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248
248
변호인 강태훈 248화
현장이 마무리가 되고 도혜는 태훈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한소원 대표는, 일단 자신이 뒷수습을 더 하겠다고 말을 하고는 태훈에게는 집에 들어가서 쉬라는 말을 하였다.
태훈은 멍했다. 마치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넋이 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그저 기억해달라는 그 말만 맴돌고 있었다.
집에 들어온 태훈은 웃옷을 벗고는 소파 위에 웅크리고 앉아서 뉴스만 보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이번 시위와 관련한 사망자에 대해서 온종일 떠들어대고 있는 중이었다. 도혜는 한숨을 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소파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태훈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그녀의 눈에 분명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1시를 향하고 있었다.
식사를 하지 못한 그를 위해 도혜가 때늦은 식사를 준비해 주었지만. 그는 깨작거리며 잘 먹지 못했다. 아내인 도혜로서는 무척이나 답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태훈은 출근을 하지 않았다. 범현에게는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그는 ‘쉬고 싶으면 당분간 쉬어도 괜찮아.’라고 말했다. 범현도 어떠한 상황이 벌어졌는지 대강 들은 바가 있었다.
TV에 경찰청장 남노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신 터져대는 카메라 플래시와 더불어 기자들이 바글바글하였다.
* 이번 참사는 경찰 역시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과잉시위로 인하여서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던 바가 있었고, 그들은 위험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또한 이 일로 인해 경찰관 한 명이 순직하고, 철거민 네 사람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노문 경찰청장은 단상 위에 놓인 대본을 보면서 그리 말하고 있었다.
* 저희 경찰, 검찰은 이번에 과잉 시위를 벌였던 철거민 중 일부를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라는 죄로 기소하기로 하였습니다.
찰칵찰칵.
다시금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져나갔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과잉 진압이 아니었냐는 의문이 있습니다!
* 과잉 진압은 아니었습니다. 저희 경찰은 최선을 다해서 철거민의 안전을 생각하고 작전을 펼쳤습니다. 사망자가 나오게 된 계기는,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조사를 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화염병을 제조했던 시너통이 3층과 망루 안에 배치돼 있었고, 거기에 불이 옮겨 붙으며 대형 화제로 번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대테러리스트 진압을 위해서 특수조직되었다고 알려진 505부대가 일반 시민들에게 투입된 것은, 누가 봐도 과잉진압으로 보여지는데요!?
* 저희는 그들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며 타협을 위해서 혼신을 다했습니다. 505부대를 투입한 이유는, 서둘러 이 시위를 중단시켜야만, 인명피해가 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뻔뻔하다.
태훈의 입이 씰룩였다.
질끈 깨문 입술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경찰, 검찰은 자신들은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때 태훈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어댔다.
여전히 멍한 표정인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한소원 대표였다.
한소원은 흥분하여 뭐라고 말을 외쳐대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을수록, 태훈의 초첨이 사라졌던 눈동자가 서서히 돌아오고 시작했다. 멍했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면서 화를 드러냈다.
태훈은 지체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나는 변호사다.
변호사이기에 이러고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창식 씨. 기억해 달라고 했죠?
잠깐 이렇게 모든 것을 놓은 듯했지만, 용서해주세요. 부디 용서해주세요. 이제 당신들 위해 싸우러 갈 테니까. 용서해주십시오.
태훈은 침실로 들어가 정장바지를 입고 와이셔츠 소매의 단추를 채웠다. 넥타이를 매고, 정장 상의를 걸쳤다. 그리고 한쪽에 놓여 있는 변호사 배지를 왼쪽 가슴 위에 착용했다.
그는 거울을 보았다.
거울안의 태훈은, 굳은 결의로 가득해 보였다.
집을 나선 그는 서둘러 차에 올랐다. 태훈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병원이었다.
병원에 도착한 태훈은 영안실이 있는 곳 쪽으로 걸어갔다.
영안실 바로 앞에는 사망한 사람들의 유가족들이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고, 경찰은 영안실 앞을 틀어막은 채 그들의 진입을 막고 있었다.
“어째서 유족들이 영안실로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까.”
“검찰의 지시입니다.”
경찰관들은 딱 잘라 그리 말했다.
검찰의 지시?
태훈은 실소를 머금었다.
그는 곧장 검찰청으로 전화를 걸었다.
높은 사람이든, 뭐든 통화연결을 시도하였으며 통화를 하였다. 태훈은 강경하게 지금 당장 유족들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달라고 말했지만, 상대측도 강경하게 나오고 있었다.
태훈의 등 뒤로는 죽은 철거민들로 인해서 울음을 토하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그렇지만 상대편은 쉽사리 굴복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결국, 태훈은 유족들을 영안실로 들어갈 수 있게 승인을 받아냈다. 실랑이를 벌인지 두 시간 만의 일이었다.
불에 타버린 자신의 가족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영안실에서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태훈도 새까맣게 그을린 그들의 시신을 보다가 결국 고개를 돌려버렸다.
태훈은 병원에 입원한 철거민들을 향해서 발걸음을 돌렸다. 경찰이 처음에는 막았지만 ‘철거민의 변호인’이라는 명목으로 그들과 접견을 할 수 있었다.
태훈은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에 병원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대 태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KBC 방송국 차량이 도착했다. 이미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웬만한 건 보도가 가능해졌다.
이번 사건의 철거민 측 변호를 맡은 태훈을 KBC에서 단독 취재하는 것이었다.
태훈이 지금 하는 발언은 경찰과 검찰에게 보내는 경고였다. 이미 철거민들이 처했던 입장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들은 바가 있었다.
“현재 경찰과 검찰은 철거민들의 죄만 물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라는 명목으로 그들을 기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하나, 이번 참사는 명백하게 과잉진압이 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시위를 시작한 지 한 시간 반 만에 용역과 경찰병력이 투입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한 시간 반 동안 양 측이 대화도 나누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진압을 위해서 투입이 되었다는 겁니다.”
잠시 말을 쉰 태훈이 다시 카메라를 보면서 눈을 빛냈다.
“또한 수백 명이 넘는 경찰 병력이 그 주위로 배치되어 더욱더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어 옭아매었으며,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소지한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위에 소방차 한 대 배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만약 소방차가 배치되어 있었다면,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분명히, 소방차는 배치되지 않았었다. 최루탄을 섞은 물대포만 뿌려댔지, 정작 불이 나면 인명을 구할 소방차는 없던 것이다.
“이번 사태로 경찰과 검찰은 확실히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태훈의 이처럼 경고했고, 그는 매서운 눈으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인터뷰가 종료가 되고서였다. 이수애 기자는 평소처럼 부드럽게 그를 부를 수 없었다. 태훈은 화가 단단히 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가서 뉴스에 내보낼게요.”
“네. 그래주세요.”
태훈은 서둘러서 다시 차량에 올랐다.
한소원 대표와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전화를 넣은 태훈은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서 차를 몰았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곳은 카페였다.
카페에는 한소원 대표뿐만이 아니라 오랜만에 보는 고두환 변호사 역시 함께였다.
자리에 앉은 태훈은 시원한 음료를 주문하였다.
“철거민 공동 변호인단을 꾸려볼 생각이야.”
“공동 변호인단이요?”
공동 변호인단. 지금 현재 시급한 것은 철거민들의 기소를 막아내고, 형량이 떨어지자 않게 방어하는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뭉쳐야만 해. 분명히 이번 사건에는 경찰, 검찰의 잘못도 명백히 있어. 뉴스 봤지? 계속해서 철거민들만 나쁜 사람이다 뭐다 그렇게 발표를 하고 있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죄? 참나.”
한소원 대표는 황당하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고두환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경찰 진압 책임자에 대한 고소와 고발, 국가배상청구와 덧붙여 강제퇴거 금지법을 위해서 싸우는 거야. 그리고 철거민들을 지켜 내는 거지.”
한소원 대표는 아까까지만 해도 실의에 빠진 듯이 보였던 태훈의 눈이 다시 타오르는 것을 보고는 안도한 표정이었다.
“물론 힘든 싸움이 될 거야, 이번 사건은 거물들이 너무 많으니까.”
분명 힘들 것이다. 경찰청장부터 검찰청장. 어쩌면 그 당시에 있었던 모든 경찰들과 싸움을 벌이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강태훈 변호사.”
한소원 변호사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가 부담스럽지 않게, 정말 그가 이 일에서 손을 떼고 싶다면, 자신들끼리 변호인단을 꾸려 볼 생각이었다.
더 이상 태훈이 가슴 아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분명 자신들 쪽 사람이 아닌데도 그의 능력과 유명세 때문에 자신이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게다가 사선 변호사인 그를 자신들의 변호인단에 넣으면 분명 피해를 볼 게 뻔했다. 이제 자신들이 상대해야 할 대상은 검찰과 경찰의 수뇌부였으니까. 어쩌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싸워야 할지도 모르니까.
“함께하겠습니다. 변호인단. 한 번 해보도록 하죠.”
태훈은 강경하게, 하고 싶다고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해야만 했다.
이창식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그 약속을 꼭 지켜야만 했다.
철거민들을 위해서, 그리고 이번에 있었던 과잉진압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던 진압 책임자에게, 그 책임을 묻기 위해 싸워야만 했다.
“몇 년이 걸릴지도 몰라. 어쩌면 우리가 그들의 발끝 하나 건드려보지 못할지도 몰라. 그렇지만 우리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 한 번 싸워보자.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싸워보자.”
한소원 변호사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손 위로 고두환 변호사의 손을 겹쳤고, 마지막으로 손을 뻗은 태훈이 그 위에 손을 다시 한번 겹쳐주었다.
서로가 올린 서로의 손을 마주 잡고 힘을 주었다.
무척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를 해야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힘겨운 싸움이 되겠지만.
그들의 눈에는 서로를 신뢰하는 믿음과 결의가 가득 차 있었다.
한소원 변호사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번 참사로 사망한 유가족의 전화였다.
“임시분향소요? 예, 예예. 알겠습니다.”
임시분향소라는 말에 태훈과 고두환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유족들 몇 사람하고, 이번 일을 안타까워하는 모임이나 단체 등에서 사건이 벌어졌던 건물 앞에 임시분향소를 만들 예정이래.”
“위험하지 않을까요? 또 사람이 모였다고.”
“설마. 그러겠어……?”
한소원 변호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그래도, 또 한 번 그런 강제진압이 생길까 싶었다.
일단 세 사람이 함께 그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사건이 발생하고, 철거민들이 숨을 거둔 지 이제 하루가 지나가던 시점이었다.
화염과 매캐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던 1층.
바로 그 문 앞에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임시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거기에는 유족들이 가져다놓은 그들의 사진이 놓여 있었으며, 백합이 그 위에 한 가득 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