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249
249
변호인 강태훈 249화(+에필로그)
태훈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영정사진 속 이창식 씨를 바라보았다.
보고 있어요? 나 말고도 당신을 기억해줄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무슨 그런 걱정을 했습니까.
저희가 싸울게요. 누가 이기든 해보신다고 했죠? 끝까지 가본다고 했죠? 저도 한 번 그렇게 싸워보겠습니다.
지켜보십시오.
태훈 역시 하얀색 국화 한 송이를 그곳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두 발자국 물러선 태훈은 절을 두 번 하고는 묵례를 한 번 취한 뒤에 물러났다.
집회가 열렸다. 촛불시위를 하자는 의견이 분분하였고, 사람들은 곧바로 종이컵에 촛불을 나눠주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되면, 또다시 경찰 병력이 올지도 몰랐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못했다. 이들의 억울함을 추모하겠다는데, 그것을 막지 않기를 바랐다.
촛불에 불꽃이 하나둘 피어오르고, 어느덧 그 숫자는 방대해지기 시작했다. 모여든 사람들은 다양했다.
한 대학교의 학생회 협회.
다른 지역의 재개발로 인해 철거를 겪고 슬픔에 잠긴 철거민들.
보상금을 받고 먼저 떠나갔던 상가 사람들.
무수히 많은 사람이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하고 있었다. 갈수록 그 숫자는 가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결국 도로의 혼란이 오기 시작했고, 기자들이 오기도 하기 시작했고, 경찰차 몇 대가 주위를 배회하거나 정차를 하면서 그들을 경계하였다.
– * *
남노문 경찰청장은 고급 한식집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주전자를 들고 마주 앉은 검찰청장의 잔을 술을 가득 채워주었다. 검찰청장의 바로 옆에는 이번 사건을 담당하게 될 중년의 검사도 한 사람 앉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닫이문이 열리면서 훤칠한 신사가 들어왔다. 안경을 낀 남성은, 청와대 홍보실장이었다.
“오셨습니까. 이리로 앉으시죠.”
“예예.”
청와대 홍보실장은 경찰청장의 옆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도자기 모양의 작은 술잔에 경찰청장이 잔을 채워주었다.
“거참, 철거민들. 화염병에 각목에, 쇠파이프에! 그게 테러리스트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검찰청장은 지금 경찰과 검찰을 비난하는 여론이 참으로 어리석다는 투로 말했다. 남노문이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희생이 필요한 법이거늘, 아직도 그것을 사람들은 잘 몰라요. 자기들한테 작은 피해만 와도 국가가 해준 게 뭐냐, 모든 게 국가 잘못이다, 경찰이다, 검찰이다, 항상 국가 권력을 비판만 하죠. 그게 반복되어 왔던 악순환 아니겠습니까?”
남노문은 여우같은 눈으로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청와대 홍보실장에게 슬쩍 시선을 틀었다.
“현재 각하께서도 이번 일에 무척이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계십니다.”
“알지요. 알아요. 각하께서 당연히 걱정을 크게 하고 계시겠지요. 그만큼 이번 일을 빨리 끝내는 것이 좋겠지요.”
“이틀 내로 수사를 마치고 기소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속전속결. 무척이나 빠른 기소였다. 그들이 모두 작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참참, 홍보실장님. 그거 아세요?”
“어떤 거 말씀이신가요?”
홍보실장과 잔을 부딪친 남노문이 술을 들이키고는 조심스레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요즘 천안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 있지 않습니까.”
“아아, 그거요?”
“예. 오늘 범인이 검거되었습니다.”
“그거 참 좋은 일이군요.”
“그렇지요. 후후후!”
남노문이 이죽거리면서 웃었다. 홍보실장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연쇄살인범에 관련한 기사를 터뜨리면서 철거민들 참사를 그 밑으로 내려버리라는 공문을 보낼 것을 강조한 것이었다.
청화대 홍보실장이라는 권력을 가진 만큼, 그 정도는 충분히 그가 할 수 있었다.
“이번에 한 프로그램에서, 경찰이 잘못했냐, 철거민이 잘못했냐로 투표를 한다더군요.”
“허…… 참. 그런 걸 왜 투표를 하는지.”
“하여튼 이래서 방송국이 문제입니다! 시국을 생각하지 않고 시청률만 나올 수 있으면 별의별 짓을 다하지요!”
“그렇지요! 그렇지요!”
그들은 일제히 혀를 쯔쯔 찼다.
“자자, 이런 시시껄렁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우리 술이나 마셔봅시다.”
“하하, 그래야지요!”
그들에게는 그것이 정말 시시껄렁한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 것일까?
그때 누군가 노크를 하였다. 그는 경찰청장의 비서였다.
들어오라고 손짓하자, 그는 들어와 경찰청장의 귀에 속삭이듯이 말했고, 미간이 찌푸려진 그가 몸을 일으켜 잠시 밖에 나왔다.
“뭐? 촛불 집회? 아니, 그 미친놈들이 끝까지…….”
“어떻게 할까요? 집회를 주최한 쪽에서는 청장님 사과를 원한다고…….”
“내 사과? 뭐 그런 넋 빠진 놈들이 다 있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응? 국가의 안위와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빠르게 조치한 것이 잘못이야? 당장 전투경찰들 보내!”
남노문은 거센 콧김을 뿜으면서 가소롭다는 듯이 지시했다. 비서가 입을 달싹이며 무슨 할 말이 있다는 듯 머뭇거렸다.
“왜?”
“지금 언론이…… 그래도 한 번 가 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이미 틀어진 마당이야! 너! 짤리고 싶어? 어디서 타박타박 말대답질이야. 병력 보내기나 해! 당장 살수차로 집회 해산시키라고!”
“알겠습니다.”
결국 비서는 말을 삼켰다.
다시금, 경찰청장은 술자리에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입니까?”
“세상에! 촛불 집회가 어제 사건 발생한 곳에서 열렸다는데, 제 사과를 요구한다지 않습니까.”
“허…… 뻔뻔하군요. 잘못한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그렇지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자자, 이러지들 말고 술이나 걸칩시다.”
“그럽시다.”
술 이 다시 위로 올라갔다.
그깟 사과 한 마디, 그게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그에게는 지금의 술자리가 더욱 중요한 듯 보였다.
– * *
촛불 집회 현장 앞으로 전투경찰들이 탄 버스가 속속 도착하기 시작하였다. 방패와 진압봉, 헬멧을 쓴 그들은 도로를 점거하고 있는 추모 인파를 위협적으로 둘러쌌다.
“하 ×발…… 경찰청장이란 새끼도 너무하네.”
“이주민 상경님. 왜 그러십니까?”
이주민 상경이 욕을 곱씹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최혁일 이경이 의아한 표정이었다.
“넌 앞으로도 의경 지원한 걸 후회할 거야. 내가 가끔씩 이렇게 ×같은 일이 생길 때 존나게 후회를 해요. 차라리 군인이 낫지. 이 사람들은 사과 한 마디 듣고 싶다는 건데, 어휴…….”
“그래도 저 사람들이 도로를 점거한 것은 불법이지 않습니까?”
최혁일 이경의 말도 맞긴 했다. 그렇지만 선임인 자신의 말에 타박타박 말대답을 하자 그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야이 새끼야. 그럼 ×발. 이렇게 일반 시민들 앞에서 방패에 진압봉 들고 있는 건, 맞는 거냐? 니 새끼 어머니, 아버지가 저기 있다고 생각을 해봐 임마. 아무튼 집회 해산되고 보자.”
이를 갈며 으르렁거리는 이주민 상경을 보며 최혁일 이경은 말을 잘못했다는 생각에 침을 꿀꺽 삼켰다.
“여러분의 심정이 안타까운 것은 압니다. 그렇지만, 도로를 막고 시민들의 통행로를 막는 것은 엄연히 불법입니다. 이제 그만 해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경찰의 지시에 따르지 않으실 시 무력으로 해산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뭐 큰 거 바랬소!? 경찰청장이든, 누구든 와서 사과 한 마디만 해달라고!”
“여기 앞에 와서 죽어나간 이 사람들. 고인에 대한 예의라도 한 번 차려달라고!”
집회에 참석한 이들이 목에 핏대를 세워 말했지만, 더 이상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끄흐흑, 으흐흐흑!”
태훈은 또다시 벌어진 이 일에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창식 씨의 자녀였다.
이창식 씨는 젓갈집에서 두 아이를 대학교에 버젓이 보냈다고 했었다. 그 딸아이는, 천천히 임시분양소로 걸어가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들었다.
연이어 집회 참가자들이 영정사진을 하나씩 가슴 앞에 묻었다.
꽉곽 채워진 사람들은 그들이 줄을 이어서 앞으로 걸어 나가자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벌렸다.
맨 앞에 선 이창식 씨의 딸아이는 울음을 토해냈다.
“우리 착한 아빠……! 우리 아빠…… 너무나도 착했던 사람이에요! 혼자 우리들 키우면서 아파도 아프다고 말 한 마디 못하고 일하러 갔던 사람이에요!”
“끄흐흐흑! 우리 형식이 살려내라 이눔들아아!”
“크흐흐흐흑!”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최혁일 이경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이주민 상경이 울컥하며 눈물을 뒤로 삼켰다. 자신은 의경이다. 불법 시위를 막아야 하는, 국가에 몸을 받친 몸.
그는 억지로 그렇게 합리화했다.
“제발…… 우리 아빠한테 와서 마지막 인사라도 해달라고 해줘요. 제발…… 제바알…….”
고요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작은 여성의 가녀린 목소리가 맨 끝에 있는 전경의 귀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해산을 하지 않으면 살수차의 물대포를 이용해 촛불시위를 강제 해산시키겠다는 경고가 돌아왔다.
“이 씨부랄 새끼들아! 니 새끼들은 애미 애비도 없냐!”
“야이 개자식들아!”
참다못한 촛불 집회 참가자들 몇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물대포가 일제히 물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악!
물대포는 그 수압의 힘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몸에 닿는 순간, 몸이 찢어발겨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했다.
앞으로 뛰어나가던 이들이 물대포를 맞고는 뒤로 튕겨나갔다.
“우리도 갑시다!”
“사과하라! 사과하라!”
“경찰청장 남노문은 해명하라!”
튕겨나오는 다른 이들을 보면서 앞줄에 선 이들이 힘껏 외쳤다. 그들이 걸어 나가기 시작하자, 전경들이 방패를 치켜세우며 진압봉을 꽉 쥐었다.
촤아아악!
물대포가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앞으로 전진하기도 힘들만큼 연이어 터져 나오는 물대포는 사람들을 쭉쭉 밀어내고 있었다.
태훈은 이창식 씨 딸아이의 옆을 지켰다가 물대포에 맞고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촤아악!
“끄으윽…….”
머리가 어지러웠다.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려졌다.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그들의 입모양만 보였다.
그러다, 이창식 씨 자녀가 물대포에 맞고는 휘청거렸고, 사람들이 일제히 그 모습을 보고는 눈이 뒤집혀 튀어나가기 시작했다.
중년 남성들이 이창식 씨 자녀를 챙겼고, 그때 태훈의 눈에 이창식 씨의 영정사진이 들어왔다.
“허억허억.”
그제야 다시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오며,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기어서 태훈은 영정사진을 집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슴에 안고 힘껏 몸을 일으켰다.
그는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쏟아지는 물대포와 전경들의 매질에 모두가 뒤로 튕겨져 나갔다. 바로 전경의 코앞으로 다가섰을 때, 태훈은 흥건히 젖어 비 맞은 쥐새끼 꼴이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이창식입니다. 기억하세요, 이 사람은…… 이창식…….”
촤아아악!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다시 물대포가 날아들어 태훈은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이를 악물고, 가슴에 안은 영정 사진을 놓치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
또다시 물대포가 쏟아지고 넘어져도, 계속해서 일어나 외쳤다.
이창식의 이름을 외쳤다.
“이 사람의 이름은 이창식입니다! 젓갈집을 아내와 함께 30년을 운영하였고오! 그 가게를 지키기 위해 철거민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이창식입니다아아아!”
촤아악!
물대포가 또다시 날아들었다.
순간, 누군가 전경들 사이를 헤집고 뛰쳐나왔다.
“이 개새끼들아 뭐하는 거야! 안 멈춰!?”
그것은 도혜였다. 도혜가 그를 끌어안았다.
그렇지만 전경들은 아직 그녀가 누군지 모르는 듯 또다시 물대포를 쏘아댔다. 그 앞을 고석환 수사관과 도혜가 함께 막았다.
촤아악!
“크으읍!”
“으윽!”
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지만, 태훈을 위에서 아래로 감싸 안으며 지켰다.
“그만들 쏘라고 이 새끼들아!”
고석환 수사관이 외쳤지만, 물이 뿜어지는 소리에 묻혔다.
“벼, 변호사님!”
“변호사니임!”
뒤로 물러났던 사람들이 다시금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모두가 태훈의 주위에 몸을 날려서 그를 껴안고는 물대포를 대신 맞았다.
그 안에서 태훈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외쳤다.
“이 사람의 이름은 이창식입니다. 젓갈집을 운영했고……!”
“이 새끼들아! 멈춰어!”
익숙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비상 법무법인의 변호사들이 황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명품 옷이든, 뭐든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당장 그들도 태훈의 앞을 막아섰다.
그렇지만 물대포는 계속해서 매섭게 그들을 공격했다.
쓰러져도 일어섰고, 넘어져도 일어났다.
숨이 막혀도. 태훈의 주위에서 도망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함께 강태훈, 그를 지켰다.
66장 에필로그
햇살이 태훈의 얼굴을 비쳤다. 쌀쌀하다. 벌써 일 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전기장판에 뉘었던 몸을 일으켜 세우자 으슬으슬 몸이 추웠지만, 그는 일부러 힘차게 기지개를 쭉 폈다.
도혜가 없는 것을 보고 태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방문을 열고 나오자 보글보글 찌개 끓는 냄새가 가득했고, 칼질하는 소리가 일정하게 퍼지고 있었다.
“에헤이, 당신! 그 몸으로 어딜!”
“괜찮아,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
“특별하긴?”
태훈은 도혜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면서 그녀의 팔을 이끌었다. 눈에 띄는 것은 남산만 하게 나온 그녀의 배였다.
그토록 원했던 임신. 이제는 노산이 되는 것이기는 하였지만. 드디어 도혜가 임신을 하였다.
산부인과에서는 나이가 조금 있어 걱정을 하는 편이지만, 도혜의 신체나이 검사결과가 서른 초반 정도로 나와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괜찮아, 내가 할게.”
태훈이 칼을 뺏으려했지만 도혜는 계속해서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 부장검사직을 달았던 도혜는 임신을 하자마자 휴직을 받은 상태였다.
태훈은 결국 하는 수 없다는 듯이 픽 웃으면서 몸을 낮췄다. 이제 곧 세상에 태어날 사랑스런 아이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도혜의 배에 귀를 가져갔다.
“아빠 빨리 보고 싶으니까. 빨리 나와라. 응? 엄마도 빨리 보고 싶대.”
“호호호. 식탁에 앉기나 해.”
도혜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딸아이면 강인혜로, 남자아이면 강태진으로 이름을 짓기로 하였다.
딸이든, 남자아이든 상관없다. 어서 빨리 나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태훈은 그녀가 해준 식사를 뚝딱 해치우고, 씻고 머리를 말렸다.
넥타이를 매려는데, 도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가 태훈의 목에 넥타이를 매주고는 양손으로 어깨를 두들겼다.
“다 됐다, 우리 남편. 잘할 수 있지?”
“그럼, 당연하지. 오늘은 해낼 수 있어.”
부드럽게 웃은 태훈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췄다.
태훈이 현관으로 나가자 도혜도 따라 나왔다.
“애기야. 아빠 오늘 꼭 이기고 올게. 알았지? 다녀올게.”
“다녀와. 일찍 들어오고.”
“알았어.”
다시 한번 그녀의 입에 입을 맞춘 태훈이 밖으로 나섰다. 오늘따라 공기가 달았다.
일단 그의 차량은 비상 법무법인으로 향하였다. 비상 법무법인에 도착한 태훈은 잠시 그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3층 규모였다.
1년 사이에 또다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이제는 정말 최고의 법무법인으로 우뚝 서자는 생각에 이범현이 이 큰 건물을 계약하고, 본격적으로 변호사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현재 소속 변호사는 마흔 명.
최고의 엘리트 변호사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엘리트라고 해도, 비상 법무법인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절대 이곳에서 일할 수 없었다.
현재 화산, 대한 법무법인을 제치고 당당히 ‘의뢰인들이 선호하는 법무법인 1위’를 따낸 그곳 안으로 태훈은 들어갔다.
“오셨습니까. 변호사님.”
“오셨습니까.”
“오셨어요.”
안으로 들어서자 많은 변호사가 일제히 인사를 해왔다. 작은 웃음을 지으며 하나하나 인사를 받아준 태훈은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누군가 빼꼼 고개를 내밀더니 노크를 했다.
“그건 노크를 한 거야. 아니면 이미 들어온 거야?”
“둘 다지.”
기태였다. 기태가 실실거리며 웃었다. 일주일 전에 미모의 아나운서와 결혼식을 올린 기태였다. 그는 다행이도 좋은 아내를 만나,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고 있었다.
연이어 한성호와 이범현이 들어왔다.
“아니, 여기가 무슨 아지트입니까? 사무실 전부 따로 있으면서 왜 매일 내 사무실에 아침마다 모여요?”
“아, 거참 빽빽하게 왜 그러나.”
한성호가 코를 씰룩이면서 창문을 활짝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둘씩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여기 너구리굴 만들어서 나 질식사시키는 게 목표죠?”
“들켰군.”
한성호는 능글맞게 웃었다. 그는 정말 많이 변했다. 이젠 새사람이 되었다.
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이다.
자신이 물대포에 맞아 휘청거리던 그때 몸을 던졌던 그는 집회가 무력으로 해산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면이 있던 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험악한 욕설을 힘껏 뱉어냈다고 한다.
“우리 조카는 대체 언제쯤 볼 수 있는 거냐?”
“앞으로 한 달 정도?”
“오오오!”
모두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태훈의 얼굴에 웃음이 걸쳐졌다. 행복했다. 자신의 주위에 함께 있어 주는 이 사람들이 있어서였고, 도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너 또 오늘 가서 밀리는 거 아냐?”
“얼씨구? 오늘은 틀려.”
“에? 이제까지 재판 한 번밖에 못 서봤잖아.”
기태가 장난스레 웃었다.
그렇다. 재판 한 번밖에 치루지 못했다. 그마저도 패소. 그때의 참사 이후, 수많은 공격을 감행했다.
철거민 공동변호인단과 함께 경찰 진압 책임자에 대한 고소 고발을 하였으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변호인단은 유가족들을 대리하여 남노문 경찰청장을 비롯한 이들에게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고소를 했지만, 이 역시 불기소 결정이 났고, 법원에 낸 재정 신청도 무참히 씹혀버렸다.
그렇다고 물러서진 않았다.
사건의 실체를 더욱더 확실히 하기 위해 검찰에 수사기록 열람등사허용 결정을 받아냈다. 하나, 검찰은 따르지 않았고 담당 검사 역시도 모른 체했다. 재판부는 이에 관련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그들이 얼마나 더러운 판에서 사는 지 다시 한번 깨우쳐주었다.
변호인단은 한 번 뿔뿔이 해산되었었고, 다시금 모였을 때는 최고의 인권 전문 변호사들과 태훈이 함께 변호인단을 꾸려서 싸웠다.
기소를 당한 철거민들을 위해 힘껏 싸웠지만, 결국 그 싸움에서도 패소하고 말았다.
그 후 재판 진행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이 꼼수를 쓰면서 계속 피하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국가배상청구가 진행이 된다. 국가배상청구에서 태훈은 억울했던 지난 1년간의 악순환을 털고 일어나 그들에게 크게 어퍼컷을 먹여줄 생각이었다.
“에헤이, 나 자료 좀 준비하게 빨리들 나가요!”
“거참, 빽빽하기는.”
“하여튼 강태훈.”
그들이 투덜거리면서 태훈의 손에 등이 떠밀려 나갔다.
자료를 정리하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시간이 꽤 되었다.
태훈은 법정으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섰고, 수많은 사람에게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법원 앞에 도착하자, 한소원 변호사를 비롯한 다른 변호인단의 인원들이 미리 도착해 있었다.
“오늘 이겨야지?”
“당연한 거 아니에요?”
태훈은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때 막 택시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창식 씨의 딸아이와 아들이 함께 내렸다.
두 사람은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태훈은 두 사람의 머리를 한 번 쓸어주었다.
“아저씨 믿지?”
“네!”
두 사람이 생글생글 웃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 오늘 내가 다 조진다.”
태훈이 몸을 돌렸다. 양옆에 한소원 변호사와 다른 변호사를 낀 태훈이 위풍당당하게 법정으로 들어갔다. 법정의 복도를 지나 재판소 앞에서 태훈은 작게 심호흡을 했다.
이긴다.
이길 수 있다.
이제 억울했던 1년의 시간을 풀어내자.
태훈이 양손으로 문을 밀자, 문이 열렸다.
변호사 강태훈은.
나 강태훈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나도 사람인지라 해결 할 수 없는 사건도, 지난 1년처럼 무력했던 때도 항시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 가지는 약속한다.
당신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 혹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를 변호사로써. 당신은 의뢰인으로써 찾아와준다면.
내 혼신을 걸고 당신을 지키기 위해 싸우겠노라고.
그런 사람이 바로 나 강태훈.
나는 변호사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