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Genius Spy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99
299화 결합
이후로 여러 사람을 만났다. 물론 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알 파흐리나 몬더그린, 뤼데른도 그중 하나였다.
그중 특히 몬더그린과 뤼데른이 유독 나의 복귀에 신나 하는 게 보였는데 얘기를 나눠보니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주 시기적절했어. 한 달 동안 외지에 박혀 있을 생각에 짜증이 나려던 참이었는데.
-동의하네.
-다음 순번이 자네였나?
-맞아.
-나보다 더 운이 좋았군. 일중일만 더 빨리 오지 그랬나.
내가 없는 5년 동안 로마네크 평원의 어둠은 그대로였다. 아직 대악마가 죽기 전이라서 그런 듯했다.
어쨌거나 대륙의 소드 마스터들은 순번을 정해 한 달씩 그 평원을 감시해왔다고 했다.
처음엔 셋이었고 그다음엔 둘, 하나로 조금씩 수가 줄어들었단다. 혹시 모르니 비워둘 수는 없으니까.
어쨌든 내가 나타난 것은 뤼데른이 평원에 도착하고서 2일이 지났을 때였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조금 이해했다.
자기가 기거하는 곳을 떠나 그런 흉흉한 곳에 있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니까.
그리고 몬더그린 같은 경우엔 방랑하는 것을 좋아하니 더욱 진저리를 냈을 것이었고.
만날 사람은 대부분 만난 것 같았으나 다 그런 건 아니었다. 곧 이어질 행사에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프히리와 전대 첩보장인 브루세크 공작이었다.
이번 행사에 프히리는 참여하지 않는다. 하이센의 왕족만이 참여할 뿐. 프히리와 공작은 나와의 접점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므로 만날 수가 없었다.
‘따로 시간을 내야겠지.’
브루세크 공작이 죽은 건 아니었다. 적절한 때에 첩보장의 자리를 놓았을 뿐이었다. 공작위를 그대로 유지한 채였다.
언젠가 세상이 조금 잠잠해지면 시간을 내서 만나 볼 생각이었다. 은혜를 입었다고 볼 수 있으니까.
물론 숨어서 봐야 할 것이다. 프히리를 만나는 것은 더욱 조심스러웠다. 현재 하이센의 첩보장을 맡고 있으니.
그래도 소드 마스터인 내가 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 프히리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이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겐가?
어쨌거나 다시 만난 소드 마스터들은 그때의 일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에렌딜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나를 끌어안고 나서 잘 돌아왔다고 한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으니까.
당연한 말이었다. 이들 입장에서, 나는 눈앞에서 사라져 5년 만에 돌아온 사람이다. 심지어 그렇게 강력하던 대악마와 함께 사라졌고.
어둠 물든 평원이 사라져 대악마가 죽었다는 걸 인지했으니, 도대체 어떻게 이겼는지가 궁금할 것이다.
소드 마스터들은 에렌딜보다 더 궁금해하였다. 그때 같이 싸워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나는 굳이 과장하거나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했다. 그냥 무너진 세계에서 대악마와 같이 죽으려 했었다고. 그런데 운이 좋게 살아남았다고.
-그 세계가 부서졌음에도 이곳에 돌아왔다는 건……. 정말 천운이군.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눈을 떠 보니 로마네크 평원이더군요. 사실 뤼데른을 만났을 땐 놀랐습니다. 많이 늙어 보이셔서.
-이 친구가 지금 날 놀리는 겐가?
대화는 장난스러웠지만 몬더그린과 뤼데른은 진심으로 감동한 것이 보였다. 대화의 마지막에 나를 한 번씩 안아 주며 했던 말이 있었으니까.
-고생했네. 그리고 고맙고 존경하네. 그 누구라도 자네와 같은 선택을 하진 못했을 거야.
-인정하네. 삶에 대한 미련은 상상 이상이니. 나도 그랬다고 장담하진 못하겠군.
-아닙니다. 경들이 저와 같았어도 그리하셨을 겁니다.
그때 대악마와 함께 같이 싸웠던 전우들이라 그런지, 다른 이들의 말보다 더 진정성이 느껴졌다. 어쨌거나 그들과의 만남 이후엔 나는 오랜만에 검을 잡았다.
“흠. 좀 낯서네.”
비워진 황실의 연무장에서였다. 뤼데른이 검을 나누자 했지만 거절하였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감각이 조금 무뎌진 것 같기도 하였다. 무의 세계에 있다가 이곳에 와서는 에렌딜과 시간을 보냈으니.
이렇게 시간을 낼 수 있었던 건 에렌딜이 업무에 복귀했기 때문이었다. 엄청나게 아쉬워하는 게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네가 돌아온 것을 축하하는 환영식이다. 꼭 여가 준비하고 싶구나.
나야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었다. 에렌딜이 하루 종일 업무를 하는 것도 아니었고 월명을 잡는 것 역시 좋은 일이니까.
에렌딜은 잠깐이라도 떨어져 있는 걸 싫어한 것이고. 에렌딜의 마음이 조금 더 깊을 뿐이다. 5년을 기다린 건 그녀였으니.
물론 나는 괜찮다는 티를 낼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나 역시 에렌딜과 잠시 떨어지는 걸 아쉽다고 얘기했다.
거짓말도 아니었기에 가슴이 찔리진 않았다. 5년과 별개로 내 감정 역시 억눌러 왔던 것이었으니.
하지만 검을 오래 잡지는 못하였다. 2일째였다. 저녁까지 바빴던 에렌딜이 돌연 입을 열었다.
“내일은 별장에 갈 것이니 준비하거라.”
“예?”
“애매하게 할 바에는 확실히 하는 게 낫겠다 싶어 일을 대충 끝내 놓았다. 이틀 정도는 쉴 수 있느니라.”
어제오늘 바빴던 게 미리 일을 처리해서 그런 거였다고? 하긴, 좀 피곤해 보이긴 했다.
“무리하지 마시지 그러셨습니까. 저는 같이 있는 지금도 충분히 좋습니다.”
내 말에 에렌딜이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과 바깥에서 보내는 것은 다르다. 여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더욱 편하게 있고 싶은 것이니라.”
에렌딜의 마음도 이해가 가긴 했다. 에렌딜이 사람을 물려도 이곳은 황궁이었으니. 어디를 가든 사람이 많았다.
우리의 활동 반경은 어느 정도 제한이 된다는 뜻이었다. 별장은 다를 것이었고.
“오늘은 일찍 자자꾸나. 내일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 * *
우리는 새벽부터 일어나 용력거에 올랐다. 지난번, 같이 갔었던 황제의 별장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동부의 달빛 우물도 가자고 했었는데, 그건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별장을 잠깐 다녀오는 것도 바쁘게 일해 시간을 낸 것인데 동부까지 가기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에렌딜은 용력거로 이동하는 동안 잠이 들었다. 자려고 한 건 아니었다.
이틀간 빡세게 일해 피로가 쌓인 것이지. 나는 깨우지 않았다. 그저 손을 잡은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간 날았을까. 우리는 동이 터올 무렵 별장에 도착했다. 풍경은 여전했다.
구름에 가려 하늘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이는 별장 끝에서 허공을 향해 쏟아지는 폭포를 보며 나는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이상한 일이었다. 고작 두 번째 오는 곳이었으니까. 에렌딜과 한 번 와 본 적이 있어서 그런가?
‘그러고 보니 그때 했던 약속을 지켰네.’
다시 오자고 했었다. 결국 모든 일이 끝난 뒤에 에렌딜과 이곳에 왔고. 그것이 만족스러워서 그런 것 같기도 하였다.
에렌딜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온화한 표정 위로 묘한 만족감이 엿보였다.
“너와 이곳을 다시 오니 좋구나.”
“같은 마음입니다.”
우리는 그때처럼 시간을 보냈다. 허공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폭포 앞에서 차와 다과를 즐겼다. 여름임에도 고도가 높아 덥진 않았다. 딱 적절하다고 해야 할까.
떨어지는 폭포 위쪽의 작은 강에 몸을 담그기도 하였다. 소소한 물장난이었다. 에렌딜과 물장난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데니프나 오르헨과는 어렸을 때 경험이 있긴 하지만. 특히 에렌딜이 즐거워했다.
“이십 년 만인 것 같구나.”
“그렇습니까?”
“이리 물에 들어온 건 아주 어렸을 때였지.”
우리는 물 위에 둥둥 뜬 채로 대화를 나누었다. 내 바람이 있기에 빠지거나 흘러가는 일은 없었다.
“손을 주거라. 떠내려갈 것 같구나.”
그럼에도 에렌딜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유를 알기에 굳이 되묻거나 그럴 일은 없다고 하지 않았다.
마주 잡은 손, 시원함 속에 더해지는 온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온유한 것이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는 숲을 돌아다녔다. 발로 걷기도 하고 날기도 하였다. 에렌딜의 부탁이었다.
“여도 하늘을 한번 날아 보고 싶구나.”
나는 에렌딜이 재미를 느낄 수 있게끔 바람을 조율하였다. 에렌딜이 정말 좋아했다. 사람이 하늘을 난다는 건 상상 이상의 일이다.
지구에서도 과거의 인간은는 하늘을 꿈꿔 왔지 않았던가. 이 세계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용력거가 있다고 해도 직접 몸으로 비행하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고. 물론 에렌딜은 비행을 할 때도 내게 손을 요구했다.
손을 잡고 있는 걸 좋아하였다. 외로웠던 시간이 깊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황제의 별장이라고 하나 놀거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애초에 자주 찾는 곳은 아니었고 논다기보다는 쉬는 곳이었으니.
그렇기에 우리의 일과는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녁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또다시 숲속의 호수 앞으로 찾아왔다. 일전에 왔던 곳이었다. 그게 불만스럽진 않았다.
오히려 같은 행동들을 그때와는 다른 관계와 감정으로 같이한다는 것이 새로웠을 뿐.
달빛 비치는 호수는 여전히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신 에렌딜이 아쉬운 얼굴로 얘기했다.
“악단을 데리고 올 것을 그랬나.”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음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긴 하였다. 지구처럼 노래를 틀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곳에서는 악단을 불러다 연주를 들어야 함이 아쉬웠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아쉽긴 합니다만, 이 편이 좋습니다. 폐하와 둘이 있으니까요.”
“하긴, 사람을 피해서 왔으니 데리고 왔다면 불편했을 것이니라.”
그렇게 말한 에렌딜이 잠시 나를 노려보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또 폐하라고 불러서 그런 듯했다.
음, 습관처럼 나온 말이었다. 에렌딜이 갑자기 혼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예전보단 낫지. 그때는 이곳에서 네게 답답하다고 투정을 부렸었는데.”
“하하…….”
“그래도 다시 온 지금은 다르니 다행이구나.”
“예.”
내 대답에 미소 지은 에렌딜이 침을 삼키더니 조심스럽게 품을 뒤적거렸다. 의아해하는 가운데 에렌딜이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받거라.”
“이게 무엇입니까?”
“보면 알 것이다.”
상자를 연 곳엔 반지가 두 개 들어 있었다. 뜻하는 바가 명확해 당황스러웠다. 싫다는 게 아니라 예상을 못 해서 그렇다.
“여, 여는 이번 환영식에서 너와 혼인할 생각이니라.”
“예?”
내 물음에 에렌딜이 인상을 찌푸렸다.
“여와 혼인하지 않을 생각이더냐?”
“아뇨, 아닙니다.”
에렌딜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약간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나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
“이런 건 제가 하는 게 아닌가 해서.”
“그게 무슨 상관이더냐. 여는 제국의 황제이니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런 세계라도 상대가 황제라면 누가 청혼을 하는지는 상관이 없었으니까.
“여는 네가 마음이 바뀌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너도 여가 그럴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데 무엇이 문제 될 게 있겠느냐? 어차피 할 것이라면 괜히 다른 사람들을 두 번 오가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에렌딜은 당당한 얼굴로 얘기했다. 다만 달빛 호수에 반사된 백옥빛 피부에 홍조가 오른 게 보여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왜, 왜 웃느냐.”
에렌딜이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나도 진심으로 나서야 할 것 같았다. 물론 지금까지도 진심이었긴 하지만.
“좋아서 그렇습니다.”
나는 반지를 손에 잡았다. 기분이 좋은 것인지 에렌딜이 붉어진 볼로 입술을 씰룩이며 되물었다.
“다시 말해 보거라.”
나는 말없이 에렌딜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가녀린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었다.
“좋다고. 에렌딜.”
에렌딜이 결국 참지 못하고 함박웃음을 보였다. 반지 낀 손이 내 어깨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