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70
문제는, 지금 돌아가는 대계(大戒)가 그 소소한 취미생활 하나 허락하지 못할 정도로 녹록지 못하다는 것.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리저리 돌아가는 다른 상황들 때문에 프랑스와 손을 잡아야 할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프랑스의 발목을 잡아도 되겠는가······ 라는 것이 빅토리아의 의문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사옵니다, 폐하. 지금의 프랑스 정부는 도저히 아군과 싸우지 못하옵니다.”
“설명해 보라.”
“얼마 전, 가브리엘 아노토(Gabriel Hanotau)를 비롯한 프랑스 내각이 해산했사옵니다.”
그 말에 빅토리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노토라면 그럴 수 있다. 이미 그가 프랑스의 외무장관을 맡았던 게 4년 즈음이었으니.
하지만 다른 내각들은 바뀐 지 얼마 안 됐을 텐데? 인제 와서 또?
“드레퓌스 사건을 아시옵니까.”
“모······ 를 수가 없지.”
여왕의 표정이 오묘해졌으나, 충직한 솔즈베리는 ‘역시 영민하십니다’라고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기에 그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파나마 운하의 실패에, 드레퓌스 사건까지······ 현재의 프랑스 내각은 완전히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사옵니다.”
“······그 가구장이 아들놈이 불쌍해질 지경이군. 그래서, 어차피 못 싸울 것이니 막 질렀다는 것인가?”
“삼국 동맹(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동맹)을 막기 위해서라면, 프랑스에게 남은 수가 없으니 말이옵니다.”
솔즈베리 후작이 잠시 음흉하게 웃었다. 그리고 이내 웃음을 거둔 그는, 깊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하오니 폐하, 이 일은 소신에게 맡겨 주소서.”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충절로 가득했다.
“부디 과거 비컨즈필드 백작(벤자민 디즈레일리)이 폐하께 인도 아대륙을 통일하고 무굴의 황위를 바쳤던 것처럼. 소신은 통일된 아프리카 대륙을 여왕 폐하께 헌상하여 두 번째 황위에 모실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사옵니다.”
“두 번째 황위라······.”
빅토리아는 솔즈베리 후작의 텅 빈 민머리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것은 아직은 희망 사항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훨씬 달콤함이 덜하기 때문일까.
빅토리아는 어째서인지, 그 ‘통일 아프리카 제국의 황위’라는 말이 굉장히 공허하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다.
분명 죽기 전에 그 위업을 달성하고 갈 수 있다면, 영국의 역사에 다시 없을 영광일 텐데도.
‘······아하.’
그래서인가?
빅토리아는 문득, 좁은 창밖을 보며 저물어가는 태양을 보았다.
그리고 그 태양 빛을 반사하는 솔즈베리의 빈 머리를 보았다.
그의 나이도 어느덧 68세.
그가 방금 언급했던 디즈레일리가 일흔여섯에 죽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 역시 그리 많은 시간이 남지는 않은 셈이다.
물론 글래드스턴처럼 비정상적으로 오래 살 수도 있긴 하지만, 그 역시도 결국 올해에 하나님의 품으로 떠나갔지 않은가.
그리고······.
“솔즈베리 후작.”
“예, 폐하.”
“책은 좀 읽나.”
“책······ 말씀이십니까?”
당혹스럽다는 듯, 개스코인세실은 그저 눈을 끔벅였다. 빅토리아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나.
‘자네는 글래드스턴처럼 오래 살긴 글렀네, 솔즈베리.’
단순 당파의 문제가 아니었다.
괜히 사제지간이 아니라는 듯, 솔즈베리는 하는 짓에서부터 글래드스턴이 아닌, 디즈레일리를 더 많이 닮았으니까.
글래드스턴은 닥치는 대로 책을 사들이는 유명한 애서가였던 반면, 저들 사제는 딱 공부하기 위한 책만을 필요한 만큼 구매해 나머지는 그저 장식용으로 쓰는 평범한 수준의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디즈레일리, 글래드스턴, 그리고 솔즈베리.’
자신의 치세를 뒷받침했던 세 사람이 전부 사라진다.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셈이다. 그리고 그 시대의 이름은 바로 자신, 빅토리아일 것이고.
이 시대의 생존방식은 제국주의라 불렸다.
하지만 그다음 시대도 그러할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후.”
빅토리아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 아직도 사랑하는 부군 앨버트 공이나, 아들 에드워드, 아니면 손자인 조지도 아니고, 하필이면 그 동양인 놈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지.
“좋다, 솔즈베리. 이번 일은 더 묻지 않고 맡기겠다.”
“예, 폐하!”
“가 보도록.”
솔즈베리 후작은 더 없는 경애의 환희로 가득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는 떠나갔다.
그 뒤를 보며, 빅토리아는 한차례 한숨을 쉰 뒤 생각했다.
앞만 보고, 국익을 위해 달려오긴 했으나······ 이게 맞는 길이었을까.
물론, 인제 와서 이 길에서 내릴 순 없겠으나.
그녀는 문득, 최근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한 고고학의 플린더즈 페트리의 말을 떠올렸다.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현지 주민들도 감동시키고 민심을 다잡을 수 있는 결정을 내린 그자.
어쩌면, 너무 늦어 버린 자신과는 달리······ 새로운 길을 찾아낸 것일지도 모르는 그자를.
“······후.”
자신은 너무 일찍 태어나 버렸다.
빅토리아는 홀로 남은 왕좌에서, 타들어 가는 황혼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
한편, 작가 연맹에서는.
“”
떨떠름한 듯, 감탄하는 듯한 목소리로, 에밀 졸라는 그렇게 말했다.
“”
“”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휘저으며 부정했다.
물론 나도 파쇼다 사건이란 사건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이렇게 타이밍 좋게 터질 줄은 진짜 몰랐다고.
내가 무슨 걸어 다니는 브리태니커도 아니고, 날짜 하나하나를 전부 기억하고 있겠냐!?
하지만 이미 수십 번을 말했지만, 조지 맥도날드 대표, 조지 버나드 쇼, 그리고 아서 코난 도일까지. 나를 이미 몇 번이나 봐 온 사람들의 표정이 매우 아니꼬왔다.
마치 ‘자네, 너무 그렇게 겸손 떨지 말게.’라는 표정이다······ 으으, 억울해.
“자, 아무튼 이번 사건으로 에밀을 버리잔 여론은 완전히 사그라졌으니, 정말 다행일세.”
다행히 맥도날드 대표께서 적절히 끊어 주셨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잇는다.
“돌아가는 이야기는 완전히 뒤집혔어. 오히려 프랑스와 마찰을 빚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 순간 매국노 소리를 들을 정도로 상황이 격해졌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왕립문학회에서도 극도로 당황해서 뭔가를 더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군요. 오히려 프랑스를 비난하는 사설을 쓰기 위해 신문사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모양입니다.”
“으음······ 이렇게 너무 극단적인 분위기가 되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일 것 같긴 합니다만.”
“뭐, 그건 그렇지.”
조지 맥도날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상황이 심각하긴 한 모양이다.
대표가 계관시인으로서 정부에서 들은 얘기에 따르면, 진지하게 해군부에서 함대를 옮겨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하니까.
흐음, 하지만 내가 알기로 이 일로 영‧프 전쟁이 터지진 않을 텐데? 다른 건 몰라도 그거 하나는 확실하다.
솔직히 제국주의 열강 1, 2위를 다투는 두 나라가 전면전을 벌일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건, 진돗개 수준이 아니라 진돗-케르베로스가 지옥 불을 뿜어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아니냐고.
그래서 어느 정도 평온한 나와 달리, 작가 연맹 수뇌부도 어느 정도 불안해하는 모양새였다.
“어쩌지? 진짜 전쟁이 나겠나?”
“으음, 그래도 둘 다 이성이 있는 기독교 국가인데 설마 전쟁이 터지겠나.”
“”
아니, 어떤 의미론 그게 더 무서운데?
프랑스는 대체 무슨 인외마경이 되어 가는 거야? 설마 전 국민이 태극귀와 빨갱이로 나뉜 그런 상황인 건가?
아무튼.
“뭐, 당장 우리에게 불똥 떨어지는 일은 아니니 좀 침착하면서 하던 원고나 계속 쓰고 있죠.”
“자네는······ 참 평온하군.”
“뭐, 그야.”
나는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어쨌든 영국에서 전쟁이 터지려면 아직 30년은 더 남지 않았나. 그때도 본토 침공은 안 당했고.
그러니까 뭐, 너무들 걱정들하지 마세요. 섬나라라는 게 그렇게 쉽게 공격당하진 않으니까······ 아, 식민지도 있긴 하구나. 그놈의 식민지는 언제 어디서나 문제네.
“그래도 고맙네, 한슬.”
“예? 뭐가요?”
“전쟁이 안 터질 거라고 해 준 거.”
아서 코난 도일은 파이프 담배를 물며 그렇게 말했다.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러나, 생각한 나는 이내 그의 동생이 육군 포병 장교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 항상 전쟁 터지면 군인들이 제일 먼저 죽어 나가지.
후. 착잡하구만.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이번 사태는, 조금 희한한 방향으로 불똥이 튀고 있었다.
“한슬! 아서!! 여기 있나!?”
“에, 뉸스 사장님?”
“이것 좀 봐!!”
나는 눈을 끔벅였다. 조지 뉸스가 전해 준 그 잡지에는, 프랑스어로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가니마르 경감. 분명히 말하겠소.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신뢰할 수 없소. 당신이 정말 뒤팽(Auguste Dupin)과 르코크(Monsieur Lecoq)의 후계자가 맞는 거요?”
“면목이 없습니다. 클로존 씨.”
가니마르는 묵묵하게 고개를 숙였다. 저 홍당무 같은 얼굴을 보라.
‘이제는 국제적으로 굴욕을 겪는군.’
파리 경시청 근속 30년 차. 이제껏 수도 없이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범죄를 사냥해 온 형사는, 이제 씻을 수 없는 굴욕으로 엉망진창으로 되어 있었다.
‘이게 다 뤼팽 때문이다.’
빌어먹을 아르센 뤼팽! 도대체 어디까지 그를 구렁텅이에 떨어트려야 만족할 셈인가.
하지만 클로존 부부는 이미 그를 그 이상의 굴욕에 빠트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내가 믿을 수 있는 최고의 전문가를 초빙하기로 했소.”
“전문가,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설마, 가니마르는 생각했다. 일그러지는 그의 얼굴을 보며, 클로존은 음흉하고도 은밀한 쾌락을 느끼며 내뱉었다.
“베이커가 221번지에 전보를 부쳤소. 셜록 홈스 씨가 조만간 도버를 건너올 것이오.”
***
프랑스, 파리.
“이거 보게, 모리스 군!! 역시 하면 되잖아!!”
과학을 비롯한 잡다한 지식을 싣는 월간잡지, 의 편집장 피에르 라피트는 새로운 원고를 보며 껄껄 웃었다.
역시 재밌다. 그가 적극적으로 권고해 창조해 낸 프랑스의 천재 괴도, 아르센 뤼팽과 이미 탐정의 대명사가 된 영국의 신사, 셜록 홈스의 가슴이 웅장해지는 경쟁!
여기에 돈을 내지 않을 독자가 있을까?
단언컨대, 이 파리에 사는 파리지앵(Parisien) 중엔 단 한 사람도 없으리라!
“······이래도 되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라피트 씨.”
하지만 정작 그것을 쓴 작가 겸 전직 기자─ 모리스 르블랑(Maurice Leblanc)은 떨떠름하게 말했다.
애초에 그는 이런 장르문학에 대해서는 뜻이 없었다.
비록 저 간악한 놈에게 끌려 영국으로 갔고, 런던에서 본 서적들의 마력에 붙잡혀서(덤으로 점점 얇아지던 그의 잔고를 확인하며) 글을 쓰기 시작하긴 했으나······ 이런 글을 쓰는 데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이런 와중인데 하물며 판매에 양국의 불화를 이용한다고? 발상이 천재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좀 악마 같지 않은가.
제아무리 프랑스와 영국이 철천지원수 같은 나라라지만 허락도 받지 않고 캐릭터를 쓰고, 이를 깔아뭉개다니.
이건 도의적으로 좀 그렇지 않나······ 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던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된다네, 모리스.”
그에게 아르센 뤼팽을 쓰라고 종용한, 신조차 모독하는 천재 편집자 피에르 라피트는 음흉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했다.
“지금 밖을 보게. 우리 프랑스 대중들이 원하는 게 뭔지 보이잖나?”
그리고 이런 것을 노리진 않았지만······ 그 악마적인 발상을 등 떠밀 듯, 돌아가는 상황도 심상치 않았다.
그래. 지금의 상황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대중은 매일같이 드레퓌스 사건으로 쌈박질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드레퓌스를 편을 든 에밀 졸라를 매국노라고 욕하고 있다.
그런데 거기서 파쇼다가 터졌다.
심지어 영국 쪽에서 먼저 그 소식을 알려 오는 치욕까지!
결국 에밀 졸라가 망명한 영국을, 저 노르망디의 기욤 2세(Guillaume II : 정복왕 윌리엄)처럼 다시 한번 정복해 주자 길길이 날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의 자랑, 셜록 홈스를 프랑스의 인기 괴도 캐릭터가 참교육하는 소설이 나온다? 아, 이건 못 참지.
그래서 예정보다 더 빠르게 출간한 게 아니던가.
“장담하지. 이 소설이 세상에 풀리는 순간, 자네는 에밀 가보리오(Émile Gaboriau : 르코크 탐정 시리즈의 작가)를 초월하는 거야! 프랑스 최고······ 아니, 세계 최고의 추리 소설 작가가 되는 걸세!”
“끄으으응······.”
모리스 르블랑은 신음성을 흘렸다.
솔직히, 그 길은 그가 바라는 길이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추리 소설 같은 통속적이고 선정적인 장르문학보다, 저 에밀 졸라처럼 통렬하게 사회를 비판하고 문학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싶은 순문학도였고, 넘고 싶은 사람은 기 드 모파상이지 가보리오가 아니었다.
하나,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돈이 걸려 있다. 너무 많은 인기가 몰려들고 있다.
“자자, 모리스. 자네도 루이즈 키울 돈도 필요하고, 재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언제까지 여동생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살 텐가?”
그리고 그런 귀에, 피에르 라피트는 마치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