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youngest disciple of the martial god RAW novel - Chapter 288
288화
거대한 눈동자의 형태는 기괴했다.
단순히 눈동자만 있는 게 아니라, 그것 주위로 역겨운 살덩이와 실핏줄이 얽힌 채 벽면까지 펼쳐져 나가 들러붙어 있었는데…….
내겐 그 모습이 꼭 펼친 거미줄의 중심에 선 거미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던 눈동자는, 등장만큼이나 갑작스럽게 퇴장하였다.
“……!”
직후 전신을 옥죄는 듯한 악기도, 이명도, 뇌리의 고통 또한 사라졌지만, 우리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먹먹하던 청각이 정상으로 돌아오니, 멀리서 아련히 결투의 소리가 들려왔다.
금속이 맞부딪치는 소리, 괴성, 울부짖음… 저들은 군단장이 출현했음에도 여전히 노예처럼 싸우고 있었다.
반대인가?
그 존재의 현현을 확인했기 때문에 더 필사적으로 싸우는 걸지도 모른다.
“…성공적인 강림입니다.”
처음 말문을 뗀 건 베리타였다.
이 여자의 목소리는 이럴 때조차 흔들리지 않아서 살짝 놀랍긴 하다.
물론 교인인 베리타가 군단장을 보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다.
교인이라고 꼭 악마에 대해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다.
당장 제사장인 후안조차 자신이 숭배하는 두 마왕에게 각기 다른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나?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 이 녀석의 모습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냥 베리타라는 인간 자체가 강인한 걸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던 것.
“성공적이라고? 설마 저 군단장이 완전한 형태로 소환됐다는 의미는 아니겠지?”
“그렇지는 않습니다. 보통 악마 강림의 성공을 판별하는 건 얼마만큼의 힘을 지닌 채 강림했느냐입니다. 절반 이상의 힘을 지녔다면 성공, 그 이하라면 실패로 보지요.”
“절반…….”
그러니까 방금 그 압도적 존재감이, 본신의 힘에 비하면 고작 절반밖에 안 된다는 뜻인가.
이걸 좋은 소식으로 봐야 하나?
나는 절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면 세계에서 보았던 군단장 카짓타…….
본신에 비하면 부스러기만큼의 힘밖에 가져오지 못했던 그 악마와의 전투에서조차 나는 목숨을 걸었다.
“군단장의 절반 정도의 힘은 어느 정도야?”
잠깐 고민하던 베리타가 손가락 하나를 펼친 다음, 아래로 꾹 눌렀다.
“이렇게…….”
“…….”
“…손가락을 꾹 누르는 것처럼 간단하게 B급 이하의 영웅을 압사시킬 수 있을 겁니다.”
잠자코 얘기를 듣던 아락사드가 말했다.
“라몬.”
“네.”
“넌 지금 당장 석문으로 돌아가라.”
“…….”
“상황이 급변했다. 네가 할 일이 충분히 있을 거라라 생각했지만, 내 오판이었던 것 같군. 저만한 악마가 이미 소환됐다면 가장 우선해야 할 건 전투력이다. 성유물에 의지하고 있는 넌 항마의 적성 또한 가장 취약하고.”
짧게 말하면, 짐이 되기 싫으면 빠지란 말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라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돌아가서 형님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라몬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막 일어서려던 그때, 베리타가 찬찬히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지만 그 방안은 무리입니다. 우리에겐 이미 [표식]이 새겨졌으니까요.”
“표식이요?”
“모두 손등을 주목하십시오.”
손등?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어느새 내 손등엔 괴이한 형태의 화상 자국이 나 있었다.
아니, 화상보다는 꼭 악귀의 형상 같다.
“상위 악마만이 남길 수 있는 [저주의 표식]입니다. 이 표식을 새긴 악마와 일정 이상 떨어지면 죽게 되지요. 그리고 석문은 공간을 넘는 힘을 품고 있다고 하셨지요.”
정확한 거리는 모르지만, 꽤 장거리라는 건 분명하다.
즉.
“…석문을 넘어 원래 장소로 돌아가면, 죽을지도 모른단 뜻인가?”
“예.”
염병.
그렇다면 이놈들이 석문 근처에 별다른 인력을 배치하지 않은 것도 설명이 된다.
애초에 발을 디딘 시점부터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는 것이니까.
“해결 방법은?”
“…표식을 새긴 악마를 토벌하는 것, 그것뿐입니다.”
* * *
일단 교인이 있던 곳과 조금 떨어진 장소로 되돌아왔고.
베리타는 그곳에서 재차 설명을 이어 갔다.
“군단장이 우리의 위치를 이미 파악한 건 아닙니다. 이 표식은 일정 공간에 행해지는 마킹이지요. 무작위로 뿌린 독약이기 때문에, 독약을 뿌린 자도 쥐새끼가 몇이나 걸렸는지는 알 수 없는 형태랄까요.”
“…….”
“그 눈동자는 군단장의 본모습이 아닙니다. 아마도 군단장이 가진 권능의 일종으로, 형태로 봐서 그 기능은 감시 및 악기 발산 그리고 표식을 새기는 것 정도로 추측됩니다.”
베리타가 심각한 목소리로 얘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돌연 꾸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말할 것도 없이 위장이 밥을 달라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자연스레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이 쏠렸는데, 미르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미, 미안합니다…….”
“…이런 상황일수록 열량 보급이 중요하지. 듣고 보니 나도 좀 출출하군.”
아락사드가 미르를 옹호했다. 생긴 건 저래도 제법 인정이 깊은 사내였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즉각 에너지바를 하나씩 까먹기 시작했다.
까드득.
…치아 상태가 개판인 놈은 이걸 씹다가 분명 이빨이 부서지겠지.
그렇다면 영웅의 소양 중 하나는 깨끗한 치아 상태일 수도 있겠다…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좀 맛이 가고 있는 걸까.
대충 배를 채운 다음, 우리는 다시 얘기를 이어 갔는데.
꾸르륵…….
다시 한번 위장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란 미르가 손까지 내저으며 부정했다.
“이, 이번엔 내가 아니다!”
“나야.”
내가 손을 들었다.
“이상하게 계속 허기가 지네. 에너지바 하나 더 까먹을까.”
“아껴 드시라고 오기 전에 말했잖아요.”
“그렇긴 한데, 입이 심심-.”
“잠깐만.”
아락사드가 우리의 말을 끊었다.
“뭔가 이상하군.”
“뭐가?”
“나도 벌써 배가 고프다.”
아락사드의 말에 나는 픽 웃었다.
“그럴 수 있지. 원래 밥 정이란 게 없다가도 다른 사람이 먹는 걸 보면…….”
“그런 의미가 아니야. 난 최소 삼 개월을 물만 마시면서 버틸 수 있다.”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지 않아? 삼 개월까지는 무리겠지만.”
사실 보통 사람도 지병만 없다면 물만 마시면서 한 달은 거뜬히 버틸 수 있다.
“그렇지. 그러나 나 같은 경우엔 최대 1년까지도 버틸 수 있다.”
“어…….”
“허기로 인한 스트레스도 적고 운동 능력의 낙폭 또한 크지 않지. 무엇보다 원래 내 식사량은 사나흘에 한 끼 정도고, 이것도 동족에 비하면 많은 편이다.”
“와…….”
그러고 보니 밥 먹는 모습을 본 적이 드물긴 하다.
악어나 도마뱀은 개체에 따라 몇 년 동안 밥을 안 먹고도 살 수 있다던데, 그런 맥락일까?
“그런데 방금 나도 허기를 느꼈다. 당연히 오늘 석문에 오기 전, 밥을 꽤 먹었는데도.”
“…….”
컨디션 때문에 그런 게 아니냐, 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아락사드가 감이 좋은 사내란 건 숱한 모의전으로 이미 깨달았다. 나는 이 영웅 선배의 기감을 믿었고, 야생으로서의 본능 또한 믿었다.
그런 사내가 위화감을 느낀 것이라면 무언가 일이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는 게 맞다.
“이 낙인의 효과 중 하나가 굶주림이라거나.”
“아닙니다.”
“그치. 아니라고 생각했어.”
이럴 땐 생각나는 대로 줄줄이 읊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어서, 나는 나오는 대로 내뱉기 시작했다.
“실제로 배고픈 게 아니라 배가 고픈 걸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아니면 감각을 마비시킨다거나. 혹은 석문을 넘었을 때,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을 수도 있고…….”
“그건…….”
“알아. 너무 개소리였지?”
“아뇨. 시간. 어쩌면 그게 정답일 수도 있습니다.”
“무슨 뜻이야?”
“아실지 모르겠지만, 세상엔 이곳과 전혀 다른 시간의 흐름을 가진 공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내 뇌리를 스치던 기억은 인기척 하나 없었던 불길한 도시였다. 불길하게 통통 튀기던 공 소리, 녹색의 비대한 몸집을 가졌던 악신…….
“지옥을 말하는 거야? 설마 여기가 지옥이라고?”
“정확히 말하면 지옥을 연결한 것이겠지요. 이 또한 교단의 비전 주술 중 하나인데, 일단 성공만 하면 일대의 시공간이 꼬이게 됩니다.”
“…….”
“…그러니까 가속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의 의지만이 또렷한 상황일 수 있습니다. 추측이지만요.”
“아뇨. 수녀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 말하며 라몬이 목에 걸고 있던 시계를 우리에게 보여 줬다.
“이걸 보시지요.”
“…….”
보는 순간 소름이 살짝 돋아났다.
시계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초침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 흐름이라면… 대충 원래 우리의 시간보다 열 배 정도 빨리 흐른다고 생각하면 되겠군요.”
“그럼 뭐야? 이곳에서의 1초가 원래의 10초란 뜻이야?”
“그렇습니다.”
“왜 이따위 환경이 조성된 거야?”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게 이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왜 시간이 빨리 흐르는 걸 바라냐고. 빨리 늙고 싶은 건 아닐 거 아냐.”
“…마왕 강림.”
베리타가 내 말을 받았다.
“의식의 단계엔 필연적으로 시간이 많이 소모되는 구간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되도록 빨리 넘기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요?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헤로스의 대처는 결코 늦지 않았어요. 북부인 걸 감안해도, 원래라면 마왕은커녕 군단장이 소환되기 전에 의식을 엎을 수 있었을 겁니다.”
일리가 있다고 느낀 순간, 재차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교단이 마왕 강림 의식에 투자한 시간은 얼마나 된다는 것일까?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 이렇다면 한 가지 더 안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뭔데?”
“[저주의 표식]의 능력입니다. 이 표식이 새겨진 자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치닫게 됩니다.”
“전원 시한부 신세가 됐단 뜻인가?”
“예.”
모두가 입을 닫은 가운데, 나는 불편하지만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을 꺼냈다.
“얼마나 남았는데?”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악기에 대한 내성처럼, 항마의 적성이 높은 자일수록 오래 버틸 수 있습니다. 표식의 짙기로 판단컨대, 저와 루안 형제님은 한 달, 아락사드 형제님과 미르 자매님은 스무날 그리고 라몬 형제님은…….”
드물게 말끝을 흐린 베리타는, 그러나 라몬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일주일을 버티기 힘들 겁니다.”
일주일.
짧은 시간은 아니다.
정말로 그 시간을 온전히 쓸 수 있다면, 보다 적을 자세히 분석하고, 계획을 짜고, 피드나 란페로의 합류까지도 기다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얼음 동굴은 바깥보다 시간이 10배가량 빨리 흐른다.
이곳에서의 1초는 10초가 되고.
1분은 10분이 된다.
그렇단 건 한 시간은 6분, 하루는 고작 144분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이로 계산한 우리의 남은 시간은 나와 베리타가 약 사흘.
아락사드는 하루 하고도 절반.
그리고…….
“…약 17시간.”
라몬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살짝 웃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있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