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347
3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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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안을 마치고 결과를 기록하면서 단은 속으로 감탄했다.
시력이 정말 많이 되돌아왔다. 이만하면 충분히 정상 범위였다. 난시는 좀 남을 것 같지만 근시는 앞으로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감히 기대도 못 했던 결과였다.
나아진 것은 시력만이 아니었다.
3년 전, 별의 원천에 고리를 맺은 직후 시현의 상태는 정말로 심했다. 몸에서 제 기능 하는 곳이 그닥 없었다. 만나는 의법사마다 이건 의법술로도 양생술로도 될 일이 아니라고 했다. 돌아오는 여정 동안 단은 종종 남은 수명이란 문제를 생각했었다.
그러던 걸 3년도 안 되어 이만큼 사람 꼴로 되돌려놓았다. 먹고 마시고 걷고 움직이고 웬만하게 할 걸 다 하게 되었다. 부모가 뭘 얼마나 쏟아부었을지 짐작도 안 갔다.
아버지 쪽은, 쏟아부을 거랑 안 쏟아부어도 될 거를 잘 구별 못 하고 있는 거 같지만.
딱 하나 되돌아오지 않은 게 정신연령이었는데, 단의 생각엔 어차피 집에서 노는 사람이 의젓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 3년 사이 단은 유리공방에서 일하다가 안경사 일을 시작했다. 꼭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어쩌다가 보니 일을 하고 있었다.
원래 남운관에 돌아온 직후 단은 잠시 쉴 생각이었다. 빚도 없어졌겠다, 상급을 받아 돈도 넉넉해졌겠다, 민적관 일도 다른 잡일도 다 그만두었다.
그래도 쉬는 동안 아무것도 안 하기는 또 뭐했다. 전에 배우던 유리나 마저 배울까 싶어져서 잠깐 유리공방에 일자리를 얻었다.
어쨌든 그는 이제까지 손 써서 일하는 데서 거절당한 적이 없었다.
단이 발 들인 공방은 남운관에서 규모도 기술도 제일로 치는 곳이었다. 대형 판유리는 물론이고 그릇에 거울, 안경과 망원경 등 유리로 된 것은 전부 다뤘다.
그런데 일을 배워가면서 보니 이 공방은 안경알이나 망원경알 같은 굴절 유리 분야의 관리가 영 엉망이었다. 기술은 좋은데 규격이 온통 제각각이라 구실을 못 했다.
놔두질 못하고 참견을 하다가 일을 전담으로 맡게 됐다. 거기서 더 참견을 했다가 공방장과 싸우고 잘렸는데 공방의 안경 손님이 다 따라 나왔다.
그게 단이 본의 아니게 남운관에 안경 공방을 열게 된 이유였다.
일이나 생활에 만족감은 있었지만 단은 가끔 자괴감을 느꼈다.
한환은 사기꾼이라도 사람 보는 눈이 있었다. 자기는 쉽게 휩쓸리는 사람이 맞았다. 정신 차려보면 꼭 그러려던 게 아닌 일을 온통 붙잡고 파고들고 있었다.
놔두려고 했다가도 뭘 조금만 손보면 일이 굴러갈 게 뻔히 보이니까 무심코 손을 대고, 주위에서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 결국 끝까지 다 해버린다.
예전에도 툭하면 그랬는데 이젠 돈까지 잘 벌리니 버릇이 고쳐질 가망이 안 보였다.
공방까지도 괜찮다. 이제 단의 인생 목표는 남 눈에 띌 일 없이 조용히 살다 늙어 죽는 거였고 다니는 사람만 다니는 안경 공방은 그 목표에 알맞아 보였다.
문제는 공방 낸 지 얼마 안 가 온 동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이 다 권씨 권씨 하며 친한 척을 하게 됐다는 거였다.
그렇게 불리는 게 딱히 싫은 건 아니었지만 동네 어린애들까지 권씨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따라다니는 건 좀 애매했다. 일단 아저씨가 아니고, 왜 따라오는데?
불러대고 따라다니는 건 그렇다 쳐, 다들 툭하면 먹을 걸 갖다주거나 잔치니 절기맞이에 오라고 조르는데 왜들 그러는 건지 몰랐다. 이웃 교류라고 해봐야 어쩌다 한두 명 물건을 고쳐주거나 뭘 도와주면서 이름을 튼 게 다다. 그게 이렇게까지 될 일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한테만 휩쓸리면 나았다. 공방 뒷길에서 자꾸 아는척하길래 몇 번 먹이 준 고양이가 조만간 단의 집으로 들어올 작정 같던데 그것도 막을 방법이 안 보였다.
여행을 마치고 남운관에 돌아온 후로는 매사가 그랬다. 정신 차릴 때마다 그러려던 게 아닌 일이 늘어나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놈의 여행부터가 문제였을 것이다.
호란은 가끔 술을 먹고서, 그때 셋이서 세상을 구한 거라고 말하곤 했다.
단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걸 인정하면 자신이 어쩌다 휩쓸려서 세상을 구했다는 것까지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일곱 번의 인류 역사에서 최고로 잘 휩쓸리는 사람으로 결정 나버릴 판이었다.
세상을 구하다니. 자신은 그런 걸 하려고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한때는 세상이 다 망하는 게 소원이었다. 그렇게 오래전 일도 아니었다.
새 안경의 도수 결정이 끝나고 내실을 나오면서 시현이 말했다.
“안경테는 새로 하지 않아도 될 거 같은데. 지난번에 맞춘 두 개 중에 그 검은 뿔로 된 걸 어머니가 마음에 들어 하셨거든. 거기 새 알을 넣으면 어떨까?”
“좋은 생각이야. 돈 좀 그만 써. 네 아버지가 너한테 돈 쓰느라 유전을 팔아치웠다는 소문이 있어.”
“완씨 가문 소유의 유전은 전부 그대로 있어. 사적으로 소유하던 유전을 내놓으신 건 어머니야. 유전의 소유권을 평혜원에 넘겼고, 어머니가 평혜원의 원장이시니 그걸 팔았다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아. 그 평혜원.”
단은 다과상 앞에 앉으며 살짝 미간을 좁혔다.
사람들이 평혜원을 언급하며 함씨 경인의 인품과 자비심을 칭송할 때마다 그는 정말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애어른이었던 아들이 격을 내려놓고 어른애가 된 이후 함씨 경인은 절대 공석에서 아들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가 부끄럽고 속이 상해서 아들 얼굴도 안 본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단은 모자간에 무언가 밀약이나 거래 비슷한 게 이루어져 있음을 확신했다. 평혜원 때문이었다.
반 주검이 된 자식을 반 사람 정도로 살려 놓은 후, 경재는 무료 의료소 평혜원을 열었다.
평혜원은 열 살 이하의 반민 아이를 치료해 주는 의료소였다. 땅인이나 하늘인 아이도 반민 어른도 받지 않고 오직 반민 영유아와 어린아이만 받았다.
무슨 기준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치료한 아이 중 일부는 계속 정기 검진을 받게 하고 집안에 경제 지원과 영양 관리도 제공했다.
반년 전부터는 말 깨친 아이 수십을 평혜 영재원이란 곳에 모아 글자와 여러 가지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경재가 그 영재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서 어떻게 쓰려고 하는지는 세상에 경재와 시현밖에 모르는 일이었다. 단이 알기로 평혜원의 진짜 목적은 선보에게조차 비밀이었다.
단은 주위에 사람이 없는 걸 알면서도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서, 정말로 마법 재능이 있는 반민 아이들이 있어?”
시현이 제법 짓궂게 웃었다.
“상상도 못 할걸. 어머니가 문을 또 배출할 야망을 불사르고 계셔.”
“무리지, 그건. 이제 세상에 마력도 옛날만큼 없는데.”
“대신에 물은 늘었지 않느냐. 그리고 어머니는 장애가 있으면 더 불타오르는 분이시라.”
시현이 다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단은 내친김에 전부터 하고 싶었던 질문을 입에 올렸다.
“비밀을 말할 딱 한 사람으로 네 어머니를 선택했을 때, 너는 확신이 있었던 거지? 경인 같이 대놓고 사람 차별하는 인간이 반민에게 마법을 가르칠 걸 어떻게 알았어? 차라리 완씨 선무면 모를까.”
시현이 입꼬리를 한쪽으로 치켜올렸다.
“아버지? 아버지처럼 매사 사려 깊은 분은 절대 안 되지. 반대로 어머니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분란과 적대를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당신께 반대하는 이는 전부 뭘 모르는 자로 취급하시며, 무엇보다 사람 차별에 진정성이 있으시니까.
여느 땅인들은 반민이 법술을 배우면 땅인의 위치를 위협할 테니 절대 못 배우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반면에 어머니는, 반민은 법술을 배워봤자 반민이고 결코 땅인과 같아질 수 없다고 믿으신다. 그러니 재능이 허섭스레기 같은 땅인들 대신 쓸 만한 반민을 키우면 더 쉽게 뜻대로 부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신 거야.”
시현은 허섭스레기란 말에 뚜렷한 억양을 담았다. 누구를 흉내 내는지 알 만했지만 별로 닮진 않았다. 그래도 그 고상 떠는 나리마님 입에서 그런 말도 나온다는 데서 새삼 세상이 변하고 계층이 섞이는 게 느껴졌다.
시현이 말했다.
“인재 부족은 예전부터 남방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이제는 법력이 희박해지면서 기운 읽기 못 하는 땅인 아이들이 계속 늘고 있다. 그 아이들에게 새 역할을 찾아주고, 동시에 신분에 관계없이 유능한 법술사를 길러내지 않으면 남운관은 훗날 윤지관이나 하유관에 잡아먹힐지도 몰라. 너는 모르겠지만 그건 어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두려워하는 일이다.
반민 법술사들이 세상에 나오면 남운관을 위한 일도 되고, 위아래를 나눈 벽을 조금이나마 허무는 일도 되겠지. 거기까지는 어머니의 뜻하신 바가 아니겠지만.”
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이 화제를 바꾸었다.
“하유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너도 소문을 들어 알겠지. 조씨 휘무가 자식에게 총치총령 자리를 물려주고 싶은 것 같아. 덕택에 하유관 정계가 아주 난장판이 되고 있다.
북방 3성에선 잊을 틈도 없이 내전이니 전쟁 얘기고. 이젠 슬슬 누가 누구와 싸운다는 건지도 헷갈릴 정도더구나. 치풍관도 내전 일보 직전에 어떻게 협의가 되었다는지, 안 되었다는지….”
시현이 활짝 웃었다.
“셋이서 그 고생을 해서 거석을 없애 놓았더니 세상 꼬라지 보아라! 문 격을 내려놓고 방구석 폐인이 되길 정말 잘하였다! 이제 아무것도 내 책임이 아니다!”
“어. 그건 축하해. 근데 방구석에서는 슬슬 나와. 걷기 좀 한다고 책임 안 늘어나니까.”
단은 다과로 나온 바람떡을 음미하며 말했다.
세상이 전보다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비가 늘어서 쌀이 흔해진 건 좋은 일에 들어갔다.
이제 세상엔 문이 없었다. 누구도 저 혼자서 세상을 쥐고 흔들 힘과 권위를 가질 수 없었다.
땅인과 하늘인은 서로 눈치를 보고 세 싸움을 했다. 그 사이에서 돈의 힘이 강해지면서, 세수원인 반민의 입지는 전반적으로 나아졌다.
팔관성과 속령 전체에 노비제가 폐지되고 반민의 인신과 재산을 보호하는 법령이 늘어났다. 적용도 전보다 훨씬 더 잘 되었다.
하지만 단은 돈 없고 앞으로 돈 벌 능력도 없는 사람들의 처지가 이전보다 더 나빠져 가는 걸 희미하게 느꼈다.
언젠가 함씨 경인이 가르친 아이들이 마법사가 되어 세상에 나올 때도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것이다. 좋은 일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꿈꿀 터였다. 언젠가 별이 종말에 이를 때까지.
바람이 지나가는지 처마에 걸어놓은 풍경이 길게 소리를 냈다. 아까부터 점점 자세가 비틀어지고 있던 시현이 방석을 밀어내고 거실 바닥에 길게 드러누웠다.
그가 천정을 보고 말했다.
“싫어하더라도 호란이에게 글씨를 끝까지 가르칠 것을 그랬다. 파견지에서 편지라도 보내라 했으면 덜 쓸쓸했을 텐데.”
“걔 이제 글씨 다 알아. 그래도 편지는 안 써. 내가 몇 통을 보내도 답장 온 건 딱 한 번뿐이고 그나마도 세 줄이었어.”
“너한테만 썼다고!”
시현이 누운 채로 고개만 돌려 소리쳤다. 또 토라질 것 같아서 단이 황급히 말했다.
“난 내가 먼저 보냈다고. 다섯 통 쓰고서야 한 통 받았다고.”
“나한테는 글씨 다 배웠다 말해주지도 않았다!”
단이 달래는 투로 말했다.
“딱 한 번 편지 왔을 때, 거기 네 얘기가 있었어. 파견지 강가에 꽃이 잔뜩 피었다고, 아주 예쁘다고, 언젠가 너랑 나랑 셋이 가서 보고 싶댔어. 그게 다였어.”
시현의 시선이 다시 천정을 향했다. 그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셋이서… 정말로 그런 일이 다시 있을 수 있을까? 가끔은 그때 다녔던 것 전부가 꿈꾼 것 같을 때가 있어.”
“그게 꿈이었으면 내가 지금 여기서 너 나자빠진 꼴을 안 보고 있지.”
단이 피식 웃고서 덧붙였다.
“셋이서만 멀리는 못 가도, 사람 붙여서 가까운 데 나들이 정돈 갈 수 있을 거야. 뱃놀이도 괜찮고.
그러니까 다음에 호란이 올 때까지 걷기나 꾸준히 하고 있어. 체력이 붙어야 배를 타든 수레를 타든 하지.”
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잔잔한 바람이 들고 풍경이 다시 소리를 뿌렸다. 단도 더 말하지 않고 밖을 보았다.
하늘에는 크고 새하얀 구름이 끝도 없이 깔려 있었다. 이제는 그저 흔해진 풍경이었다.
《취운록: 재생하는 세계》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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