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236
236
236화 종막(終幕)
“안 사요.”
내가 그의 말에 대답한 순간.
“뭐?”
그를 감싸고 있던 광기가 푸스스- 꺼져 버렸다.
나는 멍하니 풀어져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물건 필요 없으니까 안 산다고요.”
그러자 그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아니 왜? 도대체 뭐 때문에?”
나는 피식 웃으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 교육개혁이라면 K에듀의 힘 없이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서요.”
순간,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지금 소라게 학원의 전력으론 10년, 아니 100년이 걸려도 우리나라 교육은 절대 못 바꿔!”
절대 그럴 리 없다는 듯 단호한 표정. 자신의 말에 한 치의 의심도 가지지 않는 자의 말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내가 묻자, 그가 입술을 짓씹으며 입을 열었다.
“들개 새끼들이 사사건건 달려들 테니까! 지금이야 나라는 사람이 있으니 덜할지 모르지만,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네가 밥을 먹던 차를 타던 모든 사람들이 너를 물어뜯으려 할 테니까!”
어이없는 이유였다.
“아니 잘못한 게 있으면 비판 받고 고치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그가 코웃음을 치며 내 말을 받았다.
“하, 그놈들에게 무슨 거창한 명분이나 사상이 있을 것 같아? 웃기는 소리. 그놈들은 그저 물어뜯고 싶기에 물어뜯는 것일 뿐이야. 그러니 고집 그만 부리고 고개나 끄덕여! 원래 개새끼들은 강한 힘에 굴복하는 법이라고!”
그리곤 나를 바라보며 대답을 종용했다.
아무래도 그는 자신의 세계에 빠져 본래의 총명함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인 것 같았다.
‘씁쓸하구만.’
나는 혀를 끌끌 차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거절하겠습니다. 독재에는 별로 취미가 없어서.”
그러자 그 순간,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그의 눈이 붉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하 그래,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만. 비겁한 놈. 그동안 개혁이니 뭐니 하는 번지르르한 말이나 씨부릴 줄 알았지 막상 개혁에 뛰어들 생각은 없었던 거야. 뭐 독재에는 취미가 없어? 개소리 지껄이지 마. 독재가 싫은 게 아니라 막상 상황이 닥치니 두려운 거겠지. 혹시라도 실패할까 봐. 그래서 사람들의 질타를 받게 될까 봐!”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자, 드디어 이성을 놓아 버린 것 같았다.
“추하군요. 이제 그만하십시오, 대표님. 죄송하지만 저는 대표님의 영웅놀이에 어울려 드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순간, 그의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영웅놀이?”
“네. 아까부터 계속 저 아니면 안 된다. 강한 힘이 필요하다 뭐 이런 말씀들을 하시는데, 그게 영웅놀이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김호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건 영웅놀이가 아니야! 강력한 권력자만이 변화를 불러온다. 그게 바로 세상의 진리다!”
“정신 차리십시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원래 사회가 그래! 사회의 변화는 원래 그런 법이라고! 강한 힘을 가진 리더. 그게 아니라면 천 년이고 백 년이고 그대로일 수밖에 없어. 고인 물이 썩어? 멍청한 놈!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역사를 만들어 온 거야!”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던 이들은 모두 괴물이 되었죠. 그러니 저는 영웅이 되기보다 사람, 친절한 이웃이, 다정한 선생님이 될 겁니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도 충분히 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믿고요.”
그랬다.
그의 말대로 권력을 쥔 자는 쉽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지만, 그 변화가 언제나 좋은 변화인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권력자의 의지와 힘이란, 곧 권력을 지니지 아니한 존재들의 의사를 밟고 싹트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간단한 사실, 중요한 진리를 수많은 아픔과, 죽음을 목도한 뒤에 겨우 깨닫게 되었다.
뭐 문제가 있다면 아직도 그런 사실을 망각한 채, 절대 권력이라는 이름, 영웅이라는 그릇된 우상(偶像)에 호도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긴 하지만.
‘바로 지금처럼.’
나는 약간의 휴지를 준 후 다시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인간 언저리에서 인간인 척하는 짐승에게 한 마디쯤은 해 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러니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내가 이 세상의 교육자로서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그런 선민의식은 그냥 대표님 머릿속에 고이 간직해 두시길 바라겠습니다. 저는 언제라도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에 긍정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말을 마친 나는 김호범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
잔뜩 일그러진 그의 얼굴로 입술을 달싹이는,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김호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슬쩍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도록 하죠. 세무조사 받으신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부디 열심히 받으셔서 다시는 만날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곤 바로 방 밖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거기 서.”
등 뒤에서 으르렁 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와 할 이야기는 이미 모두 다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노괴물의 둥지에서 빠져나가는 일 뿐이었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겨 나갔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건 나뿐이었던 건지.
쨍그랑-
“거기 서라고!”
등 뒤에서 찻잔이 날아와 문에 부딪쳐 떨어졌다.
식은 찻물이 바닥에 흘러 내렸다.
‘하….’
어이없는 마음에 뒤를 돌아보자, 김호범이 살의를 찬 짐승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넌 실패하고 말 거야. 아주 처참하게. 그때 가서 울며 애원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절대 받아 주지 않을 거다.”
악의가 가득한 그의 말에 나는 고요히 웃어 보였다.
“실패라…뭐 그것도 좋겠네요. 다만 저는 후세에 좋은 실패로 남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겁니다. 때론 좋은 실패가 나쁜 성공보다 더 가치 있을 때가 있으니까요.”
그러자 그가 원독(怨毒)에 찬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게 네 꿈을 좀먹는다고 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제 꿈은 ‘좋은’ 강사가 되는 거니까요. 좋은 강사라면 자신이 영웅이 되기보다 자신이 가르친 이들이 영웅이 될 수 있게 만드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말을 마친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열었다.
그리곤 바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무덤 같은 방안에 홀로 남은 김호범이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 * *
몇 년 뒤.
[…외국계 기업의 박선생영어교실 인수, 시즌스쿨의 부도. 청출어람 학원의 불법 정치자금 로비 사건 등 前 K에듀 산하 학원들이 연일 사건사고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은 5년 전 K에듀 김호범 대표의 행방불명 이후부터 시작된 것으로…]
스크롤을 내린다.
그러자 K에듀의 대한 관련 기사와 사람들의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없었다. ‘사교육 왕자들의 몰락’]
[K에듀의 아이들…연일 구설수에 휘말려 ‘왕자의 난 조기 종결’]
[사교육 제국의 완전한 몰락…‘새로운 시대에 따른 결과’]
[댓글 : 응? K에듀가 뭐임? 그런 데가 있었음?]
[댓글 : ㅇㅇ 예전에 애들 막 미친 듯이 갈궈서 성적 올리고 그런 데가 있었음ㅋㅋㅋ]
[댓글 : 맞아 ㅋㅋㅋ 나도 거기 다니면서 많이 맞았었지 ㅠ]
[댓글 : 허 참, 요즘 애들은 K에듀 잘 모르나? 우리 때는 다 K에듀 학원들 다녔었는데ㄷㄷㄷ]
[댓글 : K에듀라…오랜 만에 듣는 이름이구만]
5년 전, 내가 김호범의 제안을 거절했을 때. K에듀 측에서는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소라게 학원의 사업과 교육청의 교육 개혁 사업을 방해했었다.
[‘S학원’의 무리한 확장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사교육 시장]
[교육 개혁 사업에 대한 의혹…사교육 일감 몰아 주기?]
[전문가들, 한국식 바칼로레아 효과는 ‘글쎄?’]
아무래도 김호범의 악의, 정확히는 이성을 잃은 악의가 느껴지는 방해공작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예하 학원에 대한 과도한 갑질과 그로 인한 부담, 점점 조여 오는 공권력의 압박과 사람들의 불신에 K에듀는 빠른 속도로 분열, 휘하 학원들의 반발에 직면하게 되었다.
‘K에듀 본사는 과도한 갑질을 사과하라!’
‘이대로는 도저히 못살겠다! 김호범을 탄핵한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무리한 경쟁을 중지하라!’
그리고 그 결과.
[충격, 거대 기업 K에듀의 김 모 대표의 행방불명!]
휘하 학원들을 다독여야 할 김호범 대표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면서…
[박선생영어교실, K에듀와 결별 선언!]
[시즌스쿨의 이OO원장 K에듀의 지분에 대한 권한 행사!]
[청출어람 학원, 박OO원장 K에듀의 차기 대표 선출에 참여]
.
.
학원가의 거대한 공룡, 수십 년간 절대 권좌를 사교육의 제왕 K에듀가 갈가리 찢겨 역사의 이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화무십일홍이구만….’
그 후로도 많은 일이 있었다.
K에듀의 몰락 이후 갑작스런 혼란, 그 혼란을 딛고 일어선 학원들의 소라게 학원에 대한 견제, 그리고 교육 개혁 사업을 둘러싼 각종 사건들, 이해관계에 따른 대립 등 수많은 사건들이 나를 찾아왔다.
[서울시 대형 학원들, 시장질서 교란의 주범으로 ‘S학원’ 지목]
[서울지역 사학재단 협의회, 교육청의 개혁 정책에 ‘반발’]
[대학들, 서울시 교육청의 중등교육 개혁 정책에 우려표명]
때문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김호범 대표가 말했던 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말로 수 없이 나를 찔러 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쓰러져서는 안 돼. 버티자 버티고 또 버티는 거야.’
나는 쓰러질 수도, 포기할 수도 없었다.
이대로 내가 쓰러진다면, 포기해 버린다면, 내가 바라는 세상, 내가 바라는 교육 환경이 올 때까지 엄청나게 긴 시간을 견뎌야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일어나자. 일어나서 움직이자.’
그리고 그 결과.
[교육부, 종래의 유급제도를 강화 올해부터 시범적으로 운용할 것]
[서울시 교육청의 한국식 바칼로레아, 타당성 검토 결과 ‘양호’]
[, 일명 ‘김준영법’ 부패의 온상이 된 사학재단 쇄신 준비 완료!]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시간 안에 교육 개혁 프로젝트를 본궤도에 올려 놓은 것은 물론.
‘한 해 총 매출 1조 원 달성’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학원 1위’
‘학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원 1위’
‘가고 싶은 학원 1위’
사교육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함과 동시에.
[충격! 사학 재벌 김준영의 다음 목표는? ‘공교육’]
[교육부, 김준영 대표의 대안학교 설립 ‘가능하다’]
[김준영 대표, 서울 ‘대치동’ 인근에 대규모 부지 구매]
사상 최초로 서울 한복판에,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소라게 학원이 점령한 대치동 한쪽에…50만평 규모의 대안학교를 설립할 수 있었다.
실로 감개무량한 순간이었다.
한 달 월급 120만 원에 허덕이던 내가 드디어 사교육은 물론, 공교육에서까지 그 영향력을 뻗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내게 대안학교 설립인가 사실을 알려 준 독고경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김 대표님 결국 여기까지 오셨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제 정식 인가가 났으니 올 해부터 대표님의 꿈을 펼치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거대한 숲과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림 같은 모습의 건물들, 그리고 그 주변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소라게 학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흠…돔구장이나 하나 더 만들까?’
그런데 그때.
“김영준! 너어 또 숙제 안 했지! 일로 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교사가 됐지만 여전히 천진난만, 좌충우돌, 잔망스러운 김연아의 모습과.
“호호, 연아 선생님. 천천히 가세요. 그러다가 또 넘어지시면 어쩌시려고.”
만개한 히아신스 같은 자태로 김연아를 바라보고 있는 은솔의 모습.
그리고.
“히히, 연아 쌤. 그러니까 시험이 너무 어렵다고 했잖아요!”
“맞아요! 연아 쌤 시험은 너무 어려워! 그리고 너무 폭력적이야!”
“으아 은솔 쌤! 연아 쌤 좀 막아 줘요!”
꺄르르- 웃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김연아 선생님,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선생님도 예전에….”
그러자.
아이들을 향해 달려가던 김연아가 불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 쌤! 진짜! 옛날이야기 하지 말라구요!”
아무래도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어 보였다.
언젠가 독고경이 내게 물은 적 있었다.
당신의 꿈은 무엇이냐고. 당신이 가는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느냐고.
그때 나는 말했었다.
‘그 길 끝에는 ’사람‘이 있겠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그런 내 등 뒤에서 나즈막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천천히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Come mothers and fathers throughout the land.
And don’t criticize what you can’t understand.
Your sons and you daughter are beyond your command.
Your old road is rapidly agin.
Please get out of the new one if you can’s lend a hand.
For the times they are a changing.
세상의 어머니 아버지들이여.
당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난하지 말아요.
당신의 아들딸들은 통제를 벗어나 있으며.
당신의 옛길은 빠르게 낡아 가고 있어요.
거들어 주지 않을 거라면 막지는 말아요.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밥딜런(Bob Dyl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