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ruid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536)
제536화
제536화 세 개의 다리 (6)
-쩌어어엉!!!
쥐고 있던 돌덩이와 시반의 석화된 목이 서로 부딪치면서, 손이 마치 불타는 것처럼 알알하게 울린다.
‘젠장……!!’
내가 의도한 대로 시반의 목이 떨어져 나가는 일은 없었다. 역시, 그냥 돌덩이와 지금의 내 체력으로는 무리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통하긴 통했다. 시반의 목덜미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고, 석화된 곳에서부터 시작된 진동에 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다.
“크, 크아아악!!!”
아주 심한 숙취에 시달리는 것 같을 것이다. 나는 비틀거리는 시반을 그대로,
-퍼어억!!!
발로 차 밀어낸 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쪽도 생각보다 피를 많이 흘린 탓에 눈앞이 핑핑 도는 것 같다. 나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비틀, 비틀, 모모가 있는 구멍 근처로 향했다.
-달그닥.
-달칵!
너구리들이 한참 돌을 골라낸 덕분에, 구멍은 상당히 커져 있었다.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나갈 수 있을지도?
-잡아!
-잡아!
-잡아!
-잡아!
-아!
다섯 개의 손이 서로 자신을 잡으라며 아우성이다. 나는 보이는 대로 녀석들의 손을 붙잡은 뒤 구멍을 빠져나갔다.
-터억!!!!
……아니, 빠져나가려고 했다.
이제 허리만 빠져나오면 되는데, 뭔가가 발목을 콱 틀어쥐는 게 느껴졌다. 시반일 것이다. 완전히 기절시키거나 죽인 게 아니니까. 조금이긴 해도 바닥에 흘린 피를 핥아먹은 게 도움이 된 것일까? 시반은 내 발목을 부러트릴 것처럼 강한 힘으로 당기기 시작했다.
-영차!
-영차!
-영차!
-영차!
-차!
너구리들은 지지 않겠다는 듯 나를 바깥으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손을 붙잡고 있는 덕분인지, ‘숲의 의지’인 녀석들로부터 숲의 정기가 흘러들어오면서 조금씩 몸이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발버둥을 치며 시반을 떨쳐내려 했지만,
“으윽!”
이대로면, 무사히 빠져나간다고 해도 발목이 떨어져 나가겠군. 아니면, 그대로 상하체가 분리되거나!
-쿠당탕!!!
그때였다. 뒤에서 뭔가가 미끄러지는 느낌과 함께, 시반이 내 발을 탁 놓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틈을 타 급하게 구멍을 빠져나왔다.
“헉, 허억…….”
돌아보니 그곳에는 이끼가 잔뜩 자라 있었다. 구석에 이끼가 조금 있기는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라고 생각한 순간, 모모와 눈이 마주친다. 잔뜩 긴장한 얼굴의 모모는 후다닥 구멍을 뛰어넘고 있었는데, 아마 녀석이 이끼를 불려 시반을 미끄러지게 만든 모양이었다.
“……가자!”
고맙다는 말을 할 여유도 없다. 나는 새끼 수달 하나를 품에 안고 다섯 마리의 너구리들과 함께 바위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달이 떠 있었지만, 어째선지 주변에 안개가 자욱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모모와 너구리들의 도움 덕분에 나는 넘어지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우거진 덤불과 울퉁불퉁한 나무뿌리들이 알아서 길을 터 주었기 때문이다.
‘부러진 봉우리인가?’
안개가 너무 짙어 골짜기인 줄 알았지만, 주변 환경을 보아하니 골짜기는 아니다. 반룡인들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세 개의 후보지 중 하나, ‘부러진 봉우리’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남쪽으로 향해야 해.’
운이 좋다면 칼리스토와 그레디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운이 좋다면’이지만…….
“허억, 헉…….”
자꾸만 숨이 차오른다. 목에 난 상처 때문에 열이 오르면서 점점 숨쉬기가 버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정상적인 마력을 긁어모아 [상처 치유]를 사용한 덕분에 표면은 아물었지만……. 역시, 자연의 이치를 거스른 ‘반룡인’이라는 존재는 순리를 따르는 드루이드에게 독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조금, 조금 숨을 돌려야겠어.”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수준이지만, 나는 가까스로 모모에게 말한 뒤 커다란 참나무 아래 무릎을 꿇었다. 허억, 허억, 하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는 동안, 어째선지 더욱 어지러워진다. 나는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안개가 아니었군.’
그렇다. 주변에 자욱하게 깔려 있는, 내가 ‘안개’라고 생각했던 것은 안개가 아니라 무언가의 증기였던 모양이다. 그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단어가 있었다. 레이가 준비한다던 ‘의식’……!
니람에는 ‘전쟁의 신’이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는 전설이 있다. 전쟁의 신과 함께 나타나는 그 안개를 마시면, 전사들에게는 있는지도 몰랐던 용맹함이 솟아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오티스의 소장품에 그 풍경을 그린 그림이 있었지.’
그땐 말 그대로 전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만약 이 안개에 니람인의 피를 깨우는 무언가가 있는 거라면…….
‘그래서 자꾸 과열되는 느낌이 드는 건가.’
이미 안개를 마신 탓에 나의 몸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니람인에게는 이것이 ‘힘’의 하나일지도 모르겠군. 이거, 일종의 도핑인가? 안타깝게도 나한테는 전혀 맞지 않는?
-웨에엑!!
결국 나는 몸을 숙인 채 속을 게워 내고 말았다. 젠장, 이 안개를 더 마시면 안 돼. 나무를 타고 올라야 하나? 하지만 그럴 힘이 내게 남아 있을까? 아니면 모모의 도움을 받아서……. 너구리들이 나를 도울 수 있을까? 나는 소매로 입가를 가린 채 주변을 살폈다.
-일렁…….
-일렁…….
-……찾…….
-……아라……!
-반…… 드시……!
그때, 안개 저편에서 흐릿한 고함과 함께, 언뜻 일렁이는 불빛이 보인다.
‘……반룡인들이 나를 찾고 있군.’
일렁이는 불빛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놈은 드루이드다!
-풀과 나무 사이 몸을 숨겼을 것이다!
-온 숲에 불을 질러서라도 찾아내!
분에 찬 무키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이대로는 잡힐 것이다. 빨리 봉우리 아래로 내려가서 숲에 숨어들거나, 나무 위로 올라가서 잠시 모습을 감추거나. 방법은 둘 중 하나……. 나는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 가지 끝에 걸려 있는 달이 내게 어서 올라오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온 숲에 불을 지른다고……?’
그 말이 거짓이 아니었는지, 분주하게 움직이던 불빛들이 이내 흐릿한 풍경에 옮겨붙는다. 놈들이 정말로 숲에 불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미친…….’
지금, 강철 산맥은 겨울이었다. 은색 산맥의 차가운 바람이 넘어오는 시기. 메마른 풀잎과 가지들에 불이 옮겨붙은 채 바람이 불면, 그땐 어찌할 방도가 없게 된다.
-안 가?
-안 가?
-안 가?
-안 가?
-가?
너구리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나는 그런 녀석들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반룡인들이 불을 지르기 시작했어. 저걸 그대로 놔둔다면, 강철 산맥 전체가 불타게 될 거야.”
드워프 소방대가 갖춰진 에르긴 근처의 숲들을 제외하고 거진 모든 것들이 재로 변모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반짝이는 너구리들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마 이 녀석들도…….’
숲이 사라지면, 숲의 의지 역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모모는 물론이고, 너구리들을 비롯한 다른 숲의 의지들까지. 그렇게 되면, 이 땅에 다시 생명이 움틀 때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둘 순 없어.’
단순히, 내 구역이라는 생각에 이러는 건 아니었다. 강철 산맥에 뿌리내린 수많은 생명. 조각의 힘에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난 그 생명들의 보금자리를 또다시 잃을 수는 없었다. 그것도, 나 하나 때문에.
“여긴 내가 어떻게든 막을 테니까, 너희는 숲으로 돌아가서 다른 녀석들을 대비시켜.”
-우, 우웃……!!!
모모가 내 바짓단을 세게 물고 당긴다. 같이 가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녀석을 부드럽게 떼어냈다.
“어서, 모모. 여긴 네 숲이잖아. 함께 지켜야지.”
-웃!!!
“모모를 데리고 가!”
-데리고 갈게!
-데리고 갈게!
-데리고 갈게!
-데리고 갈게!
-갈게!
다섯 너구리가 모모를 부여잡고 숲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 나는 주머니를 뒤져 각종 씨앗이 담긴 주머니를 꺼냈다.
‘조금만 머리를 쓰면 돼.’
아주 조금만. 거기에 운이 따른다면, 나 혼자서도 충분히 반룡인들을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닷스크에서 얻은 씨앗들, 이건 갈로픽에서 얻은 씨앗들, 이건 라바타에서 얻은 씨앗들, 그리고 이건 에카이츠에서…….’
각종 나라와 도시에서 모으고 사들인 씨앗들. 그중에서도 ‘불’에 강하고 ‘물’과 친한 녀석들만 모아 놓은 주머니다.
‘마력이 아주 아슬아슬해…….’
상처 회복에만 신경 써도 힘겨울 정도인데, 과연 내가 버틸 수 있을까…….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린샤카시여, 부디 도와주소서.’
짧고 담백한 기도를 올린 뒤,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여기저기 깨어진 채 흩어진 마력들의 흐름을 작게나마 되돌리고, 실낱같은 바람 위로 씨앗을 태워 보낸다. 하나하나 흩어진 씨앗들은 저마다 움츠린 채 나의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후우우우…….”
좋아. 할 수 있어. 정신력으로 버티는 거다, 테오도르. 일주일 연속 야근도 버텨냈던 너 아니냐! 그거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톡, 토독…….
-토독…….
놀랍게도, 야근을 떠올리자 힘이 나는 것도 같다. 아니, 이건 힘이 아니라 ‘울분’인가? 어쨌거나, 나는 정신을 집중하고, 씨앗들에 내가 가진 마력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아주 약한 수준의 [숲의 숨결]이 퍼져나간다.
-타닥!
가장 먼저 쑥쑥 자라나기 시작한 건 다름 아닌 로샨 사막 출신인 ‘코끼리 선인장’이었다. 속에 물로 적신 솜뭉치를 가득 품고 있는 녀석이다. 거의 2미터 가까이 자라는 녀석이지만, 내 마력이 부족한지 그 절반밖에 자라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다음은, 물덩굴…….’
늪지에서 자라는, 미끈한 점액으로 표면을 감싸고 있는 굵직한 덩굴. 마치 핏줄처럼 넓게 퍼져나가는 습성이 있는 놈들이다. 이걸 바닥에 깔아 놓으면, 불이 넓게 퍼지는 걸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스륵, 스륵, 스륵…….
물덩굴이 서서히 퍼져나가고, 그 사이사이 코끼리 선인장이 자라난다. 그리고 중간중간 ‘끈적이 풀’까지. 끈적이 풀의 끈끈한 점액 역시 불이 붙지 않는다. 이 끈적이 풀의 잎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 다른 식물에 붙는 식으로 퍼지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식물들에 불이 붙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줄 수 있을 것이다.
‘됐어……!’
진짜, 있는 마력 없는 마력 전부 다 끌어다 쓰는구나. 나는 눈을 부릅뜨고, 일렁이며 가까워지는 불꽃들을 바라보았다.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