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RAW novel - chapter 289
다시 말해 이 시대 최강의 기사이자 신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 스스로도 자신이 사랑받는 왕이라는 걸 알고 있을진대, 여신에게 지은 죄를 모를 리 없다.
결국 사자심왕이란 건 이 시대에 가장 순수한 신앙인을 뜻하기도 하니까.
“폐하, 지금이라도 되돌릴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카스티야의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라면 짐은 용납지 않을 것이다.”
“신관 한 명의 목숨으로 여신의 분노를 삭일 수 있다면 마땅한 대가지요.”
“아니, 행동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짐이다. 그 책임을 지는 것 또한 짐이어야만 한다.”
“영악한 소리 마십시오. 여신께서 분노하실지라도 당신을 벌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당신은 벌하기엔 왕국에서 너무나 중요한 존재니까요.”
“······.”
레온 또한 아는 사실이었다.
사실 그렇기에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었다.
신들의 은근한 동의가 아니었다면 사자심왕이라 할지라도 어찌 여신의 강령을 어기는 대죄를 저지르겠는가.
레온 자신도 이것이 영악한 계획의 일부임을 알았고 그렇기에 더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더 뻔뻔해질 뿐이다.
“짐은 이를 허락지 않겠다. 이것이 만신의 대리인으로서, 라이온하트의 15대 사자심왕으로서의 결론이다.”
“사람의 몸으로 여신의 분노를 멋대로 거부하겠다는 겁니까? 아무리 사자심왕이라 할지라도 오만하군.”
이사벨이 활을 들었다.
명확한 전투의지.
그녀가 옥체에 손을 댈 각오를 했을 때였다.
“잠깐, 사자심왕으로서?”
레온은 지난 10개월간 도주극을 벌이며 추격자를 상대로 성법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이 여신께 죄를 범한 자 나름의 지켜야 할 선이었던 셈이다.
그런 그가 사자심왕의 권위를 들먹이며 성녀의 행사를 가로막다니?
“크아악! 마, 막아!”
“신관장님!”
그때, 문을 박차고 들이닥치는 순례자와 사냥꾼들.
그들의 입장으로 촌장의 집이 한층 북적거릴 때였다.
-으아아아앙!
이사벨이 대치하고 있는 사자심왕 너머의 방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소리.
그 소리가 성인의 목소리라기엔 너무나 앳되어 모두가 당황할 때였다.
-끼이익!
문이 열리며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촌장의 부인인 그녀는 무언가를 싼 보자기를 안고 있었다.
설마. 설마?
노인이 무릎을 꿇으며 보자기에 담긴 것을 레온에게 내밀며 말했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건강한 왕녀전하십니다.”
“고맙네, 부인.”
레온은 문틈으로 마주친 카스티야와 시선을 교차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제 품에 안긴 아기를 보았다.
자신과 같은 푸른 눈의 아이.
막 어미의 품에서 나와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달래며 뇌가 정지한 것 같은 이사벨과 사냥꾼들을 내려다본다.
“왕녀전하 천세! 천세! 천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순례자들이 무릎 꿇으며 외친다.
그들의 우렁찬 목소리에 사냥꾼들도 상황을 파악했다.
“와, 왕손의 탄생을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라이온하트 제15대 사자심왕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가 왕손을 얻다.
어여쁜 왕녀였으며 그 이름은 카리나 드라고니아라.
사자심왕의 적자를 사생아로 방치할 수는 없는바, 곧 그녀의 모후인 카스티야 또한 자연스레 라이온하트의 왕후로서 추대되었으니 길고도 길었던 추격전이 끝이 찾아왔다.
* * * *
사자심왕이 순결의 신관을 납치하여 그 순결을 깨뜨리고 도주극을 벌이던 희대의 사건은 보쌈당했던 신관 카스티야가 왕손을 낳으며 역전되었다.
왕손이 귀한 라이온하트에서 왕족을 출산한 여인을 죽일 순 없는 법이다.
첫째로 왕손인 카리나 드라고니아를 사생아로 두지 않기 위해서라도 카스티야는 정식으로 왕후가 되어야만 했으며, 둘째로 사자심왕의 반려이자 적손의 모후인 카스티야를 무작정 죽이고 보는 방법도 더 이상 쓸 수 없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결국 카스티야를 죽임으로써 여신의 분노를 진정시키려던 이사벨의 결단은 통하지 않게 되었고, 모두가 우려하던 사태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폐하를 재판장에 모시어야 하오.”
“어찌 폐하를 심판대에 올릴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불충이오!”
“허나, 폐하께서 여신의 신관을 납거하여 그 순결을 깨뜨린 것 또한 사실 아닌가.”
“충심과 신앙 중에 택한다면 응당 후자가 먼저일 것이오.”
신관과 대신들.
기사와 귀족들은 연이은 토의와 토론 끝에 레온의 재판이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부정하지 못했다.
레온이 대죄를 범한 것은 너무나 명백한 것이었고, 건드릴 수 없는 사자심왕 대신 신관 한 명을 죽여 이 모든 사태를 덮으려던 것도 그녀가 왕후가 되면서 무산되었다.
달과 순결의 여신 디나는 자신의 분노를 삭일 명분조차 가지지 못하였고, 결국 그녀의 분노는 레온의 재판을 열게 했다.
문제가 있다면──
“어, 음··· 제가요? 시, 싫습니다!”
“아니, 로지어 재판관! 법관이 재판을 거부하다니 이 무슨 소리야!”
“저는 태양과 심판의 신 타타르님의 신관이자 그분의 법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폐하의 신하이기도 합니다! 제가 어찌 법을 초월한 존재인 폐하를 벌할 수 있단 말입니까!”
첫 재판 거부사태를 시작으로──
“이거 맡으면 저 몰매 맞아 죽습니다! 제가 재판을 맡는다는 소문이 퍼지자마자 기사들 눈깔이 시퍼렇게 떠가지고 저를 노려본다고요!”
“설마 기사들이 법관을 패겠는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아침에 계란 얻어맞은 거 못 보셨어요?”
“······.”
두 번째 재판 거부──
“제 고향을 오크들로부터 구원하신 분이 폐하이십니다. 하여 저는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없을 것 같군요. 엄정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라도 저는 이 재판을 맡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니, 그렇게 따지면 레온 폐하의 은덕을 받지 않은 자가 어디 있다고!”
“아 저는 모르는 일이고요. 다른 분 찾아가 주십시오.”
세 번째, 네 번째··· 연이은 재판 거부 끝에 그 차례가 1년차 신임 법관에게까지 미뤄지자 보다 못한 록슬리가 나섰다.
“나는 태양과 심판의 신 타타르님을 대리하는 성자이자 성배기사, 그리고 최고 심판관으로서 이 재판을 맡도록 하겠습니다.”
“오오, 오오··· 성자시여······.”
이 무슨 희생정신.
라이온하트 재판정을 돌아다니며 재판을 맡을 법관을 찾아다니던 왕국대신은 록슬리의 자기희생에 감격했다.
* * * *
보쌈 사건으로부터 어느덧 1년 하고도 3개월.
험난하고 험난했던 법관 구하기가 끝나고 레온의 재판이 열렸다.
“크흠···!”
사자심왕의 오른팔이라고 일컬어지며 그와 함께 온 전장을 누볐던 태양의 성배기사 록슬리는 자신의 법복을 깔끔하게 정돈하였다.
사자심왕의 재판.
그는 이것이 기꺼웠으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최소한의 형벌로 끝내야 할 텐데.’
하지만 역시 관건은 여신의 분노가 어디까지 치미냐는 것이었다.
태양신 타타르의 법관으로서 재판은 오롯이 타타르의 영역이었지만, 그렇다고 재판 당사자인 여신의 분노를 무시할 순 없었다.
알량한 형벌로 끝냈다가는 여신의 분노가 오히려 가중될 터이니 디나 여신이 납득할 수 있는 형벌이어야겠지.
“타타르시여.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타타르 본인마저 이 재판에 난색을 보이시니 록슬리로선 어찌할 바를 몰랐다.
“피, 피고···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 폐하 납시옵니다!”
곧이어 재판정에 입장하는 레온.
이에 따라 록슬리를 비롯한 법관들과 방청객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춘다.
이는 죄인을 끌고 오는 역할인 간수들도 마찬가지라서 그들은 감히 레온의 몸에 손대지 못하고 오라도 묶지 못한 채 그저 레온의 발걸음을 모시듯이 인도하는 데 그쳤다.
일찍이 재판장에 끌려온 죄인 중 이런 깍듯한 대우를 받은 자가 있었던가?
하지만 그 피고가 사자심왕이라면 다들 이럴 수밖에 없는 것도 이해한다.
“그럼 제15대 사자심왕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 폐하의 재판을 시행하겠습니다. 본 법관은 태양과 심판의 신 타타르의 성배기사 록슬리이며 이 재판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록슬리는 재판을 진행하면서 레온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그를 지지하기 위해 모여든 성배기사들의 울긋불긋한 시선도 감내해야 했다.
‘나라고 좋아서 이러는 줄 아나.’
누군가는 법관을 맡아 재판을 진행해야 이 모든 사태가 끝나지 않겠는가.
물론 이 재판을 진행하는 대가로 록슬리는 왕국 내의 사방팔방에서 비난과 비판을 받겠지만······.
‘내가 희생해야 한다! 폐하를 위해서라도!’
록슬리가 각오를 다지며 재판에 임하려던 그때였다.
“록슬리 경.”
“예. 예, 폐하! 아니, 피고··· 인.”
록슬리는 자신을 호칭한 레온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지금은··· 피고의 발언 시간이 아닙니다. 조금 있다 기회를 드릴 테니, 그때──”
“아니, 지금 당장 해야겠다.”
어쩌면 재판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발언의 연속.
록슬리는 레온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의 무례함에 의구심을 가졌다.
“짐은 이 재판을 거부해야겠다. 아니, 거부하겠다.”
“예? 그게 무슨······.”
“록슬리 경, 그대의 신분이 결코 천하지 않으나 그대는 결국 짐의 신하이다. 그대뿐 아니라 이 자리의 모든 법관들과 기사, 귀족들이 짐의 신하이며 짐에게 충성을 바치겠다 맹세한 이들이지.”
레온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에 방청객들이 의아한 눈빛을 보냈지만, 레온은 관계치 아니했다.
레온은 이 재판의 본질적인 문제.
라이온하트 왕국의 정서상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맹점을 지적했다.
“왕이 신하를 벌하는 것. 신하가 왕을 벌하는 것. 무엇이 더 큰 죄인가!”
“”······!!””
라이온하트 재판 역사에 남을 명문이었으며 왕국 전역의 신학자들과 법리학자들을 고뇌에 빠지게 한 신앙적, 법리적, 도덕적 모순이었다.
웹툰 기념외전 8화 형벌
“왕이 신하를 벌하는 것. 신하가 왕을 벌하는 것. 무엇이 더 큰 죄인가!”
“”······!!””
그것은 법관들이 레온의 재판을 극구 사양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신하 된 몸으로 왕을 심판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 그 짐을 짊어질 경우 온 사방에서 빗발칠 여론이 결코 가볍지 않다.
누군가는 이를 역모라 판단할 수 있었고, 라이온하트에는 사자심왕을 위해 기꺼이 살인의 죄업을 짊어질 자들도 수두룩하다.
그런 와중에 레온이 재판 그 자체를 거부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재판관인 록슬리는 이 대전제에 대해 고뇌했다.
라이온하트의 왕국법상 사자심왕은 법보다 위에 있는 존재이다.
그의 존재 자체가 신들의 기적이고, 왕국을 수호하는 수호신.
당연하지만 사자심왕에게 죄를 문다는 것은 오히려 역모로도 해석될 수 있는 대죄.
여신의 분노를 심판한다는 대의와 신하가 왕을 심판한다는 불의.
그 모순 속에서 록슬리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허나, 폐하. 재판은 받으셔야 합니다. 폐하께서는··· 어찌 됐건 여신의 강령을 깨뜨리고 대죄를 범하셨으니까요.”
“그렇다. 짐은 심판을 받아야 하지. 거기에 이의는 없음이야.”
“허면 어찌···?”
“짐을 심판하는 것은 인간이어선 아니 된다. 오직 신들의 권위만이 짐을 심판할 수 있을 것이다.”
“아···!”
그 의미를 록슬리는 깨달았다.
그것이 사자심왕으로서의 격을 지키기 위한 행동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태양과 심판의 교단을 배려한 것이기도 했다.
아무리 레온이 대죄를 범하여 그 죄를 심판할 필요가 있다고 해도 이 라이온하트에서 사자심왕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정당한 재판이라 할지라도 록슬리가 사자심왕을 향해 형벌을 내리는 순간, 기사와 귀족, 자유민들이 퍼부을 분노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명분의 정당함과는 별개로 사람의 감정이란 그렇지 않았으니.
레온이 한 것은 신의 권위를 빌려 자신을 심판할 정당한 재판을 성립시키는 것이었다.
[결국··· 네가 나의 심판을 받으려 하는 것이냐.]그 순간, 재판장에 신의 옥음이 울려 퍼졌다.
록슬리의 입과 눈을 통해서 발해진 신성이었다.
“태, 태양의 신성! 심판하시는 존재시여!”
“”타타르를 영접하옵니다!!””
그 자리에서 무릎 꿇는 방청객들.
기사와 귀족, 관료, 법관 할 것 없이 모두가 록슬리가 발하는 신성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세상의 법을 주관하는 신성을 뵙습니다.”
신들 앞에서 오직 한쪽 무릎만 꿇을 자격을 부여받는 건 레온뿐.
타타르는 이 상황을 유도한 레온을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나의 법관들을 염려하는 바는 알고 있다. 허나, 너는 인간의 법으로 판결받았어야 했다.]왕국법으로 심판받는다면 레온은 그리 대단찮은 형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
세간의 눈치도 있거니와 사자심왕 자체가 법의 이해를 벗어난 특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태여 신성을 강림시켜 신성의 판결을 받겠다.
이 자리를 유도했다.
그것이 퍽 기특하기도 했지만, 이는 신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달과 순결의 여신 디나는 그 분노를 노골적으로 내비쳤으나, 다른 신들은 이 상황을 기꺼워하기 때문이다.
어찌 됐건 사자심왕이 후손을 남겼고, 그 혈통을 이어받은 카리나 드라고니아는 차기 드라고니아 대공이 되어 레온이 아직 품고 있는 시조룡 드라고니아의 심장을 이어받을 것이다.
야만족과의 전선에서 가장 중요한 드라고니아 대공령의 후계자가 나타났으니 이는 왕국에 있어 홍복이오 신들에게도 기뻐할 일이다.
“타타르시여. 제가 제 죄를 아는데, 어찌 이를 가볍게 여기고 넘길 수 있단 말입니까. 법은 지엄한 것입니다.”
[허나, 너는 그 법을 어겼다. 순결의 신관을 납치했고, 그 순결을 깨뜨려 씨앗을 품게 했으니 여신의 분노는 당연함이다.]“행사한 것도 저요, 씨앗을 뿌린 자도 저입니다. 왕손의 모후는 죄가 없습니다.”
[거부하지 않은 것 또한 죄이다. 네가 궤변으로 나를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으냐.]결국 카스티야 또한 동의했기에 이 사달이 일어난 것이다.
타타르는 이대로 가면 레온과 카스티야 둘 다 심판할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대책 없이 신성의 심판을 받으리라 호언장담한 건 아니겠지. 말하라. 무엇을 하려는 게냐.]레온은 타타르의 허락이 떨어지자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달과 순결의 여신이시여. 당신께 죄지은 자가 용서를 구하고자 합니다! 15년 전, 당신께서 아끼시는 흰 암사슴을 짐승신들의 손에서 지켜낸 한 기사를 기억하신다면, 부디 제게 그 옥음을 들려주십시오!”
그 순간, 레온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솟구쳤다.
이 세상에서 오직 살아있는 성자와 성녀들에게만 가능한 신성의 기적.
신에 의한 직접적인 세계강림.
그리고 그것을 성자의 희생 없이 구현 가능한 자는 오직 사자심왕 한 명뿐이다.
달과 순결의 여신, 사냥꾼과 짐승들의 수호자.
여신 디나가 레온의 성력을 통해 이 세상에 강림했다.
[레온··· 이 빌어먹을 자식아. 네가 과거의 마땅한 의무를 들먹여 내게 용서를 구하느냐.]아름다운 달의 여신.
새하얗고 순결한 몸의 여신은 전에 없는 분노와 노여움을 숨기지 않았다.
“제가 어찌 신들께 그러하겠습니까. 다만 여신께서 아직 저를 아끼신다면, 그 모습을 보여주시리라 믿었을 뿐입니다.”
[너를 아꼈다. 내 사냥꾼만큼이나.]디나의 노여움에 방청객으로 있던 이사벨이 쓴 미소를 지었다.
그간 레온과의 소통을 거부해온 디나가 얼마나 자신을 통해 그 분노를 삼켰는지 알기 때문이다.
“심판자시여, 순결의 보호자시여. 두 분뿐 아니라 이 재판을 지켜보는 만신전의 신들께 사자심왕이 감히 간언 드리겠습니다.”
[말해 보아라.]“순결의 여신께서 제게 내리시는 벌을 있는 그대로 받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요.”
[······!]이에 타타르뿐 아니라 재판을 지켜보던 신들도 옥음을 삼켰다.
여신 디나의 분노는 그들조차 만류할 수 없을 정도로 심상치 않다.
그런데 그 판결권을 디나 본인에게 넘기겠다니?
이는 신들이 사자심왕을 가호한다해서 빗겨나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레온은 모든 생사여탈권을 디나에게 맡긴 것이다.
[나는 네게 카스티야를 죽이라고 명령할 수도 있다.]“여신께서 그리하지 않으실 거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하··· 이런 발칙한 놈. 네놈이 신의를 멋대로 짐작하느냐!]여신의 분노가 재판장을 쩌렁쩌렁 울렸으나 레온은 그저 감내할 뿐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자신이 짊어질 생각이었으니.
사랑을 이루었으니 그 후는 오롯이 여신의 선택에 달린 것이라.
[······.]디나는 오히려 곤경에 빠졌다.
레온, 이 능구렁이가 제 신관을 범한 것도 모자라 이런 낭패감을 주다니.
그녀는 분노가 치민 대로 사자심왕을 처벌할 수 있었다.
그녀에겐 그런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다른 신들이 어찌 용납하겠는가?
사자심왕의 존재를 떠나 레온이 이룩한 그 모든 업적들.
신들이 사랑하고 아낄 만한 값어치가 있는 명예들.
그리고 앞으로도 일궈낼 수많은 영광들을 생각하면 디나는 자신의 분노만으로 사자심왕을 끊어낼 수 없음이다.
그렇기에 괘씸했다.
다른 신들도, 이 사자심왕조차도 그것을 알기에 이런 짓을 벌인 것이다.
자신이 레온에게 참형을 내릴 수 없음을 알고!
‘디나 님.’
그때였다.
디나는 자신에게 기도를 바치는 성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사벨이 방청석에서 무릎을 꿇고 디나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사벨.]‘판결을 내리기 전에, 여신의 분노를 달래고 싶습니다. 당신의 신관장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십시오.’
[······말하라.]분노한 여신도 제 성녀를 무시할 순 없었다.
’15년 전, 사악한 짐승신들이 여신의 흰 암사슴을 취하려 한 사건을 기억해주십시오. 20년 전, 사교도들에게 납치당한 순결의 신관을 구하기 위해 사자심왕이 누구보다 빨리, 홀로 구해냈던 사건을 기억해주십시오.’
또, 또 있습니다.
‘오크들의 부락에 고립되었던 저를 구한 한 성배기사를 기억해주십시오.’
‘수행의 길을 걸을 때조차 용맹함으로 숱한 신도들을 구한 수행기사를 기억해주십시오.’
‘당신께 번제를 드리기 위해 야만의 땅으로 떠났던 그 젊은 기사를 기억해주십시오.’
[공이 있으니 죄를 덮어달란 말이냐?]‘아닙니다. 하지만 공과 과가 있으되, 그의 공이 너무나도 크고 위대함을 기억해달란 것입니다.’
그는 한때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기엔 너무나도 위대한 기사였고, 신들에게 신실한 성자였음이다.
이러한 탄원은 이사벨에게서만 나오지 않았다.
‘달의 여신이시여. 태양신의 성자, 록슬리가 감히 아뢰옵니다.’
‘천둥왕관의 대리인 길링엄이 감히 탄원하나이다.’
‘꿈과 죽음의 여인께서 이 우둔한 제레아의 목소리를 전할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부디 제게도 발언의 기회를 주십시오.’
그 외에도 대성녀가, 이 소식을 듣고 있는 숲의 대현자가, 재판 소식을 듣고 기도를 올리는 수많은 왕국민들이.
모두 디나의 자비를 청원하며 사자심왕의 안녕을 바랐다.
[하··· 결국 나만 나쁜 년 되겠군.]여신의 분노는 이전처럼 불같지 못했다.
이토록 많은 이들의 탄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레온 자신의 인덕이었으니.
그가 수행길을 걷는 기사 시절부터 라이온하트를 위해 헌신해온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디나 여신은 결국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는 들어라.]“예··· 여신이시여.”
[너의 대죄가 나를 분노하게 했고, 지엄한 신성의 강령을 훼손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그러나.
[네 업이 결코 가볍지 않으니 나의 분노만으로 너를 참할 수도 없는 노릇이야. 하여···! 네게 과업을 내리겠다.]디나는 훼손된 자신의 강령과 분노를 잠재울 만한 것을 찾았다.
그것이 스스로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임을 알았고, 그렇기에 더욱 그레 걸맞은 것이어야만 하리라.
자신의 영광을 드높이고, 마땅한 형벌이 될 만한 것.
그것은──
[달에 나의 신전을 지어라. 오직 네 손으로 들고 나른 자재만으로. 네 손에 깃든 성력으로 나를 찬미할 신전을 지어야 할 것이다.]사자심왕은 모든 신들의 성력을 공유하는 자.
그가 만진 것은 모든 것이 성유물이 될 수 있었으며 그가 숨 쉬는 공간은 능히 성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음이다.
달과 순결의 여신은 레온의 숨결과 손발로 지어진 가장 위대한 성력의 신전을 지으라 명했다.
* * * *
[그래도 어찌어찌 잘 풀려 다행이로구나.]“자비로운 여신의 판결 덕분이지요.”
[자비는 무슨. 녀석은 뭇 신성이 부러워할 만한, 반신의 손으로 지어진 신전을 갖게 되었음이야.]그것은 여신의 신격을 더욱 상승시킬 것이다.
아리아나의 질투 어린 옥음에 레온은 피식 웃었다.
“그것으로 여신의 분노를 달랠 수 있다면 얼마든지요.”
[너는 괜찮은 것이냐?]“괜찮지 않을 것이 무에 있겠습니까.”
[네 아이. 카리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할 수 없음이다. 홀로 신전을 짓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몇 년의 시간을 허비할지 알지 않느냐.]레온도 왕이기 전에, 반신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아버지였다.
그녀는 출산 후 홀로 카리나를 돌보는 카스티야를 떠올리며 아버지로서의 부재에 깊은 채무감을 느꼈다.
“허나, 이 또한 제가 감내해야 할 일이지요. 허나, 많은 신들께서 저를 도와주시니 제가 어찌 불평을 말하겠습니까.”
달에 신전을 세운다.
레온의 손으로 옮기고, 레온의 손으로 빚어낸 것으로 신전을 지어야 함이다.
본래라면 달에 닿는 것조차 불가했지만, 신들은 기꺼이 레온에게 도움을 주었다.
숲과 나무의 여신 이르민이 세계수의 가지를 뻗어 달로 향하는 길을 틔워주었고, 대기가 존재하지 않는 달에서 태양과 심판의 신 타타르가, 하늘과 천둥의 신 울티마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어두운 달에서 빛과 정의의 여신 아리아나가 빛을 쬐어주고, 먹을 것 하나 없는 곳에서 생명과 풍요의 여신 데메라가 작물을 자라게 하여 배를 불려주시니.
그 외에도 숱한 신들께서 레온의 신전 건설작업에 기꺼이 권능을 빌려주고 있었다.
[부아가 치미는 일이다. 그동안 달이 사자심왕을 독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너무 노여치 마십시오. 제 계획대로라면 3년 정도··· 그 정도면 어떻게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여신의 신전에 걸맞은 예술품은 따로 구해야겠습니다만, 하고 레온이 말하자 아리아나가 짜증을 숨기지 못했다.
[달, 그것이 왕국민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막아놨으니 그토록 오랜 기간 사자심왕이 부재할 수밖에 없겠구나. 농노라도 데려오는 건 어떠하냐?]“비록 신들께서 가호하시는 땅이나 달의 환경에서 농노들은 금방 죽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 돼지 목숨만도 못한 버러지들에게 신성의 빛을 쬘 수는 없고요.”
[하아~ 어디 튼튼하고 생명력 넘치는 비왕국민 신도는 없으려나.]한시라도 빨리 레온을 왕국으로 돌리고 싶은 신들의 고민은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레온이 달에 신전을 짓기 시작한 지 1년이 좀 안 되었을 때──
“지금이야말로 저 인종차별주의자 버러지 만신전을 무너뜨린다!!”
“죽어 나간 수많은 동족들을 위하여!!”
왕국의 북부.
라이온하트 왕국에 밀려 척박한 땅에서 꾸역꾸역 인구를 늘려나가던 짐승신의 야만인들.
그들이 백만 전사들과 함께 발호하였으니 이는 왕국의 역사에서도 드문 환란이었다.
“큭···! 놈들의 기세가 이전과는 전혀 다르다!”
“특히 저 괴물은··· 대체 어떻게 하면 저 악신들의 문신을 모두 품고도 멀쩡할 수 있단 말이냐!”
4대 짐승신들의 가호를 한 몸에 받는 악신의 그릇.
역사상 가장 강력한 괴인.
“나는 불카누스다! 내가 불카누스다···!!”
불카누스의 난이 시작되었다.
웹툰 기념외전 9화 불카누스의 난
라이온하트 왕국과 야만족 사교도들의 관계를 지구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담당일진.
그것도 상당히 악랄한.
야만족이라고 뭉뚱그렸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의 풀은 굉장히 넓다.
악마를 섬기는 사교도들부터 짐승신의 부족.
그 외에도 도망자들이나 사악한 정령의 혼혈자들.
타락한 엘프나 드워프.
이상성욕자 오크, 고블린 혼혈자들.
뭉뚱그려 전부 야만족이라고 표현하고 기본적으로 라이온하트는 이 비문명화 부족들을 혐오하며 주기적으로 사냥하고 있다.
그들이 그토록 많은 숫자에도 불구하고 비옥한 토지에서 쫓겨나 척박한 황야나 극지에서 활동하는 것은 그런 이유.
라이온하트의 기사들을 도무지 정면에서 상대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금년도 농노축제를 위해서 더 많은 농노가 필요합니다!”
“마침 새끼 친 것들이 개척이랍시고 내려오니 잡아다 농노로 삼지요.”
척박한 땅에서 야만인들이 힘을 불릴 방법이란 인구를 꾸역꾸역 늘리는 것이다.
그들은 기사들처럼 인생의 모든 것을 신께 찬양하고 수행하기 위해 살지 않는다.
악신의 문신 하나만 몸에 새기고 영혼을 바치면 강해질 수 있는데, 무슨 이유로 그러겠는가.
나면서부터 강해질 수 있는 그들은 별다른 자원 없이 인구수를 꾸역꾸역 늘려 라이온하트와의 소모전으로 힘을 깎아내리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라이온하트에 영광 있으라!
-버러지 야만족 새끼들아! 죽어라!
-너희들은 버러지처럼 땅을 기다 죽을 것이다!
-그하하하하하하!!
-그하하하하하하!!
하지만 신들의 왕국.
제국을 ‘따위’로 취급하는 기사들의 나라 라이온하트.
그들의 저력은 야만족들을 압도했고, 그들의 신들을 대리하는 성배기사들은 단신으로 일만 군대를 쓸어버리는 인간의 탈을 쓴 괴수들이었다.
-이대로는 못 해 먹겠다! 라이온하트의 깡통 새끼들 억까 너무하네!
-진짜 성배기사 뺨 한 번 때려봤으면 소원이 없겠네!
-뺨은 개뿔. 접근만 해도 기적이다.
성배기사들이 진실로 두려운 것은 신을 대리하는 자로서 그 신들이 축적한 성력을 무한히 꺼내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신성강림 같은 초월기야 필멸의 신분으로 도박이나 마찬가지라지만, 거기까지 안 가도 평범한 성법이나 대성법만으로 그 무력이 일기당천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만신전과 라이온하트에 억눌려 허리를 피지 못하는 악신들.
대표적으로 야만의 짐승신들은 이 난국을 타개할 필요성을 느꼈다.
[화신체의 힘을 부여한 대족장을 앞세워 총력을 다한다면?]짐승신 중 하나 철웅이 말하였다.
짐승신들의 사도 중에서도 대족장의 지위에 오른 강자만이 받아낼 수 있는 그 힘은 성배기사의 신성강림과도 비견할 만했다.
[그 대족장이 지금까지 몇십 번 죽었다고 생각하냑.]흑수리가 쉰 소리를 내며 반박했다.
[철웅이 13번. 흑수리가 15번, 마저가 11번. 내가 14번.] [그걸 또 세고 있었냐뀌익!]마저가 백랑을 핀잔줬다.
[[······.]]짐승신들은 침묵에 빠졌다.
지금까지 수십 번이나 대족장을 필두로 한 환난을 일으켰지만, 그때마다 라이온하트의 괴물 기사들 앞에 가로막혔다.
어찌어찌 성배기사까진 이겨내더라도 성배 수호자 사자심왕이 나오면 그날로 끝.
짐승신들은 신성강림조차 리스크 없이 사용하는 라이온하트 최종병기의 무시무시함을 알았다.
결국 이게 문제였다.
라이온하트는 주기적으로 야만족들을 토벌하면서 매해 십수 만의 농노 학살극을 벌인다.
그렇다고 발끈해서 쳐들어갔다간 그거야말로 라이온하트가 바라는 바.
[제국에의 융화를 통한 점진적 장악은 어떻냑.]그렇기에 짐승신들은 라이온하트보다는 덜 적대적인 제국에 은근슬쩍 발을 걸쳤다.
[그놈들은 신의 존재에 대해 더 부정적이다.욕심 많은 권력자 놈들이 제 권력을 신과 나누기 싫어하지.]
제국에 대한 점진적 잠식도 쉽지만은 않은 상황.
그런 와중에 짐승신들은 자신들이 가호하는 어느 한 부족에서 어떤 기운을 감지했다.
-응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
그가 태어난 날.
짐승신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이의 탄생을 축복했다.
모든 짐승신들의 그릇이 될 재목을 지닌 괴인의 탄생을.
* * * *
야만부족 불타 부족장의 아들 불카누스는 생각했다.
“아~ 꼴 받는다!”
그가 외치자 지면이 흔들렸다.
갑작스레 흔들린 지면에 부족의 야만족들이 넙죽 엎드렸다.
“어, 어찌 그러십니까, 신들의 그릇이시여!”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야만인들은 경외와 두려움을 담아 머리를 박았다.
이곳이 괴수들이 득시글거리는 사냥터의 한복판이라는 것도, 그들이 한참 몬스터들의 시체를 도축하고 있다는 것도 상관없었다.
위대한 신의 그릇.
역사상 가장 강대한 괴인.
짐승신들의 문신을 하나만 받아도 한계가 오는 전사들과 달리 모든 신들의 문신을 새기고서도 멀쩡한 이 전사는 모든 것이 자신들과 달랐다.
타고난 용력은 능히 바위산을 밀어낼 만하고, 그 어떤 괴수를 상대로도 물러나지 않는 용맹함을 지닌 타고난 전사.
짐승신들이 불카누스를 향해 기대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 뭐가 불만이냑!]또한 그는 짐승신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야만족들의 성자이기도 했다.
야만족의 대족장 정도는 돼야 겨우 기도를 통해 신내림을 받을 수 있을진대, 불카누스는 그 영광을 익히 들었으면서도 껄렁껄렁한 대답을 이어 나갔다.
“심심하다 이 말이외다. 언제까지 이런 같잖은 괴수 사냥이나 하고 있어야 한단 말이외까.”
[죽음의 계곡의 대괴수는 하찮은 괴수가 아니닥······.]위대한 그릇을 타고난 불카누스는 그 탄생 때부터 짐승신들의 가호와 축복 속에서 관심을 받아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신성을 능히 감내할 수 있는 이 초유의 괴인이 능히 사자심왕과 대적할 존재임을 깨닫고 그 그릇을 키워나가기로 했다.
계시를 내려 불카누스를 차기 대족장으로 점지하고 그에게 시련을 내려 단련시킨다.
그렇게 완성된 그릇은 이윽고 모든 짐승신들을 담아내는 화신이 되어 라이온하트를 멸하리라.
짐승신들은 불카누스를 위한 성장 가도를 그려놨었다.
소용돌이 바다의 천 개의 다리를 가진 종말 아라카다.
죽음의 숲의 지배자이자 아홉 마리의 뱀 머리를 가진 샤히다하.
활화산의 움직이지 않는 자.
부동거인 카타카.
죽음의 계곡의 대괴수 천둥늑대 아사곤.
하나하나가 수백 년 이상 영역을 지배하며 야만족들의 진출을 막아냈던 대괴수들.
저 악명 높은 마수 사냥꾼 달의 여신의 사냥꾼들조차 이 대괴수들을 사냥하는 데 실패했었다.
짐승신들조차 당대의 대족장을 희생하지 않고서야 이 대괴수들을 사냥하는 건 쉽지 않을 정도.
그렇기에 역사상 최고의 그릇을 키워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사냥감이라 생각했지만──
[······너무 강한 것도 생각해볼 일이군.]불카누스.
그는 고작 서른 남짓에 역사 속 대괴수들을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이 괴인 앞에서는 대괴수들조차 무료함을 달래줄 장난감 같은 것이었고, 이는 짐승신들조차 경악할 만한 용력이었다.
“이만하면 되지 않았소이까! 언제쯤이면 그 라이온하트의 깡통들하고 싸울 수 있는 거지?”
불카누스는 타고난 투쟁심과 혈기를 억누르지 못했다.
[흠······.]짐승신들은 고민했다.
확실히 불카누스는 말도 안 되게 강하다.
그 강함을 비교하자면 이젠 만신전의 살아있는 성자들과 비견해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하지만 성배 수호자와 비교하면?
[역대 사자심왕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우위다.]철웅의 평가는 지당했다.
불카누스는 네 짐승신들의 신성을 담아내고도 여유가 남는 그야말로 역대 최강의 괴인.
역대 사자심왕들이 만신전의 신성을 담아내는 게 보통 서넛이었던 걸 생각하면 불카누스는 사자심왕들보다 우위에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 사자심왕은 틀림없는 역대 최강. 전대 사자심왕을 죽인 대악마를 단칼에 죽인 놈이다.]역대 최강의 괴인인 불카누스가 있다면 라이온하트에도 또한 역대 최강의 반신 레온이 있다는 것이다.
레온의 악명은 야만족 사이에서도 높아 그가 전장에 섰다는 소식만 들리면 용맹한 야만족 전사들도 도망치기 급급했다.
[최고 걸작의 괴인이냐, 최강의 사자심왕이냐······.] [지금이다뀌익! 지금이 아니면 우린 영원히 라이온하트를 이기지 못한다뀍!] [조심스러워야 하지 않겠냑. 아무리 불카누스라 해도 상대는 사자심왕이닥. 정면대결로 가면 불리하니 외교적 수싸움을 통해 아군을──]짐승신들은 지난 수천 년 동안 가장 열띤 토론을 하며 라이온하트 침공을 준비할지 아니면 힘을 더 기를지 토의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나는 불카누스다! 내가 불카누스다!!”
불카누스가 상상 이상으로 또라이라는 것.
무료함을 참지 못한 불카누스가 대뜸 라이온하트 국경선을 홀로 침공하면서 일명 ‘불카누스의 난’이라고 불리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몰루?
* * * *
불카누스는 침공하니 마니 하면서 쓸데없이 힘만 축적하는 짐승신들과 야만족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한심한 놈들.
힘을 뒀다 어디에 쓴단 말인가?
그는 자신의 이런 돌발행동으로 전쟁을 촉발해 진정한 대환난을 일으킬 셈이다.
준비도 없이 이게 뭐 하는 짓거리냐고?
하지만 불카누스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다 때려 부수면 된다.
“나는 불카누스니까!”
그가 이렇게 전쟁을 시작해버리면 전쟁만 준비하던 백만 전사들도 어쩔 수 없이 따라올 것이다.
그들과 짐승신들은 역대 최강의 괴인인 불카누스를 이리 허비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으니.
“네놈, 야만인 놈이 간덩이가 부은 모양이구나.”
그리고 불카누스가 마주한 것은 국경선을 순찰하던 천둥 기사단의 성배기사 길링엄 울란.
그의 번쩍거리는 갑옷과 위협적으로 요동치는 전격을 보면서 불카누스가 씨익 웃었다.
“겉은 꽤 요란한 놈이군.”
그 순간, 길링엄이 천둥을 내리쳤다.
하늘과 천둥의 신 울티마의 성배기사인 그는 대륙을 넘나드는 벼락도 아무런 딜레이 없이 쏟아낼 수 있다.
그의 취미는 대충 야만족 지역 어딘가에 벼락 떨어뜨리기.
명중률은 낮지만 맞은 놈은 확실히 골로 간다.
-콰콰쾅!
감히 국경을 넘은 야만인에게 직격한 벼락은 지형을 헤집으며 아찔한 폭음을 터뜨렸다.
“흥, 멍청한 놈. 그 더러운 소굴 속에서 살아갔다면 수명은 더 늘었을 것을.”
“길링엄 경···!”
그를 부르는 울프스 천둥 기사단원의 외침.
길링엄이 다급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
콱!
하고 말 위에 탄 길링엄을 붙잡는 거구의 야만인.
그가 길링엄을 바닥에 처박으며 그대로 압박했다.
“짜릿한데. 역시 네녀석들과 싸우기로 한 건 좋은 선택이었어.”
‘이 자식···! 힘이!’
길링엄은 불카누스의 손아귀를 붙잡았지만,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그의 악력이 성배기사인 그를 넘어선 탓이다.
‘천둥왕관의 주인이시여!’
그 순간, 온 하늘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제 성자의 부름에 응한 울티마가 자아내는 광대한 대자연의 분노.
대성법
그것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불카누스를 향해 떨어졌다.
어지간한 야만인 대족장이나 오크 챔피언조차 이 일격에 맞설 순 없다.
성법 중에서도 화력만큼은 전쟁과 불꽃에도 뒤지지 않는 최강을 자부하는 천둥의 대성법.
그것을──
“호오, 요술쟁이냐.”
불카누스가 숨을 들이켰다.
그가 숨을 토해낸 순간──
────■■■■■■■■■■■■■■■■■■■■■■■■■■■■■■■■■■■■■■■■■■■■■■■■■■■■■■■!!
온 세상이 흔들리며 소리가 잠식됐다.
“끄으윽···!”
“귀, 귀가!”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곤 믿기지 않는 포효.
늑대신 백랑의 힘이 깃든 하울링은 온 세상을 뒤흔들었다.
내리치는 대성법의 천둥벼락조차도.
“······!?”
[······!?]그것은 성배기사도, 천둥의 신조차 기겁할 만한 괴사건이었다.
짐승신들의 대족장들이 포효를 사용하긴 해도, 그것은 결코 대성법에 맞설만한 힘이 아니었다.
그런데 대체 이 야만인은 무엇이기에 포효만으로 천둥의 대성법을 빗겨낸단 말인가?
“흐흐흐, 좀 더 싸워보자고.”
불카누스의 난 첫날.
성배기사 길링엄과 울프스 천둥 기사단의 패퇴.
그것은 라이온하트를 뒤흔든 대사건이었다.
* * * *
-길링엄 경이 패퇴하셨다! 그 괴인은 보통 강자가 아니다!
-그 강대한 천둥의 성배기사가 부상을 입고 후퇴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