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300
천하제일 시한부 (300)
항상 어릴 때부터 무인을 동경해 왔던 사람이니까.
무림인으로서 어디서든 잘 살아가겠지, 그냥 그렇게 생각했었다.
또 언젠가는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 봤다.
한데, 이렇게는 아니었다.
“순서대로 나오는 건가?”
난 슬쩍 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직도 뒤편에는 날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주소룡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대검이 날카롭게 빛을 머금었다.
“어차피 넌 보지 못할 테니까.”
콰앙―!
가타부타 다른 말은 없었다.
반가운 해후를 나눌 시간도 없었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주소룡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내게 달려들었다.
그의 검격.
예사롭지가 않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주소룡이 한차례 크게 대검을 휘둘렀다.
막대한 풍압과 함께, 쇄도하는 대검의 모습에 난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막을 수 있나?’
생각은 짧았다.
저 무식한 힘으로 휘두르는 대검을 그대로 맞받아쳤다간, 손목이 그대로 아작 날 것 같았다.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내 뒤통수를 스치고 지나가는 대검의 서늘한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빠르다.’
생각지도 못한 속도였다.
대검을 들고 있었기에, 이만한 속도를 낼 수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다.
주소룡의 공세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검의 무게에 온전히 몸을 실어, 빠른 속도로 전진한 주소룡은 그대로 검을 내리찍었다.
빠르게 자세를 수습하지 못했다면, 뒤통수가 박살 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
난 천천히 천마검을 들어 올렸다.
방금 검자하를 상대하느라, 남은 내공은 그리 넉넉지 않았다.
“쯧쯧, 애석하구나. 끝까지 마주치지 않았으면 했거늘.”
주소룡은 말과 함께, 검자하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십여 년이 넘게 동고동락했던 동료였다.
까칠한 것이 가끔 짜증 날 때도 있었지만, 얼굴 한번 보지 못했던 동생보다는 더 진한 끌림이 존재했다.
“콩가루 집안이군.”
난 말과 함께, 피식 웃었다.
이거야말로 진짜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다.
형제가 서로 죽이기 위해, 칼부림을 하는 이 상황이 웃기기도 했다.
아버지는 이런 상황을 예상이나 하셨을까?
“너나 나나 이용된 것뿐이야. 딱 그뿐이다.”
“아니지.”
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주소룡의 말을 전면으로 부정했다.
“적어도 난 선택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이유라면 무수히 많이 붙일 수 있었다.
서희를 위해서.
동생이 편하게 살 수 있게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하지만 그 모든 걸 제치고라도 난 도망치려면 얼마든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럼 기회를 주마. 그냥 검을 내려놓고 떠나거라.”
주소룡이 작게 소리쳤다.
그것은 진랑이 전해 달라고 했던 말이기도 했다.
진랑 역시, 황궁을 나와 처음 만났던 친구이자 전우인 주서진에게 나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본인이 살고자 이 모든 걸 계획하고 실행했지만, 그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은 주서진이었으니까.
“표정은 따로 노는데? 누가 전해 달라고 했나?”
난 단번에 이 말이 주소룡의 본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후후, 눈치가 제법 빠르구나.”
주소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날 보내기 싫을 것이다.
은근한 적의는 그 뜻이 명백했으니까.
“우리 존재를 알고 있는 모두를 말살해야 하거든. 난 그쪽이야.”
“…….”
주소룡의 말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한다.
내가 주소룡이라도, 수백, 수천 년간 숨었던 사륭회의 존재를 들킨 상대를 마주했다면.
바로 죽여 버렸을 것이다.
어둠은 어둠 속에 있을 때야말로 제일 무서울 때였으니까.
스릉―!
가볍게 검을 떨었다.
“그건…….”
“내 선택이다.”
“그렇군.”
주소룡이 해맑게 웃었다.
내가 도망치지 않겠다는 뜻을 이해한 모양이다.
“그렇게 나와야지. 그래야 내 동생이라 할 수 있지.”
콰득―!
주소룡의 신형이 빠르게 흩어졌다.
어지럽게 잔상을 남기며 움직이는 그의 신형은 섬전과도 같았다.
‘이형환위.’
호흡을 갈무리하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의지만으로 자연스럽게 기운이 움직이는 경지.
즉, 나와 비슷한 경지라는 뜻이다.
‘현경.’
쩌정―!
동시에 공간을 찢어발기며, 대검의 끝이 내 미간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엄청난 속도, 그리고 엄청난 힘이 깃들어 있는 대검이다.
그대로 직격당한다면 찔리는 것이 아니라 부서진다.
파밧―!
빠르게 진기를 끌어올렸다.
대검의 공세를 벗어나야 했다.
후웅―! 콰앙―!
대검이 수십 개의 변화를 일으켰다.
콰드득―!
난 그대로 검강을 벼르고 또 벼렸다.
‘틈.’
대검은 대체로 면적이 넓다.
검을 세운다면 그대로 방패가 되어 줄 수도 있는 훌륭한 검이다.
보통 무인이라면 대검을 저렇게 빠르게 휘두를 수는 없다.
하지만 주소룡의 손에 대검이 들어가는 순간, 그건 완벽한 무기가 되어 주었다.
‘태산압정.’
삼재검, 일초식.
태산이라도 짓뭉갤 듯한 막대한 경력이 터져 나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탄강.”
콰직―!
천마검에 깃든 강기가 그대로 깨져 나가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하나하나 막대한 경력을 머금은 기운이다.
부서진 강기의 파편들이 일제히 주소룡을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쾅―! 콰앙―!
주소룡은 예상대로 검을 세워, 그대로 강기를 모조리 검면으로 받아쳤다.
강기와 강기의 부딪침.
덕분에 주소룡의 검에는 그 흔한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았다.
“제법.”
주소룡의 목소리가 왼쪽 귓가에서 들려왔다.
난 다급히 몸을 틀어, 기운이 날아드는 방향을 향해 검을 흩뿌렸다.
촤악―!
방금까지 내가 서 있던 곳을 주소룡의 대검이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간, 그대로 두 다리를 잘릴 뻔했다.
“제법 반응이 좋구나. 하나, 그뿐이다.”
주소룡의 신형이 빠르게 회전했다.
그의 몸을 따라 대검 역시 회전을 거듭했다.
막대한 풍압이 사방에서 휘몰아쳤다.
번쩍―!
일순, 소용돌이 속에서 삐죽 대검의 끝이 몸을 내밀었다.
촤악―!
엄청난 속도에, 그만 한쪽 어깨를 내주고야 말았다.
눈으로 감히 잡을 수 없는 속도다.
‘그렇다면…….’
공수를 전환한다.
지금까지 주소룡의 공세에 휘말렸다면, 이 호흡을 내 것으로 가져와야 했다.
파밧―!
피가 튀었다.
몸을 날리는 그 순간, 주소룡의 대검이 사정없이 날 향해 찔러 들어왔다.
몇 개는 피했지만, 몇 개는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주요 사혈을 비롯한 치명적인 부위는 절대적으로 방어했기에, 그쪽에 상처는 없었다.
촤악―!
난 그대로 주소룡이 일으킨 소용돌이 속에 검을 찔러 넣었다.
엄청난 반발과 함께, 검이 갈려 나가는 듯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헛짓.”
안쪽에서 주소룡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리를 좁히면 날 잡을 수 있다 생각한 거냐?”
정확했다.
거리를 좁힌다면 저 대검이 자유롭게 날뛰는 걸 방해할 수 있다 생각했다.
“어림없지.”
까가각―!
검과 검이 부딪치며 터져 나온 불꽃과 함께, 난 빠르게 몸을 뒤로 빼냈다.
손목에서부터 막대한 반탄지력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까다롭구나.’
대검의 무게가 엄청나다.
더불어 주소룡의 수비도 완벽했다.
아예 접근을 허용치 않는, 그의 괴이한 검술은 도저히 방향을 예측할 수조차 없었다.
“그게 끝인가?”
주소룡의 입가에 잔뜩 조소가 맺혔다.
그의 대검이 끈질기게도 날 따라붙었다.
까강―! 깡!
난 차분히 검을 쳐내면서 끝까지 기회를 노렸다.
‘지금.’
일순, 주소룡의 신형이 잠시 보였다 사라졌다.
아주 살짝 보였을 때의 그의 이동 경로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파밧―!
난 빠르게 주소룡의 다음 행동을 예측했다.
그의 대검이 내 검을 타고 뱀처럼 기어 올라왔다.
막대한 무게감과 더불어 투영된 강기의 위력이 어마어마했다.
그 탓에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도 했다.
쩌적―!
난 그대로 최고조로 끌어올린 진기를 방출했다.
강기의 파도가 주소룡의 전면부를 완벽히 덮쳐 버렸다.
삼재검법, 이초식.
횡소천군의 초식이다.
이걸로 잡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주소룡은 멀쩡하게 파편을 뚫고 걸어 나왔다.
“후, 큰일 날 뻔했군.”
그리 말하는 주소룡의 표정은 태연했다.
‘이상하다.’
난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당금 무림에서 내 검격을 그대로 받아칠 만한 실력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월신공과 천마삼검의 최종오의를 깨우친 지금, 날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건 자만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이 이상의 경지는 존재하나, 그 경지에 도달한 자는 없을 거라고.
하지만 주소룡은 내 심득이 담긴 검세를 너무도 가볍게 해소했다.
번쩍!
찰나간, 그의 정수리에서 붉은빛이 뻗어 나왔다가 곧 모습을 감추었다.
‘정수.’
저 정수다.
정수가 가진 힘의 근간.
“후후, 알아차렸나?”
주소룡이 씩 웃었다.
“이건 흡수의 정수다. 무공에 늦게 입문한 내게 아주 딱 맞는 그런 정수지.”
강제로 무공이 주입되는 빌어먹을 정수.
저마다 무공이 가진 주요한 특성을 극대화시키는 성질이 있다.
지금 내가 정수를 가졌는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다 변천제의 황금정수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놀랐다. 정수가 조금 뒤흔들렸거든. 널 만난 뒤로.”
주소룡이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그는 마치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대검을 이리저리 가볍게 휘둘렀다.
“몸은 풀었고 이제…….”
주소룡이 막 걸음을 내디디려 할 때였다.
순간 그의 뒤편에 펼쳐진 빛무리가 꿈틀거렸다.
우뚝.
동시에 주소룡의 신형이 멈춰 섰다.
그는 잔뜩 인상을 쓴 채, 뒤를 돌아보았다.
“이게 무슨…….”
그의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이 기회였다.
분명 주소룡의 목을 쳐 버릴 중요한 기회였다.
하지만…….
난 움직일 수 없었다.
“미친…….”
압도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하늘이 그대로 부서졌다.
동시에 지축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성공인가?”
주소룡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왜지?”
그의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게 대체…….”
덜덜덜.
주소룡의 두 손이 떨려 왔다.
쿠구구구―!
이내 지축마저 뒤흔들렸다.
진법.
이건 명백히 진법이 활동을 시작할 때의 현상이었다.
‘위험하다.’
뇌리에 위험을 알리는 경종이 울렸다.
본능이 도망치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한데, 그건 주소룡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떨어뜨린 자신의 대검을 주워 들었다.
“소가주님!”
그때였다.
멀찍이 떨어진 채 이쪽을 보고 있던 아지가 다급히 소리쳤다.
“뭐, 뭔가 이상한…… 크윽.”
아지가 갑자기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고 풀썩 쓰러졌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곧이어 신기단과 신검단이 일제히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털썩.
그건 주소룡도 마찬가지였다.
난 황급히 그의 곁으로 몸을 날렸다.
“넌…… 크윽, 괜찮은가?”
주소룡이 다급히 대검을 들며 물었다.
“뭘 말하는지 모르겠군.”
“제길, 속았군.”
주소룡의 얼굴에는 낭패한 심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곧 제마광천진이 열린다. 제기랄, 이걸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난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세가에서 데려온 무사들이 전부 쓰러져 있었다.
동시에 생기마저 사라져 가는 것이 아무래도 저 진법이 원흉인 듯했다.
“후욱.”
난 가볍게 호흡을 갈무리했다.
지금은 누굴 봐줄 상황이 아니었다.
저 진법은 피아를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기운을 빨아들인다.
어째선지 난 그 기운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파밧―!
난 다급히 진법이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진법이 발동되면서, 느껴진 한줄기 기운.
저 안에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날 기다리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