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528
‘원래 몸 쓰는 걸 잘하시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칼트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하기야, 제 앞에 서 있는 것이 누구인가. 맨손으로 역천의 검 카일을 줘패서 승리를 거머쥔 인물이 아니던가. ”
전투 경험이야 차고 넘칠 만큼 가지고 있으며, 하늘에 오른 경험으로 하여금 얻은 그 초월적인 육체 능력은 반신(半神)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후웅.”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울려 퍼지는 소리가 제법 살벌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칼트가 쓰게 웃었다.”
‘이러다 진짜 검의 초인 되시는 게 아닌지 몰라.’”
그렇게 라니아가 검을 휘두르는 걸 지켜보고 있던 마당이다. 라니아가 검을 등 뒤로 늘어트리며 길게 숨을 뱉었다. 칼트가 보였던 초견살의 자세.”
그것마저 완벽하게 흉내 낼 순 없었는지 자세는 엉성했다. 휘두르고 나면 교정해 드려야겠군. 칼트가 팔짱을 낀 채 그리 생각하고 있을 무렵이다. 칼트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그의 초감각이 경종을 울린 까닭이었다.”
오랜만에 울리는 경종.”
어째서 지금?”
칼트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왠지 모를 불길함에 칼트가 라니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선배님, 잠깐···.””
이미 늦었다. 너무나도.”
라니아가 검에 마나가 맺혔고, 마나를 두른 검을 라니아는 휘둘렀다. 지난번처럼 마나가 사출되진 않았지만, 마나로 하여금 강화된 검격은 칼트의 예상을 벗어난 결과를 만들었다.”
반신의 육체. 넘쳐나는 마나. 그리고 어중간한 자세가 맞물리며 다시 한번 재앙이 탄생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벽이 터졌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터졌다. 박살 난 협곡의 벽이 우수수 무너지는 가운데 라니아가 오, 하고 짧게 감탄했다.”
“이렇게 하는 거 맞냐? 비슷한 것 같은데.””
“절대 아닙니다.””
무너지는 벽을 바라보는 칼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아니, 검을 휘둘렀는데 왜 주먹으로 후려친듯한 흔적이 남는단 말인가. 이건 검격이라기보단 그냥 마나 실은 쇳덩이로 후려친 게 아닌가···.”
“선배님.””
“응.””
“선배님은 그냥 검 휘두르지 마십쇼.””
“왜. 나도 검사할래.””
“하지 말라면 하지 마십쇼, 좀.””
두번 초견살 흉내 냈다간 소중한 수련장이 무너지게 생겼다. 칼트는 급히 라니아의 손에서 검을 빼앗았다. 그러나, 그 또한 다소 늦은 판단이었다.”
쿠웅!”
충격에 수련장의 벽이 무너졌다.”
무너지는 벽을 바라보며 칼트가 눈물을 삼켰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기어코 내일의 해가 떠오르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그날이 왔다. 결혼식에 참석해야만 하는 날이 오고야 만 것이다.”
“······.””
잠을 푹 잤음에도 라니아의 눈동자는 퀭했다.”
옷장에서 옷을 꺼내 든 채 라니아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었다. 오랜만에 친우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니 들뜨기도 했지만, 동시에 우울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분명 한 소리 들을 텐데···.’”
칼트처럼 자신이 아무렇지 않게 여기면 괜찮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라니아는 결혼식에 참석하는 게 썩 즐겁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아끼는 제자의 결혼식인데 웃으면서 축하해줘야지.”
“후우···.””
길게 숨을 내뱉으며 라니아는 준비를 마쳤다.”
창밖을 보니 봄날의 햇볕이 제법 따스했다. 그러고 보니 클로에는 반드시 5월의 신부가 되겠다고 외치곤 했더랬다. 정말 그대로 됐구나. 축하한다 클로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라니아는 제자들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벨노아와 클로에.”
두 사람의 결혼식은 황실의 축복하에 아주 성대하게 열렸는데, 이는 두 사람의 신분을 생각하면 당연한 처사였다. 둘 모두가 제국 역사서의 첫 장에 새겨진 영웅이요, 흑색 마탑의 차기 마탑주였으니까.”
다만 성대하게 열린 것과는 별개로, 지나친 소란을 염려해 하객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클로에와 벨노아 두 사람과 교류가 있던 지인들이나 흑색 마탑의 고위 임원들, 그리고 황실의 몇몇 인물만이 하객으로 참석했다. 물론 그렇게 선별한 하객의 수만 해도 제법 되었지만 그날이 사라의 결혼식 때처럼 정신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정작 사라는 좋다고 웃어댔지만.’”
과거를 떠올리며 라니아는 길게 숨을 뱉었다.”
그녀는 방금 막 신부 대기실에서 클로에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는 길이었다.”
「라니아 선배님!」”
드레스를 입은 클로에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웃으며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 것이며, 이 웨딩드레스를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골랐는지 구구절절 설명했다. 웃으며 듣기야 했지만 들을 때마다 심력이 소모되는 기분이었다.”
해롭다, 이 분위기.”
결혼식의 들뜬 장밋빛 분위기. 언제 보아도 적응이 안 되는 분위기다. 그렇게 라니아가 괜스레 냉수를 홀짝이고 있자니, 라니아의 곁에 누군가 다가왔다.”
“오랜만에 뵙네요, 선배님···.””
“그러게, 오랜만이다. 레스티···.””
똑같이 퀭해 보이는 레스티였다.”
그녀 또한 라니아와 같은 독신주의자로서, 이런 분위기가 썩 즐겁지는 않다는 듯 라니아의 곁에 앉아 냉수를 홀짝였다.”
“저도 마탑과 결혼식이나 올릴까 봐요.””
“그런 결혼식이라면 내가 주례도 서줄 수 있어.””
“꼭 좀 부탁드릴게요.””
농담을 던지며 두 사람은 웃음을 흘렸다.”
이윽고 숨을 길게 내뱉은 채, 라니아는 객석에 앉아있는 인물들을 쓱 흘겨봤다. 대부분이 전장에서 보았던 얼굴들이요, 익숙한 인물들이었다.”
객석의 제일 앞줄에 앉아있는 인물을 바라보며 라니아는 무심코 웃음을 흘렸다. 그곳엔 양복을 차려입은 채 딱딱하게 굳어있는 카르디가 있었으니까.”
예투알은 벨노아의 아버지 역할로, 카르디는 클로에의 아버지 역할로 결혼식에 참가하게 된 마당이다. 그 자리가 몹시 불편하다는 듯 괜스레 넥타이를 매만지는 카르디의 모습은 썩 볼만했다.”
“흑색, 당신은 제자들 결혼식마저 저한테 진 거에요. 우리 라크와 나티다를 봐요. 그 아이들, 이제 육아까지 하고 있다니까요? 또 제가 이겼죠? 이로써 백색이 흑색보다 모든 분야에서 우월···.””
“제발 좀 다물어라, 백색.””
그리고 예투알의 곁에서 여전히, 그리고 철없게 그를 놀리고 있는 백색 마탑주의 모습도 보였다. 라니아의 시선을 느낀 그녀가 고개를 휙 돌려 손을 흔드는 가운데, 라니아 또한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랜만에 뵙네요, 은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교수님.””
북부에서 먼 걸음을 옮긴 라크와 나티다가 라니아에게 찾아와 인사를 건넸다. 그 외견은 몇 년 전과 비교해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라니아는 알고 있었다.”
저들이 저 멀리까지 가버렸단 사실을.”
라크와 나티다는 초고속으로 결혼식을 올렸고, 신혼여행을 떠났으며, 아이를 가지고, 육아를 시작했다. 그 모든 것이 지나치리만치 빨라서 나티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라니아는 편한 마음으로 웃을 수는 없었다.”
‘···저 애들 아이가 벌써 세 살이라던데.’”
만날때마다 아들 자랑을 하는 나티다다.”
그때마다 라니아는 아니 벌써 걸음마를 뗐다고? 아니 벌써 세 살이라고··· 같은,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느껴야만 했다.”
“그래, 나룬은 잘 있고?””
“아무렴요. 너무 기운차서 문제인걸요. 안 그래도 오늘 떨어지는데 어찌나 울어대던지.””
나룬, 나티다와 라크의 아들이었다.”
이십 대 중반에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된 나티다가 손사래를 치며 자식 자랑을 시작한 가운데, 삼십 세의 라니아는 애써 미소 지어 보였다.”
“푸흡.””
나티다에게 시달리고 있는 라니아의 곁으로, 카일과 함께 온 사라가 웃음을 참으며 스쳐 지나갔다. 눈을 부릅뜬 라니아가 사라를 노려보았지만, 사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카일과 팔짱을 끼고 지나칠 뿐이었다.”
그리고 레미아는···.”
“이거 맛있다.””
홀로 떨어져 테이블에 마련된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식탐은 여전한 모양이었다. 이젠 저 금발머리 뾰족 귀가 엘프가 맞는지조차 의심되는 가운데, 라니아는 시선을 옮겼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켈르할름과 카리옷. 은퇴 후 역사서 편찬을 맡은 전(前) 기사단장 하인켈.”
그 외에도 익숙한 얼굴들을 흘겨보며, 라니아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던 무렵이다. 탁, 하고 예식장에 새로운 하객이 발을 디뎠다. 뒤로 고개를 돌려 하객의 얼굴을 확인한 라니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싸구려 안경은 뭐냐?””
“싸구려라니? 두고 봐라. 올해의 유행이 될 테니까.””
검은색 색안경을 끼고 나타난 데스텔이 그곳에 서 있었다. 착, 하고 멋들어진 손동작으로 안경을 벗어 셔츠 주머니에 꽂아넣은 데스텔이 라니아의 곁에 걸터앉았다.”
“오랜만이다.””
“그러게 말이다. 얼굴 보기 더럽게 힘들던데.””
“내가 좀 바쁘잖냐.””
데스텔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3년 전 첫 작품을 기점으로, 유명 극단의 간판 배우가 된 데스텔이다. 그가 무대에 오르는 극마다 만석이요, 객석을 두고 귀족 영애들이 전쟁을 벌인다든가.”
“내가 추려준 리스트는 다 봐 봤냐?””
“수십 개가 넘는걸 어느 세월에? 절반은 봤어.””
“절반이나 봤더니 놀라운데.””
그렇게 데스텔과 잡담을 나누고 있자니, 얼마 안 가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식의 진행을 맡은 것은 놀랍게도 아일라였다. 카르테디아 제국의 여제(女帝)의 축복과 함께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그리고, 주례를 맡은 것은 르뤼엘이었다.”
아직 카르테디아가 왕국이었을 시절, 왕의 자리를 아일라에게 물려주고 은퇴한 전(前) 여왕. 그녀를 흘겨보며 데스텔이 아 하고 짧게 탄식했다.”
“예술인의 어머니.””
“···뭔 소리야? 그게.””
“저분이 우리들 사이에선 그렇게 불려. 예술 쪽으로 지원을 어마어마하게 하시거든.””
저분께서 카르테디아 문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계시다는 데스텔의 말을 흘려들으며, 라니아는 결혼식에 집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