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oo easy to go to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65
265화
ep78. 나의 황금
모두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강선후가 문을 열고 있었다. 흑성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있었다. 여전히 하늘은 어둠뿐이었지만.
도시의 전경이 펼쳐졌다.
안으로 들어가 도로의 흔적을 걸었다. 분수를 따라 흐르는 반짝이는 황색의 물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게 그 이름대로의 빛을 띠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하지만 강선후가 보기에 평범한 아름다움이었다. 황금시대에 만들어진 유적은 이미 많이 들어가 봤고, 이곳은 조금 더 정돈되어 있을 뿐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하는 법은 없었다.
강선후는 이곳에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기대했던 게 아니니까.
그렇게 천천히 걸어 중앙, 성의 계단 앞에서 멈췄다. 천은 될 거 같은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그 위에는 반짝이는 거대한 문 하나가 있었다.
용의 힘이 세상에 도래한 뒤, 모두가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넓은 공간에 각자 흩어져 있었기에 한자리에 모이는 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강선후는 그 모든 시간을 기다려 주었다. 방금 전까지 보여 줬던 급박한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되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그래도 되었고, 모두가 그 사실을 납득하고 있었다. 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발에 밟히는 황동색 알갱이를 느끼며 한 발자국씩 다가갔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어두웠다.
“……위대한 암흑시대는 우주의 순환입니다.”
“나쁜 게 아니죠.”
강선후는 위를 올려다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게 되어 있는 거야. 굳이 세상이 우리에게 너그러울 필요는 없으니까.”
“살아남기 위해 맞서 싸우는 이유. 그게 꼭 상대를 향한 증오일 필요는 없어요.”
그렇게 말하며 엘신은 싱긋 웃었다.
“당신이 저에게 알려 준 거였어요.”
“그랬었나.”
정말로 기억이 안 나는지, 기억이 나지 않은 척을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엘신은 잊었던 그와의 추억이 점점 떠오르고 있었고 그게 즐거웠으니까.
승천자와 멀어지고 속세에 가까워졌다. 오랜 세월 노력 끝에 비울 수 있었던 가슴속이 다시금 채워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싫지 않았다. 그 모든 혼란이 자신을 채우고 이리저리 끌고 가도록 내버려 두고 싶었다. 그래서 엘신은 미소가 나오는 대로 웃었다.
“암흑은 이번에 찾아올 시대를 지배한 새로운 법칙이고, 법칙은 절대적이에요. 그래도…… 이제는 희망이 있네요.”
“유일한 해결법은…….”
그때였다.
뎅—
뎅—
이곳에 모인 이들이 고개를 들었다. 성 꼭대기에서 종이 홀로 움직이고 있었다.
로크 벨라rok bella.
뎅—
뎅—
두 번이 더 울렸다.
네 번이라면.
“……엘 로크라 벨라el rokra bella.”
강선후가 중얼거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황금시대의 재림을 선언하는 종이라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엘신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신화, 역사, 전설.
모든 게 크고 작은 부분에서 실제와는 많이 달랐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세월이 그 이야기의 시작과 이 시대 사이에 존재했으니까.
혹시 엘 로크라 벨라는 황금의 소멸 역시 뜻하는 건가? 여전히 물러갈 줄 모르고 하늘을 뒤덮은 어둠을 바라보았다. 그건 점차 짙어져 가고 있었다.
아직 희망은 있었지만, 그 희망이 시대를 이끌어 주리라는 확신까지는 없었다.
모두의 머릿속에 이런 불안감이 크게 자리 잡은 탓이었다.
어쩌면 늦은 게 아닐까.
이미 돌이킬 수 있는 단계를 넘어 버려, 이제는 시대의 진행을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된 것 아닐까.
엘신은 이런 불안감 또한 자신의 내면을 헤집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 모든 감정이 너무 오래전 잊어버렸고, 또 그만큼 낯선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모두가 이 자리에 모였다.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는 듯 눈을 감고 있었던 강선후는 몸을 일으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뭘 줬고, 그렇기에 뭘 받았는지는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순환이 그의 눈으로 보기에는 자연스러웠다.
강선후의 시선은 마지막에 리리에게 닿았다.
“……?”
리리는 검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맨 처음 만났을 때 입었던 그 복장.
오랜 방랑을 어떻게 견뎠는지도 모르겠는, 움직이기 너무나 불편해 보이는 뱀파이어 귀족의 고딕풍 드레스.
“마지막이라고 꾸미는 거야?”
리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강선후를 한 번 바라보고, 계단 위에 있는 문을 바라본 다음, 다시 강선후를 바라보았다.
강선후는 고개를 돌려 계단 위를 바라보았다. 저 위에 있는 문을 바라보았다.
「뭘 꾸물대냐 조바심 나서 해적 뒤지겠네!」
모두가 강선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이곳에 없는 시대의 모든 이들 역시 그럴 터였다.
이곳에 있는 모두는 뜨거운 빛을 품은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리리는 생각했다. 그들 사이에 있는 나 역시 그래야만 한다고.
선택의 시간이 가까워졌으니 더 이상 뒷걸음질 칠 곳은 남아 있지 않았다.
리리가 자신의 마음에서 도망칠 수 있는 시간.
그건 이 계단의 꼭대기에 도착할 때까지의 짧은 시간이었다.
* * *
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그 끝에는 문이 있었다. 왕국의 다른 것들과는 사뭇 다른, 투박하게마저 느껴지는 돌문이 있었다.
그건 굳게 닫혀 있었고 손잡이 따위는 없었다.
에드워드는 밀어 보라고 닦달했다. 키호테는 자신이 부술 것 같이 으르렁거렸다.
그 사이에서 강선후는 차분하게 기록관의 반지를 꼈다. 안토니오가 남겨 준 스텔라리움의 지식이 떠올랐다.
유일하게 그 내용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강선후뿐이었다. 강선후는 말없이 그 문자를 주시하다가 재킷 안쪽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건 손가락 두 뼘 크기 정도 되는 유리구슬이었다.
리리는 저 구슬을 기억하고 있었다.
안토니오가 건네준 구슬.
최초의 기록관은 그 구슬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황금의 왕국, 그 왕좌의 마지막 문을 여는 열쇠다. 정확히 말하면 열쇠가 될 잠재력이 있는 그릇.’
‘……이 안에 뭐가 들어가야 하나요? 안이 비어 있는 거 같은데.’
‘그건 왕국이 뭘 원하냐에 따라 다르겠지. 내가 지금 답해 줄 수 없는 부분이야.’
그 순간 리리는 눈치챘다.
스텔라리움의 지식이 모습을 바꾸었다. 획의 개수, 획의 크기, 곡률부터 빛깔까지.
전혀 다른 언어가 되어 있었다.
금방 깨달았다.
지금 스텔라리움 룬에는 왕국의 말이 적혀 있었다.
왕국이 뭘 원하는지 강선후에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 그 해답이 스텔라리움 안에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계속해서 어둠은 짙어지고 있었다.
그걸 해결할 해답이 희망이 이 안에 있었다.
강선후는 주저했다.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누구도 그를 닦달하지 않았다.
끝내 강선후는 입을 열었다.
“황금.”
모두가 침묵했다.
“황금을 지닌 자만이 이곳에 있을 자격이 있다.”
* * *
강선후는 언젠가 진서연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이계에도 황금이란 게 있나요?’
진서연은 너무나 확고하게 없다고 대답했다. 지금까지 발견한 적도 없었고, 이런저런 요소로 인해 없을 가능성은 거의 확실한 수준이라고.
어쩌면 당연한 말일지도 몰랐다 원소의 성질이니 뭐니 그런 지루한 이야기를 첨부하지 않아도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어둠이 펼쳐지고, 짙어지며, 턱 끝까지 잘못된 시대가 들이닥친 이 상황에서 스텔라리움은 끝까지 수수께끼를 내고 있었다.
침묵은 유지되었으나 그 내면에 혼란이 쌓여 가고 있었다.
황금을 가져오라니.
「이게 대체 무슨 헛소리…….」
「우리.」
그 순간, 날갯짓 소리와 낮지만 온 세상에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선후는 고개를 들었다.
늙었지만 여전히 뜨거운 용이 외치고 있었다.
「우리 고귀한 종족, 첫 번째 자손은 네놈들이 다 망쳐 놓은 이 세상에 실망해서 떠났었다!」
천지를 흔드는 호령 뒤의 고요는 비현실적인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그런 우리가 돌아왔지 않느냐.」
「감히 이 위를 넘보는 증명이 어디 있단 말이냐! 나, 붉은 분노의 군주, ‘길을 여는 여정을 떠나는 자’가 모든 신의 자손에게 이 자리에서, 왕의 이름을 빌려 선포한다!」
「너희에게 실망해서 떠난 우리가 돌아왔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실망하지 않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키호테는 불꽃을 머금었다. 왕국의 영혼을 바라보는 듯한 불타는 눈으로, 분노를 담아 외쳤다.
「내 황금을 증명하라고! 이게 나의 황금이라 선포한다! 우리가 돌아올 수 있었던 이 땅, 우리가 여전히 지배할 수 있는 하늘. 이게 우리의 황금이 아니라면 무엇이 황금이겠느냐! 가져올 수 있는 건 없다! 그건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이 외의 황금이 있다 말한다면 기꺼이 세상에서 지워 버릴 터이니!」
키호테는 동족의 귀환을 위해 하늘로 떠났다.
하지만 그건 그저 친구의 부탁 때문이었다.
키호테의 황금은 이 세상. 그것뿐이었다.
열쇠가 빛이 서린 건 그 순간부터였다.
강선후는 이 도시의 영혼, 왕과 함께했던 이 도시의 영혼이 원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이 목숨마저 바칠 수 있는 목표를 부끄러워하지 말라 요구하고 있었다.
“……가능성의 유무를 미리 판단하고, 그렇기에 추구하는 것을 입에 담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는 시대에게.”
그걸 그저 입에 담아 보라 하고 있었다.
그게 왕국의 주인이 될 자격이라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 * *
사막 한가운데에 선 채, 도시의 수호자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뒤편에는 배가 일렬로 위치해 있었다. 그들 모두는 친구가 떠난 방향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다. 수호신이 창을 던진 방향은 곧 친구의 방향이기에 그랬다.
그들은 용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늘을 뒤덮은 어둠을 치우기 위해, 왕국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 들었다.
「내가 사랑했던 도시.」
아틀란티스.
그리고.
「내가 새로 지켜야 할 사람들.」
그게 내 황금.
내가 목숨마저 바칠 수 있는 뜨거운 빛.
* * *
천공의 기사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작은 나무잔 하나였다.
에드워드는 그걸 알아보았다.
과거, 침몰당한 배 안에서 한 소년이 쓰던 더러운 잔이었다.
「……궁극적 정의가 내 황금이다. 영원히 거기에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기사는 고개를 들어 에드워드를 바라보았다.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그렇지. 고철 덩어리 새끼. 드디어 뭔가를 좀 알게 된 모양이구만.」
구슬은 점점 밝아졌다. 처음에는 청색이었다가 점점 백색을 띠더니 점차 희미하게나마 황금빛에 가까워졌다.
진동과 마찰음이 들려왔다. 구슬을 채우는 빛이 밝아질수록 거기에 맞춰서 문은 열리고 있었다.
이미 사람 하나 통과하기에는 충분하게 열렸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열리고 있었다. 이윽고 안쪽을 볼 수 있었다.
안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넓은 공간이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터. 분명 이 안에는 이 모든 여정의 종착지인 왕좌가 있을 터였다.
왕이 나와야만 했다.
어둠의 시대를 피하려면 그랬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지금, 그걸 염원하고 있었다.
강선후는 몸을 돌려 안쪽을 향했다. 그러다 문뜩, 리리가 아직 입을 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궁금해졌다. 그래서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그 순간 몸을 둘러싼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고개만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리리의 붉은 증기가 강선후를 감싸고 있었다.
리리는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어떻게 썼는지,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은 어떻게 피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용자의 감정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어 죄책감을 비롯한 부정적인 감정을 지우는 가면.
그렇게 함으로서 피의 귀족 금술을 온전히 다룰 수 있게 해 준다는 물건.
신카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온다는 황금의 유물.
사실 이건 그저 작은 효과일 뿐이었다.
죄책감을 소거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으니까.
누군가 무기를 뽑으려는 소리가 들렸다. 키호테가 불꽃을 머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고요해졌다. 강선후가 그저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저렇게나 가까운 거리에서는 강선후가 실제로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대체 왜 그래.”
레베카. 리리와 같은 뱀파이어인 수호기사단장이 검을 붙잡은 채 그렇게 말했다.
“그쪽은 귀족이잖아. 긍지가 있었다고. 대체 지금 이게 다 뭐 하는…….”
리리는 레베카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강선후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침묵을 외면하기 버거워졌을 무렵, 비로소 하나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렸다.
그 목소리는 가면 안에서 들려왔다. 차가웠다.
“당신 애초에 왕좌에는 관심 없었잖아. 그렇지?”
고인물은 이계가 너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