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RAW novel - chapter 288
“폐하··· 정말, 정말 이런 게 용납될 수 있을까요?”
“······아마도.”
“폐하께서 그런 대답을 하시면 어쩌시나요?!”
레온은 사실 만신전의 신들이 암묵적인 동의를 했다는 것과 지금도 자신에게 빽빽 소리지르고 있는 달의 여신의 목소리를 플르께서 차단하고 계시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
‘괜찮습니까? 디나 님께서 화가 많이 나셨을 텐데.’
[어어, 괜찮아괜찮아. 이미 저질렀잖니. 그냥 끝까지 가버리렴. 본녀가 허락한다.]정말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카스티야의 걱정은 또 있었다.
“폐하, 이미 추격이 붙었을 것입니다. 이대로 쉴 때가 아니지 않을까요?”
카스티야는 스탈리온이 자신을 데리고 달리느라 본격적인 속도를 내지 못했음을 알았다.
빛의 신수는 최강 돌격자인 레온에 걸맞은 명마.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 세상에 그 어떤 생물도 쫓을 수 없는 신수인 것이다.
그런 신수가 제 속도를 내지 못했으니 필시 기사단의 추적에서 벗어날 수 없을 터.
그 예상대로 얼마 가지 않아 추격대가 몰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발굽 소리만으로도 천둥을 흔들 것 같은 울림.
동시에 하늘이 요동치며 벼락이 떨어진다.
발탄 불타는 검 기사단이 불꽃을 머금고 주파하듯 각 성배 기사단은 자신들이 모시는 신들의 권능을 머금는다.
-콰르릉!
-콰쾅!
전격을 머금은 사나운 말발굽 소리.
레온은 추격자가 누구인지 단숨에 알아차렸다.
“첫 번째는 천둥 기사단인가.”
울프스의 천둥 기사단.
즉, 하늘과 천둥의 성배기사 길링엄이 이끄는 성배 기사단이 지척까지 다가왔음이다.
레온은 산속으로 향하는 작은 다리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마주했다.
“폐하아아아아!!”
“”폐하아아아!””
길링엄과 천둥 기사단의 우렁찬 외침.
그들은 곧 다리를 앞에 두고 레온과 마주했다.
“폐하···! 어찌 호위도 없이 외유를 나가셨습니까! 신, 길링엄 울란! 폐하를 모시기 위해 왔나이다!”
길링엄은 투구 속에 숨겨진 눈동자로 레온의 등 뒤에 탑승한 카스티야도 확인했다.
“순결의 신관께서도 계셨군요. 언니분께서 걱정이 많으십니다. 이만 돌아가시지요.”
“싫다면?”
“폐하···!”
길링엄은 레온과 카스티야를 설득하여 돌아갈 생각이었다.
신들께서 은근한 암묵적 합의를 하신 것으로 보이나 그것은 신들의 논리이다.
신들을 섬기고 모셔야 할 신자들로서는 비록 사자심왕이 신께 대죄를 짓는 불경함만큼은 피해야 했다.
사자심왕은 그만큼 중요하고 귀한 존재이며, 한낱 여인을 위해 그런 불명예를 감수해서는 안 됐다.
“필요하다면······.”
길링엄의 검집에서 검이 뽑혔다.
이에 천둥 기사단 또한 일제히 발검한다.
“무엄하다, 길링엄! 어전이다! 본왕의 허가도 없이 무기를 뽑다니!”
“신이 어찌 폐하의 옥체를 손상케 하겠나이까. 허나··· 그 원흉을 제거하는 것이라면··· 이 또한 충심이겠지요.”
사자심왕의 불명예와 순결의 신관 한 명의 목숨.
비교할 필요조차 없다.
“그대가 정녕 나와 이사벨 신관장의 분노를 사려 하는가!”
“이 또한 제가 감내해야 할 일입니다.”
일촉즉발의 상황.
레온은 여전히 검과 창을 뽑지 않는 가운데, 각오를 다진 길링엄과 천둥 기사단을 향해 외쳤다.
“성법은 쓰지 않겠다. 허니, 그대들 또한 나를 넘기 전에 여인을 건드려선 아니 될 것이야. 기사의 명예를 걸고 대답하라.”
“······.”
길링엄은 고민했다.
만신전의 대리인으로서 모든 성법을 사용할 수 있는 레온이 성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리스크를 졌다.
그렇다면··· 여기 있는 성배기사와 성배 기사단이라면······.
“옥체를 상하게 할 수 있음을 용서하십시오.”
“흥, 오늘 그대는 최강의 성배 수호자가 무엇인지 다시 깨달을 것이다.”
레온과 천둥 기사단이 격돌했다.
웹툰 기념외전 5화 추격자들
결론만 말해서 레온과 천둥 기사단의 격돌은 천둥 기사단의 패배로 끝이 났다.
먼저 농노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천둥 기사단 대부분이 고향과 영지로 내려갔다는 점.
급하게 소집령을 내려 출발했던지라 정원의 반의반도 되지 않는 숫자였다는 점.
무엇보다 아무리 충심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곤 하나 그들은 감히 사자심왕의 옥체에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두를 수 없었다는 것이다.
“허억··· 허억···!”
레온 또한 손속에 사정을 두었으나 천둥 기사단의 기사들이 차례차례 낙마하는 가운데, 그나마 오래 버틴 것은 울티마의 성배기사 길링엄이었다.
“이만하면 승부가 난 것 같군.”
“후우··· 역시, 폐하이십니다.”
길링엄은 주변을 살폈다.
자연지물을 이루던 조화로운 광경은 쏟아지는 천둥벼락으로 인해 엉망진창으로 파괴되어 있었다.
길링엄 울란은 전력을 냈다.
그는 사자심왕의 저력을 알고 있었고, 그가 왜 당대 최강의 성배 수호자임을 전장에서 익히 보았다.
아무리 성법을 쓰지 않는다 해도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발목을 붙잡을 수도 없다.
그런 냉철한 판단으로 다른 천둥 기사단원들과 달리 온 전력을 쏟아낸 것이다.
“그나저나 경은 광역성법은 자제할 필요가 있군. 이르민 여신과 데메라 여신께서 이를 보면 경을 치실 것이야.”
“크흐흐··· 나중에 나무를 심겠습니다.”
어쨌든 승패는 났다.
레온은 카스티야를 데리고 다리 너머로 피난한 스탈리온 쪽에 눈길을 돌렸다.
“폐하, 정녕··· 대죄를 범하셔야겠습니까.”
그것은 충심에서 비롯된 만류.
레온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어쩌겠는가. 내 이 나라의 어떤 이들보다 이성적이고 냉철하다 생각했지만, 이미 한가득 물들어버린 모양일세.”
“???”
고개를 기웃거리는 길링엄에게 레온이 씨익 웃었다.
“별같이 빛나는 사랑을 하라. 초대 사자심왕께서 남기신 말이지.”
용기 있게 선을 행하고, 역경을 딛고 별을 향할지며, 별같이 빛나는 사랑을 하라.
기사의 규범에도 나와 있는 오랜 문구다.
“신들께서도 사랑과 수행만큼은 어찌하지 못하시는 것을.”
“하아······.”
길링엄은 레온이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갑옷에 묻은 먼지를 툴툴 털어내며.
“이제 저와 울티마 교단은 이 일에서 물러설 것입니다. 하지만 폐하, 디나 님의 분노가 심상치 않음을 폐하께서도 아셔야 합니다.”
“안다. 지금도 지극히 죄송하고 송구한 마음이니.”
“무운을 빌겠습니다.”
길링엄은 천둥 기사단과 함께 고개를 숙이곤 말을 타고 돌아섰다.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레온도 등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군.”
* * * *
그 뒤로도 호위대라는 명목으로 레온을 쫓는 성배기사와 기사단이 차례차례 접근했다.
하지만 그들은 저마다의 생각으로 쫓는 시늉만 하거나 레온과 일전을 벌인 후 패배를 인정하며 물러났다.
이쯤 되자 당사자인 달과 순결의 여신 디나는 분노를 금치 못했다.
[사자심왕의 무도함이 극에 달했다! 만신전은 사자심왕을 공공의 적으로 삼아 쫓아야만 해!]제 신관을 보쌈당한 달의 여신의 분노를 신들은 충분히 이해했으나 그것과 이것은 다르다.
디나의 역정에 만신전의 신들도 공감을 못 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랜 시간, 인간을 지켜보면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달이여. 사랑은 때론 아이들의 눈을 멀게 하고, 스스로를 불타게 하지. 우리는 숱한 역사 속에서 아이들이 사랑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았을 터다.]디나는 플르를 째려보았다.
신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아이들을 보살피는 낙원에서 요 며칠 플르가 자신의 접근을 차단했다.
산 자들의 세계가 아리아나의 관할이라면 죽은 자들의 세계에선 플르가 여왕이나 다름없다.
디나는 플르가 자신의 접근을 차단한 뒤, 신들과 작당을 하였으리라 직감했다.
그 사자심왕이 이런 중차대한 일을 신들과 상담도 없이 벌였을 리가 없으니까.
[그대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나서겠다.] [강신도 없이 신이 직접 개입하는 것은 불가한 일이다.] [누가 직접 개입한다고 했나?] [······설마?]숱한 성배 기사단이 반쯤 자의로 또 반쯤은 신의로 물러났다.
그런 와중에 디나 여신에게 믿을만한 전력은 이제 하나였다.
[이사벨. 나의 최고 사냥꾼이여. ‘사냥’을 개시하라.]사적으로는 여동생이며 공적으로는 섬기는 왕을 사냥하라는 명령.
하지만 검은머리의 사냥꾼은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쉬더니 활을 들었다.
“따르겠나이다.”
그녀는 달의 사냥꾼이며 순결의 신관장.
종교적 규율은 자유로운 성미의 그녀에게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니.
“아, 이거 완전 나가린데.”
그렇게 말하며 이사벨은 초원에서 휘파람을 불었다.
-카오오오오오오···!!
-크르아아아아아···!!
천지가 요동치며 온 사방에서 굽이친 소리가 울린다.
신화 속 짐승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 * * *
몇 번인가 기사단을 무찌른 레온과 카스티야에게 이제는 신수들과 달의 교단의 사냥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폐하! 동남쪽에서···!”
“흡···!”
순간 검을 휘둘러 날아드는 화살을 튕겨내는 레온.
그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화살이라니··· 기사인 짐에게 그런 짐승 잡는 무기를 들이대나니!”
달과 순결의 교단은 다른 교단처럼 성배기사나 기사들을 육성하지 않는다.
그들의 교리와 강령이 왕국을 수호하기 위한 용맹함보단 나라의 안정과 신수들의 관리에 힘쓰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선지 그들 교단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는 활과 화살이었고, 이는 원거리 무기를 약자들의 무기라 생각하는 기사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깃들게 했다.
“폐하, 괜찮으신가요?”
“나는 괜찮네. 하지만······.”
아까부터 화살로 노리는 대상이 명확했다.
카스티야.
그들은 자신들 교단의 치부인 카스티야를 저격하고 있었다.
아무리 분노한 여신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만신의 대리인이자 왕국의 수호자를 시해하는 일은 부담스러웠던 탓이겠지.
‘성법을··· 아니, 그럴 순 없다.’
레온은 저격수들에게 반격할 수많은 성법들을 떠올렸다.
당장 바다와 파도의 신 포마의 성법으로 파도를 일으킬 수 있었고, 전쟁과 불꽃의 신 페토스의 성법으로 불태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대죄를 짓고 도주하는 몸.
어찌 왕국민을 대상으로 성법을 사적으로 사용하겠는가.
그는 사서 고생하고 있으되 신념을 무너뜨리지 않을 굳건한 의지를 지키고 있었다.
“빠르게 달릴 것이오, 꽉 잡으시게!”
레온의 고삐가 움직이자 스탈리온이 맹렬한 포효와 함께 주파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쫓는 사냥꾼들.
“강이다!”
“넘기 전에 잡아야 한다!”
스탈리온이 다리 없는 강을 향해 뛰어들었다.
비록 물살이 거셌으나 왕국 제일의 명마는 물속에서도 쉼 없이 다리를 놀려 강을 건넌다.
“전원, 강으로 뛰어든다! 말들에게 성법의 호를 준비하라!”
달과 순결의 여신은 사냥과 짐승들의 여신이기도 하다.
그들 교단의 성법은 짐승에게도 축복을 내리고 그 능력을 극대화시켰다.
물살이 거센 강의 수면을 내달리는 성법 또한 존재한다는 것이다.
“폐하께서도 이를 알고 계실 텐데.”
“카스티야 신관도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선임을 알기에 사냥꾼들은 안타까이 여겼다.
저토록 명예로운 이들이 어찌 여신을 분노케 했단 말인가.
하지만 신의 분노를 달래려면 조금이라도 빨리 저 둘을 붙잡아 제자리에 돌려놔야 한다.
“강을 건넌다!”
그렇게 수십의 사냥꾼들이 강을 건녀러던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
강의 상류, 그곳에서부터 들려오는 커다란 굉음이 쏠려온다.
사냥꾼들의 대장이 외쳤다.
“멈춰! 강에서 ‘파도’가 몰려온다!”
“어찌··· 폐하께서 파도의 성법을 사용하셨단 말인가?”
“아니, 성법이 사용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아. 포마 씬께서 직접?”
그것은 레온을 추격하는 사냥꾼들을 저지하기 위해 바다와 파도의 신이 직접 개입해 일으킨 파도였다.
달과 순결의 여신이 부들거리며 진노했지만, 포마 신은 대충 둘러댔다.
[무슨 짓이냐, 바다!] [바다로 유입되는 민물의 농도를 높여 새로운 어종 확보와 환경구축을 위해······.]디나가 도끼눈을 하고 노려보자 포마는 양손을 슬쩍 들며 말했다.
그렇게 포마의 도움 아래 사냥꾼의 추격을 뿌리쳤지만, 난관은 또 있었다.
-크릉···!
상류에서 불어닥친 파도로 인해 불어난 강을 단숨에 뛰어넘는 거대한 그림자.
사람도 집어삼킬 것 같은 거대한 그림자가 강 건너에 착지한다.
“아···! 폐하!”
“달빛산의 검치호인가··· 오늘 참 진귀한 신수들을 목격하게 되는군!”
검은 털의 검치호는 강을 건너 주파를 시작한 스탈리온을 단숨에 따라잡기 시작했다.
신수들의 체력이 일반적인 짐승들 따위와 비견할 바가 되지 않는다지만, 스탈리온은 요 며칠 쉬지도 않고 달렸다.
게다가 왕국 제일의 명마 스탈리온 못지않게 달빛산의 검치호 또한 달의 신수 중에서도 그 준족이 손꼽히는 신수.
그는 세상을 찢어버릴 듯한 포효를 내지르며 기어코 거리를 좁힌다.
-캬오!
기어코 거리를 좁힌 검치호가 높게 뛰어들더니 그 거대한 발톱을 휘둘렀다.
-카앙!
이를 튕겨내는 레온의 성창.
그는 검치호를 힘으로 튕겨내며 낭패감을 느꼈다.
“크···!”
신수를 쓰러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한 일이 아니다.
하물며 한 마리뿐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신수가 어떤 존재인가.
그들은 때론 친구로, 때론 동료로, 때론 수호자로 왕국의 역사를 함께한 이들의 후손들이다.
하물며 저 신수는 달의 여신의 신수.
당대에 하나뿐인 신수로 그 짝을 찾기도 힘든 희귀한 신수다.
‘이미 디나 여신께 대죄를 저지른 짐이다. 헌데 어찌 그분의 신수를 상처 입힐 수 있겠는가.’
하다못해 다른 신수였다면, 뿌리쳐 보기라고 했을 것이다.
스탈리온이라면 능히 달의 여신의 신수들을 뿌리칠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저 달빛산의 검치호만큼은 뿌리칠 수 없다.
여기서 끝장을 보지 않는 이상에야.
-풀썩!
그때였다.
카스티야가 돌연 스탈리온에서 내려 검치호에게 다가갔다.
“카스티야! 위험하다!”
“제게 맡겨주세요, 폐하.”
그녀는 레온의 만류에도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런 그녀에게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검치호.
하지만 카스티야가 검치호와 가까워질 때마다 기세가 누그러지는 건 검치호 쪽이었다.
-크르르!
“날 해칠 거니?”
으르렁거리는 검치호에게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하는 카스티야.
그녀의 시선에 검치호가 발톱으로 거칠게 땅을 움푹 패어버렸다.
명백한 위협,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카스티야를 더 가깝게 했다.
“네가 여신님의 가호 아래 태어날 때부터 너를 받아낸 게 나야.”
-크, 크르······.
“기운이 다하여 낙원으로 향한 그분들을 대신해 널 보자기에 싸서 분유를 먹인 것도 나고.”
-크······.
“네가 짝짓기를 하고 싶다며 온 숲의 나무들을 부수고 다닐 때, 대륙을 넘어 하늘왕국까지 가서 네 짝을 데려온 것도 나란다.”
그런 나를, 네가 다치게 할 거니?
검치호는 이젠 하울링조차 흘리지 못했다.
그도 양심이 있었다.
“쮸르 먹을래?”
-뀨우?
카스티야가 품속에서 웬 스틱 하나를 꺼냈다.
달의 여신의 가호 아래 다종다양한 신수들의 식단까지 관리하는 신관들이 개발한 신전의 특식.
고양잇과는 환장하고 먹는다는 마약이나 다름없는 간식!
검치호의 입가에서 침이 질질 흘러나왔다.
“먹을래?”
-뀨우!
검치호가 환장하며 달려들려던 그때였다.
[너 미쳤니?]여신의 음성이 검치호에게 전달됐다.
멈칫하는 검치호.
하지만 눈앞에 아른거리는 ‘쮸르’ 앞에서 검치호의 눈빛이 흔들렸다.
[안 돼. 멈춰.]여신의 경고가 다시 한번 내려졌으나 카스티야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품에 손을 집어넣었고, 그곳에서 한 다발의 ‘쮸르’가 쏟아졌다.
“괜찮아. 엄마가 다 줄게.”
-뀨우!
참지 못하고 달려드는 검치호.
그의 고양이 혓바닥이 환장하며 쮸르를 핥아댔다.
달의 여신의 옥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한 번 맛보기 시작하자 멈출 수 없었다.
“카스티야··· 대체 이게?”
“누군가 그러더군요. 키운 부모도 진짜 부모라고요.”
역시 달과 순결의 교단 신관.
카스티야는 자애로운 미소로 검치호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스탈리온에 올라탔다.
달빛산의 검치호.
쮸르 과다복용으로 리타이어.
웹툰 기념외전 6화 추격자들(2)
레온의 추격은 계속됐다.
달의 여신의 신수 중에서 가장 재빠른 달빛산의 검치호가 리타이어했지만, 그를 제외하더라도 대평원의 강철 멧돼지, 하늘섬의 괴조, 강철산맥의 산군 등 여신 디나의 분노 아래 왕국 전역에서 농노축제 포식을 하고 돌아온 신수들이 속속 투입되었다.
아무리 레온이 역대 최강의 사자심왕이라 할지라도 이들을 상처 입히지 않고 도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산과 산을 타고, 마을과 도시를 건너 추격을 피했다.
“오늘은 이곳 동굴에서 보냅시다. 이런 누추한 곳으로 레이디를 모셔 미안하네.”
“아니에요. 오히려 짐만 되는 것 같아 죄송해요.”
대평원의 강철 멧돼지를 뿌리친 지 이제 겨우 몇 시간이었다.
두 사람은 지친 기색이었으나 여전히 생기가 가득했다.
“크흠··· 카스티야. 내 신들께 조언받은 바가 있네.”
“신들께서요?”
카스티야는 이 희대의 보쌈 납치극에 신들이 짐짓 동의했음을 레온에게 전해 들었다.
또한 신들뿐 아니라 성배기사나 대성녀까지 나서서 조언한 바에 따르면──
“그렇군요. 조금··· 충격적이긴 하네요.”
“기사로서 미안할 따름이요.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알고 있어요. 여신께서 단단히 분노하셨는데, 이 분노를 철회하려면 명분이 필요하겠지요.”
명분만 선다면야 신들이 나서서 엄호해줄 것이다.
그만큼 ‘왕손’은 귀한 존재였으니까.
즉, 일단 박고 애부터 가지라는 소리였다.
“비록 이런 누추한 곳에서 그대와 부부의 언약을 맺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나, 지금은 짐을, 아니, 나를 믿고 따라주시겠소?”
카스티야는 그 말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기꺼이.”
스르륵, 흘러내리는 옷가지를 뒤로하고 운우지락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그 시간이 사흘 밤낮을 내리 이어졌으나 놀랍게도 추적자들의 발길은 그들에게 당도하지 못했다.
* * * *
라이온하트의 신수들은 기본적으로 달과 순결의 교단에서 관리한다.
그들에게 적절한 식사를 공급하고, 신수들이 스스로 터를 잡을 영지를 제공하며, 때때로 삿된 것들을 토벌하기 위해 그들의 힘을 빌린다.
나이가 들고 제법 장성한 신수들은 왕국의 기사와 다를 게 없었다.
전시에는 사자심왕의 지휘 아래 결집하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신의 명령에 따라 사자심왕을 쫓는 처지가 되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다.
[안개가 자욱하군. 추적이 쉽지 않겠어.]대평원의 강철 멧돼지의 말에 그를 따르는 신수들이 차례차례 긍정했다.
[비가 오려나.털이 축축해지는 건 질색인데.]
[농노축제도 다 못 즐기고 이게 무슨 꼴이람.]신수들은 사자심왕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윤기를 잃어가는 털들을 보며 불평했다.
전쟁 때가 아니라면 그들은 신들의 가호를 받는 짐승으로서 존경과 안락함을 누린다.
안 그래도 농노축제로 한참 즐기다 끌려온지라 신수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지루해진 신수들은 노가리를 까기 시작했다.
[그래서, 카스티야한테 첫눈에 반해서 보쌈한 거라고?] [그렇다니까. 전쟁신 교단 쪽 불 뿜는 황소가 넌지시 건네준 정보니까 확실해.] [캬~ 수컷이다, 수컷. 상수컷이 따로 없네.] [사자심왕이 어렸을 때부터 난놈이긴 했지.] [성배기사 되자마자 오크 70만 마리 도륙한 거 내가 그쪽 전선에서 같이 뛰었음.]나이 든 신수들은 현자와 다를 게 없다지만, 그들의 대화는 어딘가 나이 든 아저씨들 같기도 했다.
[스탈리온이 고생이겠군.]대평원의 강철 멧돼지는 레온과 함께 한창 도주극을 찍고 있을 빛의 신수를 떠올렸다.
그 충성스러운 사자심왕의 맹우는 독차지하는 영광만큼이나 고생을 하는 편이다.
늙은 멧돼지는 그보단 유유자적한 삶을 더 선호하지만 말이다.
[입맛 까다로운 년이야. 우리처럼 농노축제에서 농노 놈들 잡아먹을 생각은 안 하고 ‘천한 고기’는 안 먹는다고 했다니까. 사자심왕의 말이라고 지도 사자심왕인 줄.] [그 싹수없는 말은 고생 좀 해도 돼. 기회 되면 뒷다리를 앙! 물어버려야지.] [그러고 보니 자네, 조카가 왕의 말 후보에 올랐다가 떨어졌다는데 설마?] [아니거든!]이 기회에 스탈리온을 부상입혀 떨어뜨리고 제 조카를 밀어 넣을 생각이냐는 말에 발끈하는 신수.
대평원의 늙은 멧돼지는 고개를 저으며 그들을 만류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털썩!
픽! 하고 차례차례 쓰러지는 신수들.
그것이 눈앞에 자욱한 안개 탓임을 직감한 멧돼지는 숨을 참고 성력을 뿜어내며 이에 저항했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보통 성력이 아니로구나. 모습을 드러내라, 제레아.]“역시 바하카님. 여전하시군요.”
대평원 멧돼지들의 왕 바하카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콧수염이 인상적인 노기사였다.
꿈과 죽음의 성배기사 제레아.
그가 성법으로 일으킨 안개를 통해 신수들을 꿈에 빠지게 한 것이다.
[역시 플르 님께서는 이번 일에 찬성이신가.]“짐작하고 계셨습니까?”
제레아는 이 대평원의 늙은 현자가 온 교단의 마당발 같은 신수임을 떠올렸다.
“그럼 이대로 물러나 주시지 않겠습니까? 폐하와 카스티야 왕후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미 왕후 취급이더냐. 디나 님의 강력을 어긴 배교자다. 그 아이는 여신의 인정을 받기 전에는 왕국의 모후를 자처하지 못할 것이야.]“그렇겠지요. 하지만 신들께서 사자심왕을 사랑하시니 방법을 알려주실 겁니다.”
[그렇겠지.]바하카 또한 알았다.
아무리 달과 순결의 여신이 분노할지라도 당대 최강의 사자심왕을 저버릴 순 없다.
이는 현실적인 문제다.
제국의 방종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흑마법사들이 융성하고 있으며, 악종들은 호시탐탐 이 세계를 노리고 있다.
왕국의 오랜 적인 오크들은 언제 어떻게 준동할지 몰라고 최근에는 짐승신들을 섬기는 야만족들의 낌새도 심상치 않았다.
이런 와중에 역대 최강이라 불리는 오크 도살자, 악마 학살자 레온을 폐위할 수 있단 말인가.
[허나, 카스티야 그 아해는 다르지. 여신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신관 한 명을 벌하는 것쯤이야.]“하지만 그분께서 ‘왕손’을 품고 계신다면 어쩌겠습니까?”
[······?!]그 말에 바하카의 동공이 경악으로 번뜩였다.
[그럴 생각이었나? 처음부터?]카스티야가 왕손을 품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대로 사자심왕의 왕손은 타고난 기사에 거력을 가진 존재.
당장 당대의 성배기사나 이름 높은 기사 중에서 선대 사자심왕들의 피가 섞이지 않은 기사가 드물었다.
드라고니아 대공가가 몇 번이나 사자심왕의 직위를 역임한 것도 초대 라이온하트와 초대 드라고니아의 피가 여러 번 섞인 덕 아니던가.
아이를 열 이상 나으면 거렁뱅이 거지일지라도 기사가 파견되어 상패를 주고 후한 선물을 나눠주는 것이 라이온하트다.
그만큼 왕국의 번영에 기여한 이들에게 왕국은, 만신전은 자애로웠다.
그런데 역대 최강 사자심왕의 왕손이라면?
그 아이를 품는 것만으로 낙원에 프리패스 입장이 가능한 위업이다.
[허허, 참······.]“그러니 시간을 좀 주시지요. 설마 달의 여신께서 왕손을 품은 여인을 벌하시지는 않으리라 믿습니다.”
[제레아, 네가 수행길을 너무 오래 걷다 보니 영악해졌구나.]“후후, 그때는 바하카 님께도 신세를 졌지요.”
[허나, 나 또한 여신께서 택하신 신수이니 감히 여신의 명을 태업할 수 없는 법.]“교섭결렬··· 입니까?”
[덤벼라, 어린 기사야. 죽음의 여신께서 택하신 꿈 꾸는 황혼의 성자야. 네 힘으로 나를 저지해보아라.]제레아는 더이상 설득이 통하지 않을 것을 알고 검을 들었다.
성력 대부분을 신수들을 잠재우는 데 사용했으니 저 위대한 대신수를 상대로 버티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시간벌이··· 최대한 힘쓰도록 하지요.’
그러니 얼른 왕손을 만드시옵소서, 폐하.
* * * *
레온의 도주극도 이제 제법 시간이 지나 온 왕국에 소식이 퍼진 시점.
이사벨은 교단의 사냥꾼들과 함께 어떤 마을에 진입했다.
“신관장님, 이곳이 폐하와 카스티야의 마지막 흔적이 발견된 곳입니다.”
“멀리도 오셨군.”
이사벨은 이 추격자들의 총괄 책임자였지만, 타고난 기감과 성녀의 능력으로 레온과 카스티야를 쫓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신들과 그 기사들의 은근한 방해 때문에 거의 놓칠 뻔했지만, 레온을 추적하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이런 와중에도 오크 토벌인가. 폐하께선 참 성실하기도 하시지.”
레온은 도주하면서도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았다.
수시로 마을을 침범해 사람들을 죽이는 오크, 불신자 강도단, 사교도 또는 이지가 없는 마수 등 이 세계의 어린 백성들에게 위협적인 적들을 손이 닿는대로 토벌했다.
그 고결함은 역시 사자심왕이라 할 수 있었으나, 추격받은 몸으로서는 현명한 행동은 아니었다.
“이곳에선 무슨 일이 있었지?”
“먼 땅에서 온 마수 무리들이 자리를 잡았던 모양입니다. 기사들에게 구원요청을 했지만, 지원이 늦었고 도착했을 땐 이미──”
“폐하께서 토벌하신 뒤였다는 거군.”
토벌단으로 달려온 기사단은 그 사실을 숨기려 들었으나 소문이 퍼지는 걸 막을 순 없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의외의 존재들도 불러들였다.
“거기 너. 무장한 자유민!”
이사벨의 손짓에 사냥꾼들이 무장한 자유민 병사를 데려왔다.
그는 이사벨이 누군지 단숨에 알아보곤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오오···! 신들께서 택하신 성녀를 뵙사옵니다!”
“순례자로군.”
간혹 있었다.
교단에서 신을 섬기며 성직자 노릇을 하기보다 신들의 성자와 성녀들을 쫓아 같은 전장에서 영광을 쫓는 기특한 자유민들이.
그들은 오롯이 성배기사들을 쫓는 이들이기에 왕국군에 입대하지는 않지만, 그 믿음만큼이나 성법에도 능하며 훌륭한 전투원이었다.
“순례자가 이곳엔 어쩐 일이지?”
“아~ 저는 그저··· 아니, 말씀할 수 없겠습니다.”
이사벨은 이 순례자가 차마 자신에게 거짓을 고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씨익 웃었다.
레온과 카스티야가 이 마을에 있다.
“지금 당장 마을을 수색한다! 폐하와 카스티야를 찾아!”
“아앗···!”
순례자가 안타까운 목소리를 내는 걸 뒤로하고 순식간에 마을을 수색하는 사냥꾼들.
그들의 준족은 작은 마을을 한순간에 파악했고, 곧 의심 가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이쪽입니다, 신관장님!”
그렇게 한 사냥꾼의 보고와 호각 소리에 달의 사냥꾼들이 몰려간 촌장의 집 앞.
그들은 생각지도 못한 무리를 맞닥뜨렸다.
“순례자들?”
마을 초입에서 보았던 순례자.
그와 같은 무리들이 촌장의 집을 둘러싸고 인간 벽을 친 것이다.
“물러나라! 나는 달과 순결의 신관장 이사벨이다! 이곳에 사자심왕 폐하와 배교도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
이사벨의 말에도 순례자들은 침묵하며 서로의 팔을 붙잡고 견고하게 벽을 유지했다.
이에 참지 못한 한 사냥꾼이 그들을 뛰어넘으려 했지만, 순례자 중 잽싼 자가 그 발목을 붙잡았다.
“덮어!”
“”덮어!!””
“그래도 다치게 해선 안 된다!”
순례자들은 자유민 특유의 숫자로 발목을 붙잡힌 사냥꾼을 몸으로 덮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꿀벌집을 침공한 말벌을 체온으로 데워 죽이려는 꿀벌들의 공습 같았다.
“이게 뭐 하는 짓들이냐! 우린 디나 님의 명을 받고 사자심왕을 추격하는 중이란 말이다! 너희들의 행동은 불신과 다를 바 없다!”
“아니! 그렇지 않소!”
“뭣이?!”
목소리를 낸 순례자의 멱살을 부여잡는 사냥꾼.
하지만 순례자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사자심왕께선 만신의 의지를 대리하시며 그분들의 행동을 대행하는 살아있는 반신! 어찌 신하 된 몸으로 반신을 쫓는 무엄한 행위를 할 수 있단 말이요!”
“윽···! 폐하께선 여신의 신관을 납치하셨단 말이다! 그분 신관의 순결을 깨뜨렸음이야!”
“믿을 수 없소!
고결한 사자심왕께서 그런 무도한 짓을 했을 리 없소!”
“달의 여신께서 내리신 신언을 의심한단 말이냐!”
“설사 그런 짓을 벌이셨다 해도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테지만!”
“뭐?!”
뻔뻔하기까지 한 순례자의 말에 발끈하는 사냥꾼.
하지만 그는 멱살 잡힌 채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폐하께서 그리하셨다면 다 무슨 큰 뜻이 있으셨겠지! 그 증거로 달의 교단을 제외하곤 모든 교단이 이 무도한 불충에 참여치 않고 있지 않소!”
“이, 이놈이?!”
참다못한 사냥꾼이 주먹을 들어 순례자를 후려치려던 그때였다.
“아악! 사람들 보소! 소수교단이 다수교단을 핍박하네!”
“헉! 어찌 소수자들의 신권적 도그마로 다수에게 불평등을 강요한단 말인가! 이것이 달의 교단의 실체?”
“달의 교단은 다수주의와 민초조합적 공동체의 자유의지권한을 핍박하고 있다!”
“체제의 폭력! 우린 소수자들에게 억압받고 있다!”
“이 무슨 비인간적인 처사! 믿기지 않는구나!!”
“”끼이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이, 이익! 도, 도대체 무슨 헛소리들이냐!”
자유민들의 봉기 앞에 귀족 출신 사냥꾼은 억울한 표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순례자들을 인간 벽으로 바리케이드를 치며 자신들의 의지를 고성으로 내비쳤다.
“조용히 해! 시끄럽단 말이다!”
“닥치지 못할까!!”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그러거나 말거나 떼쓰는 아이처럼 안 들려를 외치는 순례자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사벨이 얼척이 없어 한마디 했다.
“사자심왕이 대죄를 저질렀다면 어쩌려고 그러냐?”
“”············.””
그래도 살아있는 성녀의 말까지 고성으로 묻어버릴 순 없었는지 고성을 멈춘 순례자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아님 말고?”
이 새끼들이······.
웹툰 기념외전 7화 재판
··· 실랑이가 얼마나 지났을까 참다못한 이사벨이 직접 나섰다.
“신관장님!”
“순례자들을 붙들어 매. 내가 직접 나서겠다.”
이사벨은 그렇게 말하곤 가볍게 몸을 풀었다.
순례자들은 살아있는 성녀가 직접 몸을 움직일 것임을 알아채고 긴장했지만, 그 모든 게 부질없는 짓이다.
-타타탁!
“오, 온다!”
깃털처럼 가벼운 발걸음.
곧 지면을 박찬 성녀의 도움닫기가 허공으로 그 몸을 이끈다.
착지 포인트는 순례자들의 한가운데, 성배기사들을 따라 영광을 추구하던 자유민 순례자들은 이사벨의 착지 포인트에 정확히 대기했다.
“붙잡아라!”
순례자들이 손이 뻗는다.
거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상대가 아무리 고귀한 신분이라곤 해도, 그녀는 살아있는 성녀.
달과 사냥의 여신 디나가 자신의 대리인으로 택한 신의 대리인.
고귀한 신분에 망설였다간 닿는 것조차 불가하다.
그렇기에 순례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망설임이 없었다.
하지만······.
“실례.”
그녀의 발은 지면에 닿지 않는다.
순례자의 정수리를 사뿐히 즈려밟은 이사벨은 또다시 깃털처럼 뛰었다.
-파파팍!
순례자들의 무리를 마치 징검다리처럼 밟고 넘어가는 이사벨.
그 신묘한 움직임은 과연, 여신의 성녀다운 몸놀림이다.
곧이어 착! 하고 사뿐히 착지하는 이사벨.
그녀의 등 뒤로 순례자들이 기겁하며 몰려들었다.
“붙잡아!”
“폐하께 가게 둬선 안 된다!”
순례자들은 진형을 무너뜨려서라도 이사벨을 붙잡으려 했고, 달의 사냥꾼들도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이다! 돌파해라!”
순례자들과 사냥꾼들이 얼기설기 얽히는 가운데, 이사벨은 성큼성큼 촌장의 집을 향해 걸었다.
이곳에 사자심왕과 제 여동생이 있다.
비록 그녀의 배분이 성녀일지라도 라이온하트의 사자심왕이자 살아있는 반신을 어찌할 수는 없겠지만──
‘카스티야는 내 손으로 죽여야겠지.’
여신의 분노가 향하는 신관만큼은 제 손으로 처리해야 했다.
설사 그것이 제 여동생이라 할지라도.
“이사벨.”
그리고 그런 그녀의 앞을 가로막는 한 남자.
여기까지 왔으면 최종 방어선은 그 남자뿐이다.
“폐하. 오랜만입니다.”
“그대 또한. 달의 여신께서는 많이 분노하셨는가?”
“예, 뭐···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렇겠지. 죄송할 따름이다.”
이사벨은 레온과 눈을 마주치면서 그가 진심이라는 걸 알았다.
하긴, 그는 사자심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