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ruid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535)
제535화
제535화 세 개의 다리 (5)
“으으음…….”
주막만 한 구멍에서 바깥바람이 살살 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젠장, 평소와 같은 몸 상태라면 [야수화]를 사용해 벌써 나가고도 남았을 텐데……. 지금은 목에 생긴 상처를 회복하는 데 전념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끄응!”
어쩌면, 돌을 치워서 나갈 수 있을지도? 라는 생각에 구멍 근처의 돌들을 밀고, 당기고, 해봤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제기랄……. 그래, 어쩐지 일이 쉽게 풀린다 했지. 나는 머리통을 벅벅 긁다가, 자그마한 구멍과 모모를 번갈아 보았다.
“아냐,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나는 모모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모모는 나를 따라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 힘만으로는 안 되겠는걸. 역시 도움이 필요해.”
-우우웅…….
“모모, 혹시 여기서 나가서 레어까지 돌아갈 수 있겠어?”
엘이나 로이드는 모모를 알아볼 수 없겠지만, 마력에 민감한 칼리스토나 칼리드는 충분히 모모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모가 레어로 돌아가 일행들을 이쪽으로 불러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웅!
잠시 생각하듯 눈에 힘을 주던 모모는 이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르르 떨리는 꼬리를 보아하니 긴장한 게 확실해 보이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고맙다, 모모.”
-우웅!
역시, 내가 파트너 하나는 잘 골랐단 말이야. 나는 모모가 구멍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동그란 엉덩이를 받쳐 주었다. 모모는 구멍을 빠져나가고 나서도 몇 번이나, 걱정 가득한 얼굴로 돌아보다가 이내 결심한 듯 멀어졌다. 작은 구멍으로는 멀리까지 보이지 않지만, 어쨌든 숲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이제, 문제는 나 하나군.’
모모도 밖으로 내보냈으니, 지금부터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 혼자 감당해 내야 한다.
-저벅, 저벅, 저벅.
그리고 타이밍 좋게, 철창 바깥쪽에서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묵직한, 그러나 살짝 불규칙한 발소리 두 개. 그 외팔의 반룡인 둘이겠군. 나는 재빨리 처음처럼 쓰러진 채, 기절한 척 눈을 감았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은데.”
“달이 떠오르기 전 준비가 끝난다. 의식을 마치는 대로 놈을 데려오라고 하셨어.”
“그놈의 빌어먹을 의식……. 이미, 내 남은 팔이라도 뜯어먹고 싶을 정도라고!”
“조용히 해, 시반. 무키오 님께도 뜻하신 바가 있을 것이다. 오랜만의 식사니까, 그만큼 예를 갖추는 것도 나쁘지 않지.”
“넌 아직 배가 덜 고픈 것 같구나, 니만. 그따위 한가한 소리를 할 여유가 있는 걸 보니 말이다.”
“기다리는 거야. 오늘 밤이면 우리의 굶주림도 끝날 테니.”
“아아, 어서 그놈의 피가 마시고 싶군…….”
기대감으로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내 등 뒤로는 오싹하게 소름이 돋았다. 잠깐, 잠깐, 잠깐, 식사라고? 식사라면, 나를 말하는 건가? 의식은 또 뭐고?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나를 해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서, 저 두 놈에게 들리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나는 가까스로 진정하고, 가느다랗게 실눈을 떠 두 반룡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았다.
불빛에 일렁이는, 팔 없는 그림자 두 개. 둘은 더욱 작아진 목소리로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주된 이야기는 ‘용혈’, ‘의식’ 따위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목만 축이게 될 거야.”
“뭐라고?”
“피만 뽑는다고 하셨으니까.”
“겨우?”
“놈에겐 아직 쓸모가 있는 모양이야.”
“드디어 배 좀 채우나 했더니!”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또다시 쉿, 하고 진정시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히 해.”
“저놈이 깨어날까 봐 그래? 깨어나봤자 뭘 할 수 있다고…….”
“바보같은 놈. 내가 걱정하는 건 무키오 님이야. 만약 무키오 님께서 네 말을 듣기라도 하시면…….”
“…….”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너도 잘 알겠지. 아직 모든 일이 끝나려면 멀었으니까, 조심하자고.”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세차게 뛴다. 피를 뽑는다고? 그게 대체 뭔 소린데!!!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니, 내 피를 뽑아서 부하 반룡인들에게 나눠주고 잠깐이나마 허기를 달래게 할 생각인가? 이거 완전…….
‘미친 사이코패스 아니야?!’
차라리 죽인다면 모를까, 피를 뽑는다니! 게다가 피를 뽑고도 죽일 생각은 없다니! 그래, 나를 따로 써먹을 생각인 건 알았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냐?! 나는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며 잠자코 죽은 척, 아니 기절한 척을 계속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휘이이이익!
동굴 바깥에서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레이의 호출이다.”
“벌써 준비가 끝난 건가?”
“내가 확인하고 오지.”
니만, 그놈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내 동굴 밖으로 향한다. 그리고 남아있는 시반은 여전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젠장, 두 놈 다 갈 것이지…….’
나는 여전히 숨을 죽인 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면, 모모를 보내지 말 걸 그랬나? 아니면, 몸이 터져나가든 말든 그냥 구멍을 박살 내고 탈출할 걸 그랬나?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던 그때,
-끄우웅…….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아주 작은 실바람이 불어오는 틈으로.
‘모모……?!’
나는 다시금 마음을 진정시키고 마력의 흐름을 읽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선명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분명히…….
‘……모모다!’
분명히 레어로 돌려보냈는데, 왜 다시 돌아온 거지? 나는 다시금 실눈을 뜨고 마력이 느껴지는 곳을 살폈다. 주먹만 한 틈, 그곳을 통과하는 모모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잠깐, 그 뒤를 이어서?
-끙!
-끄응!
-낑!
모모가 통과한 구멍에 불쑥 뻗어진 손 서너 개. 조그맣고, 검고, 털이 복슬복슬한, 저건……!
‘너, 너구리들이잖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숲의 의지’들 말이다. 뻔뻔하게 모모의 쿠키를 얻어먹고 헤어졌던 그 너구리들!
‘모모가 저 녀석들을 부른 건가?!’
레어까지만 가줘도 고마운 일인데, 기특하게도 다른 ‘숲의 의지’들을 불러 모은 모양이다. 맙소사, 이렇게 기특할 수가……!
-끙!
-낑!
……근데, 어쩐지 썩 도움은 되지 않는 것 같은데? 너구리들의 손은 허둥지둥 움직이며 돌덩이들을 빼내려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큰 바윗덩이들인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아! 막무가내로 뽑아내면 동굴이 무너질까 봐 저러는 거구나!’
탁탁, 통통, 돌을 두드려 대는 손바닥을 보니 녀석들이 왜 손쉽게 구멍을 부수지 않고 낑낑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잘못 건드려서 동굴이 무너져 버리면…….
‘내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달각!
내 예상이 맞는 건지, 너구리들의 손은 아주 신중하고 작은 돌부터 골라내고 있었다. 마치 젠가 게임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으응?”
그 소리가, 남아 있는 반룡인 시반의 주의를 끌었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시반은 ‘숲의 의지’를 볼 수 없다. 하지만, 돌들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이상하게 생각해 안쪽에 들어왔다가 구멍을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탈출 계획이 완전히 실패해 버린다……!’
그땐 놈들이 나를 아예 다른 곳에 가둬버리거나, 이중 삼중으로 엄중하게 지킬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탈출은 더욱 어려워지거나, 아예 불가능해지겠지.
‘……어떻게든 눈을 돌려야 해.’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저놈들의 의식이니 뭐니 하는 것에 끌려가서 피까지 뽑히고 나면, 힘을 잃은 내게 더 이상 기회란 없을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지…….’
시반이 점점 철창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결심한 나는, 이를 꽉 깨문 채, 일부러 목의 상처를 세게 긁어 피를 터트렸다. 애써 아문 상처가 다시 터지면서 격렬한 고통이 느껴지고, 비명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뚝, 뚝, 뚝…….
터진 상처에서 다시 뜨거운 피가 흐르고, 바닥을 적신다. 꽤 많은 양이었다. 그 비릿한 냄새가 순식간에 주변을 채우자…….
“……헉!”
시반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놈도 내 피 냄새를 맡은 것이다. 손수 성처를 낸 무키오, 그리고 직접 나를 둘러메고 달렸던 니만과 달리, 놈은 내 피 냄새를 처음 맡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굶주림에 투덜거리고 있던 녀석에게 있어 이보다 강한 자극은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덜컹!!!
시반의 손이 철창을 강하게 붙잡는 소리가 들렸다. 무키오가 잠그고 간 문은 간단한 잠금장치가 되어 있었지만, 이미 녹이 잔뜩 슬어 있는 철창은 힘없이 시반의 손에 흔들리며 덜컹거리고 있었다.
-끄기기긱!
헐떡임과 함께 뭔가 뜯겨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계획대로 된 것이다. 굶주림으로 안광을 번뜩이는 시반은 철창을 뜯어내고 나를 향해 걸어오고, 아니 기어 오고 있었다.
-처덕, 처덕!
-꿀꺽, 꿀꺽!
놈은 바닥에 흐른 피를 핥으며 기어 오느라, 너구리들이 만지작거리며 떨어트리는 돌덩이며 먼지에는 신경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피를 흘린 보람이 있구나. 탐욕스럽게 바닥을 핥는 시반에게서는 굶주림 그 이상의 욕망은 느껴지지 않았다.
‘타이밍을 잘 봐야 해…….’
계속 이대로 있다가는, 시반에게 온몸이 찢기고 먹힐 것이다. 그러니, 타이밍을 잘 보고 놈을 치는 것이 중요했다.
“맛있, 맛있어…….”
꿀꺽, 꿀꺽, 시반은 침을 질질 흘려대며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틈을 타, 나는 근처로 굴러온 날카로운 돌을 단단히 쥐었다.
‘일단 목을 벤다.’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하면, 밖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 시반의 석화는 어깨에서부터 시작되어 몸으로 뻗어나가는 모양이었으니, 잘만 하면 목을 아예 깨트려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힘이 없어서 제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명중시키면 치명타다.
“음, 음, 달콤해!”
“…….”
나는 조용히, 여전히 기절한 척 눈을 감고 시반의 기척에 집중했다. 모모가 함께 있는 덕분에, 이질적인 시반의 기척을 읽어내기가 더욱 쉬웠다.
“아아…….”
“…….”
“죄송합니다, 무키오 님……!”
가까워진 시반은 조용히 중얼거리더니, 입을 쩌억 벌리고 나의 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퍼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