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199
5.
김진호는 말했다.
– 월드시리즈 무대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어.
월드시리즈 무대는 그 무엇도 일어날 수 있는 무대라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은 결코 방심하지 말고, 안심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다.
– 그래서 모두가 끝까지 전력을 다하지. 뒤 따위는 돌아보지 않아. 가다가 넘어지더라도 어떻게든 가. 기어서라도 앞으로 가려고 하지.
제아무리 유리한 상황이라고 해도 상대팀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조언.
비단 김진호만 알고 있는 조언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를 보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조언이었다.
때문에 그 누구도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이진용이 보여주는 피칭에 의구심을 가지지 않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우우웃!”
3회 말.
이진용이 9번 타자로 나온 다나카 마사히로를 상대로 5구나 던지면서 기어코 삼진을 잡아내는 것을 보고 투구수 낭비를 했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호우맨이 오늘은 정말 삼진만 노리네.
– 이상할 건 없지. 삼진보다 확실하게 아웃카운트를 잡을 수 있는 건 없으니까.
– 그렇지. 삼진이야 말고 이기기 위한 최선이자, 최고의 방법이지.
더 나아가 다나카 마사히로를 상대로 잡은 삼진이 그날 경기의 아홉 번째 삼진이자, 아홉 타자 연속 탈삼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세상은 놀라지 않았다.
“이걸로 아홉 타자 연속 탈삼진이군.”
“이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지만, 정말 대단하군.”
“더 대단한 건 이런 기록을 세웠어도 기사를 쓸 필요가 없다는 점이겠지.”
“그렇지. 다른 투수가 이런 기록을 했다면 기사를 수십 개를 올려야겠지만 호우맨은 다르지.”
메이저리그 연속 타자 최다 탈삼진 기록인 11타자 연속 탈삼진 기록 보유자인 이진용에게 있어 9타자 연속 탈삼진은 놀랄 것 없는 일이었으니까.
오히려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는 건 다른 부분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 리가 오늘은 조용한 거지?’
‘삼진을 잡는 동안 호우를 한 번도 안 하다니? 무슨 일이지?’
이진용이 아홉 타자를 전부 삼진으로 잡는 와중에 단 한 번의 환호성도 내지르지 않았다는 것.
– 호우가 호우를 안 함.
– 무슨 일이지?
– 성대 혹사 당한 거 아님?
ㄴ 300이닝 넘게 던져서 나온 부상이 성대 부상이면 웃기긴 할 듯.
중계 방송을 통해 이진용의 상태를 누구보다 확실하게 파악하는 시청자들은 물론 시티 필드를 가득 채운 메츠 팬들 역시 그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호우 안 하잖아?’
‘그럼 우리도 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일단 그만해보자.’
이진용이 삼진을 잡을 때마다 이진용을 대신해 환호성을 내지르던 메츠 팬들이 이진용의 고요함을 눈치 채고는 점차 목소리를 낮추기 시작했다.
그때 기자실의 누군가 말했다.
“연속 타자 탈삼진 신기록을 세우면 그때 환호성을 내지르겠지. 설마 그때도 조용하겠어?”
이진용이 오히려 신기록을 앞두고 환호를 아끼고 있다고.
그 말을 들은 기자들은 놀랐다.
“대단하군. 월드시리즈 무대에서 자기 기록을 깨려고 하다니.”
“괴물다워.”
동시에 기다렸다.
‘그럼 12타자 연속 탈삼진 기록을 세우면 환호성을 내지르겠군.’
‘멋진 장면이 나오겠어.’
‘역시 쇼맨십을 아는 녀석이군. 월드시리즈 무대에서 이런 장면을 연출하려고 할 줄이야.’
이진용이 다시 한 번 메이저리그 연속 타자 탈삼진 신기록을 경신하는 순간을!
메츠 팬들은 그 순간을 기다리며 목소리를 아꼈고, 기자들은 그 순간을 앞에 두고 일찌감치 기사를 작성했다.
그리고 4회 초가 되었을 때 이진용은 기어코 해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3번 타자로 나온 애런 저지를 다시 한 번 삼진으로 잡아내며 자신이 기록했던 메이저리그 연속 타자 탈삼진 신기록을 다시 한 번 갱신했다.
그 사실에 시티 필드가 참고 있던 것을 토해냈다.
호우!
시티 필드는 물론 뉴욕시마저 뒤흔들린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함성이었다.
그 함성을 통해 메츠 팬들은 이진용에게 신기록 경신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줬다.
베이스볼 매니저 역시 이진용이 또 한 번 신기록을 경신했음을 알려줬다.
그러나 이진용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애런 저지를 삼진으로 잡은 이진용은 환호성을 내지르기는커녕 입을 꾹 다문 채 흐트러진 모자를 고쳐 쓰고는 그대로 더그아웃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뭐지?’
‘무슨 일이지?’
그 모습에 더 이상 이진용을 향해 환호성을 내지르는 이들은 없었다.
시티 필드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고요함이 찾아왔다.
6.
사람이 환호성을 내지를 때는 언제일까?
원하는 바를 이루었을 때다.
달리 말하면 원하는 바는 이루지 못한 이는 결코 환호하지 않는다.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그게 이유였다.
8회 초, 이진용이 스물세 타자 연속 탈삼진 신기록을 세우는 순간 환호성을 내지르지 않은 이유.
말 그대로였다.
이진용, 그가 원하는 바는 스물세 타자 연속 탈삼진이 아니었기에 환호성을 내지를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사실을 경기를 보는 이들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아직 남았다, 이거지?’
‘미친 또라이 새끼!’
이진용이 어째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환호성을 내지르지 않고 있는지.
그런 상태에서 이진용은 곧바로 타석에 선 6번 타자, 게리 산체스를 바라봤다.
이진용의 눈에 비친 게리 산체스는 겁에 질려 있었다.
괴물이라는 표현조차 이제는 무색한 존재를 마주하는 수준을 넘어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이 게리 산체스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런 게리 산체스를 향해 이진용은 피칭을 시작했다.
스플리터와 스플리터 그리고 또 스플리터.
세 개의 스플리터 앞에서 이번 시즌 29개의 홈런을 때려낸 게리 산체스의 배트는 세 번 춤을 추었고, 그 사실에 주심은 이제는 너무 많이 한 탓에 어색해진 그 소리를 다시 한 번 내질렀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그 사실에 여전히 이진용은 환호성을 내지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시티 필드의 관중들도 환호성을 내지르지 않았다.
베이스볼 매니저의 목소리만이 적막한 공간을 어렴풋이 적실 뿐.
그렇게 8회 초 제 역할을 마친 이진용이 마운드를 내려왔다.
– 리, 그가 오늘 다시 한 번 신기록을 경신했습니다. 그러나 환호성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진용이 더그아웃으로 사라진 후에야 시티 필드의 관중들은 입을 열 수 있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군.”
“스물네 타자 연속 탈삼진이라니······.”
그러나 말을 뱉기만 할 뿐, 메츠 팬들의 정신 상태는 정상적이지 못한 상태였다.
모두가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물론 지금 이루어지는 건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이진용, 그가 지금 말도 안 되는 대기록을 향해 이제 고작 3개의 삼진만을 남겨두었다는 건 분명한 현실이었다.
– 이제 8회 말이 시작됩니다. 스코어는 0대0, 이제 메츠가 남은 두 번의 공격 기회 중 한 번을 소모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현재 스코어가 0대0이라는 것도 분명한 현실이었다.
“리의 대기록도 대기록이지만, 설마 여기까지 0대0 상황이 이어질 줄이야.”
“솔직히 말하면 오늘 주심의 스트라이크존 판정이 너무 후했어. 메츠에도, 양키스에도.”
“그렇다고 해도 이런 상황이 나올 줄이야······.”
“그야말로 신의 장난이군.”
어느 기자의 말대로 신의 장난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만약 리가 9회 초에 퍼펙트 오브 퍼펙트를 달성했는데 9회 말에 점수가 안 나온다면······.”
메이저리그 역사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전설이 0대0 연장 승부라는 이유로 비공인 기록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신의 장난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양키스 타자들은 이미 죽은 시체고, 메츠 타자들은 죽어가는 시체 꼴이겠군.”
“부담감이 엄청날 거야.”
그 사실에 대한 부담감은 메츠 선수들, 개중에서도 타자들의 목을 죄고 있었다.
아니, 죄는 정도가 아니었다.
‘토할 것 같아. 아니, 차라리 토했으면 좋겠군.’
‘숨이 막힌다.’
지금 이 순간 메츠의 더그아웃을 가득 채운 부담감은 교수형을 당하는 사형수의 교수대 밧줄처럼 메츠 타자들을 숨조차 쉬지 못하게, 질식사하게 만들었다.
코칭스태프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코치들은 이 순간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메이저리그 역사에 존재치도 않았던 이 상황에서 코칭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저 누군가가 무언가를 해내기를, 부디 신이 이 장난을 멈추기를 기도하며 기다릴 뿐.
그러나 이진용은 달랐다.
그는 신에게 이 장난을 끝내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뿐이었다.
김진호 역시 그런 이진용에게 괜한 말을 건네지 않은 채 두 눈을 감고 기다렸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빠악!
뇌성을 떠올리게 하는 날카로우면서도 강렬한 한 줄기의 시티 필드를 반으로 갈랐다.
– 아!
그 소리와 함께 타구가 만들어낸 포물선이 시티 필드를 반으로 갈랐다.
– 조 존스!
조 존스, 메츠가 양키스로부터 받아준 그 골칫거리가 시티 필드를 반으로 갈랐다.
그 순간 메츠 더그아웃은 물론 이제까지 고요했던 시티 필드가 동시에 소리를 내질렀다.
호우!
목이 아닌 심장이 소리를 내질렀다.
“호우우우!”
“호우우움런!”
“호우! 호우!”
메츠 더그아웃에서 이성을 잃은 짐승들이 미친 듯이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나 그 소리 앞에서 이진용은 여전히 침묵했다.
그는 환호하지 않았다.
아직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으니까.
그런 이진용에게 9회 초가 찾아왔다.
그제야 이진용이 감았던 눈을 떴다.
7.
– 리, 그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메이저리그 역사를 넘어 야구의 역사에 영원불멸할 전설을 만들기 위해 마운드에 오릅니다.
이제 세 타자 연속 삼진을 잡는다면 메이저리그에 영원불멸할 전설이 탄생하는 순간.
그 순간 시티 필드는 마치 태초의 세상처럼 조용했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어린 아이들조차 제 조막손으로 입을 가린 채 숨소리조차 가렸다.
처벅, 처벅, 처벅······.
그 고요한 세상의 중심을 향해 이진용이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 이진용을 향해 그 무엇도 말을 건네지 못했다.
오늘 단 하나의 아웃카운트도 잡지 않은 야수들은 물론 오늘 이진용과 함께 스물네 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은 조 존스조차, 이진용을 위해 홈런을 때려낸 그조차 이진용에게 말을 건네지 못했다.
이제는 괴물이라는 수준을 벗어나버린 이진용을 향해 메츠 선수단을 비롯해 모든 이들이 경외를 품기 시작했다.
그런 이진용을 향해서 오직 한 명만이 말을 건넸다.
– 진용아.
김진호, 1회부터 8회까지 마운드 뒤편에 팔짱을 끼고 선 채 이진용의 피칭을 묵묵히 바라보던 그가 처음으로 이진용을 불렀다.
그 말에 이진용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대신 글러브로 입을 가린 채 타석에 서는 타자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김진호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 네가 최고다.
그 말에도 이진용은 대답할 생각도 없다는 듯이 자신의 입을 가리고 있는 글러브를 치웠다.
그러자 글러브 너머로 숨겨져 있던 이진용의 깊은 미소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미소 어디에도 긴장감은 없었다.
당연히 이진용의 피칭에도 망설임은 없었다.
7번부터 시작되는 타순, 그 타순을 향해 이진용은 이제까지 한 작업은 반복했다.
공을 던졌고, 스트라이크를 잡았고, 삼진을 잡았다.
고요한 세상 속에서 베이스볼 매니저의 목소리만이 들렸다.
이윽고 이진용이 그토록 원하던 소리가 나왔다.
그제야 원하는 바를 이룬 이진용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호우!”
그 순간 더 이상 마운드 위에서 메이저리그를 공포에 물들게 하던 괴물은 없었다.
마운드 위의 절대자만이 있을 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