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youngest disciple of the martial god RAW novel - Chapter 289
289화
“맞아. 군단장 한 마리 족치기엔 충분하지.”
나는 반쯤 충동적으로 그리 내뱉으며 라몬의 말을 받았지만, 이 고블린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 말은 틀렸습니다요, 도련님.”
“뭐가?”
“우리의 목적은 악마 군단장을 토벌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라몬이 주변을 한차례 둘러본 다음, 말을 이었다.
“저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마왕 강림을 저지하는 것입니다. 군단장을 몰아내는 건 그 중간 과정에 불과하죠.”
“라몬 선배야말로 지금 이상한 말을 하는 거 아닌가?”
듣다못해 미르가 끼어들었다.
“17시간 내에 군단장을 토벌하지 못하면, 선배는 죽는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시간 뒤에 마왕이 강림할 테지요.”
라몬이 아락사드를 보았다.
“아락사드 형님, 우리는 지금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아락사드가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우리는 즉각 이야기를 멈춘 다음, 각자의 무기를 뽑았다.
카아아아악-!
귀에 익은 괴성.
얼음 동굴의 어딘가에서 울려 퍼졌던 그 괴성이 유난히 선명하게 귓전에 닿았다.
위를 올려다보니 푸르스름한 피부를 지닌 악마가 고드름과 함께 떨어지고 있었다.
전신에서 입김을 내뿜듯 서늘한 냉기를 풀풀 날리는 놈들이었지만, 눈동자만큼은 핏기를 머금은 것처럼 붉었다.
‘세 놈.’
일단 내가 한 놈을 맡기로 했다.
나는 떨어지는 악마를 보며, 곧장 내공을 두른 주먹을 내질렀다.
콰직.
하급 악마인 걸까?
일격에 얼굴이 거의 반대 방향으로 꺾이며 턱관절이 산산이 부서졌지만, 기력이 쇠했다는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이놈은 핏물을 흩뿌리면서도 나를 향해 갈퀴 같은 손가락을 내뻗었다. 나는 왼손으로 음양도를 뽑으며, 그대로 손목을 베어 버렸다.
카아아아아악-!
시끄러, 개자식아.
안 그래도 기분이 불쾌했던 나는 휘두르던 음양도를 두 손으로 움켜쥔 다음 힘을 더 줘 악마의 목을 베어 냈다.
짤막한 교전 끝에 이 녀석을 즉사시킨 것이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
왜 이렇게 지치는 걸까?
체력은 물론이고, 내공조차 별로 쓰지 않았는데 호흡이 살짝 흐트러졌다.
잠깐 생각하던 나는 곧 이유를 깨달았다.
이것도 시간 가속 때문이다.
방금 교전은 고작해야 30초 정도였지만, 이 또한 열 배로 계산하면 300초가 된다.
즉 나는 5분 동안 전투에 임했던 게 된다.
“…….”
나머지 인물들도 악마 세 마리를 대충 정리하였다. 새삼스레 나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방금 전투를 나 혼자 치렀다면 지금보다 다섯 배는 더 힘들었을 테니 말이다.
“다쳤어?”
“살짝 긁힌 정도입니다.”
베리타의 어깨에서 핏물이 보였다.
작은 상처는 아닌 것 같지만, 저 녀석의 회복력이라면 딱히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다.
“후욱, 후욱…….”
유난히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라몬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말했다.
“…아무래도 이 시간 가속은 신체의 모든 작용에 간섭하는 듯합니다. 허기가 빨리 진 것처럼, 전투에 쏟는 피로도 또한 열 배겠지요.”
“그래. 그런 주제에 체력이 회복되는 건 평소와 같군. 신체 활동의 긍정적인 면까지 좋게 작용하진 않는 모양이야.”
잠시 후, 라몬이 정돈된 호흡으로 돌아오더니 입을 열었다.
“고작 저급한 악마 세 마리를 처리하는 것도 만만히 볼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인원으로 군단장 악마를 토벌하고 마왕 강림 의식까지 막을 수 있을까요?”
“…….”
“아니면 군단장을 간신히 토벌한 다음 석문으로 도망치는 것도 방법이겠군요. 물론 그럼 북부는 부활한 마왕으로 인해 멸망 직전의 상황까지 가겠지만요.”
라몬이 말했다.
“딱히 저만 희생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전 그렇게 숭고한 존재가 못 돼요. 수녀님의 말씀에 따르면 단지 차례의 문제일 뿐, 여기 계신 분들도 모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아닙니까?”
적어도 라몬은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령 마지막 차례인 나와 베리타가 저런 말을 했다면 다른 자들이 경청했을까. 이토록 마음에 와닿았을까.
그렇지 않다.
첫 번째인 라몬이라서, 가장 먼저 죽을 이가 하는 말이니 설득력이 생기는 것이었다.
“물론 저도 죽는 건 싫습니다. 살아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마왕 강림 의식을 저지하고, 그럴 여유가 있다면 당연히 군단장 토벌까지 고려하는 게 맞겠지요. 하지만 그 전까지, 우리는 의식 저지를 최우선 목표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라몬의 말대로다.”
아락사드가 말했다.
튀어나오려는 한숨을 꾹꾹 누른 듯한 목소리였다.
“저 의견대로 하지. 우리의 지상 과제는 마왕 강림 저지니까.”
“…….”
“…설령 그걸 위해, 우리 모두 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 * *
이 얼음 동굴은 개미굴 같은 구조인 듯했다. 크고 작은 굴이 최소한 수십 개, 어쩌면 그 이상 나 있다는 뜻이다.
방금 우리가 보았던 여러 결투가 열리던 장소… 임시로 결투장이라고 명명한 그곳은 아마 이 동굴에서도 특히나 크고 넓은 장소였다.
싸워야 하는 장소니 당연하지만.
그러나 그곳이 교인의 핵심 전력이 응축된 곳은 아닐 터다.
– 의식의 핵심이 되는 장소가 있을 겁니다. 금빛 뿔이 직접적으로 강림할 제단. 제단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꼭 단壇의 형태를 하고 있진 않을 테지요.
나는 베리타의 말을 떠올렸다.
– 제단은 특히나 악기의 농도가 짙고, 다수의 교인과 제사장이 모여 있을 겁니다. 어쩌면 군단장이 대기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 그 위치를 찾는 게 최우선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 개 조로 흩어져 주변을 수색하기로 하였다.
각기 나와 라몬, 아락사드와 미르, 마지막으로 베리타는 혼자서.
타당한 배치였다.
그러니까 전력의 균등한 분배로 판단했을 때 말이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괜히 저 때문에 탐색이 더뎌지네요.”
“괜찮아. 길도 복잡한데 천천히 가면서 안 외우면 돌아가는 법을 까먹을걸.”
“하하.”
라몬의 체력이 부족하지 않다는 건 북부로 오던 여정에서 충분히 알았지만…….
열 배의 시간이 흐르는 곳에선 아무래도 빨리 지칠 수밖에 없었다.
얼음 동굴에 들어오고 벌써 세 시간쯤 흘렀다.
말이 세 시간이지, 육체에 축적된 피로는 서른 시간에 달한다. 슬슬 졸려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란 뜻이다.
“잠깐 쉬자.”
“죄송해요.”
“그러니까 일일이 사과 안 해도 된다니까.”
근처에 살짝 앉은 라몬이 숨을 몰아쉬더니, 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이 차가운 기온에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모습.
“커럽티드 말인데, 나머지 멤버는 누가 있어?”
나는 다소 억지로 화제를 꺼냈다.
대화를 이어 가며 조금이라도 라몬을 더 쉬게 해 줄 요량으로 말이다. 이런 꼼수라도 부리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다시 걸어갈 양반이라 그렇다.
잠깐 두 눈을 깜박이던 라몬이 말했다.
“…물론 다양하고 개성적인 인물이 많습죠.”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음… 우선 다이달로스 형님이 있는데요. 그분은 미노타우로스입니다요.”
“진짜로?”
“네. 대륙의 사대 금지 중 하나인 [크레타 미궁]에서 란페로 형님이 데리고 오셨죠. 어마어마한 괴력의 소유자인데, 아마 노렌을 지하까지 옮긴 것도 다이달로스 형님일걸요?”
“이야…….”
“그런데 말이 엄청 많습니다요. 타고난 수다쟁이랄까……. 생긴 건 안 그런데, 워낙 떠드는 걸 좋아해서 같이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습죠.”
“또 누가 있어?”
“음… 루쿠루쿠 누님이라고 있는데, 이분은 직접 만나서 판단하시면 될 겁니다요. 자신에 대해 말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셔서…….”
커럽티드에 대해 얘기하는 라몬의 얼굴은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나는 그 모습에서 다시금 나 자신을 보았다.
사형제에 대해 떠들 때, 나 또한 저런 표정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쉴 만큼 쉬었으니 다시 가죠.”
“아직 2분도 안 쉬었는데.”
“20분이나 쉬었네요.”
라몬이 배낭을 고쳐 멘 다음 다시 성큼성큼 나아갔다.
나는 잠시 그 뒤통수에 시선을 보냈다.
죽음을 각오한 자들을 여럿 보았다.
용병의 삶이란 죽음과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
위험한 임무라도 피할 수 없을 때가 있었고, 그럴 때면 술로 목과 정신을 축인 다음 호탕하게 외쳤다.
목숨을 걸겠다고.
그런 이들이 삶의 마지막 순간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도 알고 있다.
나는 진정으로 치달은 죽음 앞에서 끝까지 초연하던 자들을 거의 못 봤다.
말로만 목숨을 걸겠다고, 죽음을 각오했다고 큰소리치던 놈들은, 막상 사신의 낫이 목젖에 닿았을 땐 그 맹세를 잊었다.
슬퍼하고, 후회하고, 분노하고, 절망하였다.
한마디로 이성을 잃었다.
라몬은 어떤가.
이 고블린의 눈동자는 죽음을 선고받은 순간부터 오히려 더 격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심지가 얼마 남지 않은 촛불처럼.
염화제일공 때문일까.
나는 라몬이 내뿜는 기이한 열기에 이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선배.”
“네?”
“땀 너무 많이 흘린다.”
“그러게요.”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던 라몬을 보며, 나는 문득 기이한 점을 깨달았다.
“아니… 선배 탓이 아닐지도 모르겠는데.”
“네?”
“조금 더워지지 않았어?”
“그런가요?”
라몬은 느끼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는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열기에 관해선 민감한 체질이라서 그렇다.
기온은 확실히 올랐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어딘가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나는 앞장서며 열기의 근원지를 향해 나아갔다. 피부에 닿은 뜨거운 공기가 이정표가 되어 줬다.
물론, 언제 어디서 악마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경계 태세를 유지해야만 했다.
두근-.
이제 와서 긴장이라도 한 걸까.
박동 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두근-.
이젠 확실하다.
나아갈수록 점점 기온이 오르고 있다.
껴입고 있는 옷이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말이다.
두근-!
얼음 또한 죄다 녹아내렸는지 어느 순간 보이지 않게 됐다. 자연스레 동굴의 속살이 드러났는데, 교단 놈들이 무슨 지랄을 쳐 놨는지 찝찝한 핑크빛이었다.
그것도 잠시.
이 핑크빛 또한 점점 불에 그슬린 듯 까만색으로 바뀌었다.
두근-!
아니, 근데 내 심장 소리. 너무 크지 않나?
‘…내 심장 소리가 아닌 것 같은데?’
박동 소리가 피부 전신으로 느껴졌다. 잔물결이 번지듯, 짓밟고 있는 땅바닥에서도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도련님.”
마침내 드러난 토굴의 끝.
그 아래엔 결투장만큼은 아니지만, 꽤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지독한 악기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고.
수십의 교인.
수백의 시체.
꽤 깔끔하게 정리된 시체는 머리카락을 화살표 삼아, 어느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끔찍한 시체의 이정표가 가리키는 곳엔 양팔을 펼치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제사장.’
저 새끼가 분명하다.
꼭 사제처럼 차려입은 옷엔 후드까지 달려 있어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확실하다.
제사장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엔 기이한 형태의 고깃덩어리가 있었다.
‘…고깃덩어리?’
두근-!
나는 박동이 저곳에서부터 나온다는 걸 알았다.
그렇단 건 저 커다란 게 심장이라는 뜻일까? 고래의 심장도 저것보단 작을 텐데.
‘거대한 심장…….’
그 순간 나는 이 얼음 동굴의 복잡한 구조를 재차 떠올렸다.
개미굴처럼, 수십 개의 토굴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모습에 각각 붉고 푸른 색이 입혀져서 익히 아는 모양이 되었다.
혈관의 모양 말이다.
그리고 혈관의 끝에 자리 잡은 거대한 심장…….
‘아.’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았다.
나는 그제야 이 얼음 동굴… 아니, 얼음 동굴이라고 생각했던 장소가 어딘지 알게 됐다.
서리거인 이미르.
우리는 그 거신의 육체에 들어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