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youngest disciple of the martial god RAW novel - Chapter 290
290화
상황을 정리하자.
우리가 공간 이동 한 장소, 얼음 동굴은 서리거인 이미르의 육체 내부였고…….
어째선지 오래전에 썩어 문드러졌거나, 최소한 멈췄어야 정상인 거인의 심장은 갓 건져 올린 활어처럼 펄떡이고 있었다.
그것도 지독한 악취, 악기를 풍기는 채로 말이다.
대체 이놈들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단순히 제물로 바치려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상상하기도 싫은 최악의 가능성이지만 죽은 이미르를 되살리는 게 이놈들의 목적이라면…….
‘…….’
깊게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어차피 나는 흑마법이니 사령술이니 하는 분야에선 문외한이니, 지금 할 수 있는 생각을 하기로 했다.
나머지 일행과 다시 집합하기로 한 건 약 다섯 시간 뒤.
여기까지 오는 데 두 시간 정도 지났으니, 돌아가는 시간을 감안해도 한 시간이 남는다.
‘한 시간.’
원래라면 다른 곳을 둘러보거나, 혹은 생각을 정리해도 충분한 시간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곳에서의 한 시간은 열 시간이니까.
실제 열 시간이란 여유 시간이 주어졌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나는 머릿속으로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다 지우기를 반복했고, 그러다 현 상황에서 내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결론은 하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선배.”
“네.”
“여기서 제사장을 없애자.”
“네?”
“주변에 교인이 많기는 하지만, 각자 제 할 일에 몰두해 있어. 제사장 놈도 의식에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무엇보다 군단장의 기척도 없어.”
사실 마지막이 가장 핵심이다.
그 눈알 놈은 현재의 나로서도 맞서면 죽는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싸우는 게 아니라 피해야 할 상대란 뜻이다.
그러나 라몬은 터무니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너무 무모합니다.”
“그래. 당연히 목숨을 걸어야겠지.”
“…….”
“모르겠어? 상대는 제사장이야. 저놈만 죽이면 마왕 강림 의식은 무조건 엎어질 텐데, 이 기회를 그냥 놓칠 수는 없다고.”
라몬이 살짝 망설였다.
아마 이 남자 또한 지금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허용된 시간, 일행과 집합한 다음,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때까지 소모되는 시간. 그때까지 지금 상황이 유지될 것인가.
제사장이 쭉 여기 있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고, 만약 있다고 해도 군단장이 지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재, 나 혼자서도 어떻게 기습할 가능성이 보이는 지금이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
교단이 파 놓은 함정 말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기회인지, 함정인지까지 판별하기는 어렵다. 주변을 탐색하거나 적의 동세를 살필 여유도 없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니까.
판단한다면 지금, 이 순간.
“선배는 이 길로 돌아가도록 해.”
물론 무모하단 의견엔 찬성이니, 이 무모한 작전에 라몬까지 휘말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예상대로라고 해야 하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요.”
라몬은 단박에 거절했다.
“이 전투에서 선배가 도움이 될 것 같아? 난 방해꾼과 같이 싸우는 취미가 없다고.”
“…….”
일부러 긁는 듯 비꼬아도 라몬의 표정엔 딱히 변화가 없었다.
이 고블린은 오히려 차분하기까지 한 태도로 나를 보며 말했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건 상황 파악입니다요. 물론 함께 싸우며 짐짝이 되지 않을 자신은 없죠. 그래도 도련님이 제사장을 쓰러뜨리는 과정만큼은 반드시 봐야 합니다. 성공하면 성공했다고, 실패하면 실패했다고, 혹은 성공한 후에 목숨을 잃으신다면 그것까지 제가 나머지 일행에게 보고해야 하지요. 상황 공유란 영웅의 기본 소양이기 때문입니다.”
“…음.”
듣고 보니 정론이긴 하지만.
어쩐지 라몬이 이 자리에 남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물론, 나도 억지를 부리고 있는 입장이라 할 말이 마땅치 않았다.
“…좋아. 그럼 여기에 대기하면서 날 지켜보고, 습격 결과만 본 다음 바로 도망쳐. 알았지?”
“물론입죠.”
나는 허리를 반쯤 폈다.
좀 더 기습에 유리한 장소로 위치를 옮기기 위함이다.
“도련님.”
“어?”
“죽지 마세요.”
“…당연하지.”
나는 죽을 생각이 없다.
언젠가는 죽겠지만, 그게 오늘은 아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니까.
* * *
기습 장소로 눈여겨봤던 곳은 제사장의 바로 위쪽이다.
워낙 천장이 높고, 동굴 종유석이 복잡하게 꼬여 있는 장소라 몸을 숨기기에도 적합했다.
문제는 저곳까지 어떻게 가느냐는 것이었는데, 이런 얼음 동굴의 특성상 동굴 벽면이 기름을 칠한 것처럼 미끄러웠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식으로 벽을 타기는 힘들었다.
뭐, 이 장소에 얼음은 없고, 생각해 보니 동굴조차 아닌 곳이었으니 이제 얼음 동굴이라 하기엔 좀 그런가.
어쨌든, 그럼에도 내겐 안전히 기습 장소로 이동할 만한 방법이 있었다.
‘살파.’
속으로 낮게 중얼거린 순간, 나만 느낄 수 있는 미풍이 불었다.
나는 바람 정령의 도움을 받아 조용히 비행했다.
[무… 거… 워…….]“…….”
거북이를 삶아 먹은 것처럼 느려 터지긴 했지만, 이 속도라면 딱히 [크로우테이커] 없이도 날 수 있다.
제사장과 가까워진다는 건 필연적으로 심장과도 가까워진다는 걸 의미했는데, 새삼스레 이 장소가 생각 이상으로 덥다는 실감이 났다.
방금까지만 해도 몸을 떨고 있었는데, 기온 감각이 마비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대충 5분 뒤.
나는 원하는 장소에 도착해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제사장과 가까운 장소.
일직선상으로 떨어지면, 즉각 제사장의 머리를 깰 수 있는 위치.
그제야 나는 이번 제사장이 여자란 걸 깨달았다. 물론 성별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말 알고 싶은 건 저 제사장 녀석이 어떤 권능을 가졌는지다.
“…….”
나는 이곳과 상당히 떨어진 곳, 아마도 라몬이 숨어 있을 장소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보니 내 생각보다 거리가 더 떨어져 있었다.
내가 제사장을 습격하면 그 순간부터 이 자리는 아수라장이 될 테니, 라몬이 도망치는 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론 그렇다.
‘정보가 너무 없단 말이지.’
이곳 말고 다른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교인이 몰려들며 라몬과 부딪칠 수도 있고, 이 동굴 전체에 어떤 흑마법이 새겨져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저 고블린 영웅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음…….’
남 걱정할 때는 아니긴 하지.
나는 뻑뻑하던 눈가를 꾹 눌렀다. 가만히 있어도 졸리고, 정신이나 근육 상태도 제 컨디션이 아니란 게 실감이 났다.
석문으로 돌입하고 이제 얼마나 지났지?
대략 대여섯 시간 정도인 것 같은데, 이걸 원래 시간으로 환산하면 50~60시간 정도인가.
고작 이틀 정도 철야했다고 이 꼴이라니… 확실히 내 정신 상태도 많이 나약해진 게 느껴졌다.
아니면 거의 긴장한 상태로 보냈기 때문에 피로 소모가 더 극심한 것일까.
나는 잡생각을 지운 채 다시 밑을 보았다.
일단 제사장 주변을 서성이는 교인이 있긴 했다. 경계 근무를 서듯, 일정한 패턴으로 주변을 돌아다녔다.
기습에 성공하여 제사장을 죽여도 그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내 계획은 단숨에 제사장의 머리통을 깨부순 다음, 교인 놈들을 따돌리며 도망치는 것.
이 미로처럼 얽힌 얼음 동굴의 구조는 도주에 유리하고, 만약 추적당한다 해도 포위당할 위험이 없다.
최악의 경우라도 일직선상으로 밀려오는 적을 끊임없이 상대할 수 있단 뜻.
뭐, 양방향에서 공격당할 수는 있겠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교인들이 제사장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때를 노리기로 했다.
[연자여…….]그런데 하필 이때 무신이 말을 걸었다.
나는 칠죄검의 칼자루를 쥐며 속으로 말했다.
‘무신님, 미안한데 저 지금 좀 많이 급박한 상황이라서 좀 있다가 얘기하면 안 될까요?’
이 양반이 졸았나.
‘방금 절 불렀잖아요? 묘하게 애틋한 목소리로.’
[난 명상에 잠겨 있었네만.]‘네?’
내가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반문하니, 무신이 영체로 드러났다.
여전히 희끄무레하지만 전보단 훨씬 인간적인 형상을 갖췄다.
꼭 유령이 되다 만 듯한 모습.
어쨌든 무신이 그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어처구니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연자여, 여긴 또 어디인가? 이 끔찍한 악기……. 설마 나와의 약속을 어기고 또 지옥에 발을 디딘 건 아니겠지.]‘그건 아니고요. 지금 한가하게 얘기나 나눌 때가 아니니-.’
[잠깐, 저건 설마…….]내 말이 잘 안 들리시나.
나는 오늘따라 유난히 마이 페이스 성향이 강해진 무신을 노려보았다.
무신의 영체가 이미르의 심장을 노려봤다.
[맙소사……. 설마 여긴 이미르의 육신 안인가?]‘그렇긴 한데, 무신님이 그걸 어떻게?’
계속 상황을 보고 있던 말투는 아니다.
줄곧 명상에 빠져 있다가, 이 공간을 둘러보자마자 이미르의 몸뚱이 안인 걸 깨달은 것에 가까웠다.
[연자여… 연자여어…….]그때 수수께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확실히 다시 들으니 무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훨씬 굵은 톤이었는데, 원래는 대단히 강직했을 목소리가 지금은 끊길 듯 희미하였다.
[대체… 언제 오는 것인가……. 나의… 연자여…….]설마 이 목소리는…….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하네!]‘예? 그게 무슨…….’
[설명할 여유는 없어! 당장 여기서-.]그 순간이었다.
두근……!
심장박동 소리가 동굴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 세기가 얼마나 강한지, 동굴 천장에 흔들리며 흙먼지가 우수수 떨어질 정도였다.
천장에 들러붙은 채 숨어 있던 나로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상황이었다.
“오오오……!”
“찬란한 금색의 앙신이시여!”
젠장. 갑자기 뭐야?
교인 놈들이 갑자기 돌아 버리기라도 한 건지, 모두 심장을 보며 무릎을 꿇더니, 쿵쿵 지면에 대가리를 찧기 시작했다.
진짜 미치기라도 한 건지 이마가 찢어져 피가 철철 흐르는 데도 개의치 않았다.
쿵……! 쿵……!
그렇게 머리를 찧는 간격이 묘한 화합을 이루더니, 일정한 리듬으로 바뀌었다.
두근……!
그에 따라 심장박동도 더욱 거세진다.
나는 내가 들러붙어 있는 종유석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단 걸 깨달았다.
대체 뭔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계속 대기하고 있을 수도 없다.
나는 즉각 전신에 공력을 둘렀다.
쿠웅……!
그리고 심장박동 소리, 교인들의 머리를 처박는 소리에 내 발 구르기 소리를 묻었다.
나는 하늘로 비상하듯 아래로 추락하였다. 화염을 두른 채 떨어지는 내 모습은 불길을 두른 유성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백일식白日式 제육초식第六招式.
낙화落火.
일권이 작렬하기 직전, 제사장이 나를 올려다봤다.
제정신이 아닌 듯 헤죽 웃고 있는 잿빛 머리카락의 여인.
샛노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는 생각이 든 순간, 내 머리는 이미 제사장의 머리를 깨부수고 있었다.
콰직!
핏물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
갑자기 난입한 나를 교인들이 눈을 부릅뜬 채 보았고.
대다수는 그랬지만, 제사장 주변을 서성이던 두 교인은 상황 파악이 훨씬 빨랐다.
이들은 즉각 스스로의 무기를 뽑으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왼쪽 녀석은 검, 오른쪽 녀석은 도였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나 또한 칠죄검과 음양도를 꺼내 이들에게 각자 대응하였다.
카카카캉!
…염병.
생각보다 더 강한데?
아니면 내 컨디션이 생각 이상으로 구리거나.
어쨌든 만만한 적이 아니란 건 분명하다.
…제사장은 죽었다.
나는 이 둘을 단숨에 벤 다음 즉각 탈출할 생각이었지만, 과연 제사장의 호위란 걸까.
둘 다 검법과 도법이 범상한 수준이 아니었다.
설상가상 패닉에 빠져 있던 교인들도 진형을 갖춘 채 서서히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어쩌지?’
크로우테이커를 사용해 공중으로 도주할까? 그럴 여유는 없다.
백화 상태에 진입하길 기다리는 건? 글쎄. 이 동굴에서 백화 상태에 진입하면 5분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악기를 사용해서 벗어나는 수밖에…….
“도련님! 위험합니다요!”
그 순간 라몬이 큰 소리로 내게 주의를 줬다.
‘저 멍청이, 안 도망쳤나?’
…라고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나는 생각하기도 전에 고개를 숙였다.
쐐액!
뭔가 날카로운 게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뒤를 돌아본 순간, 머리가 깨진 채 불길하게 움직이고 있는 제사장이 보였다.
“이건 또 뭔…….”
끔찍한 꼴이었다.
내가 머리통을 완전히 박살 냈기 때문에 정수리부터 위턱까지 뭉개진 상태였고, 아래턱만 남은 채 호두까기 인형처럼 괴이하게 까닥거렸다.
그런 상태로도 목구멍에서 이상한 목소리를 짜내더니, 순식간에 네발짐승 같은 자세를 취하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구울이 됐다고? 제사장이?’
양쪽엔 호위, 뒤엔 제사장, 앞은 교인.
결국 우려하던 대로 나는 사방이 포위당한 꼴이 되어 버렸다.
‘이거, 생각보다 더 위험…….’
그 순간이다.
돌연 하늘에 수십 개의 구슬이 펼쳐진 게 보였다.
저게 대체 뭘까?
퍼퍼퍼퍼펑!
그 순간, 하늘에 펼쳐진 수십 개의 구슬이 동시에 폭발하더니 사방에 연기가 폭사됐다.
‘연막탄?’
순식간에 장내를 뒤덮은 매캐한 연기. 가시거리가 극한으로 제한된 상황.
나는 옷깃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뭔진 모르겠지만 기회다.
당연하지만, 이런 다수의 적을 상대로 시야가 가려지면 내가 이득이다.
오른손에 쥔 음양검으로 주변의 적을 무차별적으로 베어 냈다. 그러면서도 신수의 힘을 발동하여 뱀의 시야를 얻었다.
‘…….’
뱀의 시야로도 연기를 꿰뚫어 볼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지형 파악 정도는 가능했다.
나는 혀를 날름거리며 벽을 탔다.
그러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연막탄을 뿌리고 있는 라몬이 보였다.
내가 연막을 가르고 모습을 드러내니, 라몬의 눈동자가 큼지막하게 떠졌다.
“도련…….”
대꾸할 여유도 없어 라몬을 한쪽 겨드랑이에 끼운 채 내달렸다.
이곳에 오래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뒤, 뒤에!”
누가 쫓아오나?
힐끗 뒤를 돌아봤지만, 내가 목격한 건 전혀 뜻밖의 광경이었다.
“……!”
얼음이다.
냉기의 폭풍, 눈보라, 서리……. 어쨌든 척 봐도 닿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눈의 폭풍이 엄청난 기세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갑자기 웬 눈보라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빠르잖아.’
피하거나 대비할 새도 없었다.
우리는 순식간에 눈보라에 집어삼켜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