놀란 알버트 리가 곧바로 운전석 창문을 내리며 떠나는 손님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손님은 이미 양키스타디움으로 향하는 인파 속에 사라진 상황이었다.
“아, 이런······.”
결국 알버트 리는 손님을 부르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그는 직접 움직이고자 했다.
‘어떻게든 모자를 돌려줘야지.’
만약 그 손님이 시티 필드를 방문한 거라면 메츠 모자쯤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겠지만, 양키스타디움에서 메츠 모자를 구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상황.
알버트 리는 같은 메츠 팬이 그런 추억을 가지는 것을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곧바로 운전석에서 내린 알버트 리가 뒷좌석 문을 열었다.
그러자 손님이 놓고 간 모자가 보였다.
‘어?’
그리고 손님이 놓고 간 야구공도 보였다.
‘야구공?’
그 사실에 놀란 알버트 리가 야구공을 손에 쥐고 살폈다. 그리고 그는 볼 수 있었다.
“호, 호우!”
이진용, 그가 자신만을 위해 남겨준 특별한 사인을.
2.
양키스타디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고고하고, 위엄이 넘치는 야구장.
– 안녕하십니까 메이저리그를 사랑하는 야구팬 여러분, 오늘 양키스타디움에서 월드시리즈 4차전, 어쩌면 이번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될지도 모르는 경기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그러나 오늘 양키스타디움은 탄생 이후 가장 참담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 만약 오늘 경기를 메츠가 가져간다면 4승 0패로 1986년 이후 세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오늘 양키스타디움에서 양키스는 제물이 될지도 몰랐으니까.
– 그리고 그 승리를 위해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기록, 퍼펙트 오브 퍼펙트게임을 기록한 리가 등판합니다.
이진용, 그가 이제는 메이저리그의 절대자가 됐음을 알리는 대관식의 제물이.
당연히 양키스타디움의 분위기는 월드시리즈 분위기라고는 믿기기 힘들 정도로 참담했다.
– 그래, 이거지. 난 이런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김진호, 그는 달랐다.
그는 양키스타디움의 분위기에 너무나도 만족한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김진호의 모습을 이진용이 실소를 머금은 채 바라봤다.
– 뭘 봐?
그 시선을 느낀 김진호가 고개를 돌려 퉁명스러운 모습으로 이진용을 바라봤다.
그렇게 그 둘이 잠시 동안 말없이 눈빛을 교환했다.
그때 이진용이 입을 열었다.
“오늘 제가 여기서 승리투수가 되면 김진호 선수를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르겠군요.”
그 말에 김진호가 피식 웃었다.
– 그래서 기분 좋냐? 응? 좋아?
“나쁠 건 없죠.”
– 오냐, 나도 좋다.
말을 뱉은 김진호가 고개를 휙 돌렸다.
“오늘 경기 중에는 말하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미리 말해둘게요.”
– 뭘?
“Thank you.”
짧은 단어, 그러나 그 단어에 김진호의 비틀어진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다시 한 번 말해줄래?
김진호의 이어진 요청에 이진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호야 고마워.”
– 그래, 나도 고마······ 응? 너 갑자기 왜 반말이냐? 너 지금 나 귀신이라고 무시하냐?
“아니, 영어에 반말 존댓말이 어디 있어요? 그렇잖아요?”
– 야, 그건 영어일 때 이야기이지 너 조금 전에 한국어로 말했잖아?
“아, 제가 한국어를 자주 쓸 일이 없어서 실수를 한 모양이네요. 정정하겠습니다.”
– 야이 또라이 새끼야! 미국에서 이제 1년도 안 된 놈이 실수는 무슨 실수야! 야! 다시 제대로 해! 똑바로 자세 잡고 아홉 번 절하면서 감사하다고 인사해! 빨리!
“어차피 오늘 성불할 주제에 뭘 그렇게 불만이 많아요?”
그때였다.
“리!”
더그아웃 안으로 들어온 조 존스가 이진용을 발견하고는 다가오며 말했다.
“누구랑 이야기 중이었나?”
그 물음에 이진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기도하는 중이었어.”
“기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확정하게 해달라는 기도?”
조 존스의 되물음에 이진용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게 찾아온 기적에 감사하다는 기도를 했어.”
“월드시리즈 우승이 아니라?”
거기까지였다.
이진용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조 존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월드시리즈 우승은 굳이 기도할 필요가 없잖아.”
“그렇지.”
그렇게 월드시리즈 4차전이, 2018시즌 마지막 경기로 기록될 경기가 시작됐다.
3.
마운드를 떠올리게 하는 봉분.
그 봉분 앞에 추운 날씨임에도 말끔한 정장 차림을 하고 있는 사내가 두 손을 모은 채 기도를 했다.
이윽고 기도를 마친 사내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꺼낸 것은 고급스러운 반지함이었다.
사내가 그 반지함을 열자 화려하기 그지없는 반지 하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김진호 선수, 당신이 그토록 바라던 월드시리즈 반지입니다.”
2018시즌 뉴욕 메츠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기념하는 월드시리즈 반지.
이진용이 그 반지를 그대로 봉분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드디어 끝났네요.”
그 말과 함께 이진용이 긴 회상에 젖은 듯 한동안 말없이 자신 앞의 무덤을, 김진호의 무덤을 바라봤다.
이윽고 회상을 마친 이진용이 감았던 눈을 뜨며 슬쩍 자신의 옆을 곁눈질했다.
– 뭘 봐?
“······아직 있네.”
그곳에는 김진호가 있었다.
– 뭐, 인마? 아직 있네? 이 새끼가!
“아니, 월드시리즈 우승도 했는데 왜 성불 안 하세요?”
– 난들 아냐!
“아, 미치겠네.”
말을 하던 이진용이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적였다.
“아니, 살아생전 소원 월드시리즈 우승 아니었어요?”
– 맞아.
“그럼 월드시리즈 우승했으면 성불하는 게 순리 아닙니까?”
– 아니, 그게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월드시리즈 우승이 소원 중 하나였던 거지.
“뭐라고요?”
김진호의 충격 고백 앞에서 이진용이 기겁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윽박지르듯 말했다.
“그럼 나머지 소원은요?”
– 아니, 별거 없어. 사실 내 소원은 월드시리즈 우승을 포함해서 두 개밖에 없었어.
“두 개?”
– 응.
“뭔데요.”
– 사이영 기록 넘는 거랑 요기 베라의 월드시리즈 최다 우승 횟수 경신하는 거.
말을 하는 김진호는 어느 때보다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반면 이진용은 어처구니가 없는 눈으로 김진호를 바라봤다.
“잠깐, 잠깐 계산 좀 해봅시다.”
그 순간 상황을 파악한 이진용이 계산을 시작했다.
“사이영 통산 승수가······.”
– 511승이지. 다행히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이닝이나 최다 탈삼진은 사이영이 아니라 놀란 라이언 기록이야. 그러니까 진용이, 넌 통산 최다승만 깨면 될 거야.
“그게 다행입니까?”
– 아, 참고로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최다 우승은 요기 베라의 10회 우승이다. 앞으로 10번 더 하면 돼. 그래, 딱 10년 동안 매 시즌 47승씩하고 월드시리즈 우승하면 되겠다.
김진호의 그 말에 이진용은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아, 빌어먹을······.”
– 너무 낙심하지 마. 진용아, 너라면 할 수 있어. 그래, 내가 힘내라고 노래 불러줄게. 아빠 힘내세······.
“닥쳐요!”
말과 함께 이진용이 그대로 무덤 앞에 놔두었던 월드시리즈 반지가 담긴 반지함을 챙겼다.
– 야, 뭐하는 거야? 나 주는 거 아니었어요? 치사한 새끼, 줬다 뺏는 게 어디 있어?
“시끄러워요! 지금 정신 나가기 일보직전이니까 저 건드리지 마요!”
– 야, 상황이 이래도 말은 바로 해야지 이미 정신 나간 또라이 새끼가 나갈 정신이 어디 있어?
“에이, 진짜!”
진심을 담아 화를 내는 이진용의 모습에 김진호가 표정을 바꾸었다.
– 크흠.
그리고는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잠시 진정시킨 김진호가 이진용에게 다가와 말했다.
– 사실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어.
“다른 방법이요?”
– 사이영 최다승이나, 요기 베라의 월드시리즈 최다 우승 횟수는 어디까지나 야구선수 김진호의 소망이고, 인간 김진호의 소망은 또 따로 있거든.
그제야 이진용도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김진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내 평생 소원은 어릴 때부터 하나였어.
“그게 뭐죠?”
이윽고 김진호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여탕에 가는 거.
그 말에 이진용이 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빌어먹을 음란마귀!”
이윽고 반지함을 챙긴 이진용이 그대로 김진호의 무덤으로부터 등을 돌린 채 걸음을 내디뎠다.
– 진용아, 어디 가?
“어디 가긴요, 빨리 미국으로 가서 이번 시즌 준비해야죠. 젠장, 아주 빌어먹을 귀신이 붙었어. 빌어먹을 귀신이.”
그 모습에 김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 그래, 빌어먹을 귀신이지. 으하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