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301
천하제일 시한부 (301)
진법은 마치 들어오란 듯, 나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기운이 스스로 만들어 낸 길.
난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진법에 다가서기 무섭게 마치 날 흡수하듯, 난 그 안으로 스며들었고 주변 풍광이 무섭게 뒤틀렸다.
“…….”
저 멀리, 그가 보였다.
“어서 와.”
이십여 년 전, 열 살 어린 나이 울분을 품고 가출했던 내게 손을 내밀던 치기 어린 소년.
그 소년 때의 모습과 똑같은 미소를 머금은 그.
마진혁.
그는 권좌에 앉아 있었다.
마진혁은 나더러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난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무슨 짓을 벌인 거냐.”
그에게 담담히 물었다.
녀석에게 무슨 사무친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도움을 받았으면 받았을까.
그래서 궁금한 것이 많았다.
“보고 있는 대로, 이 진법이 내게 길을 열어 줄 거야.”
“황제가 되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인 거라고?”
“비슷해. 하지만 이름뿐인 황제는 싫거든.”
마진혁의 비틀린 입꼬리.
어깨를 으쓱하는 그의 모습은 예전과 같았다.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네가 황제가 됐을 텐데?”
“흠, 글쎄? 이미 황제는 날 버렸거든.”
“후사가 없으니까 황제가 죽으면 어차피 네가 다음 대에 황제가 되는 것 아닌가?”
피식.
그 말에 마진혁의 입꼬리에 실린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더 복잡해.”
“그건 그렇다 치자고. 네가 황제가 되든 말든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날 바라보는 마진혁의 시선에는 아무런 감정이 깃들어 있지 않았다.
분명 예전과 같은데, 또 예전과 다르다.
“하나만 물어보자.”
“아니, 여러 개 물어봐도 돼. 넌 그럴 자격이 충분하니까.”
마진혁은 여유로웠다.
마치 다 물어보라는 듯, 무방비한 자세로 눈을 감기까지 했다.
“처음 날 만났던 날. 열 살 그 어린 나이…… 그때도 날 이용할 생각이었나?”
“으흠, 처음부터 그때의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는데.”
마진혁은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솔직히 말하면 그때의 난 아직 ‘눈’이 없었으니까, 감각을 믿었지. 또한 물었고.”
“물었다고?”
“주윤. 네 친조부. 그가 말해 주더군. 널 잡아야 한다고.”
“…….”
원흉이라 생각했던 조부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조윤은 말했다. 네놈이 사라진 헌원가의 마지막 후예라고. 널 수중에 쥐고 널 이용해 모든 대계를 완성하라고.”
“그래, 그랬겠지. 조부에 대한 감정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얼굴도 모르는 조부 따위…….”
쓰레기다.
아들을 이용하고, 손주를 이용하고.
제 권력을 위해서 아들을 사지로 몰아넣었고, 손주도 이용하는 작자다.
딱히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지만, 그나마 느껴 보라고 한다면…… 아버지에 대한 복수 정도는 해 주고 싶다였다.
“하하하! 그래! 바로 그거야. 이쯤 되니 나도 연민이 느껴지더라고.”
마진혁은 쾌재를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날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지독하게 매혹적인 그의 웃음이 날 향했다.
동시에, 서릿발처럼 차가운 그의 시선이 내 전신을 사정없이 관통했다.
원래 저랬던가?
그의 날카로운 눈빛 속에는 그 어떤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아들. 나 또한 네놈에게 그걸 가르쳐 주고 싶었거든. 하지만…… 실패했지.”
“그것도 네가 한 짓이라고?”
아버지의 기억.
그 모든 걸 잃어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아버지가 ‘암시’의 정수를 이용해 내 기억 저편을 보호했다.
그렇게 해 두지 않았다면, 난 필시 마진혁에게 끝까지 끌려다녔을 거다.
그만큼 아버지는 미래를 위해 엄청난 대비를 해 둔 셈이었다.
“아쉽게 됐지. 네놈이 아직까지 아비에 대해 증오심을 품고 있었다면, 난 끝까지 널 데리고 갈 생각이었거든.”
자신이 세운 계획을 위해 날 이용했다.
마진혁은 단순히 그것 때문에 날 만났고 나와의 관계를 이용한 셈이다.
“이 진법이 너의 최종 목적지인 셈인가?”
진법 내부의 기운이 조금 이상해졌다.
뒤틀렸다고나 할까?
보통 일정한 규칙과 방향을 가지고 움직이는 기운이 여기저기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듯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기를 반복했다.
마진혁은 내 물음에 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이 진법을 위해 요동군과 절강군을 움직였으니까.”
“모르겠군. 그들이 움직인 까닭도.”
“모르는 것이 당연해. 난 그들도 내 제물로 삼았을 뿐이니까.”
마진혁이 섬뜩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물이라고?”
난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했다.
수백만이 넘는 군세다.
단순히 그들을 제물이라고 표현하는 마진혁의 잔인함에 움찔했다.
“제마광천진, 정확히는…… 진시황이 만든 병마용갱으로 통하는 입구다.”
마진혁은 말과 함께, 손가락을 까딱했다.
동시에 기운의 흐름이 바뀌었다.
순식간에 주변이 뒤틀리며 시야가 어두워졌다.
이윽고 붉게 일렁이는 도깨비불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
절로 신음이 나왔다.
엄청난 기운이다.
하나하나가 말도 안 되는 기운을 품고 있었다.
“내가 이 진시황이 만들어 둔 진법을 알게 되었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
마진혁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순수한 악의.
순수하기에 악의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도 순수해서 그 자체가 공포로 다가왔다.
“아, 이것만 있다면 황궁은 무림인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겠구나!”
마진혁의 말에 그제야 대충 상황이 그려지는 듯했다.
병마용.
그들을 움직이는 것.
그리고 수백만의 군세는 모조리 무공을 익힌 무인들이다.
요동마병과 절강병 그리고 금군과 동창까지.
일반 병졸들은 찾아볼 수 없다.
애초에 그들이 필요 없기에 이 싸움에 끌어들이지 않은 것이다.
“하하, 미쳤군.”
난 고개를 저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그들을 희생해 고작 저 병마용을 얻겠다고?
대체 그게 무슨 이득이 된다고?
“그래, 그 표정. 너라면 그런 표정을 지을 줄 알았지. 너 또한 무림인이니까.”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맞아, 나 또한 무림인이지.”
마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이 다시 열렸다.
“난 오래 살고 싶다. 이 진법이 없었다면 난 필시 죽었을 테니까.”
“…….”
“천살의 기운을 타고난 자. 들어는 봤나?”
“천살성…… 그런 전설이라면 익숙하지.”
내 말에 마진혁이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게 나야. 잔인하고 흉폭하고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천기의 흐름을 타고난 자.”
“그건 전설에 지나지 않아. 하지 않을 수 있다.”
“아니, 그건 사실이다. 난 하루하루 약해졌으니까.”
마진혁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이 갱도는 조금 다르다. 이곳에 내 힘이 되어 줄 병마용도 있지만, 다른 것도 존재한다.”
“…….”
“불로초. 들어 봤나?”
“그것도 역시 전설이다. 아니, 그냥 지어낸 이야기야. 아무도 그 사실…….”
“그건 사실이야. 진시황은 결국 불로초를 찾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는.”
마진혁이 다시금 권좌로 향했다.
그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병마용이 일제히 고개를 쳐들었다.
동시에 움직이는 병마용을 바라보며 난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꼈다.
“결국 진시황이 죽고 나서야 불로초는 그에게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죽고 나서 그게 무슨 소용인가? 살아 있을 때 먹었다면 필시 영생을 얻었을 터인데, 죽어 버린 자를 살리는 약초는 아니니까.”
마진혁이 이내 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이것이 불로초다. 내가 찾아낸.”
작은 영단.
대환단, 아니 소환단보다도 작은 영단이다.
불로초라면 약초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적.
마진혁은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불로초를 입에 털어 넣었다.
뭔가 변화가 있을까 싶었지만, 재미없게도 눈에 보이는 변화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마진혁의 표정은 평온했다.
“난 이대로 병마용과 함께, 세상을 제패할 거다. 무림인들을 말살하고, 날 위협하는 또한 황궁을 위협하는 존재를 색출해 모조리 말살할 거다.”
마진혁은 말과 함께, 가장 근처에 있는 병마용의 어깨를 두드렸다.
“한번 내린 명령은 돌이킬 수 없다. 또한 병마용을 잡을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지.”
마진혁이 날 보며 슬쩍 눈을 흘겼다.
그의 시선에 내 검 세 자루에 닿았다.
“있다면, 너.”
“…….”
“주씨를 도와 이 제국을 만드는 데 일조한 일월신교의 후예.”
일월신교.
마진혁은 거기까지도 알고 있었다.
“네놈만이 유일하게 이 병마용을 벨 수 있지.”
“그래서 날 불러들인 거군. 이 안으로.”
“맞아.”
마진혁이 섬뜩하게 웃었다.
그래, 오랜 친구라고 반갑게 해후를 나누고자 하는 그런 순수한 목적이 아닐 거라곤 예상했다.
하지만 내심 씁쓸하기도 했다.
이십 년이란 시간 동안 난 결국 친구라는 겉 포장에 이용당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날 도와. 그렇다면 넌 초대 일월신교의 교주처럼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쥘 것이다. 내가 그리하게 해 줄 거니까.”
마진혁이 말했다.
난 그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깃들지 않은 그의 순수한 호의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그의 손을 잡는다면 난 이곳을 벗어나 무림인을 말살하는 데 일조하게 된다.
정파, 사파…… 그리고 마교.
그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다.
저 뒤를 가득 메운 병마용은 충분히 그렇게 만들 힘이 있었다.
수백만의 목숨을 양분 삼아 깨어난 그들은 삽시간에 전 무림을 휩쓸 테니까.
“생각이 필요해? 역시 넌 너무 여려.”
마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잡지 않아도 좋아. 난 분명히 네게 친구로서 기회를 한번 준 셈이니까.”
마진혁은 그 말과 함께, 돌아섰다.
그의 전신에서 불쾌한 기광이 뻗쳐 나왔다.
동시에 그의 몸이 흐릿해졌다.
물론 그것은 병마용들도 마찬가지였다.
“생각을 좀 해 봐. 물론 네가 나올 수 있다면.”
그 말과 함께, 그와 병마용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난 황급히 검을 빼 들고 그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강기를 날렸다.
하지만 무형의 벽은 내 힘을 완벽히 흡수해 버렸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변화 없는 내부의 모습에 난 잠시 당황했다.
이렇게 갑자기 움직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더군다나 마진혁에게 얘기를 들었음에도 나 또한 그 어떤 감정도 생겨나지 않았다.
배신감?
이런 것도 없었다.
무림을 구하고자 하는 단순한 협의라든가 정의심 같은 것도 생겨나지 않았다.
당연했다.
애초에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으니까.
일순 그런 사실들을 깨닫고 나니 전신이 무력해졌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내 목적성에 혼란이 일어났다.
난 대체 뭘 하면서 살아온 걸까?
또한 무엇을 위해 살아갔던 걸까?
천마의 독을 해독했고, 그날 이후도 동분서주하며 사륭회를 모조리 베어 냈다.
“어쩌면…….”
순간, 서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동생이 편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그렇게 다시 검을 들었다.
그리고 마진혁의 손을 잡는다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마진혁은 주씨세가만은 살려 줄 테니까.
그 길이 내 목적과도 정확히 부합된다.
다른 사람들의 목숨은 사실 나와 하등 관계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난 이내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
무림인이 없는 세상.
그건 나름대로 평온한 세상이 아닐까?
그렇다면 굳이 내가 이곳에서 나가지 않아도.
…….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이 제법 정리가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