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ersing Life With Future USB! RAW novel - Chapter 235
235
235화 선택
[금일 오후 K에듀에 대한 전격적인 세무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조사는 저번 국정감사 때 불거졌던 국세청의 외압성 세무조사의 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제국이 무너지고 있었다.
불과 며칠 사이, 자신의 수족이나 진배없었던 자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의 발을 핥기 위해 줄을 서던 자들이 자신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야말로 처참한 몰락이었다.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인맥과 학맥, 혈연을 비웃기라도 하듯, 거대한 파도가 그를 덮치고 있었다.
고요히 TV스크린을 바라보던 김호범이 손에 쥐고 있던 유리잔 던져 버렸다.
그러자.
와장창!
호박색 위스키 방울들이 산산조각 난 채 바스라져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됐을까.
무엇 때문에 자신의 제국이 이렇게 허망하게 스러지고 있는 것일까.
과연 누가 나의 제국을 무너뜨린 것일까.
그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리고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그는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완벽하게만 보였던 그의 제국, 그의 K에듀를 무너뜨린 사람. 그 사람은 바로…
김준영.
모든 것이 다 자신의 앞에서 당당히 고개를 치켜들던, 아무리 높은 절벽에서 떨어뜨려도 기어코 기어올라 와 결국엔 자신의 등에 칼을 내려찍던 그 건방진 놈의 탓이었다.
그놈만 아니었다면, 그놈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지금처럼 그가 홀로 술을 마시며 괴로워할 이유도, 그의 K에듀가 서서로 붕괴해 나갈 이유도 없었다.
순간.
“크….”
김호범이 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리곤 마치 눈앞에 김준영이 있다는 듯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세찬 분노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너 때문에….”
김준영의 목을 움켜쥐듯 강하게 허공을 움켜쥔 그가 달아오른 눈으로 허공을 노려보았다.
“너만 없었어도…너만 아니었어도….”
하지만 아무리 강하게 허공을 움켜쥔다고, 아무리 매섭게 노려본다고 하더라도 김준영의 웃는 얼굴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김준영의 얼굴이 더욱 더 선명해질 뿐이었다.
“흐…빌어먹을….”
잠시 뒤.
환상과의 싸움에 자신의 모든 힘을 다 쏟아 부은 김호범이 쓰러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하…하하하…하.”
광기 어린 웃음을 내뱉은 그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탄력 없이 늘어진 살과 물렁한 근육.
더 이상 상대의 목을 움켜잡을 수 없는 나약한 손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노호(老虎).
원래는 ‘늙었지만 호랑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호랑이지만 늙었다’
“…….”
씁쓸한 미소를 입에 문 그가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차가운 살갗이 얼굴에 닿자, 뜨겁게 달아올랐던 머리가 천천히 식어 내렸다.
생각해 보면 그에게도 김준영처럼 꿈을 꾸던 시기가 있었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지만, 그 또한 커다란 꿈을 꾸며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현실을 바꾸고자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놈은 거대하고 또 무서운 것이었다.
그가 현실을 바꾸기 위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무리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그가 발버둥 치고 크게 소리칠수록 그가 더 열심히 움직일수록 더욱 더 그를 옥죄고 또 다그칠 뿐이었다.
때문에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바꾸는 것을 포기, 곧 자신만의 성을 쌓는 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현실을 이길 수 없다면,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그렇다면, 현실과 타협,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안에서라면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겠지.’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
자신이 쌓아올린 높은 성도 또 그 안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다 한 줌의 모래처럼 산산이 부서져, 그의 손안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뿌득 이를 갈았다.
‘그래 모두 다 포기해 버린다면 편안하겠지.’
하지만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포기라는 것은 초식동물들에게나 어울리는 나약한 감정, 그는 지금껏 그런 감정을 느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만약 그가 이대로 포기해 버린다면, 아무런 선택지도 선택하지 않고 좌절에 빠져 버린다면, 그렇게 된다면.
그가 평생을 바쳐 만들어 온 K에듀 또한 굶주린 승냥이 같은 잡졸들의 이빨에 갈가리 찢겨 나갈 것이 분명했다.
‘그것만은 절대로 안 된다.’
그것은 평생에 걸쳐 K에듀를 만들어 온 그로서는 절대 보고 싶지 않은 결말이었다.
때문에 그는 K에듀를,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의 인생과 사상을 지키기 위해, 늙어 버린 머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부쪽은 이미 선이 끊겼다. 그럼 학원 협회쪽을 알아봐야 하나? 아니야 협회 사람들도 지금은 이곳저곳에서 공격을 받는 중이니 힘들 거야. 그래 그렇다면….’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도무지 괜찮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이대로 포기해야만 하나? 아니야 그럴 수는 없어. 나는 틀리지 않았거든. 그러니 이제 와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야. 적어도 그놈만은…김준영 그놈만은….’
그런데 그때,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 혹시 그 방법이라면…’
그는 회심의 미소를 입에 물었다.
김준영. 놈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난 것이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지. 아니! 백 년이 지나도!”
만약 이 방법이 성공한다면, 그렇게 된다면 이 처절한 굴욕도 되갚아 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좋아. 무조건 성공한다.’
결심을 굳힌 박호범이 전화를 들었다.
그리곤 익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버튼을 눌러 나갔다.
잠시 뒤.
뚜르르르- 뚜르르르-
몇 번의 통화 연결음과 지나간 후.
찰칵-
전화가 연결되었다.
수화기를 쥔 채 잠시 숨을 고른 김호범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김 대표. 나 김호범이네.”
* * *
“지금 그 말, 진심이십니까?”
내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묻자, 김호범이 두 눈에 기이한 열기를 뛴 채 소름끼치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물론 진심이야. 자네만 수락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실행에 옮길 준비가 되어 있으니 안심하고 결정하게.”
그의 기묘한 말에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왜냐하면 방금 전 그가 나에게 던진 제안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
오늘 오후, 김호범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김 대표. 나 김호범이야. 미안하지만 오늘 시간을 좀 내야겠어.’
전화를 건 그는 내게 꼭 할 말이 있으니 시간을 좀 내 달라며, 나를 초대했다.
물론 평소라면 시간을 내주기는커녕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을 테지만…
이어진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을 내리 누를 수밖에 없었다.
‘…제발 부탁이니까.’
그것은 그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때문에 나는 그의 초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오늘 오후에 뵙는 것으로 하죠.’
뭐 내 나이의 두 배를 살아온 자의 부탁이기도 하고, 또 왜 그가 나를 초대했는지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그는 내게 어마어마한 제안을 던져 버렸다.
그것은 바로…
‘K에듀를 맡아 주게.’
K에듀와 소라게의 합병을 추진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 아니 정확하게 말해 소라게 학원이 K에듀를 흡수통일 해 달라는 말이었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처음 그의 초대를 들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끽해 봐야 봐 달라는 말 정도나 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건 좀 의외인데….’
나는 고개를 흔들며 김호범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전에 없이 무시무시한 미소를 짓고 있는 김호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런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하는데 누가 고개를 끄덕이겠어.’
나는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좀 갑작스럽군요.”
“뭐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자네가 제일 잘 알고 있지 않나? K에듀와 소라게가 힘을 합치면 자네가 내게 말했던 것들 일들을 보다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걸.”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그의 말대로 K에듀와 소라게 학원이 힘을 합친다면, 사상 최대 규모의 사교육 공룡이 탄생. 자연스럽게 내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 정상화 또한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말의 무게가 달라질 테니까.’
하지만 그와 나는 방금 전까지 서로가 서로의 목을 노리던 사이. 상대방을 거꾸러뜨리기 위해 갖은 방법을 강구하던 상대였다.
그러니 아무리 그가 달콤하고 제안을 한다고 하더라도 덥썩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 모르니….’
그런데? 그런 내 표정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내 얼굴을 살펴보던 김호범이 갑자기 광소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뭘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어. 아마 내게 뭔가 다른 생각은 없는지 그게 마음에 걸리는 거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까 놓고 말씀드리면…. 예.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저희가 그리 좋은 사이는 아니었잖습니까.”
그러자 김호범의 미소가 더욱 더 짙어졌다.
“자네. 지금 이게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네?”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럼 K에듀를 에누리 없이 통째로, 깔끔하게. 아무런 뒤탈 없이 물려 주겠다는데 좋지 그럼 안 좋겠는가?
시가총액 3,000억 원, 소속된 학원만 500여 개소, K에듀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사람만 1만 명이 넘어가는 이 거대한 기업을 거의 공짜로 먹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것이라고 해도 이렇게 전폭적인 승계는 이뤄지지 않을 정도니까.’
때문에 나는 더욱더 그의 제안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를 죽일 듯 나를 노려보던 그를 나는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의뭉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군요. 도대체 왜 저한테 이런 제안을 던지시는 겁니까. 솔직히 자리를 물려 주시려는 거라면 원하는 사람이 제법 많을 것 같은데요.”
그러자 그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놈들에게 내가 평생을 일궈 온 K에듀를 넘겨 줄 수는 없지. 적어도 내가 인정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차라리 없애는 게 나아.”
“아니 그럼 저는 괜찮다는 말씀이십니까. 제 교육 정책에 그렇게 격렬하게 반대하셨잖습니까?”
그러자 그가 배부른 범 같은 표정을 짓는다.
“당연히 안 괜찮지. 자네가 단연코 최악이야.”
“…네?”
내가 그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보니, 그의 내면에 도사린 괴물의 음영이 보이는 듯했다.
“너는 무조건 망할 것이다.”
광기마저 느껴지는 그의 말에 일순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김호범이 강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너는 너 혼자 망하는 것이 아니라 수백만의 소년, 소녀들의 미래, 더 나아가 이 나라 대한민국의 미래까지 모두 망하게 할 거야.”
???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아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자 그가 득의만만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평생에 걸쳐 만든 성채(城寨)야. 이걸 너에게 피 한 방울 없이 온전히 넘겨 주는 이유는 네가 10년, 아니 100년 뒤에는 무조건 망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아서다.”
“…….”
“내 K에듀의 힘이 없다면 네놈은 앞으로 수많은 잡것들에게 물어뜯겨서 강제로 날개와 목이 꺾이겠지. 그때가 되면 이상은 고결했으나 힘이 부족했다며 탄식할 거야. 이 역겨운 위선자 자식.”
“…….”
그는 악의에 물든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 K에듀를 가지고 있다면 감히 그딴 너절한 핑계는 댈 수 없을 거다. 왜냐하면 네가 망하는 것은 오롯이 너의 사상이 틀렸기 때문일 테니까. 그리고 그로 인한 피해는 대한민국의 국민 ‘모두’가 받게 되겠지! 네놈 허울 좋은 망상에 놀아났다는 죄 하나만으로!”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
하나의 정책이 잘못되면 그 여파는 백년을 간다.
그리고 그로 인해 수천수만 명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그들은 인생을, 사회를, 인간을 저주하며 평생을 살아간다.
그 사실을 깨닫자 순간, 등골에 오싹 해졌다.
이제 보니 김호범은 내 가슴에 평생 뽑을 수 없는 육중한 쇠말뚝을 박아 놓으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히히…히히히히…….”
김호범이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의 입가에서 피거품과 함께 몇 방울의 침이 흐르고, 그의 온몸에서 기이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암…못 주지…무능력한 머저리들에게는…못 넘겨 줘…너뿐이다…내지금 심경을 느낄 놈은…너는 느낄 수밖에 없어…생전 느낄 수 없다면…무덤 속에서라도 느끼게 될 거다…내가 옳았다는 걸…그리고 네가 틀렸다는 걸…아마…평생에…걸쳐…후회할 것이다….”
전력(全力).
그것은 한평생을 왕으로 살아온 이가 전력을 다해 내리꽂는 칼이었다.
그는 두 번째는 없다는 듯 자신의 모든 생명을 다 태워 나에게 마지막 일격을 던졌다.
그러나.
“됐어요.”
나는 그 마지막 일격을 허무할 정도로 쉽게 피해 버렸다.
“안 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