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ruid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534)
제534화
제534화 세 개의 다리 (4)
-털썩!!
테오도르의 몸이 차가운 돌바닥 위로 내던져진다. 그러나 테오도르는 죽은 듯이 아무런 신음도 내지 않았다.
-끼이이익…….
녹슨 철창이 닫히면서 기분 나쁜 소리를 낸다. 니만은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 뒤, 무키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죽지는 않았습니다.”
“아아.”
“준비만 끝나면, 피는 충분히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니만의 목소리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떨리고 있었다. 드디어 이 기나긴 굶주림을 채울 수 있다는 기대, 그리고 안도.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이는 걸 숨기기 위해, 니만은 입을 꾹 다물었다.
무키오는 철창 너머 쓰러져 있는 테오도르를 힐끗 바라보았다. 미동도 하지 않지만, 니만의 말대로 숨소리는 들린다. 그리고 그때마다 풍기는 달콤한 용혈의 냄새.
“…….”
꿀꺽. 본능적으로 침이 넘어간다. 아무리 조각의 힘으로 허기를 견뎌내고 있어도, 그건 직접 ‘먹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였다. 당장이라도 목을 자르고 저 달콤한 피를 마시고 싶구나! 식욕이 끓어올랐지만, 무키오에게는 그보다 중요한 목적이 남아 있었다.
‘용을 생각해라, 무키오.’
그렇다. 진짜 ‘용’에 비하면, 인간의 몸뚱이에 조금 고여 있는 용혈 따위야 꿀을 딱 한 방울 떨어트린 물 한 잔에 불과했다. 말 그대로 ‘향’만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피를 뽑아내 부하들에게 먹인다면 오랫동안 굶주려 있던 녀석들은 만족할 것이다. 잠깐이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진짜 ‘용’을 사냥하기 전까지 버티기에는.
‘죽이는 건 안 될 일이지.’
아직은 말이다. 그러기에는 쓸모가 너무 많다. 용혈을 가진 인간이니 주인 되는 용이 얼마나 아꼈는지는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용들이 특정한 인간들에게 얼마나 강한 애착을, 아니 집착을 가지는지는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
‘저 인간으로 용을 꼬여낼 수 있다.’
이제까지 꼭꼭 숨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어쩌면 이 대륙에 남아 있는 ‘마지막’ 드래곤일지 모르는 어린것을. 일단 모습만 드러내게 한다면, 사냥은 쉬울 것이다. 어린 것은 태어난 지 아직 한 해를 넘기지 못한 핏덩어리니까.
‘역린을 뽑아내고…….’
미쳐 날뛰는 어린것의 날개를 꺾고, 눈을 뽑고, 목을 벤다.
그리고 쏟아지는 피를 마시고 그 살과 뼈, 모든 것을 남김없이 먹어 치우면…….
“큭큭큭…….”
반룡인은 영원한 저주에 시달리지만,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용 한 마리를 전부 먹어 치우면…….
‘그땐, 내가 용이 된다.’
그 자신이 ‘용’이 될 수 있었으므로.
첫 핏방울이 터져 나오고, 쓰러진 용에게 모두가 환호하며 달려가는 그 순간.
무키오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모두 벨 생각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신성한 식사’를 마치고, 진정한 ‘용’이 된다.
그것이 반룡인에게 내려진 저주를 깰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었다.
용에게 죽음을 허락받느냐.
아니면 스스로 ‘용’이 되느냐.
대부분이 전자를 원한다. 그저 죽음이 허락되기를, 평화 속에 눈을 감을 수 있기를. 그러나 무키오는 달랐다. 그는 죽음을 원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건, 오직 하나.
‘……용이, 된다.’
한 마리의 용. 그것을 온전히 먹어 치우면 반룡인의 저주를 끝내고 ‘승천’할 수 있다.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위대한 ‘용’이 되어서…….
‘니람으로 돌아가, 내가 왕좌에 앉을 것이다.’
유약하기 짝이 없는 형을 죽이고……. 아니, 그렇게 쉽게 죽일 수는 없지. 형과 그 핏줄들에게 똑같이 용의 살점을 먹여 반룡인의 저주를 내리리라. 끝없이 고통받는 삶을 되돌려주고, 니람의 위대한 통치자가 되리라!
“크하하…….”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 저 인간을 살려둬야 한다. 용을 유인해 낼 때까지. 그리고 이후에는, 자신을 귀찮게 한 죄로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줄 것이다. 어쩌면 저놈 역시 반룡인으로 만드는 저주를 내려도 재밌겠지. 무키오는 나지막한 웃음을 흘리며 감옥을 떠났다.
* * *
-우우, 웅!
뭔가가 힘껏 몸을 밀고 있다. 아주 힘껏. 으으, 그만 좀 귀찮게 해. 피곤하다고. 자고 싶단 말이야! 나는 어깨에 느껴지는 조그마한 무언가를 떨쳐내고 휙,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
“추, 추워…….”
오소소,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딱딱한 돌바닥에서는 냉장고보다 더 심한 냉기가 솟아올라, 금세 내 뼛속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으으, 이래서야 잘 수가 없잖아! 딱딱해서 몸도 배기고, 추워서 이는 달달 떨리고.
“으으윽!”
결국 나는 미치도록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흐릿한 시야에 보이는 건…….
“……모모?”
저만치 날아가서, 눈이 뱅글뱅글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모다. 한바탕 나뒹군 것처럼 엉망으로 엎어져 있던 모모는 내 목소리를 듣고 다시 벌떡 일어났다.
-우웅!
도도도, 작아서 잘 들리지도 않는 발소리와 함께 나를 향해 뛰어온 모모는 있는 힘껏,
-짜아악!
내 뺨을 쳤다.
-짜아악! 짝! 짝! 짜악!
“으, 으어억!”
조막만 한 젤리가 붙어 있는 깜찍한 손바닥을 가진 주제에, 손은 엄청 맵다. 매워. 녀석은 정신 차리라는 듯 내 뺨을 몇 번이나 짝짝 때리다가 이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천천히 손을 내려놓았다.
-우우웅…….
어쩔 수 없었다는 것처럼 때린 곳을 차닥차닥 만져주던 모모는 이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숲의 기운을 천천히 내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뺨에 닿은 녀석의 말랑한 젤리로부터 푸르른 숲의 기운이 스며들고, 점점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제야 힘이 들어가지 않던 눈을 제대로 뜨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여기는…….”
어둡고, 축축하고, 사방이 돌덩이로 이루어져 있다. 동굴인가?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출구로 향하는, 그러나 녹슨 철창으로 가로막혀 있는 풍경이 보였다. 저 멀리 횃불 따위가 걸려 있는 것인지 일렁이는 불빛과 그림자가 보인다. 누군가 지키고 있는 건가?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더라?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일련의 사건들을 돌아보았다. 그러니까, 갑자기 반룡인들에게 습격을 당했지. 하필이면 늑대들과 칼리스토가 없는 사이에……. 로이드와 엘, 그리고 나만으로는 막아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래도 어떻게든 버티다가…….
‘나만 끌려온 건가?’
무키오가 ‘드루이드를 잡아라!’라고 소리쳤던 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래서 니만인지 시반인지 하는 반룡인에게 붙잡혔고, 숲에서 점점 멀어지는데…….
‘……모모가 나를 따라왔지.’
그래, 기억난다. 흐릿해지던 시야 사이로, 모모가 열심히 나를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
‘그리고 정신을 잃었나…….’
그럼, 여긴 대체 어디지? 아직 강철 산맥 안인 건 확실한데…….
‘죽인 게 아니라,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는 건…….’
용혈의 향기. 무키오가 말했던 것이 떠오른다. 그때 피를 쏟은 탓에, 무키오는 내가 레기온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이란 말이지.
냉정하게 생각해서, 나를 죽여버리지 않았다는 건 아직 내게 쓸모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쓸모’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을 알아내야만 반룡인들을 상대하기 유리해진다. 내가 가진 쓸모……. 쓸모, 라면…….
‘……역시, 레기온밖에 떠오르지 않아.’
결국 무키오의 목적은 ‘레기온’이었으니까.
레기온을 유인하기 위해서 나를 살려뒀다면, 말이 된다.
‘그렇다면, 한시라도 빨리 여기를 빠져나가야 하는데…….’
내가 없어졌으니, 레기온이 어떤 상태일지는 뻔하다. 전에도 내가 사라졌을 때 레기온은 차원을 찢어발기며 나를 찾아왔으니까. 이번에도 크게 다를 것 없는 상황이다. 내가 레어에만 있으라고 단단히 당부해 두었지만, 이미 내가 사라진 상황에서 레기온이 그 말을 지킬지는…….
‘……로이드도, 엘도 레기온을 말리지는 못할 텐데.’
칼리드가 있지만, 그가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고 해도 결국에는 인간이다. 드래곤인 레기온을 다루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이성을 잃은 레기온이 레어를 빠져나와 강철 산맥을 뒤지기 시작한다면…….
‘큰일이다. 어서 돌아가야 해.’
이성을 잃은 레기온은 살아 움직이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에르긴에서 레기온의 움직임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레기온이 사고를 치기라도 하면…….
‘……동맹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레기온이 위험한 드래곤으로 찍히고 나면, 대륙의 다른 나라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드래곤의 강력함에 대해 모르는 나라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드래곤……. 그것도 ‘포악한’ 드래곤의 출현이 알려지면…….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 버려.’
레기온의 데뷔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안 그래도 편견 가득한 시선을 받는 블랙 드래곤인데! 레기온의 존재를 어떻게 세상에 알려야 하는지는 이미 다 준비를 해 두었다고! 이름하여 ‘우리 애 착해요’ 권법!!!
“……모모, 빨리 여기서 나가야겠다.”
-우, 우웅!
모모에게 숲의 기운을 충분히 나눠 받은 덕분에, 그래도 몸을 움직이기는 편해졌다. 정신도 맑고……. 아직 스킬 같은 걸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마력이 안정적이진 않지만.
“으윽…….”
목덜미를 만져보자, 덜 아문 상처가 느껴졌다. 조금만 잘못 움직이면 바로 찢어지겠는걸…….
“모모,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모모는 조그만 손으로 철장을 가리켰다. ‘이게 문 아니야?’라는 듯이. 음, 그게 말이지. 문이 맞기는 한데…….
“거기 말고.”
-우웅?
-웅!
아하, 모모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두컴컴한 구석을 향해 뛰어갔다. 저쪽에 빠져나갈 틈이 있는 건가? 나는 손가락에 침을 발라 잠시 들어보았다. 곧, 실낱같은 바람이 느껴진다.
‘틈이 있나 보군.’
나는 조심스럽게, 소리를 죽여 모모의 뒤를 따라갔다. 동굴 끄트머리를 막아 감옥으로 만든 것인지, 안쪽은 삐죽빼죽하게 종유석들이 돋아 있는 동굴 그 자체였는데, 아마도 그사이 바깥과 연결된 틈이 있는 모양이다.
-웅! 웅!
뭔가를 발견한 것인지, 모모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부른다. 그러고는…….
-끄으응……!!!
있는 힘껏, 걸려 있는 돌부리를 당긴다. 툭, 투둑,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돌멩이들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덜컥!!!
모모가 당기던 돌부리가 뽑혀 나갔다. 그리고…….
“……저기로 나가라고?”
그곳에는 주먹만 한, 딱 새끼 수달 한 마리 정도만 들어갈 수 있는 조그마한 구멍과…….
-웅!!
그 구멍을 바라보며 뿌듯해하는 모모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